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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사정으로 1주일 연기가 되네요..
죄송합니다.. 앞으론 미리 준비하여 날짜를 잡고 ..
정해진 사항을 연기하는 일이 없도록하겠습니다..
오시려 준비하신분 들께 고개숙여 사과합니다..
모든분께 사과를 드립니다..
토요일 밤늦게 도착하셔도 되구요.. 토요일에 안동에 도착하기만 하시면 됩니다.. 어쩌면 서울에서 차량을 가지고 오거나 대절을 할지도 모르니 참가하고픈 분은 연락주세요.. 017-570-1725 // 016-383-0168
서울서 오후나 밤에 출발해도 됩니다..
모든 일정은 일요일에 이뤄질 듯..
하회마을내에서 우리 전통가옥에서 민박을 할 예정입니다..^^
일정은 차후에 시간내서 다시올릴(?)께요.. u.f.o
아래 자료보시고 찾아오시고요..^^
안동오는길
安東 오시는 길
승용차편
서울-<경부고속도로>-남이IC-<중부고속도로>-일죽IC-금왕-충주-수안보-이화령터널-문경-예천-안동 (판교 기점 약300KM)
서울-<중부고속도로>-일죽IC-금왕-충주-수안보-이화령터널-문경-예천-안동 (하남 기점 약255KM)
서울-<경부고속도로>-서대구IC-<중앙고속도로>-남안동IC-<5번국도>-안동 (판교 기점 약360KM)
부산-<경부고속도로>-서대구IC-<중앙고속도로>-남안동IC-<5번국도>-안동 (구서 기점 약230KM)
부산-<경부고속도로>-영천IC-영천-<35번국도>-보현산-현서-길안-안동 (구서 기점 약185KM)
부산-<경부고속도로>-경주IC-<7번국도>-포항-<7번국도>-영덕-<34번국도>-안동 (구서 기점 약225KM>
춘천-<중앙고속도로>-홍천-<5번국도>-원주-<중앙고속도로>-남원주IC-서제천IC-<5번국도>-단양-죽령-풍기-<중앙고속도로>-서안동IC-안동 (남원주 기점 약150KM)
* 중앙고속도로 : 홍천-원주간, 제천-풍기간 미개통 *
강릉-<동해고속도로>-동해-<7번국도>-삼척-<38번국도>-태백-<35번국도>-현동-춘양-안동 (강릉 기점 약195KM)
삼척-<7번국도>-울진-<36번국도>-불영계곡-현동-춘양-<35번국도>-안동 (삼척 기점 약185KM)
광주-<88고속도로>-동광주IC-담양-순창-함양-고령-남대구-서대구-금호JC-<중앙고속도로>-남안동IC-안동 (동광주 기점 약300KM)
전주-<호남고속도로>-전주IC-익산-논산-서대전-회덕JC-<경부고속도로>-서대구IC-<중앙고속도로>-남안동IC-안동 (전주IC 기점 약320KM)<br><br>
청주-<25번국도>-보은-상주-<3번국도>-문경<34번국도>-예천-안동 (청주 기점 약175KM)<br><br><br>
열차편</h3>
서울역-청량리-<중앙선>-양평-원주-제천-단양-풍기-영주-안동
<dir><li>새마을호>> (청량리발)09:00, 16:00 (약4시간 소요)
<li>무궁화호>> (청량리발)11:00, 13:00, 15:00, 18:00, 21:0
0 (약4시간30분 소요),(서울역발)17:20
<li>통일호>> (청량리발)06:50 (약4시간50분 소요)</dir>
부산역-부전-<중앙선>-해운대-울산-경주-영천-군위-의성-안동
<dir><li>무궁화>> (부산역발)20:53, 09:18 (약3시간50분 소요)
<li>통일호>> (부전역발)06:20 (약5시간30분 소요)</dir>
대구역-동대구-하양-영천-군위-의성-안동
<dir><li>무궁화호>> (동대구발)05:45, 15:35, 21:10 (대구역발)11:02,
18:30(약1시간50분 소요)</dir><br>
버스편</h3>
서울 동서울터미널 : 30분간격 출발, 약4시간10분 소요 (첫차07:00
막차18:45)<br><br>
수원 시외버스터미널 : 1일 4회 출발, 약5시간 소요 (첫차07:20 막차16:40)<br><br>
성남 시외버스터미널 : 1일 5회 출발, 약4시간10분 소요 (첫차06:20
막차17:00)<br><br>
춘천 시외버스터미널 : 1일 2회 출발, 약4시간30분 소요 (첫차09:30
막차14:58)<br><br>
원주 시외버스터미널 : 1일 11회 출발, 약3시간20분 소요 (첫차07:30
막차18:58)<br><br>
태백 시외버스터미널 : 1일 23회 출발, 약3시간10분 소요 (첫차07:10
막차18:50)<br><br>
제천 시외버스터미널 : 1일 16회 출발, 약3시간 소요 (첫차08:13 막차19:05)<br><br>
충주 시외버스터미널 : 1일 8회 출발, 약3시간 소요 (첫차09:25 막차18:05)<br><br>
대전 동부터미널 : 1일 11회 출발, 약3시간30분 소요 (첫차06:20 막차18:00)<br><br>
대구 북부정류장 : 7~20분간격 출발, 약1시간30분 소요 (첫차05:40
막차22:30)<br><br>
대구 동대구터미날 : 30분간격 출발, 약1시간30분 소요 (첫차06:40
막차20:30)<br><br>
구미 시외버스터미널 : 1일 17 출발, 약2시간 소요 (첫차07:00 막차19:20)<br><br>
포항 시외버스터미널 : 1일 15 출발, 약3시간 소요 (첫차08:10 막차18:30)<br><br>
경주 시외버스터미널 : 1일 8회 출발, 약3시간20분 소요 (첫차07:00
막차18:00)<br><br>
김천 시외버스터미널 : 1일 21회 출발, 약3시간 소요 (첫차06:20 막차19:00)<br><br>
부산 동부터미널 : 1일 8회 출발, 약4시간40분 소요 (첫차08:30 막차15:50)<br><br>
울산 시외버스터미널 : 1일 12회 출발, 약4시간30분 소요 (첫차05:40
막차17:45)<br><br>
마산 시외버스터미널 : 1일 6회 출발, 약2시간30분 소요 (첫차08:25
막차18:50)<br><br><br>
항공편</h3>
김포공항-(약40분소요)-예천공항-(공항버스:약30분소요)-안동
<dir><li>KAL>> 07:45 (회항편;09:10)
<li>Asiana>> 16:05 (회항편;17:20)</dir><br>
지역(장소)별 노선버스</h3>
청량산,도산서원,온혜온천 방면 : 67번 (버스터미널 옆 승차)<br>
<img src="arrow2.gif">안동댐,민속박물관 방면 : 3번 (버스터미널 옆
승차)<br>
임하댐,안동대학 방면 : 11번 (버스터미널 옆 승차)<br>
길안천,안동정보대 방면 : 24번 (버스터미널 옆 승차)<br>
용계은행나무,지례예술촌 방면 : 28번 (안동역 옆 승차)<br>
풍산,안동과학대 방면 : 11번 (안동역 건너 승차)<br>
하회마을,병산서원 방면 : 46번 (버스터미널 건너 승차)<br>
제비원 석불 방면 : 54번 (버스터미널 건너 승차)<br>
봉정사 방면 : 51번 (안동초등학교 정문 옆 승차)<br>
고운사,암산유원지 방면 : 38번 (안동초등학교 정문 옆 승차)<br><br>
시내버스요금(*일반:대인600원,소인500원 *좌석:1000원이며, 일반,좌석 공히 목적지별로 다소의 차이가 있음)<br><br><br>
안동과유교문화
유교문화의 맥
선비정신이 빚어낸 충절의 고장 - 안동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충절의 고장인 안동은 유교문화의 본향이다. 경북 북부내륙 중앙에 위치한 교육,
문화,교통의 중심도시로서 수려한 자연경관과 문화유적이 풍부한 고장이다.<p>
안동은 동쪽으로 영양군.청송군, 서쪽으로 예천군, 남쪽으로 의성군,
북쪽으로 영주시.봉화군과 접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명현(明賢)과 석학(碩學)들이 수없이 배출되고,
많은 유물.유적이 남아있는 역사와 문화의 고장이다.<p>
안동은 고대 민속문화를 기반으로 신라,고려,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고유의 전통문화를 꽃피웠는데
많은 고찰과 석탑 및 전탑은 이 지방의 불교문화를 대변하고, 문중의 종택을 비롯한 수많은 목조건물
은 유교문화의
융성을 입증해 주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의 건물과 민속품은 전국에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우리나라 전통문화관광의 거점도시로 손꼽힌다.<p>
안동은 상고시대에는 창녕국이라는 부족국가를 형성 하였으며,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고타야군(古陀耶郡), 통일신라 때에는 고창군(古昌郡)으로 불렸으며 고려시대에 안동 대도호부라고
칭해진것이 오늘날의 안동이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다. 이후
1896.8.4 안동군으로 되었고 1963.1.1 에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되었고 1995.1.1 안동시와 안동군이 통합 안동시로 발족되었다. 고려시대 이래
지금까지 정치적,학문적으로 중시되었다.<p>
