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석포에서 잠시동안의 여정을 마치고
이제 스산한 석포 시가지를 지나 석개재로 올라가는 중이다
이곳 석개재는 석포와 강원도 삼척, 동해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인 것이다
불과 5~6년 전만해도 4륜 구동차 아니면 이 고개를 넘는것은 언감생심 생각도 해 볼수 없었고
그나마 비나 눈이 조금만 와도 차량 통행이 전면 불 가능했었던 험악한 지형의 고개였던 것이다

석포 시가지에서 석개재 방향으로 삼삼 오오로 간간히 이어져 있는 석포리의 스레트 집들

길 옆 계곡엔 얼마전에 왔던 눈들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었다

이제 여기서 부터 서서히 험악스러운 석개재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석개재는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와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를 이어주는 지방도로이다
가곡면 풍곡리에서 석포면 석포리까지 고개 하나 넘는데 거의 20Km,30여분 소요가 된다
하지만 이 도로가 개통이 되고 나서도 이날 이때까지 버스 한대 다니지 않는
악명높은 난 코스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석포에서 풍곡리까지 갈려면 대중교통수단으로 택시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30 여분 이상 걸리면서 이 석개재를 넘어와도 요즈음 같은 초겨울 철에는
마주하는 차량이 겨우 한 두대 정도 밖에 안되니
시내버스를 운영한다 해도 거의 빈차로 운행해야 한다는 뻔한 계산이 나온다
석포쪽에서 풍곡리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군데 군데 꽤 널직한 고랭지 채소밭들이 보인다
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이 이번에는 모두 배추만 심었었던 모양이다
그 넓은 고랭지 배추밭에 몇포기 뽑지도 않고 그대로 방치된채
된 서리 맞은 배추들이 석개재 정상 부근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야기로 듣자 하니 이번 배추값은 현지에서 한 포기당 250원 밖에 하지 않았다 한다
그러니 100 포기를 뽑아 팔아도 2만5천원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누가 배추를 뽑으려 하겠는가
배추 100 포기 뽑는 시간에 어디가서 막일을 해도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수 있다하니
그저 이 곳을 지나면서 마음이 안스럽고 미안스러울 따름이다
그 황량한 배추밭들을 등뒤로 하면서 고개 정상에 올라오니
산 아래로 까마득히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의 집들이 아스라이 모습을 드러낸다

석개재 정상 부근, 여기서 부터는 동굴의 도시 강원도 삼척시이다

발 아래로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마을의 모습
산넘어 산, 그야말로 앞도 산으로 첩첩, 뒤로도 산으로 첩첩한 첩첩산중 마을이다
이길을 따라 약 20여분정도 쭈욱 내려가면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일대의 덕풍계곡 입구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응봉산 덕풍계곡이라면 보통 사람들에겐 아직 이름이 낯설지만
내로라하는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꼭 한번 가볼만한 장소로 그 명성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설악산이나 지리산등 전국에서 유명한 등산지와 비교해봐도
결코 뒤지지 않는 절경과 비경들이 처처마다 숨어 있기 때문이다
풍곡리에서 석개재를 넘어 봉화군 석포면으로 넘어가는 도로 구간은
지금부터 약 10여년전 부터 공사를 시작해왔다 한다
그런데 장마철만 되면 주변의 산골짜기와 삼림들이 씨도 때도 없이 무너져 내리며
보기 흉한 흉물스런 모습으로 벌겋게 드러남과 동시에 길도 끊어져 버린다
석개재 봉화쪽은 그래도 경사가 완만한 편인데 비하여 삼척시 가곡면 쪽은 지형이 너무 험악해서
애시당초 포장공사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토목전문가들은 이야기 하기도 한다
하여간 이 무지막지하게 험악스런 고개길을 따라 S코스로 돌면서,Z코스로 꺽다다가
다시 8자 코스로 벵글벵글 돌아가며 현기증나게 달려 내려 왔더니만
가곡 자연휴양림하고 풍곡리의 계곡들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멋지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길로 곧바로 태백방향 신리고개 쪽으로 조금 올라가 보니
우리가 목적했던 신리고개 보리밥집이 웬지 사람이 살지 않는 스산한 모습으로
흉물스럽게 버려져 있는것이 아닌가

