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속살을 한 입 크게 베어 물자 달콤한 과육이 입속에서 뭉그러진다. 수박에서는 여름의 맛이 난다. 주르륵, 과즙이 손가락을 타고 흐른다. 사각 베어 문 여름이 단물이 되어 목을 타고 내려간다. 나는 과일 중 수박을 가장 좋아한다. 수박을 먹을 적마다 무더웠던 여름의 아련하고 달콤한 기억들이 깨어난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엄마는 무슨 자신감에서였는지 빚을 잔뜩 지고 밭을 한 뙈기 샀다. 그러고는 돈은 되지만 손이 많이 가는 고추와 담배를 심었다. 두 작물의 수확 시기는 한여름이었다. 땡볕이든, 장맛비 내리는 날이 든 쉴 새 없이 고추를 따고 담뱃잎을 꺾어야 했다. 수고한 만큼 소득은 올라갔다. 억척을 부리던 엄마가 결국 허리병이 났다. 이듬해 밭에는 수박을 심었다. 그나마 수박은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작물이라 해서 모종을 사다 심었다. 엄마는 아직 요양 중이었지만 밭을 놀릴 수는 없었나 보았다. 넝쿨 속에 숨어 살이 오르기 시작한 과실은 비가 한 번 내리고 나면 부쩍 몸집을 늘렸다. 나는 숨바꼭질을 하듯 잎을 들쳐 수박덩이를 찾았다. 엄마가 넝쿨 줄기를 밟지 말라고 주의를 줬지만 천둥벌거숭이였던 나는 수박밭을 마구 짓밟으며 뛰어다녔다. 수박이 익어갈수록 엄마는 초조해했다. 판로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영업 트럭을 하루 빌려 수확한 수박을 가득 싣고 서울의 경매시장으로 올라갔다. 결과는 참혹했다. 헐값에 수박을 넘기고 온 엄마가 아픈 몸을 이끌고 농작물 직판장을 찾아다녔다. 그 와중에도 수박은 계속 익어갔다. 자연의 생육은 인간이 막을 수 없는 결과였다. 급기야 국도변에 천막을 치고 수박 노점을 차렸다. 이 또한 참패였다. 엄마는 재고가 된 수박을 이웃들에게 나눠줬다. 우리 동네, 아랫동네 할 것 없이 우리 밭에서 난 수박으로 여름내 달콤한 잔치가 벌어졌다. 엄마의 시름과는 상관없이 나는 매일 수박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판로를 찾지 못한 엄마가 결국 농사일에서 손을 놓아 버렸다. 수확 시기를 놓친 수박은 밭에서 푹푹 썩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속도 문드러졌다. 해질 무렵이면 동네 곳곳으로 수박 썩는 냄새가 퍼졌다. 마을 사람들은 수박을 얻어먹을 적에는 덕분에 포식한다, 맛있다 칭송하더니 돌연 수박밭을 빨리 어찌 해 보라고 아우성이였다. 엄마는 기계쟁이를 불러 수박밭을 모두 갈아엎었다. 이래저래 농사지어서 남은 것은 빚이었다. 우리 밭은 금산 사람에게 인삼밭으로 도지를 주었다. 열여덟 살 때부터 나는 아르바이트로 안마를 했다. 당시 마사지 숍은 새로 오픈한 온천 스파였다. 대중탕은 물론 수영장과 헬스 시설까지 갖춘 커다란 규모의 가게였다. 마사지 숍은 2층이었고 같은 층에 공용 편의 시설들이 입점해 있었다. 나는 주말 오후에 출근해 새벽 3시까지 근무했다. 일한 만큼 아르바이트비를 받은 터라 손님이 많은 주말에는 꽤 짭짤하게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스무 살 정도 많았다. 동료들끼리의 분위기는 화목한 편이었다. 사장님은 내게 여름방학 내내 휴가를 간 안마사들 대신 근무를 해달라 부탁했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집엔 아직 땅을 샀을 때 진 빚이 남아 있었다. 매일 아르바이트비를 받으면 근처 은행에 가서 저축을 했다. 엄마는 계집애가 바람이 났나, 방학인데 왜 고향집에 내려오지 않느냐고 야단이었다. 나는 목돈을 모아 건네며 엄마를 깜짝 놀래키고 싶었다. 짧은 기간에 고정적으로 오는 손님도 생겼다. 고급 한식집을 운영하는 아주머니였는데 어린애가 일찍 철들었다면서 음식을 포장해다가 주기도 하고, 안마를 받고 나면 아이스크림 사먹으라며 팁을 쥐어주기도 했다. 일은 고됐지만 하루하루가 뿌듯했다. 다른 상가의 상인 아주머니들과도 친분이 생겼다. 스낵코너에서 식혜를 얻어먹고 어깨를 좀 주물러 드렸다. 