>안동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어느 지역보다 잘 간직하고 있는 고장이다. 예절을 중시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학문이 성행하여 수많은 인물이 배출된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
불리는 유림의 정신적 고향이자 유교문화의 중흥지
이기도 하다.이처럼 전통문화의 유산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안동에는 안동사람들이 엮어가는 그들의 삶과 문화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조선 영조때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서는 "마을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서술할
정도로 퇴계 이황,서애 유성룡,학봉 김성일,농암 이현보,단계 하위지,역동 우탁 선생등 수많은 명현거유(名賢巨儒)를
배출했다.<p>
<img src="orange.gif">조선시대에는 안동김씨들의 집권을 시작으로
근대에 이르기까지 "조선인재의 절반이 영남이요,
영남인재의 절반이 안동이다"라고 할만큼 우리의 역사속에는 충절과 선비의 고장 안동의 명성이 크고, 유교의 본향임을
입증하듯 50여개의 서원들이 보존되어 유학의 산실로 불리고 있다.<p>
<img src="orange.gif">안동은 예와 의를 중히 여기는 곳으로 아직까지 각 마을마다 성씨별로 집성촌을 이루고 제실과 종택이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매년 가을 문중별로 조상의 묘소를 찾는
시제에는 모든 후손들이 한데모여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있다. 또한 5일마다 열리는 장날에는 안동이 아니면 보기 힘든 두루마기 차림에다 갓을 쓴 촌로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어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안동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다.<p>
<img src="orange.gif">그러나 유교문화의 맥도 서구화 산업화의 물질문명에 점차 퇴색해 가고 있다. 전통의 보존은 안동사람의
몫이다. 경상북도와 안동시, 그리고 안동대학은 이같은 맥을 잇기위해 지난 95년 유교문화등 우리의 전통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전.전시할 국학진흥원을 2000년까지 건립키로 했다. 안동을 세계적인 <유교의 메카>로 발돋움 시키기
위해서이다.<p>
<img src="orange.gif">안동은 역사와 문화의 고장이며 또한 교육의
중심지로서 향교와 서원이 발달해 유림의 고장임을 입증
해 준다. 이러한 문화적 전통은 오늘날에 이르러 각종 유.무형의
문화재를 보유하게 하였으며 이외
에도 하회별신굿, 놋다리밟기,차전놀이,저전농요 등의 민속놀이가 다양해 역사적으로 필요할 때 발휘되었던
이 지방의 단결력을 엿볼 수 있는데, 매년 10월중에 '안동민속축제'가 펼쳐지고, 10월 첫째주 금요일부터 다음주 일요일까지(10일간)는 '97년부터 시작된
'안동 국제탈춤 페스티벌'이 안동시 낙동강변 이벤트공원과 하회마을을 중심으로 성대히 개최 되기도 한다.<p>
<img src="orange.gif">행정구역은 1읍 13면 13동 511통리 2,763반으로 구성되어 있고, 면적은 1,517.74평방km(임야72%,경지16%,
댐호수5%,기타7%)이며, 인구는 약20만명에 달하고 있다. 또한
교육의 도시답게 총 82개 학교(초등42,중17,고13,대학4,
대학원3,특수학교2)가 있으며, 주요 특산품으로는 안동포,안동산약,안동사과,안동고추,안동소주,하회탈,한우고기 등이 있다.
시화(市花)는 매화, 시조(市鳥)는 까치 그리고 시목(市木)은 은행나무이다.</dir><p>
하회마을
하회(河回)는 낙동강이 동쪽에서 흘러 서쪽에서 다시 북쪽으로 구비치면서 마을을 태극모양으로 안고 돌아 풍수지리학상 수태극(水太極),산태극(山太極)의 절묘한 지리적 형상이며,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에 속하는 길지이다.
그 둘레에는 넓게 퇴적된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서북쪽에는 만송정의 울창한 솔숲이 있어 빼어난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마을로 우리 민족문화의 한 전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하회마을을 다른 이름으로 "물도리동"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물줄기가 마을을 S자로 휘돌아
나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이 마을은 풍산 류(柳)씨의 동족마을로서 우리 조상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과 문화가 옛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천혜의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외부의
침입을 한번도 받지 않아 전통고가와 하회탈춤이 보존되어 오고 있는데, 이 마을에만 국보 2점(징비록, 하회병산탈), 보물 4점, 중요민속자료 10점 등 총18점의 문화재가 지정되어 있다. 하회마을은 연꽃이 물위에 떠있는 모습으로 예로부터 돌담장을 쌓는 일과, 우물을 파서는
안된다는 전설이 있기도 한데 이는 연꽃의 가라앉음을 우려했던 연유일 것이다. 양반층의 웅장한 기와집과 서민들의 초가 토담집에 이르는 전통가옥들은 만송정(萬松亭),부용대(芙蓉臺) 그리고 낙동강과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이루고 있다.<p>
<img src="hahoe01.jpg" align="left">
<img src="dimnd3.gif">하회는 본래 고려시대에 허씨(許氏)들이 자리를 잡았고, 그 뒤를 이어 안씨(安氏)들이, 조선조 초기에 들어와서는
풍산 류씨(豊山 柳氏)들이 자리를 잡아 동족 마을을
이루었으며, 오늘날과 같은 류씨의 동족 기반은 류운룡(柳雲龍),
류성룡(柳成龍)형제 시대에 이룩한 것이다. 류운룡은
시조에서 14대의 종손이며 류성룡은 지손인데 모두 문중의
거봉이어서 이 두 계손(系孫)들을 겸암파,서애파로 부른다.<p>
<img src="yangjin.jpg" align="left">
<img src="dimnd3.gif">하회마을은 주위에 있는 농경지의 규모에 비해 큰 기와집들이 즐비한데 대부분의 농경지는 멀리 떨어진 풍산들에
있다. 이 하회마을은 임진왜란때 유일하게 화를 입지
않은 길지 였다고 한다. 풍산으로부터의 진입도로와 연결된
큰 길이 마을의 중앙을 지나 동서로 관통해 지나가는데, 이 마을길을 기점으로 북쪽을 북촌, 그 남쪽을 남촌이라
부른다.<br><br><br><p>
<img src="chung01.jpg" align=
"left">
<img src="dimnd3.gif">하회마을을 대표하는 건물로는 양진당(養眞堂)과 충효당(忠孝堂)을 손꼽을 수 있다. 하회에서 으뜸가는 고가인
양진당은 서애(西厓)류성룡의 형인 겸암(謙庵)류운룡의 13대 종가집인데, 1600년대에 건축한 것으로 보물 제306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회의 남쪽을 대표하는 충효당은 양진당의 앞에 위치해 있는데 임진왜란때 영의정으로써 국난을 극복한
서애 류성룡의 종택이다. 류성룡의 맏아들이 임진왜란 뒤 중수하였고, 그뒤 증손이 다시 중수, 확장한 조선조 중기의
건축물이다. 보물 제414호로 지정된 충효당의 후원
사랑채 옆에 영모각을 새로지어 서애선생의 유물을 보관.전시하고 있다.<p>
<img src="ymo.jpg" align="left">
<img src="dimnd3.gif">이들 고택중 중요민속자료는 양진당(제306호), 북촌댁(제84호), 원지정사(제85호), 빈영정사(제89호), 류시주가옥(제87호),
옥연정사(제88호), 겸암정사(제89호), 남촌댁(제90호), 주일재(제91호) 등이 있는데 이들 모두 풍산 류씨 문중의
소유이다.<br><br><br><br><p>
<img src="talbak.jpg" align="left">
<img src="dimnd3.gif">하회마을의 행정구역상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로 안동-예천으로 이어지는 35번 국도를 따라
15km쯤을 가면 '
풍산읍'이 나오는데 풍산 우회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좌회전하여 서쪽으로 10km 정도를 더 가야 된다.
