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 이병연
외국 가는 일이 생소하던 오래전
동생이 유학길에 올라 공항에서 사라져 갈 때
눈가가 촉촉해졌다, 다시 볼 수 있을까?
잠시 머물던 면천을 떠나려고 차에 오르는 순간
때아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시 올 수 있을까?
다시라는 말은 슬픈 올가미
하늘에 떠다니는 무심한 뭉게구름
한없이 올려다보는 까닭
-- 시집 『바위를 낚다』 (근간)
* 이병연 시인
공주 출생, 공주사대 국어교육과 졸업, 공주대 문학석사,
2016년 계간지 『시세계』 등단,
시집 『꽃이 보이는 날』, 『적막은 새로운 길을 낸다』, 『바위를 낚다』
2021년 한국창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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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국인들이 우리 한국어를 얼마나 잘 알고, 우리 한국어를 얼마나 잘 구사할까를 생각해보다가
나는 그만 아찔한 절망감과 좌절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국어란 우리 한국인들의 생명이자 실핏줄이며, 삼천리 금수강산처럼 아름다고 풍요로운 삶의 텃밭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모국어란 문전옥답이고, 양식이며, 물이고, 공기인데, 왜냐하면 우리 한국인들은 모국어로 말하고 모국어로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의 깊이} 저자이자 ‘낙천주의 사상가’이지만, 그러나 내가 구사할 수 있는 한국어의 수준은
나의 앎의 깊이와 그 한계에 갇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병연 시인의 [다시]라는 시를 읽다가 나는 ‘다시’라는 말을 백과사전에서 찾아 보았다.
첫 번째는 어떤 일이나 행동이 그쳤다가 다시 시작되는 것을 말하고,
두 번째는 ‘그는 다시 무겁게 말을 이었다’처럼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 새롭게 말하는 것을 뜻한다.
세 번째는 ‘그는 그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라는 말처럼 무한히 반복 연습하는 것을 뜻하고,
네 번째는 ‘봄은 왔지만, 남북통일의 봄은 오지 않았다’라는 말처럼 어떤 꿈이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말한다.
다섯 번째는 ‘이것 이외에는 더 좋은 것은 다시는 없다’라는 말처럼 단정적인 확신의 말을 뜻하고,
여섯 번째는 ‘며칠 후에 다시 만나자’라는 말처럼 어떤 만남의 약속을 뜻한다.
일곱 번째는 ‘오래오래 참고 견디면 다시 기회가 올 것이다’라는 말처럼 재도약의 발판이 마련되는 것을 뜻하고,
여덟 번째는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라는 말처럼,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한국인들이 맨날천날 눈을 뜨고 일어나면 수없이 말을 하고 반복하는 ‘다시’라는 말의 뜻도
이처럼 무궁무진한데, 그밖의 다른 모국어인 한국어를 어떻게 다 알고 구사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한국어의 무한한 보고인 대한민국, 한국어의 풀과 숲, 한국어의 강과 호수, 한국어의 산과 바다,
한국어의 새와 짐승들----, 한국어는 백과사전에 속에 있고, 한국어는 우리들의 말과 행동 속에 있다.
어느 누구도 모든 한국어를 제대로 알고 다 구사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한국어 속에서만
더욱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며,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되,
우리들의 한국어를 더욱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가꾸어 나갈 역사적 사명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병연 시인의 [다시]는 “다시라는 말”의 “슬픈 올가미”에 걸려 있고,
그것은 “하늘에 떠다니는 무심한 뭉게구름”처럼 두 번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
“외국 가는 일이 생소하던 오래전// 동생이 유학길에 올라 공항에서 사라져 갈 때/ 눈가가 촉촉해졌다,
다시 볼 수 있을까?”의 ‘다시’는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이별불안’과 관련이 있고,
“잠시 머물던 면천을 떠나려고 차에 오르는 순간/ 때아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시 올 수 있을까?”의 ‘다시’는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라는 안타까움과 관련이 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모든 자연의 법칙이지만,
그러나 이 인연의 끈이 끊어지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을 것이다.
이별에는 원수같은 이별도 있고 아무렇지도 않고 그저 잠시 스쳐가는 이별도 있지만,
그러나 너무나도 안타깝고 아쉬운 이별과 너무나도 소중하고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의 이별은
그 주체자에게 그토록 엄청난 상처와 슬픔을 안겨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병연 시인의 [다시]는 ‘다시는 말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이별불안과 다시는 그가 머물렀던 ‘면천’의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안타까움의 사이에서, 그러나 그 덧없음과 허무함을 초월하여 “다시라는 말은
슬픈 올가미”라는 시구에서처럼 천하제일의 한국어를 탄생시킨다.
올가미란 덫이며, 어떤 짐승을 잡거나 다른 사람을 함정에 빠뜨릴 때 사용되는 도구이지만,
그러나 이병연 시인의 올가미는 그 올가미가 올가미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인연의 끈’이 끊어지는 슬픈 도구를 뜻한다.
우리 인간들은 사회적 동물이며, 인연이라는 올가미에 구속되어 있고,
이 올가미가 끊어지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이별과 영원한 죽음을 죽어가게 된다.
모든 생명체의 의지는 삶의 의지이며, 이 삶의 의지에 반하는 그 모든 것은 슬픔의 대상이 된다.
자기 자신의 존재의 근거를 확보하고 삶의 의지에 반하는 그 모든 것과 그토록 처절하게 싸우고
피비린내를 풍겨도 보았지만, 그러나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다시’라는 올가미도 어쩔 수가 없다.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없는 슬픔, 그리운 고향산천과 정든 사람들과 영원히 헤어져야 하는 슬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딸들을 두고 영원히 이 세상을 떠나가야 하는 슬픔 등----.
다시는 너무나도 힘이 없고 무기력한 존재이며, ‘다시’라는 말처럼 ‘슬픈 올가미’도 없다.
‘다시’는 한국어이며, 올가미이고, 하늘에 떠다니는 뭉게구름처럼, 덧없고 허무하다.
이병연 시인의 [다시]는 인간 존재론이자 사회학이고, ‘다시’는 인간 심리학이자 언어학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다시’라는 올가미에 걸린 슬픈 존재이지만, 그러나 이병연 시인의 [다시]라는 시는
우리 한국어와 함께 영원할 것이다.
“다시라는 말은 슬픈 올가미”----. 내가 읽은 가장 아름다운 한국어 중의 하나이자,
내가 이 ‘명시감상--사상의 꽃’을 쓰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가 있다.
모든 시인들은 하늘을 감동시킬 줄을 알아야 한다.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을 때만이 가장 아름다운 한국어로 만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 반경환 (평론가) 명시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