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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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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가벼운 입술 소리☆]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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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기념곡 작사 시인
[가벼운 입술 소리]
이화인 시집 / 한국문예협회 시선집 001 / 도서출판 홍두깨(2019.01.01) / 값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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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입술 소리
이화인
분리수거하는 날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보물을 캔다
시인은 시집이 보물이다
보물도 누군가에게
짐이 되었다
보물을 캐다 보면
수십 년이 지난 보물이 있고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절판된 보물도 있다
작고한 시인이 손수 사인한
국보급도 있다
그리움은
이화인
비 멈춘 하늘에 무지개 같은
찬란함에 가려진 아픈 상처와 같은
허공에 머물다간 초승달 같은
빈자리에 남기고 간 그림자 같은
저문 강가에서
이화인
삶이 저물어 가고
타오르던 패기마저 모닥불처럼
사위어질 무렵이면
그대여, 저무는 강가에 나가 보라
저녁노을이 지친 몸을
강물에 내려놓고 조용히 흘려보내는
저물어 가는 강가에 나가 보라
여태껏 지우지 못한
가슴 속에 각인된 불 인두 자국을
흐르는 강물에 비춰 보라
아물지 않은 상처 씻겨 보라
어두웠던 그림자 거두고
지나온 그대의 어지러운 발자국
강물에 묻어 버려라
그대 마음도 물결처럼 가벼워지리라
영광스러웠던 날 슬펐던 날도
그리움의 애증마저도
여울지는 강물에 내려놓고
경건하게 귀 기울여 보라
여울지는 저 물소리가 무얼 말하는지
무엇을 일러주는지
초승달
이화인
아내가 손톱을 깎는다
꽃물이 초승달처럼
희미하게 남아있다
일순간
까치가 손톱을 물고
허공을 차오르자
하늘에 묻어있는
가뭇한 자국 하나
휘파람새
이화인
어찌 잊을 리가 있나요!
저 먼 인연의 강을 건너
밤이면 밤마다 아내 몰래 불러대는
전생에 첫사랑인데
햇살의 이
이화인
먹다 만 사과에
햇살이 슬며시 내려앉았다
아무 은밀하다
햇살의 부드러운 혀가
은근슬쩍 핥더니
날름 한 입 베어 물었다
선명한 이 자국에서
거뭇거뭇하고
역한 냄새가 났다
향기로울수록 상하기 쉽고
두터운 믿음에
돌아오는 상처가 깊다
지상에 가장 따뜻한 밥상
이화인
숨어버린 해를 찾으려고
돌담을 넘어온 산이
마당 깊숙이 드러눕자
바다 건너온 섣달 바람이
거친 파도 길어와
물독을 가득 채웠다
저물녘 하늘에 별들이
어둠길 내려와 팽나무 가지에
걸판스런 밥상을 차렸다
지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상이다
한 끼의 밥
이화인
한 끼 밥을 알려거든 종로에 가라
서울노인복지센터에 가서 보라
그곳엔 짓무른 맨발로
저문 황혼 길을 서성이는 내가 있고
저승길 한 뼘 앞에 선 내가 있다
두 눈 부릅뜬 산부처들 계시다
깨진 꿈으로 채워진 내가 있고
별들에 가슴을 벤 내가 있다
입 굳게 다문 돌부처들 계시다
제주도에 가면
이화인
제주도에 가면
바다가 술이고 바다가 안주다
술잔을 비우면
이내 파도가 술을 채우고
등대가 안주를 집어주었다
제주도에 가면
나보다 바다가 먼저 취하고
취한 나를
등대가 먼저 끌어안았다
등대의 무릎을 베고 누우면
파도가 부르는 자장가에
한라산이 한달음에 달려와
이불이 되어주었다
그리운 서귀포
이화인
바다에 새들이 없다면
바다는 얼마나 외로울까
파도는 쓸쓸하고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친구야,
옛 친구야,
붉게 타는 노을빛 석양이
보고 싶지도 않으냐
섶섬 문섬 벗 삼아
서귀포 칠십 리 걸어 보자
돌아온 탕자
이화인
먼 길 돌아온 탕자를
달래는 어미처럼
해무가 밤새 날뛰던 바다를
조용히 어루만졌다
뜬눈으로 불 밝힌 등대가
파도를 베고 눈 붙이자
한 생을 탕진한 탕자가
취중에 바다를 끌어안고 눕는다
상처는 더 깊어야 사랑이다
이화인
우리 가야 한 길이
설렘 아님이 없고
지나온 길이
아픔 아님이 없다
우리네 사는 일이
사랑 아님이 없다
어떤 이는 사랑을 주고
상처로 되돌려 받고
어떤 이는 상처를 주고
사랑으로 받는다
상처는 더 깊은 사랑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이화인
사막을 건너가는 노련한 상인은
낙타에게 먹일 소금을
따로 챙겼다
낙타도 소금을 먹지 못하면
살지 못하고
지나치면 병이 되었다
적당히 먹으면 보약이 되고
잘못 먹으면 독약이 되는
소금은 약일까
독일까
사랑이란 이름으로
너에 대한 집착이 그러했다
참꽃
이화인
꽃처럼 고운 당신
그대는 참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참 꽃입니다
영원히 시들지 않을
그대는 참꽃입니다
사리를 빚다
이화인
설 문턱에서 구덩이를 팠다
언 흙 조심스럽게 파헤치자
이럴 수가!
