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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봉산행기
[굴봉 정상에서의 백등회 신년산행 기념사진]
[서사천을 따라 가면서 뒤돌아 본 굴봉산역사]
백등회 새해 첫 산행지를 굴봉산으로 정했다는 문자 연락을 받고 “이 산은 어디쯤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경춘선을 이용한다고 상봉역에 모이라고 하니 강촌 부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작년에 경춘선이 복선화, 전철화 되어 수도권 전철로 개통되면서 ‘경강역’이 서천초등학교 부근으로 이전되고 ‘굴봉산역’으로 역명까지 변경되면서 열차를 이용하는 수도권의 산이 된 것이다. 작년에 봉화산을 갈 적에 지나갔지만 춘천행 급행을 타고 가서 미처 인식하지 못한 역이었다.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분리되어 뻗어 나온 한강기맥(漢江岐脈)은 내린천과 내촌천을 사이에 두고 다시 춘천지맥(春川支脈)으로 가지를 친후, 가리산~연엽산을 지나 봉화산에서 가지를 내려 검봉까지 흘러나오다가 마지막으로 굴봉산을 일으키며 그 여맥을 북한강에 가라앉힌다. 대동여지도에는 이 부분의 북한강과 서시천 사이로 뻗어 있는 산줄기 북쪽편에 방곡(芳谷)이라는 예쁜 지명이 달랑 하나 기록되어 있다. 현재는 강촌리 옆의 남산면 소재지가 방곡리이다. 년전의 봄에 우리가 새로 생긴 강촌역에 내려서 봉화산 등반을 위하여 올라섰던 곳이 방곡리이다.
* 주 : (조석필, 산경표를 위하여, 1993)
기맥(岐脈)이란 독립된 강을 가르는 분수령이되, 강의 규모가 크지 않아 정맥보다 한 단계 아래의 산줄기로 취급되는 것들이다.
지맥(支脈)이란 강의 지류를 구획하는 산줄기이다. 따라서 지맥은 바다에 이를 수 없고, 두 지류의 합수지점에서 끝난다.
굴봉산은 높지 않은 산인데다 작년에 춘천시에서 등산로를 잘 다듬어 놓아서 길 잃을 염려 없이 가볍게 산행할 수 있는 산이다. 최고봉이 겨우 395m로 높은 산은 아니지만 기반암이 편마암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산정 부근은 급경사를 이루어 깔딱고개를 형성하고 있으니 만만하지는 않은 산이다. 대체로 인공 조림한 숲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일부 지역에는 원시림의 형태도 보이는데 사람들의 접근이 없던 곳이라서 주변 환경은 깨끗한 편이었다.
2012. 1. 8(일요일) 아침 - 급행열차는 서지 않는 작은 역인 까닭에 상봉역에서 9시에 떠나는 급행을 보내고 9시 20분에 떠나는 일반열차를 타고 갔다. 전철을 탄 사람은 18명인데 정상에서 증명사진이 찍힌 사람은 찍사빼고 22명, 뒷풀이 자리에서 셈해 보니 이번 산행에 참여한 사람이 모두 29명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니, 뒷 차를 타고 와 굴봉산역 다목적실에서 20여명의 일행이 기다리게 한 이균철, 가평 먹골에서 온 김건혁, 명진호 사장의 차를 이용하여 굴봉산역에 와서 기다린 분당 팀, 더 늦은 열차편을 이용해 동부인(同夫人)하여 역코스로 올라오다가 만난 신재국부부와 안병찬부부까지 모두 29명이었다.
* 경강역과 굴봉산역
경춘선이 전철화 되면서 옛 경강역 대신에 굴봉산역이 생겼다.
폐역이 된 경강(京江)역에 대하여 춘천이 고향인 이창민의 거듭되는 설명이 있어 모든 회원들이 숙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친척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작은 마을이었는데 행정구역상으로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춘성군이 접한 경계에 있던 작은 마을에 철도가 들어서면서 생기게 된 역이라서 경강이라는 이름을 가졌었다고...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한양 부근의 한강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 경강이었다.