40대 초반의 부부들이 했었던 신리고개 보리밥집

옛 주인은 어디론가 이사를 가고 흉물처럼 버려져 있는 신리고개 보리밥집

마치 황텅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하고
페허의 서른 회포를 말해 주기나 하는듯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봉화에서 보리밥을 한 번 먹어보려고 점심도 굶고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옛 사람들은 자취없고 텅 빈 보리밥집 앞 마당에서 그냥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을 뿐이다
이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
스적스적 앞 마당의 마른풀잎 밟히는 소리를 들으며 이웃집으로 가서 소식을 물어보니
벌써 1년전에 이곳을 떠나 경기도 포천인가 하는 곳으로 이사를 갔다는 것이다
그럼 내가 이곳을 다녀 간지도 1년이 훨씬 넘었다는 이야기다
순간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나면서 옛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같은것들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그 언젠가 늦가을에 와서 보리밥과 솔잎술을 마시며 하루밤 묵어갔던 기억들을 회상해 봤다
춘삼월에는 양지바른 앞마당 댓돌위에서
똥깨 한마리가 콧구녁을 벌름거리며
앞발을 묻고 한가로이 낮잠을 자는듯한 모습의 이곳 신리고개 보리밥집
한 여름에는 온 식구가 밭을 매러 간사이
마루에서 잠을 자던 어린애가 잠이깨어
놀란눈 뗑그랗게 뜨고 두리번 거릴듯한 모습의 이곳 신리고개 보리밥집
가을에는 해질무렵이면 할머니가 뒷마루에 앉아 반가운 손님이 올 리도 없건만
산마루를 넘어오는 장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듯한 모습이였기도 하고
한겨울에는 폭설이 내린 산골 아낙내가 솔밭에서
바람이 부는대로 굴러가는 솔방울을 줍고 있는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폐허로 변한체 아무도 찿지 않는 흉가가 되어 버려져 있다니
그저 마음 한쪽이 무너져 내리는것 처럼 싸할 뿐이다
이곳에서 십여년 이상을 살았으면 고향같이 정들었을 텐데...
정든 고향같은 마을을 버리고 떠날 정도면
세월이 지나면서 겨울이 닥칠때마다 외로움도 극에 달했을 것이다
산중 마을은 겨울이 오면 그야 말로 적막 강산이다
거기에다 폭설이라도 한 번 내리면 몇일 몇날 발이 묽이는것은 예삿일도 아닐 것이다
이곳 신리고개 마을에는 겨울이 오면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곳이다
지대가 높고 또 개울가라서 더욱 춥다
쌀은 없어도 살수 있지만 장작이 없이는 살수가 없는 곳이다
그래서 부엌옆 나무집 창고에는 두 부부가 겨울을 보내려고
참나무,콜크나무등등,장작을 패서 산더미 처럼 차곡 차곡 쌓아 놓았었다
삼척시장을 들렸다가 태백으로 넘어가기 전
나는 꼭 여기 보리밥집에 들려서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태백시장으로 넘어 갔었던 곳이기도 하고
어쩌다가 방을 하나주면 하루밤을 신세지고 갔었던 곳이기도 하다
소문에는 서울에서 뭔 예술을 하던 사람들이라고 하던 그 부부들은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이곳 첩첩산중 신리고개에다가 보리밥집을 차렸다는 것이다
아이도 없이 그저 두 부부만 보리밥을 팔면서 농사 지으며 산다고 했다
아마 두 부부가 이곳 신리고개에서 평생을 살자고 약속을 했었던적도 있었으리라
그러니까 십년의 세월을 이곳에서 살았었지 않았겠는가
보리밥집은 오래된집으로 강원도 특유의 너와집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도 그 동네의 유지가 살던 집이였었는데 그는 바로 옆에다가 새 집을 짓고
자기가 살던집을 이들 부부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겨울에 폭설이라도 내려서 이곳으로 오는 모든 길들이 두절되면
아마 두 부부는 얼굴을 마주하고 옛 이야기 하면서 길고 긴 겨울밤을 보냈었으리라
눈속에 파묻힌 겨울밤의 이야기 들을...
이제 가곡면 오저리에서 살았던 설호라는 법명을 가진 스님도 떠난지 오래고
이곳 가곡면 풍곡리에서 살았던 옛 사람들도 모두 어디론가 떠났으니까
나도 왔던길을 다시 뒤돌아 가야 되겠지
돌아오는 길에 풍곡리 풍곡초등학교 부근에 차를 세워놓고 보리밥 대신에 짜장면을 먹었다
그러고는 숨을 돌리며 같이 동행했던 동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곡면 풍곡리 풍곡 초등학교 운동장
