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둘레길 2구간(순례길 구간)
1.산행구간: 순례길 구간
2.산행일자: 2020. 05.26(화)
3.산행거리: 2.3km
4.산행동무: 아내
◎ 솔밭 근린공원(11:50).
◎ 4.19묘지 전망대(12:00)
◎ 보광사(12:10)
◎ 청화가든(12:30)
◎ 이준열사 묘지(12:40)
◎ 통일교육원(12:50)
좀 더 쉽고 편안하게 북한산을 만나는 공간이라는 슬로건의 북한산 둘레길
북한산은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일는 타이틀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 해 평균 1,0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북한산 국립공원을 찾고 있다고 하는데 그중 북한산 둘레길은 좀 더 쉽고 편안하게 북한산 국립공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하여 약70km의 산길과 물길, 흙길, 숲길, 마을길로 조성했다고 한다.
서울 도봉구를 비롯하여 종로구·은평구·성북구·도봉구·강북구와 경기도 고양시·의정부시·양주시에 걸쳐 연결되어 있어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산책로를 말하는것이다.
2010년 9월 7일에 서울시 구간과 우이령길을 포함한 45.7㎞ 구간이 개통되었으며 이후 둘레길은 2011년 6월 30일에 26.1㎞ 구간이 개통됨에 따라 전체 71.8㎞가 완전히 개통되었다고 한다.
구간은 21구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소나무숲길·순례길·흰구름길·솔샘길·명상길·평창 마을길·옛성길·구름 정원길·마실길·내시 묘역길·효자길·충의길·송추 마을길·산너머길·안골길·보루길·다락원길·도봉 옛길·방학동길·왕실 묘역길·우이령길로 부른다.
그중 도봉구에는 18코스 도봉 옛길, 19코스 방학동길, 20코스 왕실 묘역길의 7.9㎞가 지나고 있다.
200526 둘레길 .gpx
들머리는 보광사 들어 가는 길이다.
200여m쯤 되는 거리다.
왼쪽으로 순례길이라 문이 열려져 있다.
그리고 얼마후 보광사 들어 기는 임도와 다시 합류후 다시 산길로 이어진다.
보광사 가는길
4.19 국립묘지 전망대다.
너랑우리랑이라는 애설사의 집이 있지만 문은 닫혀 있다.
이또한 코로나19의 영향인가 싶다.
그리고 전망대에서 잠시 4.19 국립묘지를 내려다 본다.
자료를보면
1960년 4.19 혁명 때에 희생된 227분의 분묘와 4·19혁명 유공건국포장 수상자 38명이 안치되어 현재는 315기가 안치 되어 잇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을 기리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기념탑 중앙에는 의롭게 죽어간 이들을 기리는 탑문이 새겨져 있다.
설립은
1961년 2월 당시 국무회의에서 공원묘지 설립이 결의와 함께 추진되었고, 이듬해인 1962년 기공식을 가졌다고 한다.
1963년 국립4·19묘지라는 명칭으로 준공식과 기념탑 제막식을 가졌다.
1993년부터 국립4·19민주묘지에 대한 성역화 사업이 시작되었고, 2006년 현재의 명칭인 국립4·19민주묘지로 변경되었다
보광사다.
신원사로 하였다가 1980년 보광사로 개명했다고 한다.
서울 주변이라서인지 건물이 천태종 건물과 거의 흡사한 느낌이다.
분명한건 조계종인데...
4.8일 다가오는 봉축법요식을 준비하는지 등도 달고 여느때보다 바쁘다는 그런 느낌이다.
도봉산 자운봉,만정봉,선인봉,신선봉이 시야에 들어 온다.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는 그런 느낌
이건 분명 미친 짓이다 싶다.
사산금표다.
조선시대에는 산림자원의 보호를 위해 지역별로 금산, 봉산 정책을 시행하였다고 한다.
도성에는 한성부 관할구역인 도성밖10리를 경계로 사산(四山)에 금산 구역을 두었는데 도읍의 지맥을 보호하고자 부실하거나 훼손된 주맥에 보토(補土)하고,
가옥의 제한, 경작과 능의 설치 금지, 화전과 채석을 금하였으며 소나무 등을 식재하였다고 한다.
태종 7년(1407년)에 송림보호 시책이 시행되었고
문종조에는 성밖 동쪽으로 보제원과 노원역까지를 경계로 국가에서 쓸 일이 있더라도 채석을 금하였으며
세종조에는 북한산·도봉산까지 산지기를 정하여 벌채를 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강재 신숙선생의 묘지다.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교정및 인쇄 배포를 하였다, 그리고 대동단에 가입하여 임시정부를 만드는데 관여 했고 활동 지원했다고 한다.
