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거할래?'
'풋...'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멋지게 해내었다. 완벽한 커피분무기!
나는 순간 커피분무기가 되어있었다. 것도 아주 성능 좋은 분무기말이다.
'너.. 너.. 지금까지 나 만나면서 그런 생각..했었어?'
흥분하면 말을 더듬는 버릇이 또 나오고 말았다. 바보같은 버릇이지만, 그래서 사람들앞에서 그 버릇이
나오면 어찌할바 모르는 창피함과 함께 더 버벅거리게 되는 나이지만, 그래도 그나마 덜 창피하게
여겨지는 녀석앞이지만.. 그렇지만 분명 오늘의 이 경우는 다르다.
늘 말이 없고 무뚝뚝하기만 한 녀석. 그래서 사람이 아니라 마치 눈만 껌벅거리고 심심하면 가끔씩 인심쓰듯이 입을 열어 단답형의 대답은 해서 '사람.. 맞구나'라고 일깨워주는,
'사람 아닌 사람'만 같은 녀석.
그런데도 왠일인지 믿음직한 면이 있어서 술먹고 엄마앞에서도 보이지 않던 내 눈물을 보여줄 수 있는
신뢰가 가는 녀석.
세상에 태어나 빛을 처음 대하곤 그 낯설음탓인지 혹은 간호사 누나의 손이 너무
매웠던 탓인지, '나 살아있어요'라고 당당히 신고식하던 출생 당시의 울음과
녀석의 평생에 단 한명 뿐일거라던 '그녀'의 죽음을 실감했던
새벽녘에 흐느끼던 울음 그 이후, 녀석 평생에 세 번째라는 내 앞에서의 '그녀'의 기일에 울던 울음.
그렇게 우리는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는 별로 달갑지 않은 기분을 느끼며 지내왔었는데..
내 생리주기마저 알고 더러운 성질 건드리지 않으며 현명하게 삶을 살아갈 줄 아는 녀석.
그런 녀석이.. 내게 동거라니.. 나를.. 이성으로 보긴.. 보았다는 것인가.
'그런 눈으로 볼거 없어! 말 그대로 '동거'를 하자는 거니까'
꿀꺽...
저절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잔잔히 커피숍을 흐르는 이름 모를 발라드 곡보다 더 큰소리로 내 귓가를 울렸다. 녀석은 뻔뻔한건지 대담한건지, 내 십년만에 나올까 말까 한 당황해 하는 표정과 침 삼키는 소리를 분명 들었으면서도 힐끗 한번 나를 쳐다보고는 커피잔을 들어 특유의 고품격의 포즈로 잘도 삼켜댄다.
꿀꺽..
꿀꺽..
내 침 삼키는 소리인지, 녀석의 커피를 들이키는 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동거... 그러니까.. 나랑..너랑.. 한 집에 같이 살자...는.. 거냐?'
'너 전공 국어국문학 맞어? 사전 가져다 주리?'
언제나 '딱딱'하게 표현하는 녀석. 재수없다가도 미운정이 들다가도 이런 순간에 저러면 또 다시 재수없어진다. 망할 자식...
'너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동거는..'
'싫으면 말던가'
한마디로 상대방의 말과 기분을 날카롭게도 잘라내버리는 녀석. 능력인가, 저주인가...
'너.. 나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냐?... 지금까지?'
'이런 생각한지 얼마 안됐어. 한.. 일주일?'
일주일이면 함께 있었던 시간이.. 일주일에 학원에서 보는 게 하루 세 시간씩 세 번이니까, 9시간에,
주말엔 하루 종일 같이 있곤 했으니까 10시간이라고 잡아도 20시간. 그럼 그것만 해도 29시간.
하루 24시간보다 다섯 시간이나 많은데.. 하루종일에 더해서 다섯 시간까지 .. 날 보며.. 그런 생각을..
꿀꺽...
'침 좀 그만 삼켜. 도대체 너 무슨 생각을 하는거냐!
