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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혁명’과 조선후기 실학
글쓴이 김용흠 / 등록일 2025-10-16
우리는 지난 2017년에 이어서 올해 두 번째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여 감옥에 보냈다. 그 과정에서 영하의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수많은 국민들이 시위에 나서서 ‘이게 나라냐?’고 외쳤다. 국민이 선거로 뽑은 대통령이 극소수 극단주의자들의 이익만을 추구할 뿐 제대로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하여 국가가 위기에 직면하였다는 인식에서 나온 일이었다.
국가적 위기 극복, 그 힘의 원천은?
그런데 이 사건에 참여한 사람들도, 이 사건을 분석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한다, 그냥 막연하게 1919년 3‧1 운동과 독립운동을 거론하다가 대개는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멈춘다.
물론 3‧1 운동은 동학농민운동과 그 맥락이 닿아 있고, 둘 다 세계사에서 보기 드물게 우리 민족의 역량을 과시한 사건이었으므로 빛의 혁명의 원천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동학농민운동은 어디서 연원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 인식의 역사적 지평이 전근대와 단절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낀다. 서양 문화와 사상의 압도적 위세 앞에서 전근대 역사의 존재와 의의를 스스로 평가절하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이러한 인식의 지평이 문제가 있다고 맨 먼저 분명하게 자각한 것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은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한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서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장기간에 걸쳐서 지속성을 갖고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독립운동에 투신한다는 것은 자신이 이전에 누리던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독립운동가들을 지배한 사상 역시 서구 정치사상과 문화였는데, 그 결과는 독립운동의 분열이었다.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의 분열과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민족의 독립이라는 목표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분열은 무의미하고 비효율적이라는 반성은 조직의 차원에서 신간회나 민족유일당운동 등으로 바로 나타났다.
역사 단절·서구주의·분단에 갇힌 인식의 지평
그런데 문제는 일제로부터 독립한 이후에 건설할 새로운 국가는 어떤 국가이어야 하는가라는 신국가건설론(新國家建設論)에 있었다. 1930년대 들어서 서구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국가는 미국이었고,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국가는 소련이었다.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이들 서구를 대표하는 국가가 액면 그대로 새로운 독립 국가의 모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주목하게 된 것이 다산 정약용과 그의 저술이었으며, 이러한 인식이 다산의 저술을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로 간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중요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즉 일본 제국주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을 달성한 이후 우리 민족이 추구해야 할 새로운 국가는 서양의 사상과 제도만을 일방적으로 추종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모든 것을 바쳐서 얻은 새로운 인식의 지평이었고, 이후 해방 정국에서 대중적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어서 전개된 분단과 전쟁, 그리고 냉전체제는 우리 민족에게서 이러한 인식을 말살하는 과정이었다.
정약용은 환갑을 맞이한 1822년에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스스로 묘지명을 지어 두었는데, 여기서 『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를 ‘일표이서(一表二書)’라고 이름붙이고, 그것을 관통하는 주제가 ‘신아구방(新我舊邦)’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오늘날 학문에 비추어 본다면 ‘국가론’의 범주로 간주할 수 있는데, 그는 이것을 저술하기에 앞서 먼저 육경사서(六經四書)로 대표되는 유학 경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정리하였다. 즉 일표이서에서 전개된 그의 국가론은 수천 년간 내려온 동아시아의 지적(知的) 전통을 비판적으로 정리한 위에서 나온 것이었다.
실학, 민중 신뢰와 특권 포기 위에서
오늘날 우리는 정약용의 사상을 실학(實學)의 범주에서 이해하고 있다. 조선후기 실학은 왜란(倭亂)과 호란(胡亂), 즉 양란(兩亂)을 전후한 시기의 국가적 위기를 배경으로 삼아서 등장하였다.
조선왕조 국가는, 중세 국가로서는 드물게 주자학(朱子學)이라는 사상을 국정교학(國定敎學)으로 표방하면서 국가를 경영하려고 하였으므로 주자학이 원산지인 중국보다도 더욱 정교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선조(宣祖)대에 이르면 후대에 ‘목릉성세(穆陵盛世)’라고 칭할 정도로 기라성 같은 주자학자들이 등장하였다.