마을에는 115세대에 29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건물 290동(기와집
113, 초가 84, 기타 93)의 마을 전체가 1980년에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23호로, 1984년에는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하회마을에서 나오다 보면 '탈박물관'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하회탈 뿐만아니고 한국탈 19종 200여점과 세계 각국의 탈 1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하회 입구에서 3km 정도의 비포장 길을 따라가면 서애 류성룡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병산서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주변의 빼어난 경관은 찾는 이들의 감탄을 절로 자아낸다.
하회별신굿과탈춤
하회탈</a>춤은 하회별신굿의 일환으로 놀아지는 민속가면극 이다.
하회별신굿은 몇년마다 한 차례씩 거행되는 마을굿으로서, 안동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축제이자
구경거리였다.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하회별신굿을 보고 왔느냐?'하고 묻고는, 구경하지
못한 사람들은 동물로 환생시켜 반드시 이 별신굿을 구경하고 오게 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이 고장 사람들은 하회별신굿을 대단하게 여겼다. 이
별신굿이 특히 주목되는 것은 탈춤 때문이다.
탈의 오래된 정도와 형상 및 탈춤의 내용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 중기 이전부터 전승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회탈춤은 오랜 역사성과 극적 양식의 독자성으로 우리 민속사에서 여러 모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69호로 지정되어
있다.<p>
하회탈춤은 지금까지 전승되는 탈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농촌 탈춤의 전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탈춤의 기원을 해명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자료가 된다. 우리 탈춤은 풍농을 비는
풍물잡이들(농악대)의 마을굿에서 비롯되었다는 '풍농굿 기원설'의 가장 중요한 전거 구실을 한다.
다음으로 주목할 사실은 이 탈춤이 별신굿과 더불어 연행되는 굿놀이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도시형
탈춤이 상업적인 흥행을 위해 비주기적으로 연행된 것에 비해, 하회탈춤이 세시풍속에 따라 제의적인
성격을 강하게 띈 채 주기적으로 연행되면서 전승력을
지닐 수 있었던 까닭도 별신굿의 한 절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탈춤을 가면극이라는 독자적인 연극의 한 양식으로만 편벽되게 이해하려는 태도를
바로잡아 주는 한편, 굿.놀이.춤.극이 총체성을 지니면서, 굿이 곧 놀이이자 춤이요 연극이라는
사실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어, 탈춤의 뿌리와 함께
그 역사적 변모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리고 현재까지 전승되는 탈춤들은 대부분 전승
현장과 분리되어 있거나 그 현장을 상실하고
있는 형편인데, 하회탈춤의 경우는 그 전승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현지 연구가 가능하다.<p>
<center><img src="beol.jpg"></center><br>
<img src="teag.gif"> 하회별신굿은 섣달 그믐날 서낭당에서 받는 <a
href="kdil23.htm">강신마당</a>에서 시작된다.
신이 내려 당방울이 울리면 서낭대를 앞세우고 중당인
국사당을 거쳐 마을로 내려와 걸립을 한다.
동사 앞에 서낭대를 세우고 배역에 따라 광대들은 탈을
받아 쓴다. 첫마당에 <a href="kdil22.htm">
각시</a>를 어깨에 올리고 <a href="kdil23.htm">무동놀이</a>를 하며 걸립을 했다고 하는데, 이는
변모된 모습이다. 우선 탈마당의 부정을 물리치는 <a
href="kdil23.htm">주지마당</a>을 먼저해야 한다.
흔히 사자로 알고 있는 신성한 상상의 동물인 <a
href="kdil22.htm">주지탈</a>을 쓴 두 광대가 암수
주지역을 하면서 성행위를 묘사한 주지춤을 추는 것이다. 주지마당에 이어서 <a href="kdil22.htm">
백정</a>이 등장한다. 백정이 소를 잡아서 염통과 소불알을 사라고 하며, 삶의 이치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풍자적으로 일깨운다. <a href="kdil23.htm">백정마당</a> 다음에는 <a href="kdil23.htm">
할미마당</a>이다. <a href="kdil22.htm">할미</a>가 베틀에 앉아 베틀노래를 부르면서 신세타령을 한다.
여성들의 고난이 길쌈을 통해서 암시된다. 고난을 극복해 보려는 시도가 좌절됨으로서 고난이 더욱 깊어진다.
