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불새’가 요즘 단연 인기다. 시청률 1위까지 올랐다. 시청률 장사를 너무나 잘할 수 있는 요소를 골고루 갖췄기 때문이다. ‘불새’는 어린이를 비롯한 젊은 세대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팬터지적 캐릭터에서부터 예전 신파극과 오늘날의 멜로물에서 단골 소재인 원수 집안끼리의 자식들 사랑까지 말이다.
대중문화가 균질화되고 획일화 돼 차별성이 거의 없다는 일부 학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고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의 폭풍아래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이분법이 모호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일부는 엘리트주의적 고급문화와 구분 지으며 대중문화에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제 대중문화는 삶의 지형을 형성하고 생활 그 자체가 되고 있다. 그러면 대중문화는, 그 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드라마는 최소한 오락 이상의 의미를 담보해야 한다. 드라마의 지평을 여는 하나의 진일보하는 요소나 캐릭터, 아니면 플롯, 드라마투르기 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불새’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이장수PD가 장시간의 한국 인기 드라마에 대한 연구 끝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 요소를 총집결시킨 것이 ‘천국의 계단’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드라마의 병폐를 종합 전시해 놓은 드라마의 지옥의 계단이었다.
그렇다면 ‘불새’는? 아마 한국 드라마를 최소한 병들게 한 사조(死鳥)라고 인식한다. ‘불새’ 역시 그 동안 드라마에서 시청률이 잘 나올 수 있는 공식의 확대재생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니 더 심화시켰다.
‘불새’는 요즘 최대 히트 상품이며 드라마의 견고한 공식으로 자리잡은 겹삼각 관계를 기본 축으로 뻔한 멜로 이야기에 팬터지적 요소를 가미해 드라마를 전개하고 있다. 우선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 요인으로 겹삼각 관계와 젊은이들의 눈을 휘어잡는 캐릭터를 보자.
이서진-이은주-에릭을 축으로 하는 삼각관계와 이은주-이서진-정혜영을 축으로 하는 삼각관계를 또 하나의 축으로 전개한다. 이 두 개의 삼각관계 사이를 오가며 갈등을 시청자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극대화하고 있으며 갈등의 증폭에는 개연성도 없어 보인다. 이중에서 이서진을 놓고 벌어지는 가난하지만 심성 착한 이은주와 부자지만 극단적 히스테리 증세를 보이며 상상도 못할 악행을 저지르는 정혜영의 선악의 대결은 이제 진부하다 못해 진절머리 나는 구도이다. ‘천국의 계단’에서 최지우와 김태희 구도의 재탕이다.
캐릭터 역시 여성들이 특히 좋아할 남자 주인공을 전진 배치하는 것도 인기공식에 충실히 따른 점. 근래 들어 남자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조건과 사랑의 마음까지 갖춘 여성 시청자들의 팬터지적 욕망을 충족시켜줄 인물로 전진배치하고 있는데 ‘불새’는 한치의 어김없이 이 방식으로 남자 주인공을 설정했다.
가난하게 성장했지만 실력으로 성공을 이루고 거기에 사랑의 진정성까지 깨닫는 이서진과 재벌 2세이면서도 이혼녀와 전남편의 아이 유산 사실조차 사랑으로 감싸안는 심성까지 갖춘 에릭은 어느 모로 보나 여성들의 사랑의 이상적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둘을 떠올리면 ‘천국의 계단’에서 모든 것을 갖췄으면서 첫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권상우와 가난하지만 자신의 목숨까지 던져가며 순수한 사랑을 지키는 신현준이 바로 연상된다.
여기에 중국의 무협지에서 툭하면 등장하는 원수 집안끼리의 자식들의 사랑까지 등장한다. 에릭의 아버지 박근형은 에릭이 사랑하는 아버지 한인수를 죽인 원수다. 이 대목에 이르면 ‘불새’의 공력에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여성들의 사랑이 남성에 의해 완결되는 수동적인 여성상의 상투적인 제시와 그야말로 안하무인의 이은주가 갑자기 착한 여성으로의 돌변하는 우습지 않는 캐릭터의 성격 변화 등 이 드라마의 폐해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드라마는 픽션이다. 하지만 그럴듯한 현실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줘야 하고 오락 너머의 삶의 영향을 미치는 긍정성이 있어야 함에도 ‘불새’는 그러치 못했다. 그리고 드라마의 지평을 여는 요소가 하나도 없다.
물론 높이 평가한다. 이러한 뻔한 스토리와 캐릭터 그리고, 진부한 구조로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는 것은 정말 제작진의 훌륭한 기능이자 자질이다. 자극적이고 한번 먹으면 또 먹게 하는 일회용 패스트푸드가 사람들의 육체 건강을 해친다는 보고서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불새’는 어쩌면 정신 건강을 해치는 드라마의 패스트푸드 같다. 그리고 드라마의 발전을 가로막는 사조(死鳥)가 브라운관을 날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