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철학”을 알지 못합니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저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를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게 공부한 적도 없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적에 가깝게 지내는 선생님께 대학을 ‘철학과’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 말씀이 ‘너처럼 늘 웃고 사는 사람은 철학을 할 수가 없으니 진지하게 생각해서 다른 학과를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생각해보니 지당한 말씀이셨습니다. 저는 세상 일을 늘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니 철학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 분명합니다.
오늘 ‘철학’에 대해서 검색하다보니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는 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날씨가 철학을 바꾼다는 말은 그래도 이해가 가지만 철학이 날씨를 바꾼다는 말은 솔직히 처음 듣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누구나 자신은 합리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합리적이지 않음을 경험한다.
이를 의식하고 보면 나 역시 내 생각만큼 합리적이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나의 비합리성을 보지 못하는 때가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스스로는 항상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비합리를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다.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할 때 우리가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일관성을 유지하는지 여부다. 앞말과 뒷말이 다르지 않은 것, 나 자신에게 적용하는 논리와 타인에게 적용하는 논리가 다르지 않은 것 말이다. 철학에서는 자신에게 적용하는 논리와 타인에게 적용하는 논리가 다를 때 ‘이중논리를 구사한다’고 한다. 이중논리를 전혀 구사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중에라도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이중논리를 구사하는지를 파악하는 사람이 있고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당연히 전자의 사람은 점점 더 이중논리를 구사하지 않는 사람으로 바뀌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전자의 사람들은 일관성에 목숨을 거는 스타일이기에 후자의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저렇게 앞뒤 다르고도 창피하지 않을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물론 이때의 고통은 자신 역시 이중논리를 구사할 때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수록 줄어들기는 한다.
이성에 대한 철학자들의 태도는 둘로 나눌 수 있다. 임마누엘 칸트로 대표되는 이성을 신뢰하는 철학자들이 있고, 데이비드 흄으로 대표되는 ‘이성에 대한 과도한 신뢰’를 경고하는 철학자들이 있다.
칸트는 인간이 이성적 결론에 자기 자신을 종속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설사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의 결론일지라도 말이다. 이와 반대로 영국의 철학자 흄은 이성을 ‘정념의 노예’라고 보았다. 인간은 자기 마음에 드는 결론에는 그 결론이 타당한 그럴싸한 이유를 찾아내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결론에는 그 결론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를 찾아내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실 흄의 경고는 이성의 한계를 알고 이성을 제대로 사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신이 얼마나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생각하는지를 깨닫는 것은 이성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비판적 사고 분야의 연구자인 리처드 폴과 린다 엘더는 ‘왜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하는가’에서 ‘어떤 사람들은 일단 특정 신념체계를 형성하면 나머지 인생 동안 그것을 방어하면서 산다. 그들의 견해에서 발전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마음의 지평이 확장되지도 않는다’라고 한 바 있다.
철학적 성찰은 그러한 방어를 넘어서서 마음의 지평을 넓히도록 하는 작업이다. 자신의 신념체계가 논리적으로 구성되었는가, 문제점은 없는가를 끊임없이 따져 물으면서 말이다.
유튜브 시대에 모두 확증편향을 걱정한다. 철학은 확증편향을 넘어서고 확증편향을 해체하려는 노력이다.>국민일보.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
출처 : 국민일보. [철학 쪽지], 확증편향·이중논리, 그리고 철학
‘우리는 날씨에 대해서 뭘 어쩔 수 없다, 날씨를 정확히 예측하는 일조차 영원한 좌절을 친구로 삼는다. ..
그러나 내 마음은 어둠 속에서도 햇살처럼 켜져야 하며, 가뭄 속에서도 그토록 좋아하는 빗소리가 울려 퍼지는 우산 아래의 원형극장을 만들어야 한다.
진정 모든 변화는 생각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생각의 눈은 삶에서 어디에 햇살이 깃들고 어디에 반가운 여름비가 오는지 찾아주어야 한다.'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 속에서, 늘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남을 탓하고 원망하는 일이 이제는 없어져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저는 결코 합리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그래도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적어도 아침에 한 말과 저녁에 하는 말이 일관성이 있게 하려고 노력하고 ‘내로남불’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철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아도 사람의 본분은 지키고 싶습니다. 최소한 부화뇌동(附和雷同)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철학이 날씨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사람은 좀 바꿔 놓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