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유 - 오대산(1)
1. 감자밭등 가는 길에 서쪽 조망, 가운데는 문암산
길도 없는 골을
숲으로 찾어드니
눈에 덮인 가지
눌렸다 일어나고
간간히 다스한 바람
품 안으로 들어라
―― 가람 이병기(嘉藍 李秉岐, 1891~1968), 「봄(一)」 2수 중 제1수
▶ 산행일시 : 2023년 5월 1일(토), 맑음, 점심 때 잠깐 눈
▶ 산행인원 : 8명(더산, 킬문, 수영, 토요일, 동그라미, 칼바위, 오플, 악수)
▶ 산행코스 : 상원사주차장, 1,342m봉, 1,404m봉, 주릉, 1,533m봉, 호령봉, 감자밭등, 호령봉, 1,533m봉,
가래터골, 중대사자암 입구, 상원사주차장
▶ 산행거리 : 도상거리 9.5km
▶ 산행시간 : 7시간 28분
▶ 갈 때 : 청량리역에서 KTX 열차 타고 진부역에 가서, 택시 타고 상원사주차장으로 감
▶ 올 때 : 상원사주차장 버스승강장에서 버스 타고 진부에 와서, 저녁 먹고 택시 타고 진부역에 와서, KTX 열차
타고 상봉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7 : 22 - 청량리역
08 : 53 - 진부역
09 : 35 - 상원사주차장, 산행준비, 산행시작( ~ 09 :57)
11 : 28 - 1,341.9m봉
11 : 44 - 1,404.2m봉
12 : 17 - 오대산 주릉, 한강기맥, 1,533.4m봉
12 : 40 - 안부, 점심( ~ 13 : 45)
14 : 27 - 호령봉(虎嶺峰, 1,565.5m)
14 : 51 - 1,421.2m봉, 감자밭등
15 : 30 - 다시 호령봉
15 : 50 - 1,533.4m봉, ┣자 갈림길
16 : 18 - ┫자 갈림길 안부
16 : 34 - 가래터골
17 : 07 - 중대사자암, 적멸보궁 입구
17 : 25 - 상원사주차장, 산행종료
※ 사진은 찍은 순서대로 올린다.
2. 큰개별꽃, 상원사 버스승강장 뒤쪽 풀밭에서
3. 홀아비바람꽃
5. 회리바람꽃
6. 홀아비바람꽃
9. 피나물, 상원사 가는 산기슭에서
10. 새끼노루귀, 서대암 가는 등로에서
12. 회리바람꽃
회리바람꽃을 알고 나니 자주 보인다.
오늘은 오대산 가는 교통 운이 영 따라 주지 않는 날이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하여 진부(오대산)역 가는 KTX 열차가
우리 집에서 청량리역보다 더 가까운 상봉역을 경유하는지를 몰랐고, 5월 1일 노동절을 공휴일로 잘못 알았다. 공휴
일(公休日)은 공무원이 쉬는 날이다. 전철은 타면 왕십리역에서 환승하여 한 정거장만 가면 청량리역인데, 공휴일
과 평일의 배차시간이 크게 차이가 난다. 공휴일은 전철이 청량리역에 7시 8분에 도착하게 되니 열차출발시간은
7시 22분이라 여유가 있다.
그런데 평일 전철은 청량리역에 7시 27분에 도착한다(나는 그 직전 시간인 6시 52분에 도착하게 되는 전철을 타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왕십리역에서 청량리역으로 가는 전철을 기다리면서 알게 되었다. 부랴부랴 역사를 빠져나
와-왕십리역사 미로를 빠져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택시를 탔다. 전철은 왕십리역에서 청량리역까지 4분 걸리는데,
택시는 15분이나 걸린다. 청량리역에서 열차 타는 곳을 몰라 위층 백화점으로 갔다가, 전철 승강장으로 갔다가,
물어물어 열차 승강장으로 갔다. 진부(오대산)역 가는 열차가 들어오는 중에 나는 계단을 내려왔다.
