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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보자기, 행복보자기
전도서 3:1-3
하나님의 평화가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빈다.
오늘은 새해 첫날이다. 신년 주일이다.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길 바란다.
모두 2022년에서 2023년으로 잘 건너왔는지 궁금하다. 그 시간의 징검다리가 어떤 사람에게는 멀고 깊어서 회한도 아쉬움도 몹시 커서 두려웠다고 한다.
교회력은 여전히 성탄절기이다. 독일의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 영원한 탄생은 영혼 안에서 일어난다”고 말하였다. 성탄은 2천 년 전에 일어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 깊고 고요한 곳에서 일어나야 진정한 성탄절 사건이 된다는 것이다.
즉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한 날이며, 동시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태어나는 영혼의 축제일이다.
그리고 새해를 뜻하듯 우리가 맞이하는 미래를 표현하는 두 가지 라틴어 단어가 있다. 푸루툼(futurum)과 아드벤투스(adventus)이다. 미래란 단어 퓨처(Future)는 푸루툼에서 나온 것이다. 퓨처는 과거와 현재로부터 발전된 미래, 곧 인간의 노력으로 만든 미래를 의미한다.
그런데 아드벤트(대림)의 어원인 아드벤투스는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기 때문에 열리는 하나님의 미래이다. 과거와 현재에 이어서 계속되는 퓨처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미래,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은혜의 시간으로서 미래이다.
2023년에 여느 때와 다른 기대감과 설레임이 있다면, 그런 은혜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있는 카드는 별로 없다. 더 나아질 가능성도 적다. 그러나 만약 기대와 소망이 없다면 그런 새해는 ‘다시’를 되풀이하는 반복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 개입하셔서 은총과 복을 많이 받기 바란다.
1)
새해 첫날, 첫 주일에 우리에게 주신 전도서 3장 말씀은 이렇게 시작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1).
모든 일에는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전도서에서 지혜자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14가지 상반된 경우를 말한다. 이럴 때와 저럴 때, 이런 순간과 저런 순간, 이런 기회와 저런 기회 등 28가지 때를 강조하는 것이다.
실제적인 보기를 들어 ‘출생과 죽음, 파종과 수확, 슬픔과 기쁨, 획득과 상실, 침묵과 외침 그리고 전쟁과 평화!’이다.
이 본문(2-8절)을 반복해 읽어 보라. 처음에는 비감해진다. 몇 번 되풀이 읽으면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 어쩌면 아름다운 색동조각보처럼 삶의 유기적인 조화마저 느낄 수 있다. 눈물보자기와 행복보자기에 번갈아 담긴 인생이다.
그렇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모든 사람은 예외없이 ‘출생과 죽음’이 있다. 인생이 유별난 것은 어느 한순간일 뿐이다. 그러니 인생에 대해 자신 있게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사람들의 예상은 항상 빗나가니, 결코 오만할 수 없다.
농사일에도 ‘파종과 수확’이 있다. 이것은 백만인의 상식이다. 어떤 사업이나 프로젝트도 세울 때가 있으면 허물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일에 다 때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사람들은 정작 그때그때 닥칠 때마다 마치 ‘코앞의 일’처럼 매몰되기 마련이다. 당장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하기까지 오랜 진통의 시간이 필요하다.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은 인생에 대해 누구에게도 정답을 가르쳐 주지 않으신 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이미 가르쳐주신 정답을 너무나 가볍게 여겨 그냥 지나쳤을 뿐이다.
성경은 우리의 인생에 대해 말한다. 비록 매일매일 마주하는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일지라도, 그날그날 하나님의 도우심과 섭리를 느끼고 의미를 찾아보라고 한다. 그러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한시라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 늘 겸허하게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 지혜이다. 우리에게 새해가 필요하고, 우리가 생일을 축하하는 이유다. 시간의 매듭을 기억하라.
시간은 색동보자기와 같아 무엇이나 담을 수 있으니 다시 시작해 보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새해에 여러분의 보자기에 무엇을 담고 싶은가?
2)
사실 전도서는 인생을 비관한 책이 아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4).
눈물보자기가 있다면, 행복보자기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에 민감해야 하지만, 인생을 더 멀리 볼 수 있어야 한다. 전도서는 우리에게 현실의 눈물에도 불구하고, 감사해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음을 말한다. 그러기에 희망을 향해 하루하루 더 사랑하고, 더 진보하라고 충고한다.
행여 내 인생이 겪는 고통이나, 우리 사회가 겪는 진통은 헐 때와 세울 때를 분간하지 못하는 데서 온 것이다. 전도서의 말씀에 귀 기울여 보라.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3),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6)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헐 것과 세울 것, 지킬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기 위해 더욱 진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
새해는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준다. 어린아이도 새해를 맞으면 결심을 한다. 만약 결심할 마음조차 없다면 그 인생은 문제다.
숱한 결단을 하는 사람이라도 새해 계획을 세울 때 단절할 것과 계승할 것을 바로 분별하지 못하면,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습관은 자주 내 발목을 잡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 매일 조금씩 개선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결심과 의지에 달려있다.
우리는 인생의 전체적인 상황을 볼 수 없다. 다만 우리 자신을 바르게 볼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인생은 너무 어려운 수학 문제여서 결국 해답을 얻으려면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우리의 인생에는 많은 눈물보자기가 존재한다. 전도서는 슬픔과 아픔을 결코 피해 가지 않는다.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5).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우리에게 매일 다가오는 삶을 최선을 다하라고 일깨운다. 하나님이 배후에 계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마음과 손길이 나와 함께 하시길 기도한다. 그 은총의 손길로 내 인생에 개입하시기를 원한다.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9-10).