<a href="kdil23.htm">중마당</a>에서는 젊은 여성이
오줌을 누는 광경을 본 <a href="kdil22.htm">중</a>
이 욕정을 못이겨 중의 계율을 어김으로써, 중의 관념적 허위를 풍자하는 동시에 민중들의 세속적인 삶을
긍정한다. 다음의 <a href="kdil23.htm">양반.선비마당</a>에서는 <a href="kdil22.htm"> 초랭이</a>와
<a href="kdil22.htm">이매</a>가 상전인 <a
href="kdil22.htm">양반</a>과 선비를 불러내어 <a
href="kdil22.htm">
부네</a>를 두고 싸움을 하도록 한다. 양반과 <a
href="kdil22.htm">선비</a>는 지체다툼과 학식다툼을 하면서
하인들과 구경꾼들로 부터 함께 망신을 당한다. 게다가
백정이 들고 나온 소불알을 서로 사려고 다툼으로서
결정적인 조롱거리가 된다. 양반과 선비에 대한 풍자가
신랄하게 이루어지는 마당이다.<p>
<center><img src="choom.jpg"></center><br>
<img src="teag.gif"> 공개적인
탈춤은 이 마당에서 끝이 나지만 자식 낳기를 원하는 집에 초청되어
가서 비의(秘儀)로 하는
<a href="kdil23.htm">혼례마당</a>과 <a
href="kdil23.htm">신방마당</a>이 별도로 있다. 모의적인 혼례와
성행위를 함으로서 출산을 기대하는 유감주술적 성격을 지닌 마당이다. 이때 사용된 자리를 깔고 자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속신 때문에 자식없는 집에서는 광대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서 이 두 마당을 한다. 별신굿의
마무리는 무당들과 유사들이 담당하는 허청거리굿으로
이루어진다. 광대들은 참여하지 않는 순전히 무당들의
굿판이다. 탈춤의 극적인 연행을 뒷받침해 주는 춤사위는 덧배기춤이라고도 하는 '몽두리춤'과 '오금춤'이 주를
이룬다. 물론 '방정맞다 초랭이걸음' '능청맞다 중의걸음' '사뿐사뿐 각시걸음'등으로 구체적인 춤사위와
몸짓의 특징이 인물의 성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남성들은 같은 쪽의 팔다리가 함께 오르
내리는 몽두리춤을, 여성들은 오금을 비비며 추는 오금춤을 춘다. 춤사위의 반주는 세마치 장단이 주를
이룬다. 이처럼 하회별신굿을 이루는 제의적. 예술적
요소들이 다양하지만, 가장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역시 하회탈이다. 그러한 힘은 탈의 역사성과 예술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p>
<center><img src="backcum.jpg"></center><br>
<img src="teag.gif"> 사실 하회탈춤의 극적인 내용이나 춤사위의 자세한 것은 원형대로 유지될 수 없었다. 1928년에 공식적인
별신굿이 마지막으로 있은 뒤로 계속 중단 되었다가 근래에 복원 되었으므로 탈춤의 사설이나 춤사위가
온전하게 전승되기 어려운 사정이었다. 그러나 탈은 전혀 딴판이다. 탈은 고려시대의 것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국보(121호)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다른 탈춤의 경우에는 탈로 인해 재앙을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탈춤을 공연한 뒤에는 반드시 탈을 불태워 버리고 공연할 때마다 다시 만들어 썼지만, 하회탈의
경우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성한 신격으로 여겨 소중하게 보존해 왔기 때문이다. 탈을 신성시한 탓으로
함부로 보거나 만질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큰 재앙을 입는 줄로 알았다.<p>
<img src="teag.gif"> 별신굿을 하기 위해 탈을 낼 때에도 향불을 피워놓고 절을 하는 등 일정한 제의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하회탈은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하회탈의 예술적 형상성은 탈의 제작에 대한
허도령 전설만큼이나 신비롭다. 탈을 상하좌우로 움직임에 따라 표정이 바뀌는 가변성을 지닐뿐만 아니라,
실제로 턱이 움직이도록
만들어져 있어 역동성을 지닌다. 과장된 입체감이나 좌우 부대칭의
형상성이
상반되는 표정을 더불어 함축하고 있어, 표정의 변화가
자유로우며, 탈의 색상이 주는 상징성과 입의 열린
상태 및 코의 크기와 모양 등으로 인물의 사회적 위상과 극중 성격을 절묘하게 형상화해 주고 있다. 이러한
독창적인 조형기법은 사실성과 비사실성, 또는 사회적
제약과 이의 극복 의지 등을 이원적으로 하나의 탈에
형상화 시킴으로서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회탈의 예술적 가치는 '형상의 이원성.대립적 통일성.
불일치의 조화'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역설적이고 변증법적인 조형미를 통해서 확보된 것이라 하겠다.
도산서원
조선 유학(儒學)의 대표적 성현인<a href="kdil24.htm">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a>선생을 모시는 도산서원(陶山書院;
사적 제170호)은 그를 잇는 영남학파의 중심지이자
한국 유교의 대표적 명소중 하나이다. 이황은
학파의 구분을 넘어 이상적인 선비의 전형으로 꼽혔기에 도산서원은 영남뿐 아나라 전국적인 중요성을
지녔으며 조선시대의 서원으로서는 드믈게 근대에
들어와서도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br><p>
<img src="hyunpan.jpg" align="left">
<img src="bluedot.jpg">도산서원은 이황이 직접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웠던 도산서당에서 출발했다. 이황은 대제
학에서
물러난 1557년(명종12년) 고향인 안동군 도산면으로 돌아와 자신이 거처할 도산서당과 제자들의
기숙사인 농운정사를 지었다. 이황은 1561년 도산서당이 완성되자 이곳에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이곳에서 멀지않은 곳에 묻혔다. 퇴계가
세상을 떠난후 4년만인 1574년(선조7년)제자와
유림들이 그의 학덕을 숭모하여 서원을 세웠으며,
선조가 현판을 내려줌으로서 왕실과 유림의 존중을
받는 곳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p>
<img src="seodang.jpg" align="left">
<img src="bluedot.jpg">이후 도산서원은 많은 유생들이 모여 공부하며 이황등을 받드는 곳으로 영남 유림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당시 도산서원의 위상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존속됐다는 점에서 확인된다.<br><br><br><br><P>
<img src="nongun.jpg" align="left">
<img src="bluedot.jpg">서원은 크게 12채의 건물로 구분되는데 앞쪽의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는 퇴계가 4년에 걸쳐서 지은
집들이다. 서당은 제자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곳이고, 농운정사는 학생들이 숙식을 하던 기숙사이다.
공부하는 방을 시습재(時習齎), 잠자는 방을 지숙료(止宿寮)
, 마루는 관란헌(觀欄軒)이라 불렀으며,
농운정사의 건물 전체 형태는 공부를 권장하는 뜻에서 "工"자로 지었다고 한다.<br><br><br><p>
<img src="jindo.jpg" align="left">
<img src="bluedot.jpg">도산서원은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진도문(進道門)을 거쳐 들어가게 되어 있으며
서원 중앙에 대강당이라 할 수 있는 전교당(典敎堂;보물 제210호)은 유생들이 학문을 논하고 강의를
했던 집회장소이며, 전교당 동쪽에는 박약재(博約齎)가 있다. 이 두 건물은 유생(儒生)들이 거쳐하던
방이다. 특히 전교당에 걸린 도산서원 현판은 선조가 하사한 조선조 명필 한석봉(韓石峰)의 친필 글씨이다.<br><br><br><p>
<img src="sipedo.jpg" align="left">
<img src="bluedot.jpg">진도문 동쪽과 서쪽에는 광명실(光明室)이란
서고가 있다. 퇴계가 소장하던 책들과 서간집, 여러
임금이 내려준 책들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전교당 동쪽에는 퇴계 문집을 판각한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장판각(藏板閣)이 있는데, 이 장판각에는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언행록등의 판본이 보관되어 있다.<p>
<img src="sangduk.jpg" align="left">
<img src="bluedot.jpg">서원의 뒤쪽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상덕사(尙德祠)에는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곳을 돌아나와 만나는
옥진각에는 선생의 행적과 지팡이,매화등,벼루,투호,지구의,책자등 많은 유물이 진열되어 후학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br><br><br><br><br><p>
<img src="sisadan.jpg" align="left">
<img src="bluedot.jpg">도산서원과 안동댐으로 들어가는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이는 곳이 시사단(試士檀)이다.
본래 터는 안동댐에 수몰되어 지금처럼 높이 단을
쌓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는데, 서원 앞에서 나룻배로
건너 다닌다. 이곳은 1792년(정조16년)에 최초로 지방에서 과거가 열렸다는 시사단으로 정조가 평소에
흠모하던 퇴계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사람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어명으로 특별과거인 도산별과
(陶山別科)를 보인 장소이다. 7천2백여 명의 선비들이 응시를 했는데 임금이 친히 채점을 하여 급제한
11명의 유생들에게 위로연을 열어 주었다고 전해온다.<p>
<img src="japil.jpg" align="left">
<img src="bluedot.jpg">도산서원은 제사와 퇴계국제학술상 시상 그리고 많은 참배객등으로 오늘날에도 한국 고유의 성지로서
한몫을 담
당하고 있으며 또한 안동 일대의 문화활동과 교육의 중심지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옛 별과(別科)를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가을이면 이곳 전교당 마당에서 '도산별시(陶山別試)를
열어 전국에서 모인 많은 유생과 문객(文客)들의 글
솜씨를 가리기도 한다.<p>
<img src="sibi.jpg" align="left">
<img src="bluedot.jpg">도산서원은 안동시내에서 봉화-태백으로 이어지는 35번 국도를 따라 약20km되는 지점에 위치하며,
인근에는 예안향교,분강서원,온혜온천,청량산,퇴계종택 그리고 민족시인 육사 이활(陸史 李活)의 고향인
원천리(遠川里)가 있으며, 생가터에는 그의 대표작인 "청포도"의 시비(詩碑)가 있다.<p>
봉정사
봉정사는 조계종 16교구인 고운사의 말사로 안동시 서후면 태장동 천등산 품에 안겨져 있다. 봉정사는 672년(신라 문무왕12년)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義相大師)의 제자 능인대덕(能仁大德)이 창건한 안동 제일의 고찰이다.
