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행록1장33절] 상제께서 일진회가 발족되던 때부터 관을 버리시고 삿갓을 쓰고 다니시며 속옷을 검은 것으로 외의를 흰 것으로 지어 입으셨도다. “저 일진회가 검은 옷을 입었으니 나도 검은 옷을 입노라” 말씀하시고 문밖에 나오셔서 하늘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구름의 안이 검고 밖이 흰 것은 나를 모형한 것이니라” 하셨도다.
[행록2장23절] 상제께서는 일진회가 일어난 후부터 관을 버리시고 대삿갓을 쓰시더니 정읍에 가신 후부터 의관을 갖추셨도다.
....................................................
一進會 와 성사와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 당시 시대의 상황이 그러했고, 성사를 따르던 주요 종도들이 一進會 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참고)
진보회(進步會)와 일진회(一進會)Ⅰ - 대순회보 101호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37)
진보회(進步會)와 일진회(一進會)Ⅱ - 대순회보 102호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38)
(1) [행록1장33절]
상제께서 일진회가 발족되던 때부터 관을 버리시고 삿갓을 쓰고 다니시며 속옷을 검은 것으로 외의를 흰 것으로 지어 입으셨도다. “저 일진회가 검은 옷을 입었으니 나도 검은 옷을 입노라” 말씀하시고 문밖에 나오셔서 하늘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구름의 안이 검고 밖이 흰 것은 나를 모형한 것이니라” 하셨도다.
..................................................
흰 색과 검은 색은 아래 河圖洛書之圖 의 흰 색과 검은 색을 의미한다.....따라서, 성사의 설명에 의하면 구름의 안이 <무극(十)> 이고 구름의 밖이 <태극(一)> 이다... 성사의 속옷이 <무극(十)> 이고, 성사의 외의가 <태극(一)> 이다.....
(아래)
(참고)
[제생1장43절] 상제께서 전주 이 치안의 집에 「고견 원려 왈지(高見遠慮曰智)」의 글을 써 놓으셨도다.
智者 與天地同 有春夏秋冬之氣 每事 任意用之 謂之智慧勇力
大智 與天地同 有春夏秋冬之氣
其次 與日月同 有弦望晦朔之理
又其次 與鬼神同 有吉凶禍福之道
萬事起於陰 以布陽 先察陰晦 以觀陽明 每事先觀始發處
陰起事而陽明 陽起事而陰匿 要須先察陰陽 陰陽則水火而已
日用事物起居動靜 在於耳目口鼻聰明道理 耳屬水 目屬火 明白然後萬事可知
水生於火 火生於水 金生於木 木生於金 其用可知然後 方可謂神人也
陰殺陽生 陽殺陰生 生殺之道 在於陰陽 人可用陰陽然後 方可謂人生也
人爲陽 神爲陰 陰陽相合然後 有變化之道也
不測變化之術 都在於神明 感通神明然後 事其事則謂之大仁大義也
事有決斷然後 有變化之道也
春夏秋冬秋爲義 義則決斷也
六用三德 三德則天德地德人德也 統合謂之大德也
德義有生殺之權 生殺則陰陽 知此兩端而已
天用地用 人用之 調理綱紀 統制乾坤 此之謂造化手段也
理雖高 出於太極无極之表 不離乎日用事物之間
年月日時分刻輪廻 皆是元亨利貞天地之道也
天地之用 胞胎養生浴帶冠旺衰病死葬而已
養則收藏處 藏則出用處 觀其收藏出用之物 以致出也
人而用之之道 捨此而何以也
入而養中 出而形外 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自然心自開也
[공사3장39절] 상제께서 공사를 행하실 때 대체로 글을 쓰셨다가 불사르시거나 혹은 종도들에게 외워 두도록 하셨도다.