자기가 하는 일이 언제나 즐거운 사람은 없다. 일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공부든, 사업이든, 집안일이든 끝이 없다. 충분한 보상도 기대할 수 없다. 경쟁 속에서, 비교 속에서 늘 주눅이 든다.
전도서는 말한다. 그럼에도 내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특권이고,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한다. 그런 마음으로 일하면 삶에 대한 시각이 달라질 것이다. 나를 향해 행복을 담을 보자기를 펼치라는 것이다.
전도서는 거듭 충고한다. 자신의 판단을 절대시하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하라. 젊은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찾고 경외하라.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라.
미국 텍사스주립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들은 나이든 사람들의 정서 변화에 대해 연구하였다. 여러분은 젊은 사람들과 나이 든 사람들 중 누가 더 희망에 대해 자주 말한다고 생각하는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긍정적인 정서를 더 많이 표현한다고 보고하였다. 언어습관을 보면 나이가 들수록 ‘나’ 중심의 단어는 줄어들고, ‘우리’와 같은 공동체 중심 단어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동사의 시제 사용도 동사의 과거형은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중년은 현재형을, 노년으로 갈수록 미래형을 더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미래를 더 많이 이야기하고 노인들이 옛날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정반대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우리의 예상과 달리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차이에 관대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한다. 그것이 정상이라는 것이다.
페너베이커 교수는 이러한 변화를 ‘지혜’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영적이 되고, 신앙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아마 하나님과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분은 변화는 어떤가?
우리 그리스도인은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이다. 비록 우리에게 천기를 누설할만한 지혜와 능력은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맡겨 주셨다. 날마다 말씀을 읽고, 사랑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아뢰는 것은 얼마나 큰 능력인가?
모두가 절망하고 눈앞이 캄캄하다고 좌절할 때,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믿음이다. 고통 중에도 기도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놀라운 영적 능력이다.
3)
성경은 아름다운 색동보자기와 같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의 <행복연습>이란 책에 따르면 성경에는 ‘기쁨, 행복, 즐거움, 축하, 환호, 웃음, 축제, 잔치, 축복, 환희’가 들어간 문장이 무려 2,7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신약성경에 “서로 OO하라”는 말씀이 50개가 넘는데, 여기에서 ‘서로’는 실제적인 행복으로 가는 원리라고 말한다. 저자 루케이도 목사는 <행복연습>에서 모두 10가지의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제시한다.
- 서로 격려하라(살전 5:11).
- 서로 참으라(엡 4:2).
- 서로를 더 낫게 여기라(빌 2:3).
- 서로 문안하라(롬 16:16).
-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약 5:16).
- 서로 섬기라 (갈 5:13).
- 서로 용납하라(롬 15:7).
- 서로 권면하라(골 3:16).
- 서로 용서하라(엡 4:32).
- 서로 사랑하라(요일 3:11).
나는 이를 ‘서로 복음’이라고 부른다. ‘서로’라는 색동보자기는 얼마나 소중한가?
색동교회는 신앙공동체이다. 무엇보다 ‘젊고 따듯하며 평화로운 신앙공동체가’이기를 소망한다. 공동체는 그 안에서 함께하는 지체가 행복해야 진정한 공동체이다. 그런 공동체는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는다. 한 사람의 지체의 기쁨과 슬픔에 ‘즐함우함’으로 함께 한다.
심지어 기도 순서와 애찬 담당에서 누구도 빠지지 않으며, 배제하지도 않는다. 권사 직분을 맡은 이들에게 빠짐없이 골고루 공동체를 섬기도록 예배지기로서 일하도록 하는 이유다.
내가 색동교회에서 일하기 전에 감리회 본부에서 기획업무를 하였다. 무려 6년 동안 종교권력 중심의 자리에서 일하였다. 이런 기록을 남겼더라.
“내가 낮은 자리 또는 변두리에서 일할 때는 주위에 선한 사람들만 있었다. 그런데 그나마 권력이라고 본부의 중심에서 보니 주변에 웬 악한 놈들이 그리 많은지.. .”(2009.10-2)
색동교회가 여느 다른 교회들과 좀 다르고 특별하다면 내가 6년 동안 감리회 본부에서 기획자로 일하면서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한 내용이다. 어쩌다 그렇게 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적 허위의식이나 겉치례 등 과감히 없앨 것은 없애고, 보다 개방적이고, 모두가 주도적인, 신앙의 상징으로 가득한 따듯한 신앙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선한 영향력은 밖에서만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서로 선한 영향력을 나누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에도 너무 시간이 부족하다.
바라기는 나는 우리 공동체가 눈물보자기와 행복보자기를 다 담아낼 든든한 색동보자기가 되기를 원한다. 이미 색동 이미지만으로도, 색동교회는 국가대표 교회 구실을 해야한다. 그런 이름값을 하자는 것이다.
개신교회를 세운 개혁자들이 고백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55항에서 이렇게 묻고 대답한다. “‘거룩한 이들의 공동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모든 신자는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은사 안에서 공동체의 지체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은사를 기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 기꺼이 사용해야 합니다.”
새해를 맞아 ‘때’를 나타내는 두 가지 단어를 선물로 드린다. ‘지금’과 ‘다시’이다.
‘지금’은 ‘평생 저축만 하는 바보들이 놓치고 사는 것’이다. 감사와 행복은 저축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지금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다시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인생의 도돌이표’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물이다.
2023년에 서로가 나의 길을 걷는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동행이 되길 바란다. 잠시 어려움이 있어도 힘을 내라. 양파는 겨울 한파에 매운맛이 드는 법이다. 그리고 행복의 비결은 감사하는 삶에 있음을 명심하라.
올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사모하는 여러분을 통해 새로운 희망이 열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