1930년 한국독립당을 결성하고 학국독립군의 참모장으로 활약 했다고 한다.
광복후 입법의원과 제헌 국회의원 그리고 초대재무부장관을 했다는 애국선열 상산 김도연의 묘지 들어가는 입구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목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둘레길은 오른쪽길이 맞겠더라
수유동 골목길이다.
집집마다 거대한 대분이며 아무도 살지 않은듯 조용한 그런 집
개인 프라이버시를 보호해달라며 조용히 지나가달라는 안내판도 결려 있다.
그중 한가정의 장미가 눈길을 끈다.
청화 가든앞이다.
이렇게도 좋은 자리에 개인 식당이 자리 잡고 있으니 무슨 특혜라도 있는게 아닐까 싶다.
국립공원이라는데 이게 말이나 되는가 싶기도 하고...
순례길 체육시설이 있는곳이다.
유림묘지 가는길이다.
태극기의 변천사
온통 음식점이다.
이래도 국립공원이라 할수 있는지 묻고 싶다.
매미나방 유충 대량발생 안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올봄이 따뜻해 많이 생겼다는 이야기이지만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을 정도다.
떡갈나무밑을 지날때면 사갹사갹 소리와 함께 건은 똥이 떨어지는건 고사하고간에 너무 많다.
방제라도 해야 싶은데....
오죽했으면 북한산 국립공원홈페이지에 들어 가면 다음과 같이 안내문이 공지 되어 있다.
송충이 닮은 ‘매미나방 유충’만지지 마세요!
1,국립공원공단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소장 박기연)는 지난해 대량 발생한 매미나방(Lymantria dispar)으로 인한 불쾌감을 예방하고자 선제적으로 물리적(알집
, 유충 제거) 방제활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2,매미나방은 유충시기에 다양한 활엽수의 잎을 먹는 광식성 곤충으로 지난 해 7월 초 이른 더위와 이상 고온 현상으로 대발생시 낳은 알들이 올 봄에 부화하
여 탐방로 주변에서 발견되는 개체수가 늘고 있다.
3,털이 많은 매미나방 유충이 직접 사람을 물거나 쏘는 경우는 없으나, 팔이나 목 등 피부에 붙은 유충을 문지를 경우, 알러지 및 가려움증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챙이 넓은 모자와 소매가 긴 옷을 입고 되도록 만지지 않아야 한다.
4.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민웅기 자원보전과장은 “북한산을 찾는 탐방객들의 안전을 위하여 매미나방 유충에 대한 각별한 주의를 당부”드리며, 자연생태계 악
영향이 없도록 “매미나방 밀도 감소“를 위해 지속적인 물리적 방제를 진행하고, 우화기(6월 하순)에는 페로몬 트랩을 이용한 성충 포획을 병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준열사 모지다.
1905년 11월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다수의 동지들과 함께 을사조약폐기 상소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으며 1907년 1월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전국운동으로 확대하기 위해 서울에 국채보상연합회의소를 설립하고 소장이 되어 모금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특히 헤이그특사단의 부사가 되어 1907년 4월 22일 서울을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서 정사 이상설과 합류하고, 다시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스부르크
로 가서 이위종(李瑋鍾)과 합류, 6월 25일 헤이그에 도착하여 세계평화회의 의장에게 고종의 친서와 신임장을 전하고 평화회의장에 한국대표로서 공식적으로
참석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했으나, 일본대표와 영국대표의 방해로 성공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런 열강의 대표들의 반대로 이에 격분한 이준은 통분을 누르지 못해 헤이그에서 순국하였다고 한다.
아카데미하우스와 통일교육원이 자리하고 있는 수유리..
2구간 끝 게이트다.
만첨빈도리이다.
만첩빈도리는 말 그대로 꽃이 만겹이라는 뜻이라고한다.
꽃말은 애교이고, 다른 이름은 백화 만첩빈도리라고도 부른다.
유래는 꽃이 겹꽃으로 핀다고 하여 만첩이라 하고, 줄기 속이 비어 있어서 빈이 들어가며,말발도리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도리를 가져와 만첩빈도리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해열, 이뇨, 신경통, 살균작용, 요산 배출, 통풍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신장염, 자궁내막염, 자궁암, 협심증, 황달, 소변불리, 안질, 심복요통, 산염 등에 치료 약재로 쓴다고 하며 피부질환은 진하게 달인 물로 씻는다고 한
다.
이상은 백과사전에서 발취한것이다.
2구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