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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글은
2021년 8월 22일 포스팅하였습니다.
"이미와 아직, 그리고 설마와 여전히"라는 카페의 글은
작금의 시국은 물론 종말론적인 교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국의 현실은 이미 적화 되었지만 아직 공산화되는 않았고
자유 대한민국이 설마 적화가 되겠느냐며 어리석은 백성은 여전히 부화뇌동하고 있습니다.
우파와 좌파의 극단적 대립과 갈등......
그 가운데 대부분의 개 돼지 국민은 복지부동하고 부화뇌동하며 전쟁보다 평화 타령에 젖어있습니다.
한반도의 전쟁은 불가항력이요,
모두가 원하는 평화는 평화타령을 한다고 종말론적인 시계가 뒤로 물러가지 않습니다.
이미와 아직은 종말론적인 신학의 깨어 있는 신앙이요,
설마와 여전히는 예레미야 시대 거짓 선지자와 제사장과 그 백성들의 평화타령입니다.
오늘의 시국에 투영된 종말론적인 신앙은
"이미와 아직, 그리고 설마와 여전히"라는 카페의 글이 되었습니다.
기획된 뉴스로 시국의 당면한 현실을 왜곡하고 날조하는 언론과 방송의 개 돼지들은
예레미야 시대 평화를 타령하였던 무지한 목자와 백성들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종말론적인 깨어있는 의식으로 달려갈 길을 달려간 성서의 인물은
구약의 에레미야 선지자와 신약의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종말론적인 이스라엘의 현장을 중계하였고
사도 바울은 종말론적인 예수의 하나님 나라, 통치에 온전한 믿음의 순종으로 복음의 전위가 되었습니다.
하나냐를 비롯한 거짓 선지자의 허탄한 묵시로 담았던 평화 타령은 오래가지 못하였고
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그들은 살지고 두루 다니는 수말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어찌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는
예레미야의 신탁은 급하고 강한 바람 처럼 임하였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보라 내가 한 나라를 원방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
곧 강하고 오랜 나라이라 그 방언을 네가 알지 못하며 그 말을 네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그 전통은 열린 묘실이요 그 사람들은 다 용사라
그들이 네 자녀들의 먹을 추수 곡물과 양식을 먹으며 네 양 떼와 소 떼를 먹으며
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으며 네가 의뢰하는 견고한 성들을 칼로 파멸하리라(렘5:15-17)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우리가 어찌 가만히 앉았으랴 모일지어다
우리가 견고한 성읍들로나 들어가서 거기서 멸망하자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멸하시며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우심이니라
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치심을 입을 때를 바라나 놀라움뿐이로다
그 말의 부르짖음이 단에서부터 들리고 그 준마들의 우는 소리에 온 땅이 진동하며
그들이 이르러 이 땅과 그 소유와 성읍과 그 중의 거민을 삼켰도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중에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를 물리라 하시도다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8:13-18)
예레미야의 탄식은
깨어있는 종말론적인 신앙의 절망적 탄식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끝내 이스라엘이 멸망하기를 기도하는 공의의 기도와
오직 자기 구원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의 심판과 갈등하였습니다.
이미와 아직의 종말론적으로 깨어있는 예레미야의 기도, 그 변천사는
종말론적인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집행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나로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주를 알지 못하는 열방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그들은 야곱을 씹어 삼켜 멸하고 그 거처를 황폐케 하였나이다(렘10:24-25)
아직 예레미야는 예레미야 자신과 이스라엘을 동일체로 여기고
이스라엘의 구원과 이방의 열방에게 주의 진노를 부으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거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행인같이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놀라 벙벙하는 자 같으시며 구원치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오히려 우리 중에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고 기도하였습니다.(렘14:7-10)
그러나 하나님은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렘14: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짓 선지자들은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 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고 평화 타령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예리미야에게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렘14:14-16)
그래도 예레미야는 아직의 희망을 품고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을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받기를 기다려도 놀람을 보나이다
여호와여 우리가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위를 욕되게 마옵소서
우리와 세우신 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열방의 허무한 것 중에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가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렘14:19-22)
예레미야는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회개의 기도를 하며
언약과 창조의 신앙으로 새롭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치라고 말씀하였습니다.(렘15:1)
결국 예레미야는 선지자의 신탁을 방해하며 핍박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를 원하는 공의의 기도를 하며 자신의 구원을 소원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컨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권고하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을 인하여 나로 멸망치 말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치욕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내가 기뻐하는 자의 회에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을 인하여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찜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렘15:15-15)
예레미야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며
놋성벽이 되게 하고 구원을 약속하였습니다.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저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속하리라(렘15:20-21)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신탁, 그 목자의 직분을 온전히 감당하며
재앙의 날, 구 팝박과 박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바른 신앙을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온전히 선포하며 끝없이 공의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 영화로우신 보좌여 원시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그들이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뇨
이제 임하게 할지어다 하나이다
나는 목자의 직분에서 물러가지 아니하고 주를 좇았사오며
재앙의 날도 내가 원치 아니하였음을 주께서 아시는 바라 내 입술에서 나온 것이 주의 목전에 있나이다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
나를 박해하는 자로 수욕을 당케 하시고 나로 수욕을 당케 마옵소서
그들로 놀라게 하시고 나로 놀라게 마시옵소서
재앙의 날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시며 배나 되는 멸망으로 그들을 멸하소서(렘17:12-18)
예레미야는 종말론적인 아직이라는 순간을.......