의상대사는 어느날 영주 부석사에서 하얀 종이학을 접어 하늘 높이
날려 보냈다. 종이학은 가뿐하게 하늘을 타고 올랐다가 불심(佛心)의
기운이 흐르고 있는 땅에 내려 앉았다. 이곳에 의상의 제자인 능인대덕이 절을 창건하니 바로 봉정사이다.
경내에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3층 석탑과 고려말 조선초에 건립된 대웅전과 조선초에 만들어진 화엄강당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h4><p>
<img src="daewoong.jpg" align="left"><img src="grb.gif">
봉정사 극락전(極樂殿;국보 제15호)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목조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1972년에 실시한 보수공사 때에 밝혀진
내용에 의하면 건립 후 첫 수리는 고려 공민왕 2년(1363년)에 2차에
걸친 수리가 있었고 그 후 인조3년(1635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다. 봉정사 극락전은 1376년 중수된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백년 정도 앞선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이는 건축양식을 살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데, 고려시대 주심포 맞배집의 대표작으로 1탑식 가람배치의 특징을
살리고 있다. 1973년 건물 해체수리 때 1368년에 중수했다는 묵서가
발견됨으로서 이 건물이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축물 중 최고의 건축물로 추정되었으나, 봉정사 대웅전(사진) 보수를 위해 건물을 해체하던 중 대웅전 내 불단을 1361년에 만들었다는 묵서가 발견 됨으로서 오히려 대웅전이 늦어도 1361년 이전에 세운것으로 확인되고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사찰의 중심 건물은 극락전이 아니라 대웅전이기 때문에 대웅전이 극락전보다 늦게 건축되지는 않을것 것이라는 사실이 뒷받침하고 있다.<p>
<img src="guklak.jpg" align="left"><img src="grb.gif">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 불렀으나 뒤에 극락전이라 개칭한 것 같으며,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 건물로 고려시대의 건물이지만, 전대인 통일신라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어 더욱 주목되고 있다. 대웅전(보물 제55호)은 봉정사의 정전으로 다포식 건축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높다란 자연석 기단 위에 정면3칸, 측면3칸의 단층 팔작지붕을 단아하게 안치한 것으로 고색이 창연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과 극락전 사이에는 화엄강당(보물 제448호)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은 스님들이 불교학을 공부하는 장소로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드믈게 온돌방 구조를 갖춘 강당건물이다. 경내에 있는 극락전과 대웅전이 17세기에 중수된 것으로 보아 이런 중요 건물의 중수가 있을 때 화엄강당도 함께 중수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금당(보물 제449호)은 맞배지붕의 주심포계 건물로서 집이름으로 보
아 원래는 불상을 모시는 부속 전각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나 지금은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다. 고금당은 극락전 앞마당에 동향으로 세운
소규모의 건물로 화엄강단과 함께 극락전을 보좌하며, 정면 3칸, 측면 4칸의 작은 규모임에도 다양한 건축기법을 사용, 치밀하게 구성되어 건축학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건물은 신라건축을 바로 이어받은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p>
<img src="danchung.gif" align="left"><img src="grb.gif"> 대웅전의
단청문양은 조선초기에 칠한 것으로 연꽃을 보면 단순하지만 대담하고 단아한 느낌을 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조선 중기에 덧칠한
단청은 화려한 색상에 복잡한 무늬의 연꽃이기에 조선초기보다 더욱
발전했다는 평을 내릴 수도 있겠다.<br><br><p>
<img src="beokhwa.jpg" align="left"><img src="grb.gif"> 대웅전의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양쪽에 각각 관세음보살상과 대세제보살이 모셔져 있다. 얼마전에는 불상 뒤에서 후불벽화(불상 뒤 벽체에 그린 불화)가 발견되어 관심을 모으기도 했는데 폭이 4미터가
넘는 이 거대한 벽화는 조선초기 대웅전이 지어지면서 1428년 제작된 국내 최고의 것으로 밝혀졌다. 대웅전을 해체 수리하던 중 지붕 속
종보받침 장설에서 '1428년에 미륵하생도를 그렸다'는 묵서가 발견됨으로서 그 동안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전남 강진의 무위사 극락전 후불벽화(1476년) 보다 48년 앞선 것임이 최근 확인되었다. 극락전 옆 내리막길에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으며, 이 봉정사는 1999년 4월 21일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다녀감으로서 하회마을, 도산서원과 더불어 안동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되고있다.
관광명소
제비원 석불<br>
<img src="jaebi.jpg" align="left"> 안동에서 영주로 가는 국도를 따라
5분정도 가다보면 오른쪽 도로변 태행산 기슭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든 거대한 석불상이 나온다. 안동 이천동석불상(泥川洞石佛像),속칭 제비원미륵이라 불리는 보물 제115호인 이 돌부처는 11m 높이의
화강암 암벽을 몸체로 두고 머리부분은 별개의 바위에 조각하여 올려놓은 것이다. 이 돌부처는 신라의 스님 도선이 새겼다고 전해지는데
특히 불상의 머리 부분이 단조롭고 아름답다. 불상의 얼굴은 눈,코,입의 조각수법이 크고 풍만한 편이지만, 각선(刻線)이 예리하고 딱딱한
느낌을 주어 자비로운 인상이라기 보다는 위압감을 자아낸다.<p>
<img src="icon.gif">지례예술촌(知禮藝術村)<br>
<img src="jirae.jpg" align="left"> 안동 시내에서 영덕으로 뻗은 국도를 따라 임하댐 옆으로 난 샛길로 25분 정도 달리다가 임동면 사무소
못미쳐 있는 수곡교를 건너 다시 비포장 산길을 10km정도 더 가야
한다. 임하댐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며 산세와 물빛이 어우러진 산길을 10여분 따라가다 보면 산 아래 고색창연한 고가 10여 채가 눈에
들어오는 이곳이 바로 지례예술촌인데, 1989년에 문을 열고 1990년
7월 문화부가 예술촌으로 지정하였다. 총 3천평의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은 예술인들을 위한 회의장, 전통생활 학습장,유교 연수원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p>
<img src="icon.gif">법흥동 7층전탑<br>
<img src="sinsae.jpg" align="left"> 법흥동 군자정 부근에 있는 법흥동 7층석탑(일명 신세동 7층 전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벽돌탑으로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당시에 이 자리에 법흥사
(法興寺)라는 큰 절이 있었지만 조선시대 폐불정책 때 안동부(安東府)내의 절들을 강제로 철폐시켜 폐사가되고, 이 거대한 칠층전탑만 남아있다. 기단에 네모꼴로 팔부중상과 사천왕상을 양각한 판석을 세워
축조하였으며 탑신부는 진회색의 무문전을 어긋나게 쌓아 올렸다. 탑의 높이는 17.2m이고 기단 폭은 7.5m이며 국보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br><br><p>
<img src="icon.gif">동부동 5층전탑<br>
<img src="dongbu.jpg" align="left"> 안동역 광장 서쪽 구석에 위치한
