1. 신학을 암만 공부해도 신께 대한 끝없는 사색을 자기가 하지 않고는 신학을 한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자기가 그렇게 해야 신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무엇을 얼마만큼 아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그 아는 것을 재료로 해서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큰 그릇으로 늘 쓰임을 받느냐 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 ...
우리가 교회에 대해 알아보고자 할 때도 항상 중요한 것은 교회라는 것을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2. 교회가 거룩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다는 것을 규명한다면 '내가 이 교회의 한 책임자로서 이 교회가 거룩한 본질을 확실히 나타내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하는 문제가 그 다음에 남는 것입니다.
무릇 어떤 존재이든 그 본질이 가장 명료하게 드러날 때 제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물이 물로서 물 노릇을 가장 잘할 때 가치 있는 것이라 말입니다. 교회도 교회로서 자기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내는 데서 비로소 교회의 존재 의의가 가장 명료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3. 거룩함의 정신적인 의의-신약의 예:
베드로전서 3:15에 보면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서 거룩하게 하고"하는 표현.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가지고 거룩하게 하라" 하는 묘한 말을 썼습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삼았다는 말은 말하자면 나의 심리의 작용에서 볼 때 그리스도를 주라고 내가 인정한 터 위에 그를 주로서 늘 대접하는 심정을 가진다는 뜻인데, 그 다음에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이 경우에는 자기의 말과 행동에 있어서 그가 거룩하시다는 것을 늘 승인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서 거룩하게 하라 했으면 "그리스도는 나의 주님입니다" 하고 승인해야 하고, "그리스도는 나의 주로서 나는 그의 종답게 그분을 항상 숭앙하고 높입니다" 하는 자기의 겸허한 종 된 위치를 확호하게 시인하고 그렇게 느끼고 있어야 하고, 거룩하게 한다 할 때에는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다. 그런고로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것도 그런고로 거룩한 생각이다" 이렇게 거룩함을 그에게 돌료드리는 이것이 그 말뜻이올시다.
4. 거룩함의 의식적 의의-신약의 예:
마태복음 23:17부터 보면,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하고 주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타매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은 철학자들의 설명이 오히려 간단합니다. 큰 상자와 작은 상자가 있으면 큰 상자 안에는 작은 상자가 들어가지만 작은 상자 안에는 큰 상자가 못 들어가는 것이다 하고 설명합니다. 가치화할 수 있는 폭이 넓은 것은 그보다 작은 하등의 가치를 가치화할 수 있지만 하등이 상등을 가치화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물을 제단에 놓았으면 제단 때문에 예물에 의의가 있는 것이지 제단이 없는 다음에야 예물은 그저 물건에 불과하지 않느냐 그것입니다.
5. 여기 쓴 말 가운데 "어느 것이 크뇨?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어느 것이 크뇨?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금과 그리고 예물인 물질을 가리켜 거룩하게 한다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종교 의식상, 제도상 사용한 말인데 즉 어떤 물질을 거룩하다 할 때는 그 물질 자체가 거룩함의 속성을 지녔다기보다는 거룩되다고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거룩되다고 인정을 받으려면 일정한 조건 하에서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금이라는 것은 성전에 사용된 금이란 조건 아래에서만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전이란 것이 금을 거룩하게 하느냐? 그렇다. 성전이 무엇이길래 금을 거룩하게 하느냐? 성전은 거룩한 집이다. 거룩한 집이라 하면 허다히 많은 집 가운데 성전은 짓기를 묘하게 지어서 거룩한 것이냐? 그것이 아니라 그 집을 신성화하는 모태적인 더 큰 본체가 있다 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이라는 속성이 본체에서 나누어진 특성임을 인정하는 까닭에 즉 본체와의 관계로 인해 그 속성상 거룩한 것의 가치가 여기까지 미쳐서 거룩하다 그 말입니다.