아무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냐니..그런 내가 물을 말인데. 하루종일 날 보면서..도대체 넌...
'너 집도 멀잖아. 어차피 학교 다닌다고 해도 그때도 집에서 다닐것도 아니고. 또 고시원 구할거야?
후우...
넌 집이 필요하고, 난 집을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해. 서로 조건이 맞잖아?
너랑 나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
태연하게 담배까지 물고 마치 영화대사처럼 읊조리는 저 소리가.. 신이여 들리시나이까?
'흠...흠흠... 그러니까.. 니 말은.. 그..뭐냐.. 일종의..'룸메이트'.. 같은거.. 말하는거야?'
'잘 아네'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신을 찾고 엄마 얼굴도 생각나고, 별별 상상을 그 짧은 순간에 도대체
얼마나 해대었는데.. 이럴때보면 내 두뇌의 스피드는 남들보다 무척 뛰어난것만 같다.
'진작.. 그렇게 말해야지~. 근데.. 나는.. 음..'
갑자기 왜 말을 끊으며 망설이는 척을 하는건지.. 순간 머리를 굴려본다. 초스피드로..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까.. 그래도 녀석은 남자고 이성인데. 집에 말하면.. 엄마가 죽이려 들텐데..
한마디로 나보고 살림을 하라 그건데.. 완전 '전업주부'되는거 아닌가..
그러다 어느날 녀석이 술먹고 나를..
'흡..'
'무슨 상상을 하는거야 대체!'
녀석이 미간을 찌뿌린다. 무서운 녀석. 내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던 적은.. 녀석과 알고 지낸지 2년동안 단 두 번. 일년에 한번 꼴 뿐이었다.
술집에서 녀석이 화장실 간 사이에 취한 내가 부킹하고 있다가 역시 취한 어떤 남자에게 거의 끌리다시피하여 차에 실려갈 뻔 했을 때.
녀석의 '그녀'의 존재를 알기 전, 후배의 뇌물에 넘어가 녀석 모르게 소개팅 자리를 주선하다 당일 날
길거리 한복판에서 녀석에게 된통 야단 맞던 때.
얼마나 인상이 더러워서 무서운지, 카리스마가 넘쳐 흐르다 못해 흘려대곤 한다. 최민수를 연상케 하는..
'내가.. 뭐... 아니야...난 그냥...'
'싫으면 됐어, 일어나'
'아니라니까~'
또 한 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야 말았다. 도대체 녀석과 있으면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한다.
언제나처럼 멋대로 일어나려던 녀석을 소리 한 방에 다시 앉히고야 말았다. 역시 목소리 큰 자가 승리한다.
'그게.. 아니야.. 싫은게 아니라...
솔직히..그렇잖아.. 난 돈도 없고, 한마디로 얹혀 사는건데..
음... 미안하니까 .. 그렇...지..'
돈 없고 가진 것 없는 자는 언제나 당당하지 못하다. 그래서 사람은 잘먹고 잘살아야 한다.
'너답지 않게 왜 소심하게 그래? 후우~
말했잖아. 넌 집이 필요하고, 난 관리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활비대신 니가 청소랑 빨래랑 해. 됐냐?'
이건 마치..
21세기 신종 노예가 되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들어날 걸 알면서도.. 애써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웃음을 지어
녀석에게 최대한 환하게 표정을 지어보인다.
조금은 귀여워 보이게, 어깨도 약간 움츠리면서,
수줍은 듯이..
'안 어울려! 일어나'
녀석이 연락을 끊은지.. 이주일이 다 되어 간다.
가끔씩 사라져버린 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 경우는 가장 장기간의 '감감무소식'이라 사뭇 걱정이 된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녀석.
'단짝은 왜 요즘 안 보여? 너희...쩝쩝... 드디어 깨졌냐?'
후훗... 어설프게나마 웃어보이지만.. 너도 알고 있냐? 내가 너 무척이나 재수없게 생각한다는 것을.