이 탑은 당초 7층이었으나 임진왜란때 훼손되어 현재는 5층만 남아있다.이 탑은 비록 상륜부는 잃었지만 각층마다 화강석으로 감실을 만들고 2층 감실엔 조탑동 탑처럼 인왕상을 화려하게 새겨놓았고 지붕엔 각층마다 기와를 얹어 넣았다.(보물 제56호)<br><br><br><p>
<img src="icon.gif">옥동 3층석탑<br>
<img src="okdong.jpg" align="left">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모양이 매우 아름다우며 제작기법이 뛰어난 대표적인 석탑이다.(보물 제114호)<br><br><br><br><br><p>
<img src="icon.gif">조탑동 5층전탑<br>
<img src="jotap.jpg" align="left"> 석탑은 돌을 깎아서, 목탑은 나무를 깎아서 만든 탑을 말하며 이에 비해 전탑은 벽돌로 쌓아서 만든 탑을 말한다.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 위치한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신세동7층전탑, 동부동 전탑과 더불어 유달리 안동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된 전탑중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탑중의
하나 이기도 하다. 전탑높이 8.6m, 기단폭 7m로 화강석과 벽돌을 혼용하고 있으며, 1층의 몸통이라 할 수 있는 옥신석(屋身石)이 돌로 되어있고 옥개(屋蓋)부
터 벽돌을 이용하여 쌓아 올린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기단부를 흙으로 올려 두른것 또한 다른 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점이다. 중앙고속도로 남안동IC로부터 안동방향 약 500m되는 지점 좌측 밭 가운데에
외로이 서서 안동지역에는 유교문화 못지않게 불교문화가 성했으며,
이렇게 꽃핀 불교문화가 다른 지역과는 달랐음을 전하고 있다.(보물
제57호)<p>
<img src="icon.gif">임청각 군자정<br>
<img src="kunja.jpg" align="left"> 안동시 법흥동 안동댐으로 가는 낙동강변에 위치한 이 정자는 조선중기인 1515년에 건축한 것으로 근세 한국 유가의 대표적인 건물로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살림집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철도 부설 때 50여 칸의 행랑채와 부속건물을 철거당하고도 현재의 규모를 보여주는 99칸 집이었다. (보물 제182호)<p>
<img src="icon.gif">태사묘<br>
<img src="taesa.jpg" align="left"> 안동시 북문동에 위치하고 있는 태사묘는 고려의 건국 공신인 삼태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으로
1540년(조선 중종35년)에 건립되었다. 안동의 옛 이름은 고창(古昌)이었다. 후삼국 때 왕건과 견훤은 서로 신라를 쟁탈하려고 그 외곽을
둘러싼 진주,상주,고창(안동)을 연결하는 전선에서 치열하게 대결을
벌였다. 이 대결이 왕건 쪽의 승리로 기울게 된 결정적인 전투가 930년에 벌어진 고창전투였다. 당시 왕건은 앞서 공산(公山)전투에서 참패를 당하고 구사일생으로 고창 북쪽으로 도망해 왔는데 다행이도 이지방의 토호(土豪)인 김선평(金宣平),권행(權幸),장길(張吉)등이 향군을 이끌고 도와 대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여기서 왕건은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고 후삼국 통일 후 '동쪽을 안정시켰다(安於大東)는
뜻으로 이 고장 이름을 안동이라 지어주고 3인의 호족에게 각각 태사
벼슬을 주었으며, 이들
이 곧 안동 김씨, 안동 권씨, 안동 장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곳에는 고려시대의 유물 12종 22점이 보관되어 있는데 보물 제45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태사묘는 기념물 제15호이다.<p>
<img src="icon.gif">영호루<br>
<img src="young.jpg" align="left"> 안동시 정하동 낙동강변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나라 4대 누각중의 하나로 고려 말인 1390년 경에
시인 묵객들이 여가 선용의 장소로 건립하였다. 이 누각에는 공민왕
친필 현판 "영호루"와 박정희 대통령 친필 현판 "영호루"가 걸려 있다.<br><br><br><br><br><p>
<img src="icon.gif">병산서원<br>
<img src="byungsan.jpg" align="left"> 이 서원은 풍산현에 있던 풍산류씨 들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이 전신인데 1572년(선조5년) 서애 류성룡이 지금의 병산동으로 이건하였다. 1604년(선조37년) 서애가 타계하자 후학들이 1614년(광해군6년) 존덕사를 세워 그의 위패를 봉안하고 병산서원으로 개칭하였다. 1620년(광해군12년)에 서애 위패를
여강서원으로 옮겼다가 1629년(인조7년)에 다시 현 위치로 옮겨왔으며, 철종 14년에 '병산'이라는 현판과 함께 사액을 받았다. 전체적인
배치는 외삼문, 만대루, 입교당이 동일 축선상에 있고 강당인 입교당의 전면 좌우측에 동서재를 배치하였다. 입교당의 우측 뒷편에 서애의 위패를 모신 존덕사가 자리하고 있다. 동재 뒷편 담장 밖에는 주사인 ㅁ자형 주택이 자리잡고 있다. 만대루는 정면7칸, 측면2칸 규모로
다른 서원에서는 보기 드문 누각건물로 이 서원의 대표적인 건물이다.서원 앞의 백사장과 어우러진 주변의 빼어난 경관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절로 자아내는데 사적 제260호로 지정되어 있다.<p>
<img src="icon.gif">묵계서원<b
r>
<img src="mukgae.jpg" align="left">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9호. 조선 초기 청백리인 보백당 김계행(1431-1517)과 세종때 사헌부 장령을 역임한 응계 옥고(1382-1436)선생을 봉향하는 서원으로 숙종13년(1687년)에 창건하였다. 1869년(고종6년)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고 1925년 강당과 문루인 읍청루와 진덕문, 동재 건물 등을 복원하였다. 강당은 정면5칸, 측면2칸의 팔작 기와건물로 가운데 3칸을 마루로 꾸미고 좌우에 온돌을 들인 일반작인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서원
좌측에는 이를 관리하는 정면6칸, 측면5칸의 ㅁ자형 주사가 있다. 이
주사는 서원 창건 때 남아있는 유일한 건물이다.<p>
<img src="icon.gif">호계서원<br>
<img src="hogae.jpg" align="left">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 조선 선조 6년(1573)에 사림들이 여산촌 오로봉 아래 백련사 절터에다
여강서원을 건립하였으며, 1605년(선조28년) 대홍수로 유실되자 중창하였다. 퇴계선생과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의 위패를 봉안했다.
1676년(숙종2년) 호계서원으로 개칭하여 사액을 받았다. 그 후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7년뒤 현재 남아있는 강당만 새로
지었다. 지금은 강당과 주사만 남아 있는데, 1973년 12월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어 도곡동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강당은
평면상 -자형 집이나 양 끝 칸의 지붕은 맞배로 꾸며서 工자형의 특이한 구조를 보인다. 평면의 구성은 매우 단순하여 가운데 6칸이 대청이고 양측 각3칸이 긴 온돌방이다. 지붕의 가구는 드믈게 7량으로
처리하였으며, 대들보 위와 종보 위에 모두 포대공을 받쳐 아주 웅장한 맛을 준다. 초각, 첨자의 새김법은 매우 화려하여 근세적 조각 솜씨를 보여준다.<p>
<img src="icon.gif">분강서원<br>
<img src="bunkang.jpg" align="left">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농암 이현보(1467~1555) 선생의 위패와 별본 영정을 봉안한 사당이
있으며, 순조 27년(1827)에 건립되었다. 원래는 도산면 분천동에 위치하였으나 안동댐 건설로 1975년 이곳으로 이건하였다. 정면 3컨,
측면 3칸으로 전퇴를 둔 형식으로 정면 3칸에 모두 궁판이 있는 정자살분합문이 있으며 측벽에도 정자살 광창을 내었는데 그 구성법과 솜씨가 예안향교 대성전이나 오천동 후조당의 가묘의 경우와 흡사하다.