깜깜한 토굴 속 초막에서
노승님이 좌탈입망坐脫立亡하듯
엄동설한 석 달 동안 거꾸로 서서
이토록 노랗게 속을 채우다니
마음속 묵은 때 비워내고
사리를 빚듯
제 속을 꽉 채울 수 있다니
내가 빈 몸뚱이 살찌우는 동안
가슴속 비워낸 자리에
사리를 꽉 채울 수 있다니
제 몸 찬란하게 건사하다니
목어의 꿈
이화인
조석朝夕으로
몸을 후비고 울어도
내 눈물이 세상을
맑게 할 수 있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면
적멸寂滅의 집
이화인
노스님이 새벽마다 독경 한 짐을
나무에 부려놓자
나무는 무서리가 내리기 전에
은행 알 열 짐을 공양으로 올렸다
십리 길을 산책 나선 소슬바람이
백 리길을 달려와 노고를 치하하자
풍경은 천리 먼 길 어둠길을
찰그랑찰그랑 울어주었다
노을이 붉은 휘장을 두르고
만리 너른 그늘을 보듬어주자
나무는 품 안에서
수천수만 나비 떼를 날려 보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해는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지고
적멸의 집은 고요 더 깊다
해바라기
이화인
키 작은 해바라기가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너무 커요
몸이 빼빼 말랐어요
새카맣게 탄 얼굴에서
고소한 향기가 폴폴 퍼졌다
어느 날 문득
이화인
어느 날 문득
내 작은 하늘이 아득해질 때면
그대여 먼 별빛만큼만 바람을 갖자
비록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
이제는 만날 수 없다 해도
어디에선가 선근 별 하나
그대를 지켜보고 있나니
어느 날 문득
내밀한 그리움이 이득해질 때면
그대여 먼 불빛만큼만 그리워하자
비록 우리가 멀리 헤어져 있어
다시는 만날 수 없다 해도
영영 꺼지지 않을 등불 하나
그대를 비춰주고 있나니
노숙자
이화인
날개 꺾인 새들이
어둠 속에서 가슴에 소주병을 묻고
별을 헤아린다
벼랑 끝에서
민들레 홀씨 하나 멀리 날아가
꽃을 피운다
그루터기
이화인
얼마나 많은 날이 지나야
그대 모습 지울 수 있을까
얼마나 마놓은 눈물 흘려야
그리움 벗어날 수 있을까
그대와 만남과 헤어짐이
가슴에 옹이가 되고
사랑의 흔적들이
마음에 생채기 되어
밤하늘 별들만큼 상처로 남아
천년 고목 그루터기 되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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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제목을『가벼운 입술소리』로 정했습니다.
시집에 실린 시 중에서 몇 개를 골라놓고 고심하였습니다.‘지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상’‘적멸의 집’‘누더기 달빛을 걸치고’‘가벼운 입술소리’‘새들의 경전’…
“시인은 온몸으로 시를 쓰고, 독자는 가볍게 읽어야 시집이다!”라는 아내의 말에 따라『가벼운 입술소리』로 정했습니다.
한글 창제시에 글자로 태어난 가벼운 입술소리를 연상해도 좋고, 짬짬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시집이라 해도 좋습니다.
귀신도 보인다는 칠십을 눈앞에 두고 이뤄야 할 몇 가지 일들을 젊어 한때 마음속에 정해놓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내 나이 칠십에 시집을 내는 일이었습니다. 고운 노을 빛 아래 살면서 남아있는 삶을 잘 갈무리하고 알차게 꾸리겠다는 희망이었습니다.