6. 거룩한 시간
주일이 거룩하다 할 때 거룩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시고 주인이 되사 통재하시고 주장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당신이 인정하심으로써 충분히 다 거룩하다고 끝나는 것이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계시되었을 때는 계시를 받은 인격자들도 그것을 거룩한 것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그것이 가치화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과 관계되어 있는 신성성이 가치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려운 말 같아도 매우 중요한 사상의 하나입니다.
7. 그러므로 주일날이 거룩한 날이 되려면 그 거룩함이란 가치가 하나님 당신에게서 나온 까닭에 그 날은 내가 하나님께 대하여 구별된 태도를 취하는 점에서 비로소 거룩한 것입니다.
주일 날 뿐 아니라 다른 날이라도 사람은 어떤 날을 정해 놓고 그 날을 구별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자기의 종교적 수행을 위해서 종교적으로 거룩한 경지, 고고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특별한 행동을 하며 따로 지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거룩하냐? 그렇게 해서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거룩하다는 속성이 유출된 근본을 향하여 자기가 방향을 정하기 전에는 절대로 거룩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8. 주일날이 거룩하다 할 때 그 거룩하다는 것을 현현하는 도덕적 책임자는 나라는 분명한 한 인격자인데, 그 인격자에게 있어서는 모든 행동이 첫째가 아니고 그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의 죄라는 것도 행동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 있는 본질적인 존재, 그 다음에는 그로 말미암은 심적 상태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그것이 행동으로 발휘되는 것입니다.
9. 물론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신 곳이 없지만 인격적인 교제라고 할 때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존재하시니까 아무데 서더라도 거기 있으면 하나님 앞에 선 것이다 하는 그런 범신론적인 이론은 안 되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존재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안에 일정한 대면을 한다는 구체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주일에 경배하는 것입니다.
10. 주일이 참으로 거룩하려면 먼저 모든 시간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확실한 사상과 신앙 가운데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내 생명은 하나님의 것인 동시에 이 생명의 발휘도 하나님께 있다 말씀입니다. 내가 나의 시간이라고 스스로 쓸 것이 없이 하나님을 위해서 쓴다 그것입니다. 이것이 주일을 거룩하게 보낸다는 사람이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음의 위치입니다. "내가 모든 생명이 발휘되는 시간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왜냐하면 시간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대표적인 표지가 일주일의 하루를 구별했다는 사실입니다.
11. 다음으로 마음의 위치가 거기 있을 뿐 아니라 어떠한 마음의 상태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간접적인 어떤 선행이나 아름다운 일을 하기보다 이 날은 하나님 당신의 영광의 어전에 내가 직접 들어간다는 것이 주일을 보낼 때 가장 중요히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12. 그리고 이 날은 특별히 그 보좌 앞에 나온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한 마음의 경계를 내가 확호히 보유하고, 그것이 나의 생활의 샘플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날은 나 혼자가 아니라 내 형제와 더불어 같이 경배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거룩한 집단으로서의 형제들과 함께 그 날 커뮤니온이라는 것을 또한 가지는 것입니다. 홀리 커뮤니온. 성찬.
주일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또 볼 수 있는 표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떠난 커뮤니온이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커뮤니온 자체가 벌써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13. 주일-안식의 의미-날
주일과 관련하여 우리가 가져야 할 중요한 사상이 또 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주일이란 말에 붙어 있는 말은 아니나 어떤 한 시간의 대표를 제정하신 하나님 뜻에는 안식의 의미가 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성신 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이니라"(롬14:17)고 했습니다. 거기에 평안이 있는데 그것을 네가 보유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일날만 가지라는 것은 아니나 바로 그 날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 그 경계를 충분히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로써 자기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14. 어려운 상황의 예.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주일날 안식을 못하느냐? 몸뚱이는 안식을 못하고 있지만 그 마음은 하나님 나라의 평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너는 주일날도 공장에서 일하니까 하나님 나라의 평안을 가지지 못하고 불안해야 한다, 그것 절대로 아닙니다. 비록 네가 너의 상황 가운데서는 하나님 나라의 안식을 취하지 못할지라도 네 마음에서는 그것을 취하고 있어야 한다, 그 말입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을 보유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Micah (09.04.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