이곳을 지나긴 했으나 마침 찍은 사진이 없어 할 수 없이 가곡면 싸이트에서 서리를 해 왔다
이 학교는 지금도 전교생이 30~40여명 안 팍이라 한다
내가 이곳에 처음 인연을 맺었을때가 15년 전쯤이었던가
그때도 이곳 짜장면집에 들려서 짜장면과 고량주를 한 병 마시고
덕풍계곡을 따라 풍곡리 산호정사라는 곳에 가끔 드나들던 적이 있었다
풍곡리에서 유일하게 짜장면집을 15년째 하고 있는 주인에게 물어 봤다
" 여기 풍곡초등학교 전교생 모두 합쳐봐야 20~30명 정도 밖에 안 되지요 ? "
" 그래도 20~30명은 좀 넘을 걸요 "
" 요 앞 덕풍계곡 산호정사에 사는 도호스님은 지금도 그 곳에 계시나요 ? "
" 지금은 산채를 어느 스님에게 맡겨놓고 어느 절로 공부하러 가셨다나 봐요 "
동호와 함께 짜장면 한 사발을 거뜬히 비우고 밖으로 나오니 4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산골 마을에서 4시면 이미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동호와 나는 더 어두워 지기전에 서둘러 석개재를 넘어 석포를 지나
청옥산 댓재 부근에 당도하니 날은 이미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내일은 오후에,부산에서 발꼬락 부부가 아이들하고 같이 봉화 일소암으로 찿아 온다 하니
부지런히 가서 좀 쉬려고 어두워 지는 산길을 따라 봉화읍 쪽으로 차를 달렸다
- 여기서 5부를 마치며 제6부에서는 부산에서 온 발꼬락 부부편이 상영 되겠슴니다. 많은 청취를 바랍니다 -
첫댓글 나가 신리고개 보리밥집 가잘 직애 안 따라 나서기 잘 했제... 기냥 다 떨어 삐리고 거그 가서 보리밥 장시나 해 보까? ^^
글고보이 그네유...아마 그날 봉화 일소굴에서 농부행님하고 같이 갔었더라면 그냥 그날...망신살이 뻗치는 날이 될뻔 했그마유 ^_^
그집 쥔장이 없나요.....보리밥집 차리시면....방 하나 주삼......ㅎㅎ
조기 위에 농부행님께서 보리밥집 하시면 가실때마다 방 하나씩 드리것쥬...글고보이 사랑님도 태백에 사신다고 했었쥬 ? 태백시에서도 시내버스를 타면 신리까지 40여분 밖에 안 걸리는디...^_^
태백에 사는게 아니고여..태백시 황지리 가 고향입니다...삼척엔 외숙모가 계시고여..신리까지..저도 언젠가 놀러가고 싶습니다..진심임당...ㅎㅎ
ㅎ~ 벌써부터 6부를 기다립니데이^^
또 콩나물국 다 테우시려구....^_^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수필가이시죠?
아이코...수필가는 무신...그냥 이불이 장시 왕서방일 뿐이쥬 ^_^
사람은 간 곳 없고 흔적만 남았는가? 무심한 칼 바람만 ~~~~~~혹시 전직이 방랑시인 김삿갓 아닌감유? ^^
김병헌님은 지금 영월 노루목에서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디...^_^
삼척 하니 눈이 번쩍 뜨입니당....제가 삼척 정라진항에서 태여 났거던요..암튼..좋은글 감사..ㅎㅎㅎ
아...공해님 고향이 삼척의 무슨 항구였었다구 했었쥬 ? 부친께옵서는 그 곳에서 배에 기름넣는 장시를 하셨다고 했었고요. 그 곳이 정라진 항 ? 암튼 좋은곳에서 어린시절 보내셨고만유 ^_^
뭐시냐 그라니께 성은 달라도 본이 같아 혼인은 못하다 하야 아랫집 강 경철 오빠를 넘보도 못혔던 강씨란 말이시. 긍게 남매지간이라해도 된다니께 다음에 가면 동상하고 저런곳을 가고픈데 어쩔꺼나? ㅎㅎㅎ 정말 멋있게 사는것 같네요. 쉬운 일은 아니겟지만 돈 벌어가며 저런 풍류를 즐길수 있다는것이. 한국을 가면 저런곳을 가고 싶어도 엄두를 못내는데 다음엔 함께 가 이 큰목소리로 장사도 할수있는데.....
억 ! 조약돌님 아니심껴 ? 반갑심더. 반갑심더. 우찌 이리 올만에 얼골을 내미셨다요 ? 시애틀에는 때 아니게 한파가 몰아 닥치고 많은 눈이 내렸다고 들었었는데, 워찌 계시는 곳은 모두 무탈 하셨는지요. 글고보이 조약돌님께서도 강씨 ? ㅎ~ 첨 알았심더. 앞으로 잘 모시겠심더. 강씨...^_^
헤~~ 조약돌언니 우낀다. 먹통님, "성이다르고 본이같다"요. 강씨가 아니고.. 조약돌 본명은 김-정-자.
잉...구럼 먹텅아님은 오늘도 헛다리 짚어 뿐네. 글구보이 지가 또 벙어리 제치기 할때 장님 하품하는 소리를 하고 말았고마요 ^_^
영희님아! 미국땅에 떨어지니 성이 김가로 변해 있더란말이요.우찌 김가하고 강씨가 본이 같겄소. 난 하가란 말이요 ㅎㅎㅎ
나먹통아님 여행기를 읽으면.... 언제나 가고 싶은 오지마을 여행을 할 수가 있어 참 좋습니다. ..신리고개 보리밥집이 참 좋아 보이네요. 그런 집을 하나 얻어서 텃밭이나 가꾸며 살고싶은 마음도 굴뚝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거기 지금은 1년동안 비워져 있어서 스산한 모습이지만 사람이 살고 있을때는 앞 마당이 울긋 불긋 꽃동산이였었쥬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