이제 내 인생도, 이 계절도 농익은 가을입니다. 이 가을에 고마운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태어날『가벼운 입술소리』입니다. 무더위에 교정을 봐주신 아내 문금옥 씨와 출판을 도와주신 이 안 선생님과 이충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년 10월 어느 날에
지우 이화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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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인 詩集 [※가벼운 입술소리※]
[ 詩評 ] -
시에 든 보석의 빛을 보며
적멸寂滅의 집을 찾아나서는 시학
―이화인 시인 시집 『가벼운 입술소리』에 붙여
이충재 시인. 문학평론가
1. 시작하며(시인 안부)
항상 묻고 듣는 질문이 있다. 왜 시인들은 시를 쓰는가? 왜 시인이 되려고 하는가? 이는 최근 헤르만 헤세가 그의 문장론에서 독일의 시인들에게 던진 질문 중 하나이다. 참으로 어리석으면서도 귀담아들어야 할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시인들의 수효가 많고, 시 전문 매체들이 많고, 시를 연구하고 토론하는 학과들이 대학에 일정 부분 확고부동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음이 바로 우문우답愚問愚答의 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문우답愚問愚答앞에 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21세기에는 사람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 물질이, 정신이 온전히 평가받아야 할 위치에 육체의 미가, 우리란 공동체가 존중받아야 할 사회가 개인주의로, 실질적인 가치론적 대우가 명분론적으로 대체되는 등 형이상학적인 삶의 대지가 형이하학적 천민의 위력에 침노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시를 쓰고 한권의 시집을 내려고 고군분투하는 시인들이 있다는 것은 죽은 시인이 아니라 바로 살아있는 시인의 표상이요, 죽은 시인의 사회에 절대적 희망이 보인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시가 정치의 하수, 경제의 수녀, 외적인 멋과 인기와 권력 그리고 또 다른 그 무엇의 후미를 쫓는 시녀로 전락한 듯한 시대에서 시를 사랑하고, 시의 힘을 통하여 참된 인간을 만나고 그런 부류의 가치 있는 인간이 된다면 그가 바로 진짜 시인으로서 참된 비전을 품고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서글프게도 그런 진짜 양심 있는 인간을 사랑하고, 가치 있는 정신을 지닌 인간을 사랑하고 우주를 사랑하고, 그 중심에서 한 작은 우주의 병적인 현상을 슬퍼하면서 시를 쓴다면 그는 분명히 진실하고 참된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진짜 시인 품귀현상을 고백 아니 할 수 없는 것은 천민자본주의에 포로가 된 이들이 노리는 꼼수 때문이다.
그래서 휠덜린은 시인을 향해서 고독한 독행자라고 했으며, 필자는 거룩한 망명자라고도 호명한다.
둥지의 철학으로 체계화된 박이문 교수도 인생의 종착역에서 듣고 싶어 하던 호칭이 있다고 했다. 그 호칭이 바로 시인인 것이다. 참된 시 한 편 쓰고 임종을 맞고 싶을 만큼 그의 철학적 사유보다도 사유의 결실로서의 시를 흠모했다던 고백이 기억에 남는다. 최근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두 권의 시집을 거뜬하게 낸 정현기 비평가도 시인으로서 왕성한 작품을 쓰고 있다. 정현기 시인 또한 예전에 고백하기를 시인이야말로 모든 예술을 총망라하여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그래서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했다.
이제는 부끄러운 옛말이 되었다지만, 그래도 시인들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희망이며, 순수 서정시를 사랑하여 한 권의 시집을 묶게 되는 시인에게 관심이 고조되는 것의 상징이며, 그들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제 또 다른 한 권의 시집『가벼운 입술소리』를 내는 이화인 시인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큰 것도 사실이다.
이미 이화인 시인의 전 시집『묵언黙言 한 수저(문화발전소)』가 많은 독자의 영혼 속 별빛과 같은 노래가 되어 사유의 근원이 되었듯이 이 시집 역시 그 일환으로 어두운 시대적 터널을 비추어줄 밝은 빛이 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가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평설을 쓴다.
2. 시의 근원인 우주를 향한 위대한 노래
이화인 시인의 시력도 그렇거니와 연령 또한 젊은 나이가 아니다. 그런데도 시편들을 보면 참으로 영혼이 맑다는 것과 순수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미 많은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고백하고 푸념해 오듯이 세상은 때가 많이 묻은 혹은 진실 유무가 무색할 정도로 인성이 박제화되어 버린 감성 언어(‘사랑’,‘그리움’,‘외로움’,‘꿈’,‘꽃’,‘여행’,‘연인’,‘두근거림’등)들을 흠모하고 싶은 마음을 잊고 살아 온 지 이미 오래인 듯한 시대에 우리는 인간의 참되고 고귀한 존재성을 잃고 방황을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화인 시인의 이번 시집을 보면, 그 잃었던 감성 언어들이 고스란히 살아나서 저마다 빛을 내고 있음을 만나기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마치 시를 사랑하던 사춘기적 소년의 시심詩心이 시인의 영혼 안에서 아직도 아름답게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시「그리움은」「그리움이 싸락눈처럼 내리는 날」「그립다는 말」을 보면 세월을 거꾸로 돌려놓고 시속으로 달려가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싱그러움을 자아내게 한다.
