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이고, 없애고, 떠넘기고… 가격 인상의 기술, 묘수인가 꼼수인가
[아무튼, 주말]
고물가 행진에 우후죽순 별별 ‘꼼수플레이션’ 해부
김은경 기자 입력 2023.05.27. 03:00 조선일보
“작은 빵 한 덩이를 살 수 있으면 사람들은 화내지 않을 것이다.” 중세 유럽 제빵사들은 밀 농사가 흉작일 때마다 빵 한 덩이를 평소보다 작게 구워 팔았다고 전해진다. 밀가루가 비싸졌다고 빵값을 지나치게 올려 받으면 가차 없이 주먹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곳간이 비면 민중은 들고일어선다. 제빵사들은 값을 올리는 대신, 티 나지 않을 정도로 빵 크기를 줄이거나 밀가루에 흙을 좀 섞는 식으로 비용을 맞췄다. 같은 돈을 받고 저급 빵을 파는 건 속임수이지만 묘수이기도 했다. 그러지 않으면 흉년마다 제빵사들은 얻어 터지고 폭동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상품 가격을 올리는 대신 양을 줄이는 전략은 지금도 성행한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이 수법은 영국의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이 ‘줄어들다(shrink)’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라는 단어를 만들면서 2000년대 들어서야 이름을 얻었다.
◇”줄어든 것 같은데… 기분 탓?” 아닙니다
물가가 고공 행진하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슈링크플레이션이 다시 유행이다.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식품 업계. 정가가 5480원인 동원F&B의 ‘통그릴비엔나’ 한 봉지는 320g에서 300g으로 줄었다. ‘호올스’ 사탕은 최근 판매가(1000원)를 그대로 두고 9개입(34g)에서 8개입(27.9g)으로 개수만 줄였다. 고깃집에서는 보통 180~200g씩 팔던 돼지고기 삼겹살 1인분이 최근 150~160g으로 ‘다이어트’를 했다. 항정살 같은 특수 부위는 120~130g. 서초구 어느 한우집은 작년 초까지 1인분이 130g이었지만 현재는 100g으로 줄었다.
포장지 끄트머리 작은 중량 표기보다 큼지막한 가격표가 더 잘 보이는 법. 기업이나 식당이 이런 수를 쓰는 것은 소비자 반발을 줄이면서 실제로 가격을 높이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소비자물가지수 등 물가 상승률을 측정하는 지표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지능범이다.
◇줄일 게 없다면? ‘서비스’ 없앤다
대(大)인플레이션 시대를 맞아 별별 전략이 쏟아진다. 길어지는 고물가에 소비자들이 가격에 민감해지자 대놓고 올리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줄일 것이 없는 업종은 기존에 공짜이던 서비스를 없애는 전략을 택한다. 경기 용인의 대형 마트는 5만원 이상 구입하면 근거리(3㎞ 반경) 집까지 장바구니를 배달해주던 서비스를 최근 폐지했다. 경남 창원의 키즈카페는 기존에 이용료 2만원과 보호자 입장료 7000원을 내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무료로 줬는데 올해부터 주지 않고 있다. 주부 김모(39)씨는 “대안이 없어서 매주 가긴 하지만 몇 천원에 마음이 상하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배보다 커진 배꼽
상품 가격은 그대로 두고 부대 비용을 인상하기도 한다. 월세는 놔두고 관리비를 큰 폭으로 올리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재계약 때 전·월세를 5% 이상 올리지 못하게 하는 법 규정을 피하기 위한 꼼수. 여기에 월세 30만원을 초과하는 계약을 신고해야 하는 ‘전월세신고제’가 2021년 도입되면서부터 더 확산했다. 급기야는 ‘월세 27만원, 관리비 35만원’ 식으로 배보다 배꼽이 큰 매물이 속출, 최근 정부가 나서 원룸·오피스텔 관리비가 10만원을 넘을 땐 세부 내역을 공개하도록 했다.
학원비도 각종 명목이 붙어 치솟는다. 서울 서초구의 워킹맘 A씨는 “초등학교 2학년 딸이 다니는 영어 학원의 셔틀 차량비가 이번 학기에 갑자기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올랐다”며 화를 냈다. 셔틀비와 온라인 프로그램비, 교재비 등이 수업료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서울시교육청 학원 담당자는 “수업료는 지역 교육지원청에 신고해야 하지만 차량비 같은 부대 비용은 임의이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올릴 수 있다”고 했다. 학부모 커뮤니티에는 “학원 입회비(입학금)를 내라는데 원래 내는 거냐” “가랑비에 옷 젖듯 학원비가 늘어난다”는 볼멘소리가 올라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어떻게든 가격 인상 효과를 보려는 갖가지 전략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라며 “기업이나 사업자는 단기적으로 이득을 보겠지만, 소비자의 불신과 경계심을 키워 장기적으로는 소비 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고 했다. 묘수와 꼼수는 한끗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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