그게 소문났는지 내가 혼자 마사지 숍을 지키고 있으면 아주머니들이 먹을거리를 사와서 팔이나 다리를 좀 만져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꼭 먹을 것을 받아서가 아니라 나이 든 아주머니들이 고생하신다는 생각에 열심히 몸을 풀어드렸다. 이런 내 행동을 사장님은 탐탁해하지 않아 했다. 청소하는 이모들은 수시로 마사지 숍을 들여다봤다. 혹시 내가 놀고 있으면 마사지를 부탁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고된 노동이 안쓰러웠다. 그날은 여름휴가를 갔던 사장님이 복귀한 날이었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청소 이모들은 주인이 가게를 지키고 있자 눈치만 살피고 들어오지 못했다. 나는 양치질을 하러 화장실로 향했다. 양치질을 하며 변기칸에 들어갔다. 곧이어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화장실로 몰려들어 왔다. 익숙한 목소리들이었다. 내게 몇 번이나 공짜 안마를 받았던 이모 같고, 엄마 같은 이들이었다. "늙은 장님이 딱 지키고 있으니까 어린 장님한테 주물러 달라고 말을 못하겠네. 좋은 날 다 끝나 버렸어." 사장님은 맹학교 선배로 전맹이었다. "그런데 어린 장님도 나중에는 완전히 눈이 멀려나? 사람을 잘 못 알아보는 거 같은데 손님인 척 누워 있다가 안마받고 도망쳐도 못 잡을 거 아니야. 그래 볼까?" 난 입에 거품을 잔뜩 물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얼마나 보이나 슬쩍 물어봐야지." 그들의 조롱이 한동안 계속됐다. 분노로 열이 오르고 폭발할 것 같았다. 마음같아서는 뛰어나가 악다구니를 치고 싶었는데 다리가 꼼짝하지 않았다. 삼류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일을 내가 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열이 올랐던 얼굴이 차차 식으면서 허탈한 체념이 가슴속에 들어찼다. 나는 밖이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잠잠해지자 물고 있던 거품을 변기에 뱉고 레버를 내렸다. 그러고 밖으로 나와 세면대로 향했다. 세면대 앞에는 청소 아주머니 한 명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게 무어라 이야기했지만 귀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입을 헹구고 밖으로 나왔다. 내지르지 못한 울분이 가슴속에서 넘칠 듯 찰랑댔다. 나는 사장님에게 방금 전의 일을 일렀다. 사장님은 그러게 왜 공짜 안마를 해줬냐며 나무랐다. 되레 나를 야단치는 사장님도 미웠다. 구석에 틀어박혀 분한 마음을 시근대고 있을 때, 내 단골이 된 한식집 아주머니가 커다란 수박 한 통을 들고 왔다. 어두운 표정으로 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그녀가 연유를 물었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사장님이 나서서 내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여사님, 우리 막내 수박 한쪽 크게 잘라서 줘요. 속상한 거 몽땅 내려가 버리게." 나는 사장님이 나만큼이나 속상해하고 있단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나는 아주머니가 잘라준 수박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달고 시원했다. 가까스로 참고 있던 눈물이 수박 위로 뚝뚝 떨어졌다. 계속 수박을 베어 먹었다. 수박에서 짭짤한 인생의 맛이 났다. 글 조승리(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
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다녀가신 고운 흔적
주셔서 감사합니다 ~
편안하고 여유로운
오후시간보내세요
동트는아침 님 !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좋은 글 고맙습니다..
행복한 불 금 보내시고..
커피 한 잔의 여유로운 주말 휴일 보내세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