그립다는 말은
사랑하고 싶다는 말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말
풀잠자리가
꽃 진 자리를 뱅뱅 맴돈다
아득히 잊어야 했거늘
차마, 잊지 못한 게다
-시「그립다는 말」전문
사랑은 유치한 고백들 그러나 진실하고 아름다운 고백들로 이루어진 찬란한 보석인 것이다. 사랑을 고백하고, 행위 하는데 무슨 수식어가 그렇게 많이 필요하며, 장식이 덕지덕지 붙어 치장되는지, 눈부실 정도다. 그들에게서는 진정성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그들에게서는 진짜를 발견하기가 턱없이 부족한 비양심적 시대다. 그런데 위의 세 편의 시를 보면 타인에게는 없고 이화인 시인에게만 있는 듯한 순수한 영혼의 심지에 불빛 환하게 타오르는 여정을 발견하게 된다. ‘비 멈춘 하늘에 무지개 같은//찬란함에 가려진 아픈 상처와 같은//허공에 머물다 간 초승달 같은/빈자리에 남기고 간 그림자 같은’ 시「그리움은」전문이다. 이 짧은 시가 바로 이 시집의 문을 열어 주고, 독자들을 반겨 맞이하는 주인장의 순수한 마음을 읽게 하는 동기가 된다는 점에서 참으로 아름답다. 모든 것은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제1부에서의 시편들은 이렇듯 심성에서 자연으로 다시 천상의 여정을 통해서 아내를 그리고 다시 어릴 적 추억의 산실인 어머니에게 가닿아 있음을 본다.
이화인 시인의 시 여정을 보면「젖은 꽃」「저문 강가엥서」「떠도는 자의 슬픔」「어둔 길」「바람 길」을 지나「초승달」을 찍고 이윽고「저도 그립습니다」에 이르게 된다.
‘그리운지요/저도 그립습니다/실바람에도 온몸이 흔들리고/가랑비가 가슴 깊이 젖어 와도/발목을 뗄 수 없을 만큼 그립습니다’(시「저도 그립습니다」3연)
언젠가 시인을 만났을 때, 외로움을 톡톡히 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물론 이화인 시인은 한곳에 머물지 않는 영혼의 방랑자적 삶을 살고 있다. 이름 있는 산사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뜬금없이 타국으로 날아갔다가 아무 일 없었던 듯 돌아와 술 한잔 사기도 하고, 또 어느 때면 먼 제주 섬에서 소식을 전해오기도 하는 등 각박하고 이기적인 도심지의 중심을 벗어나기를 즐거워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단순히 도심지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열망을 넘어 그 안에 가슴살을 뜯어내고 비상하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출구로 한 적멸寂滅의 집을 향하고픈 시인의 말년 인생에 멋과 의미를 더하기 때문이란 것이 시편들을 감상하다 보면 곧 알아차릴 수가 있는 진실한 이유다.
제2부의 시편들을 보다가 시인이 잠시 머물다 가는 생애의 현장에서 그의 근원적인 심지를 뻗어 저 우주 먼 곳까지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시인의 영적 무한지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숨어버린 해를 찾으려고
돌담을 넘어온 산이
마당 깊숙이 드러눕자
바다 건너온 섣달 바람이
거친 파도 길어와
물독을 가득 채웠다
저물녘 하늘에 별들이
어둠길 내려와 팽나무 가지에
걸판스런 밥상을 차렸다
지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상이다
-시「지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상」전문
위의 시는 전 장에 있는 작품「고봉밥」에서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자애로운 손길의 상징성을 뛰어넘어서 시인으로서의 삶 중심에서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우러르는 여유와 품위 있는 생애의 중심지대에서 온갖 역경을 딛고 살아와 또 다른 단편의 잔을 기울이며 승전가를 들려주는 듯한 자긍심이 만들어 놓은 원숙한 미의 절정을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땅의 수많은 사람이 땅 버러지처럼 세상의 물질만을 추종하는 삶에 취하여 자연과 인생이란 현상의 고귀하고도 아름다운 자태에 감동하지 못하고 한 마리의 슬픈 버러지와 짐승처럼 기생하는 때에 이화인 시인의 삶은 어느 사이 지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상으로서의 밤 풍경을 회화적 기법에 문학적 상징물을 덧입혀 격조 높게 그려내고 있음이 실로 놀랍다. 이것이 바로 시인의 영감이 자아내는 여유요 가치요 행복이며 즐거움이며 가치 있는 영적 재산을 향한 추구인 것이다. 이러한 삶의 과정과 목표는 더 견고하게 그리고 가까이 실제로 와 닿고 있음을 볼 수 있다.
