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을 찾아서
“작품 아이디어 원천은 데드라인과 밤샘 회의”
서울대 총동창신문 제479호(2018. 2.15)
신원호 CJ E&M tvN 드라마 PD
‘이공계 출신인데 PD가 됐고 예능PD로 시작했지만 드라마PD로 정점을 찍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고려대 김태호(무한도전 PD), 연세대 나영석(전 1박2일 PD), 서울대는 신원호’.
구글 위키백과에 신원호(화학공학94-01) CJ
E&M(tvN) PD를 검색하면 첫 머리에 나오는 문장이다.
신 동문은 ‘응답하라 1997, 1994,
1988’ 시리즈로 케이블 드라마의 지형을 바꾼 인물이다.
최근 종영한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동 시간대 최고시청률을 기록하며 신원호표 드라마의 독창성과 따뜻함을 각인시켰다. 드라마 방영 중에는 일주일에 한번 집에 들어간다는 워커홀릭 신원호 동문을 지난 1월 26일 서울 상암동 CJ E&M에서 만났다.
‘응답하라’ 시리즈, ‘슬기로운 감빵생활’ 연출
화학공학과 출신……드라마 방영 땐 회사가 집
-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종방을 했어요. 가족들이 좋아할 것 같은데.
“내일 모레 태국 방콕으로 가족 여행을 갑니다. 딸들과 너무 못 놀아줘서 늘 미안하죠. 초등학교 5학년, 2학년 자매예요.”
- 드라마 방영기간에 거의 방송국에서 산다고 들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속옷 가지러 집에 들어가요. 편집까지 하다 보니 밤샐 때가 많죠.”
- 병 나지 않나요.
“기본 체력이 좋아서 버티고 있는데 몸이 예전 같지가 않네요. ‘응사’ 찍을 때는 마지막 찍고 링거를 맞았는데 ‘응팔’ 때는 3개월쯤 맞았어요. 슬기로운 감빵생활 연출할 때는 초반에 링거를 맞았어요.”
- 일 하기 싫겠는데요.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죠. 그래도 좀 쉬다 보면 다시 생각나고.”
- 편집을 다른 분에게 맡기면 좀 수월하지 않을까요.
“시간이 지나면 내가 포기하겠지 했는데 이번에 깨달은 것은 저는 안 변할 것 같다는 겁니다. 예능 10년 하면서 가장 오래 보낸 곳이 편집실이라. 예능은 편집이 다죠. 드라마도 그래요. 기획, 촬영 등이 편집 한 장면을 위해 하는 거라.”
- 정확한 콘티를 짜서 찍으면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을 텐데요.
“옛날에는 가능한 방식이었죠. 대화 장면을 찍는다면 풀샷 미디엄샷, 바스트 샷 찍어 그대로 편집하면 됐죠. 지금 그렇게 하면 촌스럽다는 소리 들어요. 제 스타일이 열어 두고 하는 방식이라 시간이 더 걸리는 면도 있죠. 상황에 따라 스태프, 배우들의 의견을 많이 수용합니다. 느낌이 오는 한 장면을 위해 조명, 카메라, 배우 연기를 다시 세팅할 때가 간혹 있어요. 편집도 그렇고요.”
- 다음 작품은 뭔가요.
“슬기로운 감빵생활 기획할 당시 동시에 생각한 작품이에요. 가 대본 1, 2회가 나와 있고요. 미리 말씀 드리기는 어렵고요. 한마디 하면 ‘아 그런 드라마구나’ 하는 전형적인 내용입니다. 몸이 회복되면 제작 들어가야죠.”
- 화학공학을 전공하셨는데, 어떻게 이 쪽으로 오게 됐죠.
“중학생 때부터 영화 감독이 꿈이었어요. 당연히 고등학교서도 문과를 선택해야 했는데, 담임 선생님과 아버님의 강권으로 이과로 가게 됐어요. 대학은 제 뜻대로 한양대 연영과를 가려고 했죠. 다녔던 가락고가 신생학교라 대학 진학에 신경을 많이 썼죠. 학교서도 절대 안 된다 하고 결국 아버지가 원서를 넣고 오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도 그렇게 될 거라 알고 강력하게 주장하지는 못한 것 같아요.”
- 대학생활은 어땠나요.
