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하던 90년대 초반의 이야기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 여의도는 직장인이 많아 식당끼리 경쟁이 아주 치열했다. 건물마다 지하에 '식당가'라고 불리는 공간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먹는 게 남는 거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잘 차린 밥 한 끼에 거는 기대가 충만했다. 없이 살던 한국이 '88 서울 올림픽'을 치르며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뤘고, 사무직 직장인들도 '와이셔츠 부대' '산업 전사'쯤으로 여겨질 만큼 무섭게 일했다. 주 6일 근무에 연차는 아주 적어 늘 과로 상태였다. 그러니 밥이라도 잘 챙겨 먹자는 인식이 만연할 수밖에 없었달까.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생(生)삼겹살이나 생등심 문화도 그때 퍼져 나갔다. 한국인은 본디 절기 감각이 아주 예민하다. 24절기를 따지며 살던 농경 국가의 유전자가 몸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초복이 다가오면 이미 사무실에선 복달임 같은 말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흥미로운 건 요즘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평양냉면은 인기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평양냉면의 유행은 인터넷의 산물로 볼 수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 블로거들 사이에서 서울의 식문화를 주도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때 여름이면 장안의 유명 냉면집 순례가 미식가의 의무 정도로 번져 나간 것이다. 하여튼 그 시절 삼복 기간 식당가는 여름을 잘 넘기려는 직장인들로 미어 터졌다. 특히 여의도는 콩국숫집과 삼계탕집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후임들은 열한 시 반이면 슬슬 나가 줄을 섰다. 휴대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공중전화로 상황을 알렸다. "삼계탕집은 줄이 100미터도 넘어 콩국숫집으로 왔습니다." 나중에 온 무리가 먼저 온 동료들 틈에 섞여 들어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야유가 들려오곤 했다. "어이, 줄들 서세요! 슬쩍 끼면 어떡합니까." 갈비탕이나 백반을 파는 식당들도 여름이면 특별식이라며 붓글씨로 '삼개탕 개시' '콩국수, 열무냉면 개시' 하고 써 붙이는 것이 관례였다. 보통은 적당한 데서 끼니를 때웠지만 굳이 잘하는 집만 가겠다는 고집 센 선배가 있는 팀은 기어이 긴 줄을 서 가며 여름 별미를 맛봤다. 한여름 땡볕에 줄을 서느라 후줄근하게 젖어 가게에 들어서야 했다. 점심 장사는 손님 회전이 중요하다며 빨리빨리 먹고들 나가라고 눈치를 주는 식당에선 콩국수며 열무냉면이며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셰프가 된 뒤 여러 언론에서 질문을 받았다. "왜 기자에서 요리사가 됐나요?" 내 대답은 이랬다. "밥집 전쟁을 치르는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입맛이 까다로워졌어요. 요리사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 셈이죠." 돌이켜보면 한여름 점심시간의 난리통도 썩 즐겁고 흥미로운 추억이었다. 나쁜 기억은 대체로 압축하거나 버리는 게 우리 뇌라고 하지 않는가. 지금도 여의도에선 여름 복달임 전쟁이 펼쳐진다. 전쟁이란 말이 붙을 만큼 치열한 한 끼에 주먹을 불끈 쥐고 싸우던 우리 시대여, 변하지 않는 당대의 직장인들이여. 한여름 별미, 복달임 전쟁을 앞두고 우리 모두 힘냅시다! 박찬일 | 셰프 오랜만에 따뜻한 음식을 먹었다는 것만으로 바닥났던 힘이 채워질지도 모른다. 다시 고단한 어른의 삶으로 돌아갈 힘이. _ 강세형
초복날 서울 종로구 한 삼계탕집을 찾은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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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다녀가신 고운 흔적
주셔서 감사합니다 ~
편안하고 여유로운
오후시간보내세요
동트는아침 님 !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오늘 초복인데요..
보양식 드셨는지요
보양식 드시고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안녕하세요
핑크하트 님 !
다녀가신 고운 흔적
감사합니다 ~
건강하시고 근심걱정 없는
편안한 여름나기되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