3. 새로운 둥지 제주 섬을 향한 절창
이화인 시인의 일 년의 삶을 가만히 보면, 절반의 그 절반은 지방과 해외를 떠돌며 세월을 낚고, 그 절반은 서울에서 머문다. 그리고 절반은 제주도에서 둥지를 틀고 유유자적하는 삶을 사는 것 같다. 그래서 같은 자리에서 얼굴 마주하면서 술 한 잔 나누는데도 사전 전화 예약이 되지 않으면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런데 하나도 서운하지가 않은 것은 이번 시편들을 보면서 지니게 된 동병상련인 까닭이다.
이화인 시인이 제주도를 사랑하는 까닭을 대가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그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제주도를 사랑하는 시인이란 사실이 시들을 감상하면서 재발견 되어 기쁜다.
바다가 안아 주고 남겨진
물 한 조각이다
해가 바닷속으로 잠수하고
노을이 파도를 잠재우면
한달음에 뭍으로 달려가
얼굴을 묻고
떠돌이 가마우지처럼
꺼억꺼억 울고 싶다
언젠가 돌아갈 그리움이다
-시「섬」전문
위의 시를 보면, 이화인 시인이 왜 자주 서울을 비우고 섬으로 잠적하는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다. 대단한 용기 있는 결단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떠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용기가 없어서 그 자리에 머물면서 눈물만 곱씹는데, 이화인 시인은 단호하게 헌 둥지를 박차고 새 둥지 섬을 찾아 떠난다. 왜 그곳에 심지 곧은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보고 싶은 마음이 아닌, 유년의 씻지 못할 원심력과 같은 강한 추억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모진 삶의 흔적이 그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인이 왜 그곳에서 새로운 둥지를 틀었는가에 대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그 이유를 담은 시가 바로「제주도에 가면」이다.
‘제주도에 가면/바다가 술이고 바다가 안주다/술잔을 비우면/이내 파도가 술을 채우고/등대가 안주를 집어 주었다//제주도에 가면/나보다 바다가 먼저 취하고/취한 나를/등대가 먼저 끌어안았다/(시「제주도에 가면」1,2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곳 섬에서 ‘바람’과 ‘바람꽃’을 만나고 ‘4월의 또 다른 제주도의 역사’, ‘억새꽃’, ‘민들레’와 ‘사람과 새와 별’을 만나게 된다. 이렇듯 바다를 포근하게 그려낸 시인도 드물다는 것이 정설이다.
세상 사람들은 온통 탐욕의 짐을 지고들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아귀다툼의 현장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재현하는 삶을 살고들 있다. 참된 평안과 행복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유와 사랑하지 못함과 용서하지 못함과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잃고 슬픔과 미움과 절망과 저주와 방황과 경쟁으로 인한 상처와 살육의 죄를 짓는 것도 모두가 인간이 지닌 죄의 근원인 탐욕으로부터 유발된 것이다.
그런데 이화인 시인의 이번 시들을 보면 그런 탐욕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 이번 시편들을 감상하다보면 그 특징이 거짓이 아니란 진실이란 것을 곧 알게 된다. 그 단초를 제공해 주는 것이 바로 비움에 있다는 것 또한 발견하게 된다. 채움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공空으로 환원시킬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 모습을 이화인 시인은 충분히 경험하고 있기에 시편詩篇으로 환원시켜 독자들에게 애잔한 시적 멜로디로 들려지기를 지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설렘 아님이 없고
지나온 길이
아픔 아님이 없다
우리네 사는 일이
사랑 아님이 없다
어떤 이는 사랑을 주고
상처로 되돌려 받고
어떤 이는 상처를 주고
사랑으로 받는다
상처는 더 깊은 사랑이다
-시「상처는 더 깊은 사랑이다」전문
위의 시를 보면 상처를 상처로 보듬어 안고 깊은 가슴앓이를 하는 보편적인 사람들과는 분명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왜일까? 이미 오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인 나름대로,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관조 혹은 받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위의 시로써 상처받은 또 다른 독자들 영혼의 근육에 에너지를 공급함과 동시에 죽어가는 독자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충분한 동기를 부여하는 힘의 원천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시를 보면 충분히 그 가치와 비결을 발견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속을 비운 새가 높이 날 수 있지/등이 가벼워야 더 멀리 갈수 있는 거야/살다 보면/가던 길을 돌아서야 할 때가 있지/왔던 길 뒤돌아 가야만 지름길인 게야’(시「살다보면」전문) ‘많이 줄수록 좋다//자주 줄수록/넌 기쁘고 난 즐겁다//서로 줄수록/모두가 행복하다’(시「미소」전문)가 바로 그 포문을 열어주는 시적 자동제어 역할을 하고 있다.
