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몇년 동안의 에픽하이(Epik High)는 음악적으로 하강곡선을 그리는 중이었다. 2017년에 발표된 아홉 번째 정규 앨범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은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서정성을 강조한 프로덕션과 삶과 사랑에 관한 성찰을 풀어내는 가사로 대표되는 그룹 특유의 스타일은 감흥과 완성도가 매우 낮아졌다. 장르의 전형성을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해오던 그들이 어느새 과거의 흥행공식에만 기댄 인상이 강했다. 더블 타이틀곡이었던 “연애소설”과 “빈차”는 이 같은 안이함을 대변하는 트랙들이었다.
이후 약 1년 반 만에 발표한 컨셉트 EP [sleepless in __________]도 아쉽지만,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번엔 “노땡큐”처럼 힙합 그룹임을 증명(?)하는 트랙을 억지로 끼워 넣지 않은 것이다. 더불어 ‘불면증’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일상의 소소한 단면들을 감성적인 언어로 풀어냈다. 마치 2008년에 발표했던 소품집 [LOVESCREAM]이 떠오르는 구성의 작품이다.
우선 보컬 피처링에 기대어 풀어낸 곡들은 자기복제에 머무른다. 특히, 초반에 위치한 “In Seoul”과 “술이 달다”는 대표적이다. 각 트랙에 참여한 선우정아와 크러쉬(Crush) 모두 개성이 강한 보컬들이지만, 덩달아 개성이 희석되었다. 그나마 “No Different”에서의 유나(YUNA)가 제역할을 했지만, 본인의 앨범에서 보여준 걸 생각하면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
가사와 랩 퍼포먼스 역시 전체적으로 무미건조하고 평이하게 흘러갈 뿐이다. 주목할만한 순간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나마 “새벽에”에서 미쓰라의 퍼포먼스와 ‘매순간 너의 발등에 불 떨어지는 건 천장이 불붙은 걸 뜻함’과 같은 라인 정도만 기억에 남는다.
매번 번뜩이는 퍼포먼스로 하이라이트를 가져가던 타블로는 본작에서 좀처럼 활약하지 못한 채, 딱딱한 톤과 평이한 라임으로 일관한다. “술이 달다” 같은 곡에서는 지나치게 비장해서 실소를 자아낼 정도다.
한국대중음악 씬에서 에픽하이의 커리어는 분명 상징적이다. 무려 16년 동안이나 인기를 유지해오고, 여전히 앨범을 발표하며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은 적어도 국내에서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아티스트를 가장 빛나게 하는 건 작품의 완성도다.
그런 의미에서 [sleepless in __________]는 매너리즘에 빠진 에픽하이 음악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 히트곡의 자기복제 트랙들 탓에 굳이 본작을 들을 필요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차라리 완성도에 편차가 있었을지언정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던 에픽하이가 그리워진다.
첫댓글 이즘에 나온 평이랑 비슷하네요
근데 이게 정규는 아니라 10집은 아님
아 그렇네요 그럼 신보로 수정할께요
9집은 타이틀곡만 별로 였음
저도 9집은 타이틀보다 수록곡이 더 좋더라구요 특히 어른 즈음에라는 곡은 아직도 가끔 들어요
비슷한 노래들의 연속
지우고 남기다보니 두곡밖에 안남은듯
글에 나와있는 평가랑 님 말처럼 자기복제가 심해서 저도 시간이 지나면 잘 안 듣는데 그래도 예전에 없던 아재감성??이 추가된 노래는 종종 찾아 듣게 되더라구요
딱 첨 듣자마자 아 에픽이네 싶을정도로 자기복제 느낌심하긴했지만 그래도 에픽의 저런 감성의 향수가 있어서 그런가 반가웠음ㅋㅋㅋ 슬립리스인서울이랑 아웃트로? 많이들음
아직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네
4집 때까진 역대급을 갱신했는데
내가 에픽하이를 좋아해서 그런가 다 좋았는데
예전 에픽하이를 좋아해서 자가복제라 칭할지라도 반가웠음
사실 Pieces-One, Map the soul 이후로는 그 이전 것들의 반복이긴 했죠 워낙 에픽하이의 색을 좋아해서 자주 듣긴 하지만... 조금 인색한 평가도 이해는 됩니다
난 9집 좋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