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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두가 하늘의 뜻이든가, 장래가 촉망되는 선비가 시제 하나를 잘못 만나 인생 불구가 될 판이다. 장원을 하면 무슨 벼슬을 할 것이며, 글을 잘하면 어디에 쓸 것인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시제가 시제인 만큼 그렇게 맹공을 퍼붓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역적 익순은 불충한 신하요, 죽은 혼조차 황천에도 못 갈 것이고, 너 김익순은 만 번 죽어 마땅하다!”고, 악담을 퍼부었으니,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차마 못 할 짓을 한 것이다. 전생에 조부와 무슨 악연이 있어, 이렇게 틀어지고 만 것인지! 이제 막 피어나는 젊은이가 감당하기엔 참혹한 일이다.
“하늘이 있어 하늘을 볼 수 있겠는가, 동료가 있어 말을 섞을 수 있겠는가!” 애처롭다! 삿갓이여!
이제 모든 사정을 안 그가 어찌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충효가 최고의 이념인 조선 땅에선 역적의 자손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폐족이 된 집안이 되어, 급전직하 곤두박질도 이런 곤두박질은 없다. 너무나 암담했다. 극심한 불효에 하늘도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감히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 자신이 심히 부끄러웠다. 언제까지 자괴감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가출이다. 얽히고설킨 모든 인연을 등지고 감행한 가출이었다. 살길은 그 길밖에 없었다. 산천초목을 벗 삼아 방랑 삼천리를 떠돌아야 했다. 하늘이 두려웠다. 비나 볕을 가릴 생각은 아예 없었다. 삿갓이면 됐다. 삿갓을 머리에 덮어쓰고, 전설의 김삿갓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