4. 적멸寂滅의 집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꿈꾸며
이 단원에 수록된 시들이 이화인 시인의 문학 인생의 엑기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화인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절정을 노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이 땅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은 꿈을 잃고들 살아가고 있다. 그 꿈을 잃은 사람들은 불온한 세상을 낳게 하는 원인자가 되고 있기에 단호하게 말하건대, 이 시대는 불온한 시대라고 불리는 것이다. 꿈이 없는 인생 사계절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의미와 참된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래서 불온한 시대에 불온한 삶의 연속성을 낳고 있다.
그런 표면적 독자들을 향해서 시인은 적멸寂滅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으며, 그 적멸寂滅의 집에서 안식하자며 독자들을 청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노스님이 새벽마다 독경 한 짐을
나무에 부려놓자
나무는 무서리가 내리기 전에
은행알 열 짐을 공양으로 올렸다
십 리 길을 산책 나선 소슬바람이
백 리 길을 달려와 노고를 치하하자
풍경은 천리 먼 길 어둠길을
찰그랑찰그랑 울어주었다
노을이 붉은 휘장을 두르고
만 리 너른 그늘을 보듬어주자
나무는 품 안에서
수천수만 나비 떼를 날려 보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해는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지고
적멸의 집은 고요 던 깊다
-시「적멸의 집」전문
적멸寂滅의 사전적 의미는 ‘번뇌의 세계를 완전히 벗어난 경지, 즉 번뇌의 경계를 떠난 열반’이다.
이화인 시인의 삶의 의미, 삶의 가치, 궁극적 목적은 어느 사이 ‘적멸이 집’에 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적멸의 집’에 가 닿기까지는 수많은 시련과 슬픔뿐 아니라 모진 배반의 아픔을 선험하기 마련이다. 그 연장선상에 든 시편들은 다음과 같다. 「마음」「도량석」「내소사 꽃살문」「망부석」「등신불」등이다.
왜 시대가 망가졌는가 정치가 정도를 잃고, 경제가 인간 안에 있는 참된 자아를 죽이고, 사회가 참된 행복과 질서를 무너뜨리고, 지식인들과 지성인들이 자취를 감추고, 사회가 가치로운 인간의 삶에 엑기스를 제공하지 못한 채 윤리 도덕, 양심이 화인 맞은 듯 부정적 지대로 극변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시인은 이미 중년의 시기를 생업에 헌신하면서도, 삶의 무가치한 도전을 깨달은 바, 더 깊은 적멸의 집을 찾아 평생 홀로 길을 나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들은 시인의 시 세계를 향해서 선시하고 일축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단순히 도를 경험한 이들만의 산물로서 그 안에 이화인 시인의 시들을 가두어 놓기에는 이화인 시인은 이미 사회란 각박한 현실을 충분히 경험한 중 장년기릐 터널을 지나오고 있기에, 선시보다도 힘과 희망과 위로와 배려의 양분이 충분히 더 깊이 내재해 있는 가치 있는 시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천민자본주의 국가의 사관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소시민으로서 삶의 끊임없는 애환을 시인은 외면하지 않고 있다. 그 시가 아래의 시다.
위의 시를 읽으면서 일전에 읽었던 백담사 큰 스님이셨던 조오현의 시선집 『적멸을 위하여(문학사상사)』를 곁에 두고 병행하여 읽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한 사람의 고뇌와 번뇌가 주는 교훈은 죽음과 적멸에 가 닿을 만큼 찬란하고도 심오하다 할 수 있음이 바로 조온현시선집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화인 시인의 적멸의 집 또한 그 같은 선상에서 읽혀지고 이해되어져야 하지 않을까.
