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다.
그래서 수상하다.
중앙시장에는 수상한 마을이 하나 있다.
그것도 시장 위에 그 마을이 존재한다.
시장이 떠받들 듯 머리에 이고 있는 특별한 마을,일명 옥상마을이 그곳이다.
말 그대로 중앙시장 건물 옥상에는 백여 세대의 어엿한 마을이 들어서 있다.
시장 옥상에 문패를 단 양옥집들이 이웃하고 있고,그 양옥집 옥상에는 울긋불긋 빨래가 펄럭이고 있다.
여느 마을과 같이 정겨운 골목이 나 있으며,계단을 사이로 아랫동네 윗동네로 구별되기도 한다.
집 앞 채소밭에는 겨울동초가 파릇파릇 맛깔스레 자라고 있다.
반들반들 잘 닦인 장독대도 보이고,마을 공터에는 몇몇 아이들이 '씨차기'를 하고 있다.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유년시절을 돌려받는 기분이다.
서툰 깨금발로 따라 밟으니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안쪽 골목에서 "고장 난 테레비나 콤퓨타,카메라 삽니다~"를 외친다.
중앙시장처럼 서민의 곤고(困苦)한 삶과 애환이 진하게 묻어나는 곳이 또 있을까?
개발시대의 몸살을 앓던 썩은 동천과 시장 곳곳의 재활용 노점상의 신산(辛酸)함,서민들만의 먹거리인
거친 음식들로 대별되던 곳.
이곳에서 한잔 술에 취한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이,고등어 한 손 사들고 동천 너머,전포동 철길 건너
집으로 돌아오던 길목.
중앙시장은 시장상인이 살았던 무허가주택(지금은 양성화 되었다)인 옥상마을을 이고 살던 시장인만큼,가난한
서민들이 모여 만든 시장이고,서민들의 아픔을 다독이던 시장이다.
때문에 이곳에 오면 서민들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시장 사람 하나하나가 서로 이웃 같이 살갑다.
청과도매상 아저씨도 생선 장수 할머니도 표정이 밝고 여유롭다.
서로가 서로를 껴안는 풍경이다.
그래서 따뜻함이 더욱 더 묻어나는 시장이다.
중앙시장 부근은 또 서민들만의 특별한 먹거리도 많아 더욱 사랑받는 곳이다.
길거리 좌판횟집이 그렇고 동천가 '썩은 다리' 못가서 명태갈비지짐집이 그러하며,다리 너머
전포동 큰 길 못 미쳐 왼쪽 골목 함안집의 닭내장볶음이 또 그러하다.
길거리 좌판횟집은 여름이 좋은 곳이다.
후덥지근한 여름 저녁 카바이드 불빛 아래서,복작거리는 사람들 쳐다보며 멍게 한입 소주 한잔 입에 털어 넣는
맛은,어느 음식 하고도 바꾸고 싶지 않다.
하물며 지금은 한가락 한다는 얼치기 시인들과 신참내기 신문기자 등이 둘러앉아
주머니 털어 먹던 곳이어서 더욱 신나던 곳이었다.
명태갈비지짐은 막걸리와 함께 하면 좋다.
시원한 막걸리 한잔 부어놓고 명태갈비지짐을 입술 번들거리도록 묻혀가며 발라 먹는 맛은
또 다른 맛의 경험이다.
참고로 명태갈비는 명태를 가공하고 남은 명태머리 등을 튀김옷을 묻혀 번철에 구운 것으로,머리와 뼈 사이의
살을 발라 먹는 서민들을 위한 먹거리이다.
함안집의 닭내장볶음은 닭 내장 부위를 각종 야채와 함께 무쇠불판에 올려 볶아 먹는데,
소주 한잔에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창자는 창자대로 간은 간대로 염통은 염통대로 쫄깃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남은 국물에 우동사리를 얹어 먹는 것도 잊을 수 없는 맛이다.
이들 음식은 지금은 별미로 먹지만,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민들이나 먹던 중앙시장의 애환어린 음식들이다.
지금도 몇몇 집이 시장 한켠에 숨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에,그 시절을 추억하며 자리에 앉는 것이다.
그러나 문현금융단지 개발과 함께 이제 중앙시장도 두꺼운 세월의 먼지를 털고 재개발에 들어간다.
본격적인 현대화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난의 긴 터널 속에서 힘들게 지내온 서민들을 위한 장소였던 만큼
이곳의 재개발은 전적으로 서민들을 위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최원준·시인 cowej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