나름대로의 농담을 던진 것이라 하는 동안에도 먹을 걸 손에 쥐고 있는 저 강사.
발음도 엉망이면서 수업시간엔 늘 자기자랑에 침이 마르지를 않는, 그렇게 떠들어대니 배가 꽤 고프기도 하겠다마는.. 나같으면 당뇨, 고혈압 걱정되서 신경쓰겠다, 그 나이에..
'저...이거.. 히히...'
나보다 더 깡마른 손가락들 위로 불안하게 놓여있는 자판기 커피. 양도 적군.
녀석이 곁에 없으니 별 인간들이 피곤하게 한다.
나이가 몇인데 치아교정이라니.. 외모는 마치 일류대 공대생같건만. 얼마전 본 모의고사에서는 또 학원의 최하 성적을 기록했다는.. 아무래도 저 이빨 사이를 가로막는 철사로 인해 뇌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그 사실을 어서 댁도 깨달아야 할텐데..
휴우...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녀석이 없어서일까.. 집이 한결 더 넓어보인다.
신혼부부가 살기에 적당할 것 같은, 한강위에 놓인 다리가 저녁이면 환상적인 야경을 만들어내는 차창밖의 풍경을 바탕으로 꽤 값져보이는 가구들과 살림살이들. 지방이라지만 녀석은 부유한 집안 아드님이시다. 누구와는 .. 비교가 안되는...
한때는.. 그건 분명 '열등감' 혹은 '피해의식' 그래, 부정하려 해도 그건 분명하다.
열등감..혹은 피해의식..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 것이다.
한때는.. '잘산다' 고 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무조건 싫어하던 때가.. 있었다.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후 불거진 절대적 빈곤의 해소와 동시에 일어난 상대적 빈곤의 탄생.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연예인들조차도, 가난한 이들의 출세가 아니라 꽤 괜찮게 사는 집 자식들이
활동하고 인기가 있다 하면 무조건 '밥맛이야'를 중얼거리기까지 했으니.
누구는 한 줄기 빛조차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방을 그것도 월세로 하여 살아가는데 드는 돈과,
살아가는데 있어서 옷, 물과 같은 꼭 필요하다 하는 '필수품'도 아닌 머리핀이나 가방, 손목시계값이
같은 숫자를 나타내기도 하는 걸 보면서.. 한 시간에 3,000원도 되지 않는 시급을 받으며 절대 부모에게
손벌리지 않겠다고 나름대로 '장한' 결심을 하며 하루의 1/4시간을 보내버리는 젊은 날들동안..
어쩌면.. 부모 잘못 만나서.. 라고 한번쯤은 탓해보는 것도..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타이틀을 잠시나마 벗어두고라도 인정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라고 애써 변명해보며 말이다.
'너..정말 재수없어'
넌 다 가지지 않았냐고, 니가 부족한게 무엇인데 마치 세상 고민 다 짊어진 듯이 폼 잡냐고..
술취해서 미주알고주알 털어내던 나를 보면서.. 녀석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었다.
마치.. 내 맘을 다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은채로..
그런 태도조차 불만이어서 폭력까지 행사하며 나를 부축해주던 녀석을 거칠게 떼어내려던 밤이 있었다.
인정하는 순간부터 나 자신이 비참해지는 그 '부유'에 대한 열등감처럼,
'가난'과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얼룩져 버린 어린날들을 가슴에 품고 나만이 '상처'가 있는 인간으로,
그렇게 내가 나를 불쌍히 여기던 때가 있었다.
아무도 내 '상처'를 이해해주지 못할 것이며, 나는 평생을 이렇게.. 멍자국을 간직한 채로..
살아갈 것이라고.
나에 비해 너무도 많은 것을 가지고있던
-그것이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들, 돈이나 비싼 옷따위의-
녀석이 그래서 왠지 첫인상도 좋지 않았고, 친해지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 녀석과 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세상을 너무도 편하고, 가볍게 살거라고 생각했었다.
