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고양이 깨비덕분에 내 이기심을 체험했다.
집에서 동거한 지 거의 4년 반이 되어가는 우리집 깨비가 갑작스레 말썽쟁이가 되었다.
집에 들일 때 아기였기에 장롱 서랍에 응가를 모아놓은 기억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대소변을 제 화장실에서 잘 가렸는데
어찌된 일인지 요 며칠 빨래더미에도 쉬를 하고
손자 안젤로의 놀이터인 풀이나 비닐 장난감 여기저기에 쉬를 해 놓는 것이었다.
결국엔 남편이 운동을 가기위해 옷을 챙기면
어느 틈에 가방 속에다도 쉬를 해서 골프장에 갔다가
옷을 빨아 입는 일까지 온갖 저지레를 쳐 놓아서
우리 부부를 화나게 만들었다.
처음 데려올 때부터 아주 점잖게 제 사료나 참치나 간식 이외엔
가족들의 반찬은 건드리지도 않아서
생활에 별로 불편이 없었는데
요즘 갑자기 깨비의 화장실에 소변흔적이 없으면
집안을 돌아다니며 킁킁거리며 찾아다니는 일이 많아지고
깨비와 동거하는 일이 짜증이 났다.
그럴 때마다 늘 우리가 외출할 때면
현관문까지 따라나와 나가고 싶어하는 녀석을
마당에서 키울까 유혹을 받기 시작했다.
그날도 문을 닫아둔 둘째 방에 들어갔는데 어디선가 녀석의 지독한 소변냄새가 났다.
또 소변 테러다.
퇴근한 남편에게
"얘 왜 이러냐? 또 오줌을 쌌네..
정말 밖에서 키워야 하는 거 아니야?
여름에 방문도 못 열고 자는데.."
투덜거렸더니 남편도 뒤치닥거리에 지쳤는지
"그럼 마당에서 키워볼까?
밥이나 잠자리를 챙겨주고 돌보면 되겠지...."
얼마전 지인의 집에서 길고양이 네 마리를 마당에서 키우고 있는 걸 보고는
별 걱정 없이 우리는 깨비의 살림살이를 밖에 내놓았다.
늘 밖을 궁금해 하던 깨비가 쪼르르 따라나왔다.
거실 앞 베란다를 거닐며 바깥생활을 즐기는 것 같아 안에서 쳐다보며
"쟤도 좋아하는 것 같은데?!"
하며 우리 부부는 마음을 놓았다.
그날 밤 남편은 잠자리에 들고 나만 거실에 있는데
마당에서 찢어지는 깨비의 비명이 들렸다.
단말마였다.
집주변을 어슬렁 거리던 길고양이와 영역싸움을 하는거구나 직감했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얼른 나가서 마당의 불을 켰다.
소리는 더이상 없었다.
그날 밤 불안감에 잠이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 나가보니 깨비는 왼쪽 앞다리를 약간 불편해했고
캣타워 위에 누워 있었다.
우리는 그래도 낙관적이었다.
그러나 그날 오후 현관 앞에 털만 남기고 깨비가 사라졌다.
죄의식이 밀려들면서
"자식이 장애인이라고 자식을 버리냐?"
라는 자문자답을 하며 밖에 대고 깨비야를 부르며 찾아헤맸다.
녀석이 나타나지 않았다.
귀가 밝으니 어디선가 들을만도 한데 ....
저녁을 먹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름을 부르고
이장님께도 도움을 청했다.
마을 이장님은 사람도 아니고 동물을 찾는다니
어이없는 반응이었는데 그도 섭섭했다.
밤늦도록 이름을 부르자 마당의 나무들 사이에서
누가 들을새라 작은 소리로 울음소리가 들려 왔고 깨비가 나타났다.
냉큼 껴안고 집에 들어와 목욕을 시켰다.
수건으로 털을 닦아주는데 깨비가 기운이 없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심한 죄의식에 빠졌다.
녀석은 집에 돌아와서도 밥을 먹지 않았다.
큰 충격을 받았나 보다.
녀석이 좋아하는 츄르를 주자 그것만 겨우 먹었다.
그래도 뭐든 먹으니 시간을 두고 지켜 보기로 했다.
깨비는 다음날도 소파에 누워 잠만 잤다.
자세히 보니 오른 쪽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마도 싸우다가 다쳤나 보다.
눈동자는 괜찮고 피부도 문제가 없었다.
서둘러 안연고를 도포하고 기다리자 이틀만에 눈물이 멎고 기운을 되찾았다.
큰 고민없이 내린 결과가 내게도 깨비에게도 충격이었다.
반려동물과 가족이라는 생각없이 주인행세를 한 게 아닌가 반성을 했다.
조금 말썽을 부려도 기왕에 가족이 되었으니
기다려 주고 돌봐야겠다고 작정을 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맞아, 깨비가 우리의 진정한 가족이라는 걸 내가 잊었어.
조금 힘들어도 널 잘 돌봐야겠다.
그러나 너도 제발 철 좀 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