해가 서산에서 머뭇댄다
잠시, 한눈팔았구나
해찰했구나
그러나 참 좋았다
-시「해찰하다」전문
누구인들 자신할 수 있겠는가? 순간의 선택과 집중이 오래가지 않는 것도, 분주한 시대적 상황과 물질 욕구가 우리를 늘 유혹하고 있는 까닭이라고, 우리는 허무하고도 무가치한 굴절된 삶의 또 다른 목적의식에 쉬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까닭이다. 이렇듯 선택과 집중을 필요로 하는 시대적 배경 사이에서 회전목마를 타듯 어지럽게 중심을 잃고 살아가는 번뇌 그 삶의 언저리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이화인 시인의 시편들에 집중하는 여유를 지닐 필요충분조건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갈등과 고뇌로 엮어진 시편들을 읽을 때, 우리의 가슴은 뜨거워지기 시작하고, 몰골사나운 민낯으로서의 붉은 허물이 하나둘 벗겨져 나가고 뽀얀 새살이 돋아나는 현상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화인 시인이 태동하고 출산하게 된 또 다른 시 세계로서의 아포리즘 즉 잠언시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깊은 숲을 향해 산책하다가 보면 괴목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가하면 물살이 센 깊은 물가 하구에서 놀다가 보면 괴상한 수석을 만나기도 한다. 또는 낯설고 먼 곳을 여행하다 보면 희귀한 절경과 맞닥뜨리곤 한다. 그런데 공통점은 그 산물이 단시간 내에 절로 창조되기 보다는 수많은 세월이 낸 산물이다. 형언할 수 없는 질곡의 산물로 만들어진 미美의 결과물로 거듭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처럼 이번에 감상하게 될 시편들이 그동안 이화인 시인의 사회성과 가족성 그리고 깊은 회한의 결과물로 인해 찾게 된 ‘적멸의 집’뜰을 거닐면서 길어 올려진 깨달음, 반면의 거울을 수없이 깨부수면서 비로소 얻게 된 시심이란 것을 곧 경험하게 된다.
가을이 오면
나무들도 외로움 타나 봐요
외로워요
외로워 못 살겠어요
쏟아지는 달빛 모아
나뭇잎에 쓴 손편지
기러기 편에 소식 전하고
온몸 붉게 물들었어요
-시「나뭇잎 편지」전문
위의 시를 가만히 보면 서정시가 만들어 놓은 혹은 서정시 속의 아포리즘이라는 특이성이 발견된다. 전자에 말한 바와 같이 시인은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도심지보다는 섬과 사찰 그리고 타국을 향해 자신의 정체성을 해체하여 다시 접합시키듯 유유자적한다고 했다. 그런 시인의 영혼의 세계를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외로움이자 그리움이자 사랑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인간의 내적 깊음에서 오는 큰 위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의 서정적 외로움이 가장 깊게 물들어진 작품을 들라면 위의 시를 들 수 있다. 이 가벼움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시편을 보면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분리수거하는 날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보물을 캔다
시인은 시집이 보물이다
보물도 누군가에게
짐이 되었다
보물을 캐다 보면
수십 년이 지난 보물이 있고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절판된 보물도 있다
작고한 시인이 손수 사인한
국보급도 있다
- 시「가벼운 입술소리」전문
이화인 시인이 이번 시집을 내면서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이 한 편의 시에 다 들어가 있다. 이 한 마디는 생각 짧은 한마디가 아니라, 전자에서 다루었듯이 자신의 방황「돌아온 탕자」회한「저문 강가에서」떠남「떠도는 자의 슬픔」상처의 치유「햇살의 이」역사의 애락「뜨거운 강」, 인간의 평등과 갈등「어둠을 밝히는」등 시인의 온갖 삶의 질풍노도가 빚어낸 이후의 삶이 가져다준「가벼운 입술소리」로서의 시인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이 시를 읽으면서 시 쓰기와 사 읽기의 당위성이 마련되고, 시의 감동이 일게 되고, 시를 통한 순수한 그리움을 자아내고, 시로 인해서 내적 깊은 상처가 치유되는 놀라움을 얻게 되는 것이다.
5.맺음말(시인의 당부)
이번 시집『가벼운 입술』가 탄생하기까지 시인의 작품640여 편의 원고를 만나게 되었다. 이 원고들은 짧은 시간 안에 쓴 다작이 아니라, 10여 년 가까이 써 모아서 내놓은 과작이란 점에서 받아든 순간 흥분이 되었다. 시란 시인의 사상과 속 깊이 숨어 잠자던 삶의 습관까지 다 들여다볼 수 있는 세밀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시인의 삶이 속 시원하게 드러내 보여 주는 장르로서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시가 다른 장르와 충분히 변별력이 있는 특징을 지닌 문학 장르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필자가 이화인 시인을 알아 오기 그 훨씬 이전에 쓴 원고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필자로서는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이 시집이 독자들 앞에 상재되고 난 이후 한 잔 술을 기울이거나 차를 마시게 될 때면, 그간 시인의 사상과 삶과 상처로부터 비롯했을지도 모른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간극이 상당히 많이 좁혀지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그 만큼 이화인 시인의 오랜 기간 쓴 작품들을 여러 날 감상할 기회가 주어진 것은 아주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거듭 바라기는 이 귀한 시집『가벼운 입술소리』가 많은 독자를 위로하고 힘을 주고 삶의 당위성을 충분히 부여해 주기를 바란다.