내 눈앞에 놓인 먹이만을 보고 뛰어들다 머리 위로 길게 늘어져 있는 그물은 보지 못한 채 결국 마지막을 맞이하는 동물처럼
녀석의 가끔씩 광적인 느낌에 가까운 우울한 눈빛과 녀석의 '그녀'의 기일에 내 앞에서 보이던 눈물.
그것이 녀석에게는 내가 가진 '멍자국'처럼 결코 지워지지 않는 흔적임을.
스물 한해를 넘기면서.. 녀석을 만나면서.. 나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배고파, 밥 있냐?'
완전 산적이 다 되었군.
이주일이 훨씬 지나서야 돌아온 녀석은 그 대담하고 뻔뻔한 낯짝을 들이대며
-이제는 지저분해지기까지 했다-
거지마냥 구걸을 하고 있다.
뭐.. 내 돈으로 산 쌀이 아니므로 구걸이라고 하기엔 틀린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먹어.. 망할 자식'
크지만 하얗고 피아노를 치면 수십명 여자들을 쓰러지게 할 듯 하던 손이 어느 새 막노동을 한 십년은 해온 사람처럼 거칠고 상처나 있다. 털이 적은 남자는 안좋다고 했었는데, 그래서 '넌 아무리 봐도 여자를 고생시킬 놈이야'라고 내게 구박을 받던 것에 억울했었던 걸까, 얼굴과 목의 1/3을 덮어버린, 보기만 해도 까칠해 보이는 수염은 내 그말에 앙심을 품었던 듯 무성히 자라있다.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다 온건지..
'도대체...뭐...흑...뭐한거야 나쁜놈아..
내가 집지키는 똥개냐!
나쁜 자식...내가 개야?!...흑...'
녀석이 열심히 해대던 수저질을 그만두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흐릿하게 보인다.
눈매가 더 깊어진 듯 하다. '그녀'의 기일은 아직 멀었는데.. 또 왜 그러는 걸까..
녀석의 눈매가 더 깊어진 듯 하다. 촉촉히 젖어있는 듯 보인다.
떨어졌다.
몇번째지..
어쨌든..
나는 떨어졌다.
집에는 뭐라고 해야할지, 친구들은, 이젠 앞으로 뭘 해야하는지...
내가 내게 준 마지막 기회마저.. 모두 다 써버렸다.
이제는 '좋아하지 말자'라는 다짐은 .. 정말 완전한 법칙, 이론,
나의 '징크스'로 굳어져버린 것이다.
정신과치료를 받았어야 했다고 뒤늦게야 생각하는, 지극히도 어둡고 소심했던 어린 날,
내게 있어서 그나마 미소를 짓게 했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꿈..
'또 시작이군' 이라고 말해도, 손가락질을 해도 어쩔 수 없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유행했던 시절, 사람들의 소원은 하나같이 '많이 먹는 것' 이었다고 이야기하면,
나도, 내 친구들도, 그 시절을 살지 않았었던 사람들은 웃는다.
하지만 보릿고개를 입에 달고 다니던 사람들은 웃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그것은 그들에게 '절실한'
-겨우 이 단어로 그 심정을 담아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아프다-
'꿈'이었기 때문에..
조금만 공부를 더 했더라면 '누워서 떡 먹기'처럼 쉬웠을지 모르는 대학입시가..
원하는 대학의 원하는 과에 가는 것이 내게는 '꿈'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고 또 사랑했던 학교, 그 꿈..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말하면.. 실력이 부족했던 탓이지만-
그랬기 때문에 그 꿈을 이룰 수 없었다.
-라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대어본다-
아직도 학교 이름이나, 그 학교근처 거리만 듣더라도..
아련히 몸 속에서 씁쓸한 통증이 느껴올 정도로..
그렇게 내게는 내 목숨과도 바꿀 수 있었던 꿈..
그리고 그 꿈을 잃어버린 후로..