어쨌든 경춘선 열차가 개통된 뒤 오래도록 쓰이던 의미있고 유서깊은 이 역 이름이, 선로의 직선화를 위한 터널 공사로, 새로 생긴 선로에서 벗어나자 폐역이 되었고 가까이 생긴 새 역에는 ‘굴봉산역’이라는 새 이름이 붙은 것이다. 더구나 옆에 생긴 한화CC와 제이드가든 이용객을 위하여 「굴봉산역(제이드가든)」이라는 낯선 이름이 달렸다.
[산정에서 내려다 본 굴봉산역 부근. 서사천이 개석한 작은 계곡에 건설되어 있다]
[승강장에서 바라 본 서쪽편의 서천터널] [승강장의 같은 자리에서 바라본 동쪽의 경강터널]
경강역으로 흘러 북한강에 유입하는 서사천(西士川)이 개석한 작은 계곡 때문에 터널이 양분되는 곳이라 이 역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굴(서천터널)과 굴(경강터널) 사이에 건설된 역이라는 진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역사 안 승강장에서 서쪽으로 보고 사진을 찍어도 터널, 동쪽으로 보고 사진을 찍어도 터널이 바로 앞인 사진이다. (이창민 얼굴이 있는 사진) 역에서 나오면 바로 건너편에 보이는 산이 굴봉산이다.
* 도치교와 도치골 부근
서사천의 작은 물줄기가 아기자기한 개울 풍경을 선사한다. 얼음이 언 위로 하얀 눈이 쌓여서 한폭의 수채화를 이루고 있다. 마른 갈대 사이로 난 징검다리도 예쁘고… 굴봉산역이 생기는 바람에 이곳의 조용한 마을에도 펜션이 몇 채 들어 서 있다. 계곡을 따라 난 도로를 이용하여 마을로 가다보면 서사천을 건너는 도치교 다리가 있다. 서사천이 있어 서천리라는 마을이름과 초등학교 이름이 생긴 듯 했다. 이 부근은 도로가 좁고 정비가 안 된 실정이라 가끔씩 다니는 자동차와 등산객이 섞여서 다니므로 조심해야 한다.
[서사천을 따라 걷는 도치골 풍경]
굴봉산과 검봉으로 갈라지는 이정표(굴봉산역1.5km, 굴봉산0.8km, 검봉5.2km, 육개봉3.6km)를 보고 왼쪽으로 돌아 얼음이 살짝 얼어 미끄러운 산길을 탄다. 오른쪽의 비교적 좋은 길은 강촌의 LG 엘리시아골프장 코스를 거쳐 육개봉으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한다.
이곳 도치골 곳곳에는 벌목작업의 흔적이 많았다. 깨끗한 계곡은 벌목 작업 대문에 파헤쳐졌고 곳곳에 야적된 목재들이 옹기종기 쌓여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벌목한 계곡에는 하얗게 눈이 쌓여 있어서 마치 스키장의 슬로프를 보는 것 같은 모습이다.
* 급경사의 편마암산지, 안경굴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올라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신성철 회장이 이르기를, 30분 정도 숨이 턱턱 차도록 올라가는 코스를 오르면 바로 정상이라고 하더니 정말 가파른 급경사에 일부 코스에서는 로프를 잡고 조심 조심 올라가야 했다. 굴봉산역에서 하천을 따라 걷다가 산길을 타고 올라서 약 2.0km를 온 것 같다.