홑처마 맞배집으로 네모기둥에 납도리 5량가구인데, 종도리를 받친
대공은 工자형으로 경주 독락당 인동향교 대성전 등의 대공과 흡사하다.<p>
<img src="icon.gif">용계동 은행나무<br>
<img src="younggae.jpg" align="left"> 안동시 길안면 용계동 은행나무는 수령 700년 이상의 거목이다. 이 나무는 조선 선조때 훈련대장을 지낸 송암 탁순창이라는 분이 임진왜란 뒤 낙향하여 심었다고 하는데,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은행나무로는 최고(最古)인 이 나무는 높이 37m, 둘레 14m, 무게가 무려 700톤이나 되는데 천연기념물 제175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있다. 이 나무는 임진왜란과 4.19혁명,
10.26사태 등 나라에 큰 변란이 있을때 마다 '윙윙'소리를 내며 울었다는 영목(靈木)이다.
임하댐 건설에 따른 수몰로 이 나무의 일부가 물에 잠기게 되자 부락민들과 안동군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1990~1994까지 3년3개월 동안
제자리의 흙을 15m나 북돋아 산의 형태를 만들고 하루에 30~50cm씩 현재 위치까지 들어 올렸다고 하며, 이것은 국고가 20억원이나 드는 대공사로 상식공법(上植工法)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도 하였다고
한다.<p>
<img src="icon.gif">구리 측백나무<br>
<img
src="kuri.jpg" align="left"> 안동-대구간 국도(구도로)의 안동 무릉유원지 암산(일명 굴다리) 위 지역에 분포,자생하는 측백나무는 300여
그루나 되는데, 측백나무는 원래 키가 25m정도 자라는 상록 교목이지만 이곳의 나무들은 기형에 가까울 정도로 작은것 들이다. 이 나무들의 나이는 대략 100~2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가
측백나무의 자생지임을 입증하는 자료가 되고있다.<p>
<img src="icon.gif">민속박물관<br>
<img src="bakmul.jpg" align="left"> 1976년 안동댐 건설에 따라 다양한 민속문화재를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야외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박물관내에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울 때까지의 평생의례(관.혼.상.제)와 안동지방의 생활양식, 민속놀이가 재현되어 있으며,옛농기구와 안동포 직조과정 등 3,700여점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유교문화와 민속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p>
<img src="icon.gif">주요관광지별 거리(시청 기점)<br>
<table border>
<tr><td><center>관광지</center></td><td><center>거리</center></td>
<td><center>관광지</center></td><td><center>거리</center></td></tr>
<tr><td>도산서원</td><td>27km</td><td>하회마을</td><td>25km</td></tr>
<tr><td>병산서원</td><td>28km</td><td>봉정사</td><td>16km</td></tr>
<tr><td>도산온천</td><td>28km</td><td>안동댐</td><td>6km</td></tr>
<tr><td>민속박물관</td><td>5.5km</td><td>임하댐</td><td>17km</td></tr>
<tr><td>이천동석불상</td><td>6km</td><td>지례예술촌</td><td>30km</td></tr>
<tr><td>용계은행나무</td><td>31km</td><td>영호루</td><td>1.5km</td></tr>
<tr><td>태사묘</td><td>1.3km</td><td>임청각군자정</td><td>3km</td></tr>
<tr><td>신세동7층전탑</td><td>3.2km</td><td>청량산</td><td>42km</td></tr>
<tr><td>주왕산</td><td>50km</td><td>백암온천</td><td>110km</td></tr>
<tr><td>수안보온천</td><td>120km</td><td>문경새재</td><td>90km</td></tr>
<tr><td>소백산</td><td>60km</td><td>부석사</td><td>56km</td></tr></table>
>민속놀이&특산물
>놋다리밟기<br>
<img src="dari.jpg" align="left"> 세시풍속으로 행하여지는 안동의 민속놀이는 매우 다양하다. 정월에 지신밟기,줄다리기,동채싸움,놋다리밟기,편싸움, 2월의 풍신제, 3월의 화전놀이,4월의 연등놀이, 5월의
씨름, 그네띄기, 7월의 풋굿 등의 민속놀이가 전해지는데 놋다리밟기가 대표적인 놀이로 무형문화제 제7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월 보름날 저녁 부녀자들이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노는 놋다리밟기는 고려 공민왕이 공주를 데리고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에 이르렀을 때 공주가 강을 건녀려 하자 부녀자들이 물속에 들어가 등을 구부려 공주가 무사히 등을 밟고 건너게 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p>
<img src="flower2.gif">차전놀이<br>
<img src="chajun.jpg" align="left"> 후백제의 견훤이 안동으로 진격하였을 때 김선평,권행,장길 등의 삼태사가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견훤을 물리친 대승을 기념하기 위해 전승해 오는 민속놀이로 중요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다.<br>
<br><br><br><br><p>
<img src="flower3.gif">안동포(安東布)<br>
<img src="po.jpg" align="left"> 안동시 임하면 금소동은 생냉이로 불리는 이른바 안동포 마을이다. 나라 안에서 이름난 안동포 마을인 이곳의 땅은 모래와 찰흙으로 이루어져 삼의 대가 가늘고 마디가 곱게
잘 자라 옛날부터 삼베길쌈이 성행했다. 지금은 합성섬유의 발달로사양길로 접어든지 오래되었지만 아직까지 안동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안동포이다. 안동포에는 생베와 황베가 있는데 삼굿에
쪄서 벗겨낸 껍질을 물에 담가 불렸다가 '톱'으로 겉껍질을 벗겨낸 후
째고, 삼고, 돌꼇에 올려 실꼇으로 만들고 베틀에 얹어 짠 천을 생포(生布)라 한다. 이렇게 짠 생베를 조짚(시숫대)을 태운 잿물에 넣었다가 말렸다가 하는 일을 거듭하여 바랜 다음에 축축하게 된 상태에서
체로 받쳐서 곱게된 조짚대를 두텁게 발라 솥에 찌거나, 불 땐 방 아랫목에 묻어
두었다가 씻어서 바랜 것을 황베(黃布)라고 부른다.<br>
[구입문의처 :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조명석;019-535-4186)]<p>
<img src="flower4.gif">안동소주<br>
<img src="soju.jpg" align="left">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된 안동소주는 증류식 소주로써 기능보유자인 안동시 신안동 조옥화(趙玉花)씨가 제조자로 되어 있고 알콜농도는 45%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 제품 이외에 (주)안동소주에서도 생산하고 있으며 알콜농도도 45%,35%,25%로 다양하다.<br><br><br><br><p>
<img src="flower1.gif">안동사과<br>
<img src="app
le.jpg" align="left"> 안동사과는 좋은 토질과 적당한 습도로 인해 색상이 선명하고 당도가 높으며, 육질이 연하여 1992년 제2회 녹색지대
으뜸농산물 품평회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등 안동은 전국의 최대 사과단지로도 유명하다.<br><br><p>
<img src="flower2.gif">안동고추<br>
<img src="gochu.jpg" align="left"> 햇볕에 말린 고추(태양초)는 빛깔이 곱고 영양가가 높아 최고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br><br><br><p>
<img src="flower3.gif">안동산약<br>
<img src="ma.jpg" align="left">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안동산약(일명 마)은 위장,폐,당뇨,변비 등 내장기능 강화에 효능이 큰 자연식품이다.<br><br><br><br><p>
<img src="flower4.gif">안동한우고기<br>
<img src="hanwoo.jpg" align="left"> 깨끗한 물, 맑은 공기, 적절한 일교차 등 천혜의 자연조건에서 사육된 안동한우는 특유의 맛과 육질이
어루어진 전국 최고의 질좋은 쇠고기로 평이 나 있다.<br><br><p>
<img src="flower1.gif">안동식혜<br>
<img src="sik.jpg" align="left"> 다른 지방에서 흔히 식혜라 부르는
밥알이 떠있는 단맛의 그것과 달리 안동식혜는 무우와 고추가루물이
들어간 것이 특이하다. 시큼한 맛과 함께 약간의 매운맛 그리고 입끝에 남는 단맛의 독특함이 자극적이고 풍부한 미각을 지닌 음식이다.
