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0일 제 22대 총선 전까지 의료개혁을 완성시키겠다면서 급히 서둘러 시작된 의대 정원 증원 프로젝트가 총선이 끝나고 한달 보름이 지나지만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한해 정원 2천명 증원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갇혀 있고 의사들도 전면 백지화와 책임자 처벌만을 주장하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이제 정부의 입장과 의사들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도 구차하게 느껴집니다. 그들은 협상이나 타협을 평생 한 번도 안해본 사람들처럼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정말 철모르는 시절에도 양측의 갈등이 생기면 중재자가 나서고 조금씩 양보하면서 문제를 풀어온 것이 인생사입니다. 태어나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잘난 맛에 살아온 인물들이 서로 부딪히니 지금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부의 입장이나 의사들의 생각을 다시 꺼내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습니다. 양측 다 어디 먼 무인도에 옮겨놓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아플지 모르고 급한 병에 걸릴 수도 있으니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형편이 그냥 야속할 뿐입니다.
이제 의대 정원을 확정 발표할 시점이 도래했습니다. 대학 정원을 결정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오는 24일 대입 전형위원회를 개최하고 각 대학들이 제출한 2025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심의합니다. 한마디로 내년 대입 정원을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심의 결과는 오는 31일에 결정됩니다. 아마도 의대정원은 1509명이 늘어난 4567명으로 확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결정이 내려지면 공고가 되고 대입준비생들은 이에 맞춰 대학에 지원도 하고 대학들은 학생들을 모집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와 의사들의 대결 상황은 몇달째 제자리에 머물고 있습니다. 의사들과 의대교수들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집된 학생들이 제대로 의사교육을 받을 지 여간 걱정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몇학번이냐 너희들은 요상한 절차속에 입학한 별종 학번이다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지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너도 나도 의대지원에 나서고 대학생들 상당수도 학원에 몰려들어 재수 아닌 재수를 행하고 있습니다. 회사원들도 휴직계를 내고 의대 진학에 숟가락을 얹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속에 놓여 있습니다.
정말 한국의 의정 갈등은 한국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고 판단됩니다. 그 엘리트라는 판검사 의사들의 막강 파워를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행정고시를 통과한 엘리크 공무원들과 의사들의 한판 승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상황입니다. 한국을 지배하는 기득권의 대결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많이 배워 아는 것도 많을 것 같은 그 집단이지만 오로지 자신이 내세운 논리에 집착하는 정신병적 현상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의사들에게 갈등의 책임을 전가하고 의사들은 정부측이 전혀 합당하지 않은 억지 논리로 무리한 증원계획을 졸속으로 세웠다며 모든 책임은 정부측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구의 급감에다가 인공지능의 발달로 의사들의 영역이 대폭 축소될 것인데 그런 상황에 의사들의 수만 잔뜩 늘려놓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의사들의 주장에 일리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지방 소도시에 산부인과와 소아과 그리고 전국적으로 응급의료인력이 태부족이니 의사들의 정원을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정부주장이 근본적으로 틀린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문제점을 좀 더 심도있게 정부측과 의사측이 머리를 맞대로 진지하게 논의를 하는 그 과정이 너무도 짧았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충분하게 논의했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충분해 보이지 않습니다. 변호사 정원 확대에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투입됐습니까. 개혁이나 혁신은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닌데 너무 조급하게 나선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안된다는 논리로 나서서 성과를 거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저항하는 의사그룹과 의사협회 관계자를 다 형사처벌하고 면허취소하면 상당수 의사들이 포기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다고 의료개혁이 이뤄진 것입니까. 그냥 초가삼간 불태우고 빈대잡았다 즐거워하는 식과 다른 것이 없습니다.
이번 의정갈등을 보면서 참으로 이 나라 한국의 미래가 쉽지 않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문명도 발달하고 배운 것도 많고 갖가지 정보도 홍수를 이루는 이 시절에 지혜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 양식은 더욱 축소되고 있구나 그런 판단이 생깁니다. 수능시험에서 결코 테스트 할 수 없고 로스쿨이나 의대에서 결코 가르켜줄 수 없는 그 인간으로서의 소양은 갈수록 약해지는구나 느껴집니다.
이 나라 한국에서 풀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전세계적인 초저출산에 초고령화에 초갈등국가에 노령빈곤국에 자살률 세계 1위국 등등 해결하고 처리해야 할 수많은 난제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에 북중러와 한미일이라는 새로운 냉전구도의 최선봉에 서야하는 기막힌 정세를 소유하고 있는 이 어려운 나라의 앞날이 심히 걱정이 됩니다. 지금 이래라 저래라 훈수두는 고령층들은 조금 있으면 사라지고 이제 상대적으로 젊은 층들이 이 나라를 이끌텐데 바로 지금 이 의정갈등이 그 본보기가 될까 너무도 우려스럽습니다. 가진 층 그리고 엄청나게 많이 배웠다는 계층들이 풀어가는 방법속에 나라의 미래를 가늠해야 하지만 지금 보이는 장면은 너무도 짜증나고 국민들을 피곤하게 하는 일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의정갈등속에 한국의 미래가 너무도 리얼하게 보인다는 말이 그래서 나옵니다.
2024년 5월 22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