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의 「기분의 탄생—관찰자」 감상 / 최형심, 임종명
기분의 탄생 ―관찰자
하 린
유치원에서 딸아이가 울면서 돌아옵니다 울음은 착합니다 누군가 엄마가 없다고 놀릴 때마다 아빠마저 없는 것보단 낫잖아 그렇게 소리치라고 차마 말해주지 못했습니다 한쪽만 있다는 건 불편한 것일까요 부끄러운 것일까요 사라지기 좋은 계절이란 걸 압니다 채팅하던 사람이 자살을 한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조문을 가고 싶은데 사는 곳을 모릅니다 나에게 말을 거는 종교 전파자를 가끔 만납니다 귀찮아할 때까지 경청합니다 인상도 좋고 눈도 선한 당신들 최선을 다합니다만 나의 걱정거리가 지천이고 지척인 이유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택시를 타면 미터기를 걱정합니다 라디오는 왜 기사가 원하는 주파수만 트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사는 도시는 오후 4시부터 정체라서 불안과 불온이 밀려옵니다 새가 나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날아갑니다 나무 위 빈 둥지가 불현듯 궁금합니다 알 대신 무엇이 웅크리고 있을까요 관찰과 관찰자의 차이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내 숨통을 조이는 역할을 타인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한다는 생각 딸아이는 자라면서 관계라는 말도 습득해갈 것입니다 대답이 뻔한 질문들을 다분히 나에게 던질 것입니다 당황하는 척을 하면서 감당해야 할 물정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해줘야 할 것입니다 ..................................................................................................................... 현대인과 “불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입니다. 그 어느 시대보다 더 풍요로운 시대, 과학의 발전으로 미지의 영역들이 하나 둘 신비를 벗었지만 여전히 인간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미래란 언제나 불투명한 것. 그렇기에 약간의 상상력만 있다며 얼마든지 “걱정거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내 숨통을 조이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나 “스스로”일지도 모릅니다. 삶이 수많은 우연과 불확실성으로 점철되어 있기에 인간은 불안을 “알”처럼 품은 채 위태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최형심 (시인)
사회적 약자는 울음을 달고 산다. 그들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울기 보다 외부의 따가운 질시와 눈총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다 갖지 못하고 "한쪽만 있"어서 불편할 수는 있지만 "부끄러운 것"은 아닌데도 사회는 그들이 부끄럽게 느끼게 만든다. 기분은 그렇게 탄생한다. 화자가 관찰자가 되어 주변을 관찰한다. "걱정거리가 지천이고/ 지척"인데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종교 전파자가 있다. 교통혼잡 시간에 미터기에 요금 올라가는 소리가 걱정인 승객의 마음은 아랑곳않고 자기가 원하는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택시기사도 있다. 다들 내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남의 형편은 헤아리지 않는다. 화자는 따지고 보니 "내 숨통을 조이는 역할을 타인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한다는 생각"에 미친다. "관찰과 관찰자의 차이를 알아"간다. 그 차이는 어린 딸아이가 자라면서 습득해갈 '관계'라는 말의 다른 이름이다. 화자는 언젠가 딸이 던질 "대답이 뻔한 질문들"에 대해서 "당황하는 척을 하면서" "거리낌 없이 말해줘"야겠다고 다짐한다. 임종명(블로거 '숲속의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