그때 신 회장이 소리치기를 “조금 더 올라가면 정상 아래에 굴이 있으니, 자네가 먼저 가서 몇 명씩 세워 사진을 찍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어떤 굴이 있길레 그러지? 하면서 가파른 산길에 마른 먼지를 일으키며 편마암 바위에 절리면이 잘 발달해 있는 곳을 치고 올라 조금 더 올라가니 지름 1.0~1.3m쯤 되는 굴이 나타났다. 흰 바위에 구멍 두개가 뚫려 있었다. 몇몇의 사진을 찍어주면서 들어가 보라고 해도 귀찮다고 하면서 그냥 지나쳤다.
뒤에 올라 온 덩치가 옹종한 이종율 전회장을 들어가도록 했더니 다른 쪽의 동굴에서 머리를 내 민다. 마치 두더지 잡기 놀이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곳의 굴은 양쪽으로 뚫려 있는데 굴속으로 들어가야만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굴 안에서 보면 위쪽과 아래쪽에 구멍이 한 개씩 있는 것이 마치 안경 같아서 안경굴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천정이 낮아서 배낭을 벗어 놓고 앉은걸음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내부는 비교적 넓어서 드나들기에 불편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다음 기회에는 억지로라도 한번씩 꼭 들여보내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 굴봉(窟峰)
안경굴을 지나며 이제 급사면은 마지막이려니 하면서 굵은 밧줄을 잡고 조심스럽게 올라서니 우물굴과 이심이굴 이라는 이정표가 또 있다.
이심이굴은 막혀있고 우물굴에는 샘물이 고여 있다고 한다. 11시 반을 조금 넘은 이때 불현듯 생각이 났다. 등산길 초입에서 조선일보의 김의현이 “이 산은 왜 굴봉산이라는 이름을 가졌지? 지리쌤은 알 것 같아서 말이야.”하고 묻길레 “글세, 나도 모르겠네.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곳이라서…” 했었는데 이곳의 여러 굴들을 지나치다보니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굴(窟)이 많이 있어서 ‘굴봉’이구나 싶었다. 그 생각은 정상석을 보니 더욱 확실해 졌다. 다른 산의 정상에 세운 커다란 비나 정상석과 달리 이곳의 경우는,「굴봉 395m」라고 적힌 작은 오석판을 마치 삼각점 표시처럼 평평하게 땅에 박아 놓았다. 굴이 있는 봉우리라 굴봉인데 역전앞이나 외가집처럼, 매봉산이나 응봉산처럼 한자어 산(山)자를 굳이 붙여서 표현한 것이구나 싶었다.
정상 부근의 일부 길에는 통행을 막아둔 표시가 있었는데 이를 무시하고 잘못 들면 급경사에 실족하거나 뜻하지 않게 영업중인 골프장으로 들어가 부상을 당할까봐 막은 것이렸다. 총총한 낙엽활엽수림 사이로 바로 눈 아래에 LG의 엘리시안리조트 골프장의 누런 잔디밭이 펼쳐져 있으며 조금 더 시선을 들면 백양리와 당림리 사이를 흐르는 푸른 북한강의 물길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 왔다.
* 간식 시간
11시 40분경 정상에 닿아서 주변의 경치를 살피며 잠시 구경을 하는 사이, 햇볕이 사라진데다 산정이라 기온이 차갑고, 올라오면서 흘린 땀이 식어서 한기가 느껴져 바람막이나 벗어 둔 우모 외투들을 꺼내 입었다.
정상의 의자를 식탁으로 삼아 3팀으로 나뉘어 판을 벌였다. 친구들 먹이려고 바리바리 싸 온 정성스러운 음식들이 줄줄이 나온다. 뜨끈뜨끈한 이종웅의 어묵국, 명진호의 돼지술국과 떡국, 김의현의 골뱅이, 박민재의 시루떡과 자색무 물김치, 신성철의 계피주, 유성대의 끓인 라면 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다른 팀의 아주머니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제가 춥고 배고파서 지금 너무 먹고 싶은데, 지나가는 사람 몫도 있어요?”하자 이곳저곳에서 뜨끈뜨끈한 음식들을 건네주며 왁자지껄하다.