“군대 가기 전에는 방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수업 따라가기도 힘들고. 1, 2학년 시절에는 학교 안 간 날이 많았어요. 영화판 쫓아다니면서 연출부 막내도 하고 그랬어요. 1학년 초 영화 동아리 얄랴셩에 잠깐 가기도 했는데, 분위기에 적응 못하고 금방 나왔죠. 복학하고 대학은 졸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현실적으로 내 꿈과 가장 유사한 일이 뭘까 생각했더니 방송국 PD고요. 방송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학점도 중요해서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했죠.”
- 녹두거리에 대한 추억이 있나요.
“군대 가기 전에 딱 두 번 갔어요. 그때는 주로 강남에서 놀았죠. 복학하고 나서 녹두거리의 진가를 알게 됐죠. 분위기, 가격 다 좋았죠. 태백산맥 술집에 자주 갔어요.”
- 인상에 남는 교수님이 계세요.
“수업 따라잡기 급급해서. 열정적인 학생도 아니었고요. 지도교수님이 이종협 (화학공학76-80) 교수님이셨어요.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는데 결혼 주례를 부탁 드려 흔쾌히 서 주셨어요 제가 부전공을 언론정보를 했어요. 화학공학생이 언론정보학을 부전공하는 일은 거의 없었죠. 화학공학 학점만 63학점을 채워야 했으니까. 학과사무실에서 걱정을 해요. 그래도 한다고 했죠. 언론정보학과 4년 통틀어 전공필수가 9학점이라 큰 부담은 안 됐어요. 사실 시험도 화학공학 분야보다 수월했고요. 잘 듣고 필기한 거 외우면 무난하게 A가 나오더라고요.
언론정보학 시험 보면서 공대생들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학 과목은 정말 열심히 공부해도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 학교에 강연하러 오신 적은 없나요?
“이종협 교수님이 부탁해서 공대 신입생들에게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합리적 의심들을 하고 살면 어떨까’ 그런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이공계는 답이 있는 학문이잖아요? 그래서 더 틀에 짜인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에 대한 의문을 시시때때로 가졌으면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려줬죠.”
- 화학공학 전공이 연출 일에 도움 될 때가 없나요.
“면접 볼 때 첫 질문이 정해져 있었다는거? ‘화학공학 전공했는데 어떻게 이쪽에 오게 됐냐’가 정해진 질문이었어요. 예상질문이다 보니 답변하기 쉬웠죠. PD 생활하면서도 덕을 많이 봤어요. ‘신 PD 화학공학 전공했어?’ 저의 캐릭터를 심어주는 데 큰 역할을 했죠. 또 이 계통 사람들이 주로 문과생들인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과적인 소양 자체가 집단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균형 잡는 역할을 하죠.”
- 첫 직장이 KBS였죠? tvN으로 옮기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컸죠. 돈 많이 준다고 하니까. KBS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지치기도 했고요. 뭐랄까 거기는 약간 사회주의 체제 비슷한 분위기가 있어요.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나 적게 하는 사람이 다 똑같이 대우받는 조직이죠. 그에 대한 반감이 있는 상황에서 저에 대한 역량을 평가해주는 분이 있어서 오게 됐죠. 언젠가 영화를 하게 될 텐데 한군데 너무 오래 있으면 빠져 나오기 힘들 거란 생각도 들었고요.”__
- 제작 환경이 자유롭나요.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아요. 신혼집 보면 세간살이가 별로 없잖아요? 살아가면서 이것저것 갖추게 되는데 여기가 그래요. 오래된 집은 다 갖춰져 있어서 편하게 제작할 수 있죠. 다만 오래된 큰 집은 소파 하나 바꾸려 해도 여간 복잡한 게 아니죠. 사는 사람들 의견 다 물어봐야 하고 장 위치도 따라 바꿔야 하고. 제가 KBS에서 예능PD로 일했는데, 거기서 드라마 쪽으로 간다고 했으면 10년은 걸려야 제 이름 걸린 작품 하나 만들 수 있었을 거예요. 그 과정이 굉장히 지난하죠. 사실 이쪽으로 옮기면서도 처음에
는 예능을 생각했어요. 들어온 지 3주 됐는데 너 시트콤 해볼래? 제안하더라고요. 바로 응했죠.”
- 드라마를 보면 참 따뜻합니다. 작품 기획 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라면
“방송국 PD들은 다 똑같을 것 같아요. 뭐가 재미있고 새로울까? 말씀하신 정서 부분은 만들어 가는 과정 중 자연스럽게 덧입혀지는 부분이죠. 저와 이우정 작가의 성향이 묻어난다고 봐요. 시간이 흐를수록 작은 미담,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게 되더라고요. 극상에서 불편한 상황이 오는 걸 안 좋아해요.”
