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불볕 더위를 입증하듯 한 참 달아 오른 햇살이 대지위에 내리 쬐던 그 시간,
병원 창문을 살짝 열어 봅니다. 병실 안 에어컨의 찬 공기가 무색할 지경으로 더운 열기가 훅 밀려 들어 옵니다. 깜짝 놀란 이마를 옆으로 돌리고 뜨거운 열기에 잠시 감았던 눈을 떠 봅니다. 이 곳 병원에 와서 입원을 한 지도 벌써 3일째입니다.
제 병명은 급성 신우신염이래요. 처음에는 몸살처럼 시작했습니다.
무언가 큰 결정을 내리고 친정에 온 후라 짐짓 “그래 올 것이 왔구나! 몸살쯤이야.”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새벽 6시 친정에 온 후로 늘 빼 놓지 않고 뒷산을 오르는 일을 했습니다. 엄마가 끓여 주신 보리차를 600미리 물통에 넣고 너우실 너우실 흥얼 흥얼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오솔길은 마치 한 사람을 위한 길 인양 좁지도 넓지도 않게 펼쳐져 있고 고운 돌을 발에 굴리며 산을 오릅니다. 지난 겨울 올랐던 산은 사방이 다 보이고도 넘쳤는데 여름의 산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거진 나무의 이파리가 내 머리 위에서 달랑거리고 이파리 사이로 바람이 설핏설핏 지나갑니다. 여름의 산 속에 있자니 내 마음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밖이 아니라 안이요.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발 아래 구르던 작은 돌들이 제법 미끄럽습니다. 집으로 돌아 온 나는 그대로 쓰러져 버렸어요. 열이 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근육통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발뒤꿈치까지 아프단 말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부엌에서 아침밥을 지으시는 엄마가 아실까봐 등산의 여파로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운동부족이야, 내일 또 올라가라.”하며 웃으셨어요.
나는 한참을 열과 통증으로 신음하다가 저녁 늦은 무렵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00병원에 갔는데 어디가 아프냐고 의사선생님께서 물으십니다. “아, 네.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고 뼈까지 쑤시는 것 같아요. 선생님. 머리도 아프고 열도 있는 것 같고, 그리고 옆구리가 너무 아픕니다.”
의사는 살풋 웃으면서 “옆구리가 왜 아플까요?” 하며 화장실을 자주 가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나는 아침에 화장실에 갔고 제대로 볼일을 봤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장염입니다.” 더도 덜도 말고 한마디로 장염이라 병명을 부르고는 진통제와 항생제를 맞고 가라고 했습니다.
병원 침대에 누워 링거에 투여된 진통제와 엉덩이 주사를 맞으며 이제 이 고통이 끝나고 내일쯤이면 또 활발히 움직일 수 있겠구나! 살짝 기대가 되기도 했어요.
그리고는 다음 날, 새벽부터 저는 너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열은 떨어지지 않고 계속 올랐고 몸을 옆으로 제끼어 눕는 것조차 통증으로 힘들었어요. 옆구리에 가해지는 처음 느껴보는 듯 한 통증은 자꾸 “아”하는 신음소리를 내게 했습니다. 저는 다시 다른 00병원에 갔습니다. 그 곳 병원은 작은 내과였는데 저에게 증상을 듣자 마자 신우신염이 의심이 간다며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를 요청했습니다. 세균은 검출되지 않았지만 백혈구 수치가 높았고 옆구리 통증은 신장에 세균이 감염 되 염증이 생긴 결과라고 했습니다. 통원치료를 명받고 다시 진통제와 항생제를 맞고 집으로 왔습니다. 옆구리에 구멍이 생긴 것처럼 아팠어요.
세균에 감염된 장기는 열을 냅니다. 백혈구 수치가 올라가고 병원체와 싸우기 시작하죠.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는지 자동으로 열이 납니다. 39도를 넘나드는 열기 속에 다른 장기들은 피곤함을 느끼고 결국 같이 괴사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병의 진행과정이더군요.
세균에 감염된 신장이 아프기 시작하니 대장, 소장, 이어서 위장까지 아프게 되더라고요. 드럼통처럼 굵어진 배는 장기들의 신열로 퉁퉁 붓고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 되었어요. 그리고 전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내 삶의 결과라고요. 그리고 다시 한번 전환점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산을 오를 때 저는 꼭 정상까지 가고자 했습니다.
제가 오르던 뒷산 낮은 산이고 40여분이면 오를 수 있는 둥글둥글한 산이지요. 바로 옆엔 비단결 같은 금강이 흐르고 이명박이 만든 공주보가 위풍을 자랑하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공주 시내에 반죽동이며 금학동, 중동, 산성 공원까지 한 눈에 보이는 그 산의 정상에 올라가 공주의 모습을 하나도 빼 놓지 않고 보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산은 그저 오를 수 있을 만큼 오르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오솔길을 한 걸음씩 오르며 발에 채이는 돌을 귀여워하고 이파리를 치고 도는 바람을 느끼며 오를 만큼 오르는 것이 산이 아니었던가?
삶이란 것도 꼭 목적이 있어서 그것을 달성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너무나 커다란 꿈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하려 애씁니다. 그러다 보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에 무관심해지거나 욕심이 과해져 사랑하는 것들을 헤치는 경우도 생깁니다. 더군다나 그 목적에 방법이 더해지면 자신의 깜냥을 보지 못하고 전진만하게 되지요. 정상에 올라 무엇을 볼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지나는 것들에 대한 감상은 저만치 멀리두게 됩니다. 실제로 삶이란 과정 속에 있는 것인데 말이죠.
제가 아픈 이유는 제 몸을 돌보지 않아서입니다. 제 몸을 돌보지 않은 이유는 스스로 슬프다는 강박에 쌓여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학대를 한 것이지요.
열이 나고 괴사가 시작되고 병원에 7일간 입원을 하면서 제가 느낀 것은 지나치게 내 자신을 학대하고 제가 꿈꾸던 삶의 목적과 상반되는 일들에 대해 원망하고 그것을 제탓으로만 돌렸던 이유입니다.
다시 뒷산에 오릅니다. 무성한 나뭇가지들이 서로를 아끼며 입맞춤하고 더운 바람이라도 그들의 수고로움을 씻어주려 자주자주 불어 옵니다. 길가에 키작은 소나무도 키 큰 소나무도 서로를 맞잡고 길을 열어 줍니다. 길가에 채이는 것은 돌 뿐아니라 여린 풀 포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산을 오르다 땀 한번 식혀주고 다시 길을 내려옵니다. 내려오다 쭈그리고 앉아 개미집을 살펴 보기도 합니다. 궂이 정상에 오르지 않더라도 볼 것도 느낄 것도 많은 등산입니다. 그리고 내가 걸어 산을 오를 수 있음에 나에게 감사함을 전해 봅니다.
“오늘도 수고 했어, 이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