끝으로 조선 중기 학문의 대가로 알려진 정여창 선생의 말씀을 빌려서 당부 하나를 남겨드리고자 한다. “자갈밭에다 곡식을 심으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기름진 땅에다 곡식을 심으면 온갖 잡초가 쉽게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 땅을 북돋우고 잡초를 솎아내는 노력이 없다면 비록 훌륭한 논밭이라고 한들 자갈밭보다 나을 것이 있겠는가? 시류에 연연하지 마시고, 21세기 질풍노도 속에서 심히 지쳐 더 이상 방랑할 기력마저 잃고 살아가는 소시민적 독자들의 멘토로서 온기가 따스하게 배어 있는 시를 생산해 주는 시인으로서의 일생이 되어 주시기를 당부드리면서 많은 독자의 사랑을 지속해서 받는 적멸의 집 청지기가 되어주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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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이화인 시인의 삶의 의미, 삶의 가치, 궁극적 목적은
어느 사이 ‘적멸의 집’에 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적멸의 집’에 가 닿기까지는
수많은 시련과 슬픔뿐 아니라
모진 배반의 아픔을 선험하기 마련이다.
누구나 이 시를 읽으면
시 쓰기와 시 읽기의 당위성이 마련되고,
시의 감동이 일게 되고,
시를 통한 순수한 그리움을 자아내고,
시로 인항해서 내적 깊은 상처가 치유되는
놀라움을 얻게 되는 것이다.
― 이충재 詩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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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인 시인∥
∙ 전라북도 김제 출생
∙ 전북대학교 졸업
∙ 한양대학교 대학원(석사)
∙ 2003년 현대시문학에 등단
∙ 임화문학상, 현대시문학상, 제주 4.3기념노래작사상
∙ 시집:『그리움은 오늘도 까치밥으로 남아』『길 위에서 길을 잃다』『묵언 한 수저』
∙ 수필집: 『쉰여덟에 떠난 Nepa1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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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이화인
썰물 지는 갯벌
노랑부리저어새가 제 발자국에서
노을을 건져 올리고 있다
한 입 뱉어낼 때마다
뚝뚝, 눈물진다
뒷걸음치는 바닷물이 붉다
위의 시는 이화인 시인의 네 번째 시집『가벼운 입술소리』에 수록된 한 편의 시이다. 이 시를 가만히 읽다가 보면 시인의 고즈넉한 삶의 단면이 수면 위로 떠올라, 그를 가까이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시인의 마음을 들킬 수밖에 없는 여유가 고스란히 베어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어들 한다. 그런데 결단코 쉽지가 않다. 첫째는 무엇인가에 쫒기는 삶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수갑이나 족쇄들을 차고 있음이고, 이를 벗어던질 용기가 부족한 까닭이다. 그 이유는 무가치한 욕망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고독을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고독은 외로움이란 절대 공허상태를 일컫기도 하겠지만, 사실 고독 속에서만 자신의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들 게으르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시에서 보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그네가 되어 노을 앞에서 자신을 세워두고 지나온 삶을 반추하는 절대적인 용기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시인이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할 여백적 삶이 아니겠는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시를 통해서 잃었던 나됨의 '진실성'과 '순수성', '내려놓음의 경지'를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의 남은 여생이 얼마나 될까? 인간은 모두가 다 유한한 삶의 테두리를 벗어날 특권적 요소가 없다. 그럼에도 영원 할 것같은 착각 속에서 스스로가 어리석은 바보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아쉽다.
위의 시를 통해서 나와 주변을 돌아보고, 발을 딛고 생종하는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을 직시하면서 살 수 있는 여유와 나됨을 재발견하는 지혜를 얻기를 바란다.<이충재 시인, 문학평론가>
―https://writinglove.tistory.com/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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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최재경 시인님 고맙습니다.
거리가 멀어 탁주 한 병 택배로 보내드릴 수도 없으니
그냥 고맙다는 말밖에 더는 ....ㅎ
화인 시인님 언제 기회가 되면 만나야지요. 시집 출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