일찍이 힐튼호텔의 장 이사가 지적을 했었는데, “건강을 위하여 산에 온 사람들이 너무 과하게 식사를 하니 열심히 산행한 것이 모두 헛것이 될까 걱정이다.” 라고 한마디씩 했다.
참 좋은 학교를 나온 박경철은 오늘도 젓가락 당번을 자처하고 분리수거에 열심인데 이번에는 심지어 음식물분리수거용 팩까지 따로 준비를 했구나. 12시 40분경 말끔히 자리 정돈을 하고 일어선 일행은 “콩고가 응원구호 꼭 하고 내려 오라고 가평에서 전화했다”는 김경배 총무의 제안에, 군소리없이 빙 둘러섰고, 아이스하키선수였던 이창민의 선창에 따라 크게「CHUNGDONG 중동! 중동! Victory!」를 외쳤다.
* 하산 길
산정 부근에는 반송(盤松)처럼 줄기가 몇 갈래져 있는 싱그러운 노송이 여러 그루 서 있었는데 제법 운치있는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서쪽의 굴봉산역, 산봉우리를 깍아서 평탄작업을 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한화CC의 제이드팰리스리조트 모습, 벌목을 한 건너편 산의 응달에 눈이 쌓여서 마치 스키장의 급경사 슬로프를 연상시키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하산을 위하여 서북쪽으로 난 벼랑길을 따라 내려가는 길도 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경사진 편마암층의 모습을 보니 급경사를 이룰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급경사 길을 내려 갈 때는 몸무게와 짐무게를 합친 무게를 모두 두 무릎 연골이 받아내야 하므로 무리가 간다. 그러니 스틱을 활용해야 하는데 금방 끝날 줄 알고 귀찮아서 그냥 내려갔는데 실수였다. 괜스레 스틱을 지고만 다닐 것이 아니었는데… 알면서도 실천을 안하니~ 에구~ 삼용이.
가파른 경사길에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어서 한발 한발 조심해서 내려서야 했다. 산정에서 한참 내려서니 군용 벙커도 보이고 계단길이 계속된다. 급경사를 이룬 벼랑길에 위험을 알리는 굵은 밧줄을 매놓았다. 이곳 발 아래에는 경춘선 전철 복선화 공사로 뚫린 경강터널이 지나가는 곳이다. 북쪽으로 살펴보니 북한강이 우거진 나무 사이로 살짝 살짝 보이고 멀리 계관산 줄기에 가까운 강가에는 봉우리가 우뚝한 월두봉도 보였다.
이 부근에서는 미끈한 굴참나무 군락이 이어졌다. 마침 굵고 멋진 굴참나무를 만나서 기념사진을 한 장 박은 뒤, 내려서고 올라서기를 한두번 반복하니 1시 10분쯤인데, 서천초교쪽에서 올라온 안병철 부부와 신재국부부를 만난 일행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북한강 건너편의 월두봉]
이후에는 잣나무 인공 조림지가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양지와 음지의 식생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완만한 내리막을 지나갔다. 우측으로 숲길이 터져 북한강 푸른 물길 너머로 월두봉(月頭峰)이 잘 보이는 곳에서는 사진을 박았다. 예전에 경춘가도를 달려서 처가가 있던 춘천 가는 길에 지나가면서 저기 오똑한 산은 무슨 산일까? 하고 생각하던 인상 깊은 산이었기에…
도중에 작은 봉우리 위에 만든 묘지를 보았다. 산행 때마다 이런 산꼭대기의 묘소를 만나면 왜 이렇게 높고 험한 곳에다 유택을 마련하려고 생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무상한데 후손들의 그 속 좁은 이기심 때문에… 아무 연고없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조상 욕 들어 먹이고 있으니… ㅉㅉㅉ
산길을 다 내려와 북한강변의 '호숫가의펜션' 뒷길로 이어지는 날머리에서 경강역으로 이어진 철길을 만났다. 굴봉산 등반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을 들머리로 해서 오르는 것이 정석인가 보다. 몇몇이서 몸무게를 가볍게 하자고 우거진 숲으로 향하여 일열로 방열을 하는데 이종웅이 한마디 날린다. “어이, 우리처럼 물건이 작은 사람들은 아무데서나 볼 일을 보는데, 자네처럼 물건이 큰 사람들은 꼭 그렇게 은폐엄폐가 잘 된 곳을 찾아서 볼일을 본다고 하더라.” 아이고 나이가 들고 보니 못하는 농담이 없네. ㅎㅎㅎ
* 뒷풀이 234가든
철길 아랫 방죽길을 걷다가 2시경에는 서사천 뚝방길을 따라 걷는데 양쪽으로 우거진 마른 갈대가 도열하듯이 서 있으니 이 또한 멋진 모습이라 사진을 한 장 박았다.