그런데 양란으로 인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였다면 그 사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당시 뜻있는 관인(官人)‧유자(儒者)들은 국가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주자학은 물론 양명학(陽明學)‧노장학(老莊學)‧서학(西學) 등 당대의 모든 사상과 학문을 검토하고, 당시의 현실적 모순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리하여 대동(大同)과 균역(均役), 그리고 탕평(蕩平)이라는 대원칙 아래에서 다양한 국가 구상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당시의 지배 계층이었던 양반 지주가 스스로의 기득권을 제한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 국가의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의 결과였다. 조선후기 실학자들 역시 양반 지주 계급 출신이었지만 자신의 사회경제적 특권을 내려놓는 제도 개혁안을 제출하였다는 점에 실학의 중요한 특징이 있었다.
여기에는 당시 직접 생산을 담당하면서 성장하고 있던 기층 민중의 역량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19세기 말에 발생한 동학농민운동은 바로 이러한 흐름 위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결국 조선후기 실학은 이러한 민중의 역량에 대한 신뢰 위에서 국가의 위기를 배경으로 삼아서 등장하였으며, 동아시아의 국가 경영의 전통에 입각하여 이전까지의 학문과 사상을 집대성하여 성립된 것이었다.
실학, 동아시아 국가 경영의 지적 전통에 입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독립 이후의 신국가 건설을 구상하면서 다산 정약용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이를 바탕으로 서양의 정치사상과 제도가 노출한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도달하였음을 보여준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서양과 다르게 수천 년에 걸쳐서 집권국가(集權國家)를 연속적으로 발전시킨 역사적 경험을 축적하여 왔다. 중국에서 수많은 국가들이 이합집산하면서도 통일 제국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여 연속적으로 발전하였듯이, 우리 역시 신라-고려-조선으로 중세국가가 연속성을 갖고 발전하였다.
그 과정은 생산력 발전 단계에 맞추어 국가가 계급 갈등을 조정하고 완화시킬 수 있는 사상과 제도를 발전시켜 온 과정이기도 하였다. 조선후기 실학의 국가론은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분단과 전쟁, 냉전체제가 이어지면서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2017년의 촛불 혁명과 2025년의 빛의 혁명은 우리 민족의 뇌리에 잠재되어 있던 바로 이러한 의식이 국가의 위기를 만나 표출된 사건이었으므로, 우리의 현실에 적합한 국가의 형태를 만들어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그것은 대동과 균역, 그리고 탕평의 연장선상에서 국가 구성원 모두가, 계급과 계층, 민족과 성별을 넘어서 행복하고 보람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국가여야만 한다.
실학, 역사적 상상력의 풍부한 원천으로
아직도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서양의 정치사상과 제도는 이에 대한 분명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미국과 유럽 등 서구 국가들은 스스로 민주주의 전통을 부정하고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여기에 조선후기 실학이 시대를 뛰어넘어 21세기에도 검토해야 할 대상으로 떠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21세기 들어서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선진국에 진입하였다. 그에 발맞추어 K-Pop과 드라마‧영화 등이 전세계를 열광시키고 있고, 현재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 경제적 지표는 차고도 넘치는데, 우리 국민들은 스스로 선진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갖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드디어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배출하였지만 왠지 허전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 공백은 서구의 사상과 제도의 한계를 넘어서 우리만의 독자적인 정치사상과 제도를 창출해야만 메워질 수 있다. 조선후기 실학은 그것을 위한 역사적 상상력의 풍부한 원천이 될 것이다.
■ 글쓴이 : 김 용 흠 (연세대 국학연구원)
- 연세대 국학연구원
- 조선후기 전공 역사학자
[주요 저서]
『조선후기 정치사 연구 1』(2006)
『조선의 정치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2016)
『조선후기 실학과 다산 정약용』(2020).
『목민고 · 목민대방』(역서, 2012)
『대백록』(역서, 2020)
『동남소사』(역서, 2021) 등
☞ 이 글은2025 신(新) 경세유표 연구 및 교육 지원사업의 하나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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