그래, 그 후부터였던 것 같다.
건물의 옥상등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은 뛰는 동안에 세상에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극에 이르면.. 사람은 고통보다 차라리 그 고통을 희열로 착각 아닌 착각을 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죽음에 대한 공포가 희열로 다가오듯,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순간부터..
그 이후로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으로.
애써 그 변해버린 내 모습이 차라리 잘된 거라고,
쉬운 길보다 어려운 길로 가는 것이 내 운명이라,
마치 영화주인공이나 된 마냥 혼자 되내이며 애써 그렇게 나를 달래며
내가 내게 마지막으로 준 기회.
그러나 그 기회마저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영원히.. 꿈은 날아가버렸다.
'잘됐지, 뭐.. 자격증이나 따야겠어. 그래서 이제부턴 돈 벌어야지...'
애써 웃어보이는 나를 녀석은 언제나처럼 말없이 바라만보다 내가 든 술병에 잔을 갖다댄다.
'좋은 경험이었다 생각해. 아무리 생각해도 난 팔자가 되게 좋은거 같애.
뭐 하나 한번에 된게 없다니까. 하하..
그래도 니가 있어서 다행이다. 너가 옆에 있는거.. 되게.. 되게... 든든해..'
'여기요~'
'네~'
'소주 두병만 더 갖다 주세요'
'소주 두병요? 네에'
'언니 여기 소주 두 병요'
금요일은 언제나 바쁘다.
Friday-night이라 그런가. 외국같으면 주말이나 다름없으니.. 이런 분위기도 당연하지.
술집에서 생활을 한다는 건.. 많이 힘들지만 힘든만큼 얻는 것도 많다.
우선 다른곳에 비해 시급이 많으며, 입는 옷이 촌스런 상표가 그려진 '전형적인' 앞치마가 아니라
폼나는 '반'앞치마에, 술 취한 사람들의 제각각인 표정과 이야기들, 그 속에서 그들의 모습과 내 주변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야야~~죽자 죽어!'
여자애들끼리 와도 저렇게 시끄러울때가 꽤 많다. 오히려 남자단체보다 여자단체가 더 짜증날때가 많다.
'야~~되게 웃긴다아~~~푸하하하하하하'
칠공주파의 리더마냥 보이는 여자. 내 또래같다. 그러면.. 대학 3학년정도.. 되겠군.
'화장실 좀 보고 와.'
'아.. 네'
오늘은 손님이 많아 한 시간에 한 번씩은 화장실을 점검한다. 술 취하면 별거 아닌거 가지고도 괜히 알바생에게 시비를 걸기가 일수다. 그런 인간들은 모두 이런곳에서 일을 일주일씩 시켜봐야 한다. 그래야 다른 술집가서 조용히 있다가 올테니.
''흑흑.....흑...'
누가 또 화장실에서 쓰러져있나. 한 두 번 있는 일이 아니라 처음처럼 기겁을 하고 점장을 불러오지 않는다. 여자들은 왜 술을 마시면 울어댈까.
'어이구.. 죄송합니다...'
예전같았으면 저런.. 하면서 괜히 밖에서 화장실 냄새맡으며 얼쩡거리다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면 문을 자연스레 여는 '예의'를 갖추었으나 시급2,500원에 그런 남의 일까지 신경써주기에는 이미 약을대로 약아버린 나라서 오히려 눈치를 주며 내쫓기가 더 빈번한게 요즘이다.
울던 여자가 역시나 내 눈치에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버얼건 얼굴을 얼른 닦아내고는 세수하는 듯 하며 이내 곧 자리를 피해버린다. 칠공주파의 그 리더다. 웃어대더니 혼자 울고 간다.
웃다가 울면..
주위사람들의 얄궂은 시선에도 아랑곳않고 5시간째 떠들어대던 칠공주파 여자들속에서 리더가 가장 크게 웃고 있다. 내가 보내는 눈길을 애써 외면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그렇게 '즐거워보이는'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