- 연출자로서 사회 기여도 생각하나요.
“글쎄요. 거창하게 어떤 메시지를 던진다거나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영화 ‘1987’처럼 주제 자체가 그렇다면 모르지만 작품을 통해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면 오히려 더 촌스러운 연출이 될 것 같아요. 재미있게 봤는데 저 또는 이우정 작가의 목소리가 녹아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연출자, 작가가 건강한 시대정신을 갖고 사느냐의 문제죠. 응팔 제작할 때 학생운동 부분을 더 넣을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가족, 이웃 이야기에 해가 될 것 같아 수위조절을 했어요.”
- 제작 소스는 주로 어디서 얻나요. 영화? 연극? 책?
“의외로 제가 영화를 많이 안 봐요. TV에서도 드라마보다 예능을 많이 봐요. 영감을 주는 두 가지는 데드라인과 회의테이블이에요. 회의테이블에서 작가와 밤 새가며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제작 소스를 많이 얻어요. 20살 이전에 봐왔던 영화, 책이 바탕이 됐을 거고요. 고3 때도 일주일에 두 번은 영화관에 갔으니까요.”
- 현장 PD로 계속 갈 생각인가요. 영화에 대한 미련이 있을 것 같아서요.
“예능 PD에 비해 드라마 PD는 수명이 길어요. 이병훈 선배님이 좋은 예죠. 물론 감은 조금 올드 해지겠지만 물리적으로 가능합니다. 영화에 대한 미련, 미련이라기보다 너무 오랜 꿈이죠. 중1 때부터 30년간 말해온 거니까. 사실 지금은 누가 진짜 하고 싶은 거야 물어보면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안 하면 30년 거짓말 한 사람이 돼버려서. 좋은 기회를 보고 있어요. 욕심 앞세워 한다는 게 목적이 되면 안 되니까.”
-일에 대한 철칙이 있나요.
“어릴 때부터 뭘 정해놓고 하는 걸 답답해 했어요. 그게 철칙이라면 철칙이죠.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드라마 제작할 때도 다 열어놓고 해요. 뭔가를 정해두고 가면 그대로 안 될 경우 실망도 하고 분위기도 안 좋아져요. 그런 게 예능을 연출하면서 생긴 버릇 같아요. 예능 PD는 장만 펼치고 나머지는 연예인들이 만들어 가잖아요. 드라마를 100% 열어두고 제작할 순 없지만 그런 마음가짐으로 하려고 합니다.”
- 신인 배우들을 많이 발굴했는데, 고마워하나요.
“농담으로 ‘나 좋잖고 한 거지 배우들 뜨라고 한 건 아니다’ 그런 이야기를 가끔 해요. 적합해 보여 캐스팅 했을 뿐인데. 그럼에도 고마워하죠. 그럼 참 불편해요. 누가 고마워하면 참 어색해요.”
-설 명절은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겠네요.
“그럼요. 이번에는 아빠, 남편 노릇 잘 해야죠.”
신원호 동문은 인터뷰 내내 진지했다. 낯을 많이 가린다고도 했다. 180cm가 넘는 건장한 몸이지만 힘든 모습이었다. 저 힘듦이 시청자들을 울고 웃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학공학부 동기 6명과는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으며 최근 카카오톡 단톡방에 94학번 75명 전 동기들이 입성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전체 모임을 언제 하냐는 물음에 “다들 바쁘게 살아서 언제 볼 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김남주 기자

고3 시절 일주일 두 번 영화 관람
신 동문은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4년 가락고등학교를 졸업해 모교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KBS에 입사해 2004년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 예능 스타 골든벨, 해피 선데이-남자의 자격 등을 연출했다. 2011년 CJ
E&M으로 옮겨 tvN ‘응답하라 1997,
1994, 1988’을 연출, 메가 히트를 시켰다. 최근 종방한 슬기로운 감빵생활로 ‘신원호 월드(신인 연기자, 따뜻한 정서, 새로운 소재)’를 구축했다는 평을 들었다. 2010년 제 47차 ABU상 엔터테인먼트 부문상, 제17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최우수 예능프로그램상, 2011년 제23회 한국PD대상 예능작품상, 2014년 제7회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연출상, 2016년 제52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연출상 등을 수상했다.
가족으로 부인과 사이에 초등학교 5학년, 2학년 딸을 두고 있다
야구를 좋아하며 영화 제작의 꿈을 30년째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