天下自己神古阜運回
天下陰陽神全州運回
天下通情神井邑運回
天下上下神泰仁運回
天下是非神淳昌運回
佛之形體仙之造化儒之凡節
道傳於夜天開於子 轍環天下虛靈
敎奉於晨地闢於丑 不信看我足知覺
德布於世人起於寅 腹中八十年神明
厥有四象包一極 九州運祖洛書中
道理不暮禽獸日 方位起萌草木風
開闢精神黑雲月 遍滿物華白雪松
男兒孰人善三才 河山不讓萬古鍾
龜馬一道金山下 幾千年間幾萬里
胞連胎運養世界 帶道日月旺聖靈
元亨利貞道日月 照人腸腑通明明
經之營之不意衰 大斛事老結大病
天地眷佑境至死 慢使兒孫餘福葬
面分雖舊心生新 只願急死速亡亡
虛面虛笑去來間 不吐心情見汝矣
歲月如流劍戟中 往劫忘在十年後
不知而知知不知 嚴霜寒雪大洪爐
“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爲天下者不顧家事
桀惡其時也湯善其時也天道敎桀於惡天道敎湯於善
桀之亡湯之興在伊尹”
“束手之地葛公謀計不能善事
瓦解之餘韓信兵仙亦無奈何”
我得長生飛太淸 衆星照我斬妖將
惡逆摧折邪魔驚 躡罡履斗濟九靈
天回地轉步七星 禹步相催登陽明
一氣混沌看我形 唵唵急急如律令
....................................
그러니까 성사께서는 一進會 를 통해서 <무극(十)> 과 <태극(一)> 의 관계를 설명하신 것이라 보면 된다......
一進(會) 이니 당연히 十 은 退 한다.....그러니까 <一進十退> 를 공식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2) <一進十退>
[공사3장41절] 상제께서 무신년에 “무내팔자 지기금지 원위대강(無奈八字至氣今至願爲大降)”의 글을 지으시니 이러하도다.
欲速不達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九年洪水七年大旱 千秋萬歲歲盡
佛仙儒一元數六十 三合爲吉凶度數
十二月二十六日再生身 ○○
또 무신년에 이런 글도 쓰셨도다.
一三五七九
二四六八十
成器局 塚墓天地神 基址天地神
運 靈臺四海泊 得體 得化 得明
....................................
이제 숫자를 서로 짝할 수 있다....
'一三五七九' 는 一 에서 九 로 나아가고(=進), ' 二四六八十' 은 十 에서 二 로 물러난다(=退).
이러면서 '進退' 의 짝이 생긴다....
一 進 과 十 退 가 짝이었듯이 .....
八 退 와 三 進 이 짝이 되고,
五 進 과 六 退 가 짝이 되고,
四 退 와 七 進 이 짝이 되고,
九 進 가 二 退 가 짝이 된다........
'一三五七九' 의 中 은 五 인데 이것이 <황극> 이고, ' 二四六八十' 의 中 은 六 인데 이것이 <후비> 이다.....
구궁도의 中宮 에서 五 의 뱃속에 六 을 품고 있을 때를 <황극후비(=복중80년神明)> 라고 성사께서는 이름붙였다.....
五 의 뱃속에서 六 이 나오면 이 상태를 일컬어 <天子浮海上> 이라 한다.....
(참고)
[공사1장17절] 김 광찬ㆍ신 원일ㆍ정 성백ㆍ김 선경ㆍ김 보경ㆍ김 갑칠ㆍ김 봉규 등 여러 종도들이 二월 그믐에 동곡에 모였느니라. 다음 달 이튿날 상제께서 공사를 보시기 위하여 서울로 떠나시면서, “전함은 순창(淳昌)으로 회항하리니 형렬은 지방을 잘 지키라”고 이르시고 “각기 자기의 소원을 종이에 기록하라”고 모여 있는 종도들에게 명하시니 그들이 소원을 종이에 적어 상제께 바치니 상제께서 그 종이에 안경을 싸시고 남기ㆍ갑칠ㆍ성백ㆍ병선ㆍ광찬을 데리고 군항(群港)으로 가서 기선을 타기로 하시고 남은 사람은 대전(大田)에서 기차를 타라고 이르신 후에 이것을 수륙병진이라고 이르셨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원일에게 “너는 입경하는 날로 먼저 종이에 천자 부해상(天子浮海上)이라고 정서하여 남대문에 붙이라”고 명하셨도다. 원일은 곧 여러 사람과 함께 대전으로 떠났도다.
(3) [행록2장23절]
[행록2장23절] 상제께서는 일진회가 일어난 후부터 관을 버리시고 대삿갓을 쓰시더니 정읍에 가신 후부터 의관을 갖추셨도다.
....................................................
<대삿갓> 이 상징하는 것은 客 이다....