진부(오대산)역에서도 해프닝이 있었다. 열차가 진부에 7분이나 연착하는 바람에 산통이 깨졌다. 토요일 님과 오플
님, 그리고 나 셋이 화장실을 들르느라 나머지 일행과 합류하지 못했다. 나머지 일행 5명은 오대산 상원사 가는 버
스가 이미 떠났고, 정선 가는 버스를 타고 진부터미널로 갔다. 거기서 상원사 가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다. 우리 3명
은 정선 가는 버스도 놓쳤다. 택시를 타고 진부터미널로 가는 도중에 칼바위 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들은 상원
사 가는 버스를 탔으니 가우버스승강장에 바로 가면 거기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택시로 가우버스승강장으로 달려갔다. 조용했다. 칼바위 님에게 다시 전화 걸었다. 가우버스승강장을 떠났다고
한다. 택시로 내쳐 상원사 주차장까지 갔다. 가는 도중에 버스가 무섭게 달렸는지 보이지 않아 버스가 택시보다 더
빠르다고 했다. 그런데 그럴 리가 있겠는가. 우리가 통과한 가우버스승강장 말고 진부 시내에 또 그런 버스승강장이
있는 모양이다. 칼바위 님 일행이 탄 버스는 우리 뒤에 오고 있었다.
오대산 입구 매표소에서 요금( 문화재관람료 1인당 5천원이다. 경로우대는 무료다) 받는 여직원에게 물었다. 버스
가 지나갔다고 했다. 버스승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5천 원씩 받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한다.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매표소를 통과하는 중이었다. 우리보다 22분이나 늦었다. 그러면 매표소 여직
원은 왜 버스가 지나갔다고 했을까? 우리가 노선버스를 특정해서 묻지를 않았다.
13. 새끼노루귀
15. 얼레지
17. 새끼노루귀와 회리바람꽃
18. 얼레지
19. 새끼노루귀
일행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내게는 퍽 고맙다. 버스승강장 뒤쪽의 가꾸지 않은 풀숲에 야생화가 수두룩하다. 회리
바람꽃과 나도바람꽃, 홀아비바람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회리바람꽃을 지지난주 소백산에서 처음 보고(전에도 보
았겠지만 그냥 지나쳤으리라) 알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부터 내 눈에 자주 보인다. 회리바람꽃의 이름 유래에는 양설
이 있다. 첫째는 ‘회리’가 이 꽃이 처음 발견된(?) 평안남도 대동군 청룡면 회리(晦里)를 의미한다는 설이다. 그렇지
만 이를 뒷받침한 근거는 없다.
다른 하나는 이 꽃의 활짝 핀 모습이 마치 회오리바람이 부는 모습과 비슷하여 회리바람꽃이라고 한다는 설이다.
나는 이 꽃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회오리바람―갑자기 생긴 저기압 주변으로 한꺼번에 모여든 공기가 나선 모양으
로 일으키는 선회(旋回) 운동)―을 전혀 연상하지 못하겠다. ‘회리바람’은 ‘회오리바람’의 준말이다. 대부분 이 설을
정설로 여긴다. 나도바람꽃은 오늘 처음 본다. 나도바람꽃을 본 즉시 지인에게 찍은 사진을 보내어 물어서 알았다.
나도바람꽃도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다.
무릎을 꿇고 싶다
네 앞에선 언제라도
네온 빛 꽃가루가 얼룩진 안경을 벗고
너와 나 눈빛 맞추는
마음 거리/ 삼십 센티
물러서면 멀어질까
다가서면 또 다칠까
줌렌즈 미당기다 몰래 뱉는 바람 한 줌
우주의 파동이 인다
내 가슴에/ 네 가슴에
임채성 시인의 「나도바람꽃」전문이다. 이 시인은 납작 엎드려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고 나도바람꽃을 찍었다.
시에서 그런 분위기를 느낀다. 한편 문효치 시인의 『나도 바람꽃』이란 시조집과 ‘나도 바람꽃’이라는 시조가 있다.
그런데 ‘나도바람꽃’이 아니다. 문효치 시인은 ‘나도’와 ‘바람꽃’을 띄어 썼다. 뭐가 뭔지 모르는 출판사나 뭇 사람은
‘나도바람꽃’이라고 선전한다. ‘나도 바람꽃’은 화자(話者)가 ‘바람꽃’이라는 말이다. 문효치 시인의 ‘나도 바람꽃’이
라는 시조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바람이 시작된 곳
바다 끝 작은 섬
물결에나 실려 올까
그 얼굴 그 입술이
힌 생애 불어오는 건
바람 아닌 그리움
23. 새끼노루귀
25. 얼레지
29. 새끼노루귀
30. 얼레지와 새끼노루귀
31. 새끼노루귀
일행 8명이 모두 모였다. 서둘러 간다. 상원사 가는 대로를 간다. 상원사 가는 길은 거목인 전나무 숲이 볼만하다.