말씀의 선포와 기도를 병행하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 긴박한 줄다름을 계속하였습니다.
참으로 예레미야의 종말론적인 삶은
스릴과 스서펜스로 넘치는 드리마요, 대서사시였습니다.
아직에 깨어 있는 종말론적인 신앙의 예레미야는계속해서 긴장과 박진감 넘치는
말씀의 선포와 공의의기도와 자신의 구원을 탄원하였습니다.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시며 그 죄를 주의 목전에서 도말치 마시고 그들로 주의 앞에 넘어지게 하시되
주의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렘18:23)
참 선지자 예레미야와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대결은
예레미야서의 종말론적인 대미를 장식하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몸에 나무 멍에를 하고 다니면서 예언하였고
하나냐 선지자는 예레미야의 나무 멍에를 꺾었습니다.
하나냐는 여호와의 말씀이라면서
거짓 예언을 하였습니다.
내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이 곳에서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집 모든 기구를
두 해가 차기 전에 다시 이 곳으로 가져오게 하겠고
내가 또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는지라(렘28:3-4)
예레미야는 하나냐에게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 예언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집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 곳으로 다시 옮겨 오시기를 원하노라"고 하며
그러나 너는 이제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들으라
나와 너 이전 선지자들이 자고로 여러 나라와 큰 국가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렘28:7-9)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취하여 꺾고
모든 백성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두 해가 차기 전에
열방의 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고하였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 길을 갔습니다.
그 후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냐를 찾아가서
여호와의 신탁을 전하였습니다.
☞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를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를 만들었느니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신다 하라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으로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하는 말을 하였음이라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
선지자 하나냐가 그 해 칠 월에 죽었더라(렘28:13-17)
종말론적인 신탁의 대결은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요,
안전이 아니라 파괴요, 건강이 아니라 염병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종말론적인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며
여호와에 대한 신앙 고백을 하며 자신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의 더러운 것이 그의 옷깃에 묻어 있으나
그의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도록 낮아져도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애1:9)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그들에게 보응하사
그들에게 거만한 마음을 주시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소서
주께서 진노로 그들을 뒤쫓으사 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멸하소서(애3:64-66)
시온 산이 황폐하여 여우가 그 안에서 노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애5:18-22)
종말론적인 예레미야의 신탁과 기도에 깨어 있는 성도는
이미와 아직의 종말론적인 거울 앞에서 오직 주만 바라보고 달리면서 복음을 전하며 기도할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신탁에 깨어 잇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설마하엿던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그 성전이 불탔때까지
여전히 거짓 선지자와 제사장의 좀비가 되었습니다.
참선지자 예레미보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를 따랐던 유다아 예루살렘은
예레미야의 나무 멍에를 꺾은 대신 바벨론의 쇠멍에를 메었습니다.
설마의 워딩은 평화의 타령이요, 여전히 현세적 무속 신앙의 광란에 젖어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그 종말론적인 통치에 깨어있지 않는 우매한 영혼입니다.
설마는 여전히라는 현실의 안락과 그 타성에 젖어
오늘의 평화와 미래의 비전을 노래합니다.
언론과 국회와 검찰과 법원과 청와대.......
모두가 적화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설마와 여전히의 워딩에 잠자면 죽어도 죽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기획된 탄핵과 파면과 구속 재판의 시계는 이미 적화를 향하였고
한반도의 공산화를 위한 적색광풍의 무풍지대였습니다.
이미 적화되었지만 아직 공산화 되지 않았다는 각성된 애국 시민은
살아있는 아직의 그 순간을 예레미야처럼 종말론적인 목자의 직분을 온전히 수행하고
기도에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태극기 물결의 애국 시민 가운데 크리스챤이 많은 것은
종말론적인 신앙의 각성일 것입니다.
이미와 아직의 종말론적인 신앙은
현세적 무속신앙의 성공과 번영의 축복 타령하고 있을 떄가 아닙니다.
아직의 긴박한 순간을 깨어 있는 신앙으로 달려가면종말론적인 의의 열매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감을 얻을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종말론적인 시대를 살면서
누가 예레미야의 종말론적인 신탁과 기도하는 삶을 살며
누가 사도 바울 처럼 달려가는 종말론적인 복음을 가졌습니까?
하박국 선지자는 말씀을 판에 새겨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는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라라는 종말론적인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