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아버지는 6.25때 인민군이 강진을 점령하여 인민재판을 열어 반공 투사들을 마구 때려 죽일 때 동네 사람들을 골라내는 앞잡이였다. 노무현 아버지한테 찍히면 개울가나 논두렁에 설치된 인민재판장으로 끌려갔고 노무현 아버지가 돌로 때려죽이자!!! 고 소리 지르면 일제히 돌을 던져 죽였고 노무현 아버지는 뒤에서 돌을 안 던지는 사람을 인민군에게 밀고하여 죽도록 얻어맞게 하였다.
노무현이 4살되던 해, 인민군이 쫓겨가자 노무현 부모는 붙들리면 죽으니까 노무현을 데리고 경상남도 진영으로 도망갔다. 거기서도 신분 노출을 꺼려 김해로 이사가서 호적을 변조하여 죽은 듯이 살았다. 노무현은 김해에서 자라나 부산상고를 졸업할때까지 학교 친구들에게 조상 대대로 경남 토박이라고 감쪽같이 속였으나 노무현 아버지가 전라도 말을 쓰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여 슬슬 피하여 노무현은 친구도 없이 고독하게 자랐다.
노무현은 80년대 후반 부산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려고 YS를 찾아가 읍소하여 국회의원이 되었고 1990년 Y.S가 3당 합당을 했을 때 전라도 당에 붙었다. 자기가 키운넘에게 배신 당한 Y.S 는 93년 대통령에 당선되자 비서에게 노무현의 배경 조사를 지시하여 조사한 바 노무현이가 자기를 배신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고향이 전라도이기 때문이었다.
노무현 집안은 선조 대대로 전라남도 강진에서 수 백년동안 소작농, 머슴살이 등으로 전전한 전라남도 토백이었다. 노무현 부친은 6.25 당시 전라도가 인민군 점령하에 놓이자, 시뻘건 소작농들과 같이 괴뢰군에 부역했다. 노무현 아버지는 잘 사는 지주, 지역유지, 반공 우익인사들을 인민군에게 밀고하여 총살을 당하게 하거나 인민재판에 끌려가 돌에 맞아죽게 하여 수 많은 지역유지들이 학살 당하고 납치되었다.
1950년 9월, 전라도가 다시 국군의 손에 넘어가자 총살이나 맞아죽을 게 두려운 노씨 일가족은 새벽에 강진을 탈출, 소 구루마로 여수로 도주, 여수에서 부산행 여객선을 타고 이튿날 부산에 도착한다. 부산에서 친척의 조언으로 부산보다 땅값, 물가가 싸고 농사 일거리도 많고 사람 눈에 안 띄는 김해 평야인 진영에 정착한다.
그후 노무현은 30-40 여년간 변조한 호적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진영 토박이라 속였지만 아버지가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여 거짓임이 들통나 친구를 잃어버려 고독하게 살았고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난 노무현의 성격은 반 사회적, 반 국가적인 이상 성격을 띄게 되었다.
노무현의 과거를 더듬어 보면 그의 성격대로 거짓말 투성이다. 변호사시절 빈곤한 사람들에게 무료변론을 했다는 말도 거짓말이다. 무료 변론을 해 준다며 야금야금 돈을 받아먹었고 승소하면 승소금의 반을 준다는 약정서를 받아내어 큰 돈을 챙겼다.
6월 항쟁 때 노무현은 김일성 주체사상에 시뻘겋게 물든 운동권의 대부였다. 그는 시뻘건 노동자의 아버지였고 시뻘건 농민의 희망이었다. 미국놈 철수를 역설하는 연설, 주사파들의 무력 항쟁을 선동하는 연설, 총파업을 선동하는 연설을 들은 사람들이 수두룩한데도 오리발을 내민다. 그 게 자기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이다!!!
첫댓글 또 하나의 특보 군요
나무사랑님~안녕하세요...특보.....잘 읽었습니다.
풍문으로만 떠돌던 애기가 사실이군요 제 고향이 경남 김해 진영인데...
사실로 믿기질 않내요 슬픈일이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