물론 전나무 말고도 고개 숙이면 주변 풀숲에 온갖 기화이초들이 춘유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내 눈이 바쁘다. 대로
따라 0.5km쯤 갔을까, 왼쪽 산비탈에 난 소로가 보여 그 소로에 든다. 서대암 가는 길이다. ‘상원탐방지원센터
0.8km’라는 이정표가 있으면서 경방기간에 관계없이 비지정탐방로라고 한다. 살금살금 잰걸음 하여 간다.
가파른 오르막을 가면서 길섶의 풀꽃들을 들여다보노라니 힘든 줄 모르고 간다. 그런데 앞에서 반갑지 않은 소식이
전해 온다. 서대암을 가는 여신도 두 분을 앞지르게 되었는데 그들이 우리더러 왜 이 길을 오느냐며 공단에 이르겠
다며 전화를 걸더라는 것이다. 오늘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뒤에도 우리를 못 마땅하게 여기는 장삼 걸친
스님이 온다. 그도 심술이 보통 아니다. 우리가 길을 양보하고 뒤처질 듯 했으나 아예 산모퉁이에서 길을 막고 섰다.
우리가 불자가 된다. 그들 성미를 더 돋울까봐 뒤돌아 골로 간다. 일찍이 삼연 김창흡(三淵 金昌翕, 1653~1722)이
이 길을 갔던 때가 부럽다. 그의 『오대산기(五臺山記)』 중 일부다.
“상원사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서대(西臺)를 찾아 나섰다. 중대를 가로질러 지나가는 갈림길에서 문득 등 넝쿨 속으
로 들어가게 되자 마치 길이 없어진 것만 같았다. 돌부리에 차이고 시냇물을 거슬러 가며 꾸불꾸불한 등성이를 오르
니 죽은 고목들이 길을 막아 자주 가마에서 내려 쉬었다. 보일 듯 말 듯한 숲 끝자락 사리각이 멀리 보이니 정신이
더 나갈 듯했다. 오르는 수고로움은 북대에 비해 절반도 되지 않았다.
우통수(宇筒水)를 찾아갔다. 외진 곳에 있어서 그런지 색깔도 깨끗해 다른 여러 샘물보다 더 나은 것 같았다. 맛은
일반적으로 달고 향기로웠다. 세상에서는 한강물이 이 우통수서 발원한다고 일컬으니 애당초 어느 물은 취하고
어느 물은 버리려는 생각이 반드시 있기는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많은 샘들이 같이 쏟아지는데 어떻게
참으로 적자와 서자의 구별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33. 새끼노루귀
34. 얼레지
36. 새끼노루귀
37. 꿩의바람꽃
41. 흰제비꽃
얕은 골 가로질러 생사면을 치고 오른다. 불감청고소원이다. 우리가 봄을 앞질러 오르는 것 같다. 넝쿨 속 뚫고 죽은
고목들을 넘고 넘는다. 그러는 중에 노루귀를 만난다. 노루귀 잎과 꽃을 함께 본다. 전에 보지 못한 노루귀다. 이른
봄날에 보던 노루귀와 다르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는 세 종류의 노루귀가 등재되어 있다. 노루귀, 섬노루
귀, 새끼노루귀이다. 우리가 종종 부르는 흰노루귀, 청노루귀, 적노루귀 등은 정명이 아니다.
노루귀는 꽃이 먼저 피었다가 꽃이 지면서 잎이 돋고, 섬노루귀와 새끼노루귀는 꽃과 잎이 함께 돋는다. 섬노루귀는
이름 그대로 울릉도 섬에서만 자라는 노루귀이다. 그 노루귀가 여기로 상륙했을 리는 만무하고, 그렇다면 새끼노루
귀임에 틀림없다. 귀엽다. 새끼노루귀(Hepatica insularis Nakai)와 섬노루귀(Hepatica maxima Nakai)는 한국
특산식물이라고 한다. 속명 헤파티카(Hepatica)는 ‘간’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잎이 간과 비슷한 모양
이다.
서대암을 훌쩍 돌아 넘은 1,341.9m봉이다. 여전히 하늘 가린 숲속이다. 등로는 꽃길이다. 산상화원 원로를 간다.
아까 그 신도와 스님과는 달리 내가 삼보일배보다 더한 일보삼배를 한다. 그래도 안타깝다. 다 살피지 못하기 때문
이다. 산행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또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애써 데리고 온 풀꽃들을 커다란 모니터로
다시 들여다보는 게 산길에서 보는 즐거움 못지않지만, 모두 품을 수는 없고 골라내야 한다. 열에 한 두 개만 취하고
나머지는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한다. 괴로운 일이다.
43. 얼레지와 꿩의바람꽃
45. 새끼노루귀와 얼레지
49. 새끼노루귀
50. 홀아비바람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