찹쌀 고두밥에 네모로 잘게 썰은 무우와 고추가루,생강즙,엿기름물을
함께 항아리에 담아 온돌방에서 3~5시간 정도 발효시킨 음식으로 무우의 시원한 맛과 고추가루의 맵고 달큰한 맛
이 타지방의 식혜와 구별되는 겨울철 별식이다. (안동민속음식의집 ;
0571-821-2944)<p>
<img src="flower2.gif">헛제사밥<br>
<img src="hut.jpg" align="left">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조상에게 제사나 차례를 지내고 제상에 올랐던 음식을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다.특히 유교문화의 본고장인 이 지방에서는 제례를 엄격하게 지내는데 이곳 유생들이 쌀이 귀하던 시절에 제사 음식을 차려놓고 축문과 제문을 지어 풍류를 즐기며 헛투로 제사를 지낸후 음식을 먹었으며, 또 제사를 지낼 수 없는 상민들도 쌀밥을 먹고 싶어 제사를 빙자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는데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각종 나물(고사리,도라지,무우,콩나물,시금치,가지,토란 등)이 곁들여져 있는 산나물 한 사발, 어물과 육류를 싸리로 만든 꼬지에 끼워 익혀낸 산적, 상어.고등어 산적
그리고 고기와 무우를 넣어 만든 탕국 등 제사상에서 볼 수 있는 음식을 헛제사밥이라고 하는데, 먹는법은 고추장을 넣지 않고 깨소금 간장으로 간을 해 비벼 먹어야 제맛이 난다. 헛제사밥은 헛투로 만든 제사음식이므로 악의없는 거짓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안동댐 민속마을 박분섭 까치구멍집(0571-821-1056)과 박운숙 초가겹집 그리고
안동민속음식의집(0571-821-2944)에서 맛볼 수 있다.<p>
<img src="flower3.gif">안동간고등어<br>
<img src="good4.gif" align="left">1940, 50년대까지 안동포, 안동소주와 함께 전국에 명성을 떨쳤던 또 하나의 특산물이 있으니 이것이
곧 "안동간고등어"이다. 옛부터 안동사람들은 70km 정도 떨어진 영덕 바닷가에서 해물을 구입한 뒤 해뜰무렵 걸어서 출발하면 중간지점인 지금의 안동시 임동면에 해질무렵에 도착을 했으니 그곳이 바로
"챗거리 장터"였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안동으로 옮겨 지면서
햇
볕을 받고 소금에 절여져 "안동간고등어"가 되었다고 한다. 내륙지방에서 생선을 이용 지역상품화 하는 것은 매우 드믄 일로 그 맛은 구워도 비린내가 나지 않으며, 고소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간고등어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흔히 '독간잽이'로 불리는 원래의 자반은 부패 직전의 고등어에 소금을 듬뿍 친 것으로 장기간 보관에는 좋지만 한 토막으로 밥 두 공기를 비울 만큼 너무 짜 60년대 이후 자취를 감추었으며, 지금의 간고등어는 자반 중 최상으로 치는 뱃자반(갓 잡아올린 고등어를 배에서 바로 염장한 것) 맛을 살린 속칭 '얼간잽이'이다. 간고등어를 만드는 데는 열 차례 이상이 손이 간다. 산지(부산,제주 등)에서 직송된 고등어를 우선 내장을 제거하고 맹물에 최소 1시간 이상
담가 핏기를 뺀다음 왕소금을 치고 바닷물 염도와 같은 소금물에 서너시간 담갔다가 다시 '물빼기'작업을 하고 그 후 3~5도C의 숙성고에서 24시간 숙성시켜 소금기가 고루 배게 한다. 냉동고등어를 쓰지않고 연근해에서 잡은 생고등어를 그대로 사용해 등푸른 생선 특유의
맛이나고 청백색 빛깔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해방 전후
안동지역에는 간고등어 도가(都家)가 30여 개소에 이를 정도로 생선유통 내륙 중간 기착지로서 고등어 염장업이 크게 번성했고 당시 안동장날에는 서울, 대구 등 대도시는 물론 바닷가 사람들도 "안동간고등어"를 사갔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그런 간고등어가 철도청에 의해
열차 내 판매 특산품 1호로 지정되어 2000년 12월 1일부터 경부선,
호남선 새마을호 열차에서 귀향길 선물용으로 본격 판매되고 있다.
(구입문의처: <a
href="http://godunga.co.kr">http://godunga.co.kr</a>)<p>
<img src="flower3.gif">또 다른 먹거리들<br>
<img src="gun.jpg" align="left"> 민속박물관에서 옛 풍물들을 둘러본
뒤 바로 곁 민속마을에 가면 언덕위 초가집에 마련된 음
식점에서 각종 나물,전,건진국수,동동주등 고유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데, 이춘백 초가집은 '건진국수'가 별미이다. 건진국수는 안동사람들이 흔히 먹던 손칼국수를 말하는데 국수를 삶아 찬물에 건져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동 사투리로 "건진국시"라고도 하는데 밀가루와 콩가루로 만든 찰진 면발과 쇠고기,호박,김,깨소금,실고추와 더불어 시원한 멸치 국물이 어우러진 것이 별미이다. 또한 안동다례원에는 차를 이용한 밥,떡,죽,가루차,잎차우림 등이 준비되어 있으며,댐
주변에 즐비한 매운탕집에서 맛보는 매기 매운탕이 일품이고, 콩나물과 안동 고추가루가 어우러진 잉어찜도 빼 놓을수 없는 별미중의 하나다. 그리고 각종 잔칫상(喪家포함)에서 빠지면 안되는 것이 쇠고기육회,가오리,문어인데 이 지방 특유의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다. 크고
땟깔 좋은 문어는 바닷가 그 어디보다도 안동장에서 볼 수가 있으니
간고등어와 더불어 해안이 아닌 내륙지방에서 문어가 고유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문화의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p>
<img src="flower4.gif">안동의 5일장<br>
<table border>
<tr><td>장이름</td><td><center>장터</center></td><td><center>장날</center></td><td><center>주요특산물</center></td></tr>
<tr><td>안동장</td><td>안동시 동문동</td><td>2일,7일</td><td>고추,마늘,사과,참깨,채소</td></tr>
<tr><td>풍산장</td><td>풍산읍 하리리</td><td>3일,8일</td><td>고추,마늘,사과,참깨,채소</td></tr>
<tr><td>구담장</td><td>풍천면 구담리</td><td>4일,9일</td><td>고추,마늘,사과,참깨,채소</td></tr>
<tr><td>운산장</td><td>일직면 운산리</td><td>1일,6일</td><td>고추,마늘,사과,나물</td></tr>
<tr><td>길안장</td><td>길안면 천지리</td><td>5일,10일</td><td>고추,채소</td></tr>
<tr><td>임동장</td><td>임동면 증평리</td><td>5일,10일</td><td>고추,마늘,채소</td></tr>
<tr><td>정산장</td><td>예안면 정산리</td><td>4일,9일</td><td>고추,마늘,채소</td></tr>
<tr><td>온혜장</td><td>도산면 온혜리</td><td>5일,10일</td><td>고추,채소</td></tr>
<tr><td>신평장</td><td>녹전면 신평리</td><td>5일,10일</td><td>고추,마늘,양파,채소</td></tr>
</table>
</d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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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a href="kdil3.htm"><img src="gup.gif"
border=0></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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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ress><center>copyright by kim-dongil </center><
/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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