징검다리로 개울을 건너 도로변의 ‘234가든’에 들어 짐과 등산화 끈을 풀고 놓고, 뜨끈한 버섯전골과 만두전골로 메뉴를 바꾸어 가면서 우정을 나누었다.
예전부터 옥수수로 만든 이름난 경강막걸리는 물론 장수막걸리도 없다고 하여 식당에서 권하는 노란 동동주를 시켜 맛보았는데 달큰한 것이 나중에 골때리는(?) 사태가 벌어질 것 같아서 테이블당 한 뚝배기씩 맛만 보았다. 김준규가 지고 온 대짜 발렌타인 양주와 이슬을 모아 만들었다는 소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음 달에는 2박3일 일정의 제주도 한라산행을 할 계획인데 비싼 ‘토일월’과 싼 ‘일월화’중에 어떤 것이 좋겠느냐고 물으니, 일월화가 압도적이고 누군가 “월화는 출근해야 한다.”니까 “연차 휴가를 내고 와라”하는 친구, “이 나이에 무슨 휴가를 내냐? 사표를 내고 와라. 사표를…” 하면서 난리 굿이다.
3시 20분경에 “3시 38분 차가 서울행 막차야. 빨리 일어서라.”면서 몰아치는 김총무의 재촉에 무거워진 엉덩이들을 털고 일어나 서천초등학교앞을 지나가는데 이미 서울행 전철이 굴봉산역으로 진입하는 것이 보인다. 그래 소금이 쉬나? 세월이 좀 먹냐? 다음 차 타고 가면 되지 뭐 하면서 느릿느릿 역으로 모였다. 분당팀은 승용차로 떠나고…
승강장에서 이야기들을 나누는 사이, 양쪽으로 보고 터널을 넣어 사진을 찍었는데 얼굴을 들이미는 귀여운 대머리 아저씨… 우리는 3시 57분 차편으로 상경하여 5시경에 상봉역에 내려 헤어졌다. 남들이 보면 하얀 머리카락에 주름진 얼굴들에 주책스러운 영감들이지만 우리끼리는 언제 만나도 소년처럼 반갑고 정겨운 친구들이다. 모두 건강하게 지내다가 다음 달 산행에서 또 보자고.
첫댓글 건강도 챙기고 우정도 다지고 신년모임을 아주 알차게기셨네요.마아이 불버요늘 이 함께하시길
산행기 너무잘읽고잘보고갑니다
중등고 동기분들과 함께한 새해 정초 산행의 모습들이 아름답습니다. 굴봉산의 지리 공부를 자세한 설명과 재미난 사진을 잘 읽었습니다. 또한 굴봉산역의 양방향 터널이 앞으로 유명세로 널리 알려지겠군요. 잘 봤습니다.감사~`
정감어린 후기 글 잘 읽었습니다...
동기님들과 정겹게 산행하시는 모습들이 자세히 그려집니다..
굴봉산이 낮지만 아기자기한 재미와 볼거리가 제법 많군요..
기회봐서 한번 올라볼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