<의관을 갖추셨도다.> 의 표현은 집으로 入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러니까 井(읍) 이 집인 셈이다.......
(참고)
57. 손(巽)
【傳】 巽은 序卦에 旅而无所容이라 故受之以巽하니 巽者는 入也라 하니라 覊旅親寡에 非巽順이면 何所取容이리오 苟能巽順이면 雖旅困之中이라도 何往而不能入이리오 巽所以次旅也라 爲卦 一陰이 在二陽之下하여 巽順於陽하니 所以爲巽也라.
손괘(巽卦)는 〈서괘전(序卦傳)〉에 “나그네가 되어 용납될 곳이 없으므로 손괘(巽卦)로 받았으니, 손(巽)은 들어감이다.” 하였다. 나그네가 되어 친한 사람이 적을 때에 손순(巽順)이 아니면 어찌 용납될 수 있겠는가. 만일 손순(巽順)하면 비록 나그네로 곤궁한 가운데라도 어디를 간들 들어가지 못하겠는가. 손괘(巽卦)가 이 때문에 여괘(旅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괘(卦)됨이 하나의 음(陰)이 두 양(陽)의 아래에 있어 양(陽)에게 손순(巽順)하니, 손(巽)이 되는 것이다.
............................
客=旅(=나그네) 이다....
<客=旅(=나그네)> 는 '巽順' 해야 곤궁함을 극복할 수 있다.....
(참고)
[행록3장37절] 정읍(井邑) 사람 차 경석(車京石)이 정미년 五월에 처음으로 상제를 배알하였느니라. 이때 상제께서는 용암리(龍岩里) 수침막(水砧幕)에 머물고 계셨도다. 그는 원래 동학 신도였으나 일진회 전주 총대를 지낸 사람이라. 그는 전주 재무관과의 소송관계로 정읍에서 전주로 가던 길에 점심을 먹으려고 용암리 주막에 들렀는데 이때 상제께서도 김 자현(金自賢)과 몇 종도를 데리고 이 주막에 들르셨도다. 경석은 상제의 의표와 언어 동작을 살피고 그 비범하심을 알고 예를 갖추어 말씀을 청하는지라. 상제께서 그를 태연히 대하시니 그는 여쭈어 말하기를 “무슨 업을 행하시나이까” 하니 상제께서 웃으시면서 “의술을 행하노라”고 말씀을 건네시고 술을 드셨도다. 그러시다가 상제께서 계탕 한 그릇을 그에게 권하시니 그가 받은 뒤에 그릇에 벌 한 마리가 빠져 죽거늘 경석이 수저를 멈추고 혹 상서롭지 못한 일이 아닌가 망설이고 있는 것을 상제께서 보시고 “벌은 규모 있는 벌레니라”고 말씀하시니 그가 속으로 감복하는도다. 그는 상제께 서류를 꺼내어 보이면서 그 곡절을 여쭙고 “세 사람이 모이면 관장의 송사를 처결한다 하온데 선생님께서 판단하여 주소서” 하고 상제를 시험코자 답을 청하는지라.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의 곡직은 여하간에 원래 대인의 일이 아니라. 남자가 마땅히 활인지기를 찾을지언정 어찌 살기를 띠리오” 하시니 경석은 더욱 위대하심에 경복하여 곧 소송 서류를 불사르고 사사하기를 청하면서 머물고 계시는 곳을 묻는도다. 이에 상제께서 “나는 동역객 서역객 천지 무가객(東亦客西亦客天地無家客)이다”고 하시니라. 경석은 머물고 계시는 곳을 모르고 헤어지면 다시 배알할 기회가 없을 것을 짐작하고 날이 저물어 상제와 그 일행이 떠나는 것을 기다려 그 뒤를 쫓으니라. 닿은 곳이 용암리(龍岩里) 물방아집이니라. 경석은 그 식사와 범절이 너무 조촐하여 한시도 견디기 어려워하였도다.
(덧붙이는 글)
마도로스 박은 신선봉안식 축사를 모두 50번 했는데, 마지막 50번째 축사는 " 제 57회 신선봉안식 스승님 축사 " 로 되어 있다....장소는 대전 KT인재개별원> 이었으며, 때는 <2019년(천기149년) 기해년 6월 23일> 로 되어 있다.......

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6ycPZ_fclC8
P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