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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잔틴 유적지 '골든 게이트'에서 사는 고양이. ⓒ 이혜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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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탄불의 거리 곳곳은 개와 고양이들로 가득하다. 한때는 애완 동물이었다가 떠돌이 신세로 전락한 것이 아니라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삶을 마치는 종자들이다.
길이 생활의 터전이긴 하지만 무작정 배회하지는 않는다. 이들 나름의 영역을 정해놓고 사는데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유적지나 번화가, 주택가 등을 구분하지 않는다.
아야 소피아는 늙은 검둥개의 영역이고, 블루모스크는 젊은 개 두 마리가 관할한다. 유럽 스타일의 건축물, 세련된 카페, 식당이 줄지어 있는 베이올루는 양 옆으로 샛길이 많아서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긴 어렵지만 대로에는 대략 서너 마리가 자주 눈에 띈다.
갈라타 탑 근처는 수캐 다섯 마리의 주거지다. 일명 ‘갈라타 5인조’. 유적지 수호의 사명이라도 스스로 떠맡은 듯 갈라타 5인조는 탑 근처를 떠나지 않는다. ‘수호’라고 해봐야 햇빛을 즐기거나 행인들에게 꼬리를 흔드는 일이 대부분이다. 가끔씩 옆 길로 순찰을 다니기도 하지만 갈라타 탑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녀석들은 능청스럽게도 도로 한 가운데에 몸을 찰싹 붙이고 누워 꿈쩍하지 않기 때문에 보행자들은 그 휴식을 방해하지 않도록 옆으로 피해 다닌다. 5인조 녀석들은 태평해 보이기만 하는데 더러 짖는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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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타 5인조. 두 마리는 지역 순찰 나간 듯. ⓒ 이혜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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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새벽, 기도를 알리는 방송이 이웃 모스크에서 울릴 때면 므에진(모스크에서 기도를 알리는 사람)과 경쟁이라도 하겠다는 양 목청을 높인다. 또 관광객이나 동네 주민들한테는 잠잠한데 흑인이나 행상들, 행색이 초라한 사람들에게는 가차없이 짖어댄다. '저런, 아무리 음식을 줄 것 같지 않아도 그렇지, 종교적 불관용성에 인종과 빈부, 계급 차별이라니…'
그 성향이 어쨌든 근처 식당, 카페, 혹은 주택가의 주민들은 갈라타 5인조의 노고와 자원봉사 정신을 치하하듯, 혹은 ‘자릿세’ 명목으로 꼬박꼬박 음식을 대접한다. ‘갈라타 탑 근처에서 아무일 없이 장사를 계속하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시에서는 정기적으로 위생 관리를 해기 때문에 병 걱정할 필요도 없고, 날씨가 추워지면 근처 건물에서 안식처를 찾는다. 현대 사회에서 동물은 점점 희귀해져서 애완용, 관상용이거나 식탁에서만 접하게 된다고 누가 말했던가? 길거리 개 팔자, 이스탄불에서는 상팔자다.
고양이들은 또 어떤가? 개에 뒤지지 않는다. 아니, 개보다 한층 더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린다. 보스포루스 해협, 마르마라 해, 골든 혼에서 날마다 신선한 생선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이스탄불 고양이들의 입맛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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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들이 경찰의 제지를 받는 사이 고양이는 당당하게 술레이마니에 모스크에 입장하고 있다. ⓒ 이혜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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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보다 체구가 작고 민첩해서 다닐 수 있는 영역도 많다. 게다가 그 깔끔함을 인정받아 모스크 출입까지 자유롭다. 옛날 모하메드가 기도를 할 때 고양이가 옷자락 위에서 잠을 잤는데 모하메드는 고양이를 깨우지 않으려고 옷을 잘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선지자 모하메드 조차 건드리지 않는 고양이의 평안, 누가 해할 수 있으리?
갈라타 탑 근처의 ‘사르’도 남부럽지 않게 사는 고양이 ‘여피족’이다. 노란 털이 많아 동네사람들은 ‘사르 – 노랑이’라고 부른다. 몇 살인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장난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아 대략 3-5 살 사이로 추정된다.
사르는 아침 열 시, 갈라타 탑 아래쪽 기념품 가게에 출근한다. 근처에 이발소나 카페트 가게 등도 있지만 사르는 ‘팬시한' 가게를 선호한다. 사르는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거나 행인들, 가게를 찾는 고객들, 새들, 앞집 개 ‘파샤’를 주의깊게 쳐다보는 일을 한다.
주인이 사르에게 음식을 주는 이유는 동정 때문이 아니다. 사르는 정기적인 출근에 대한 대가로 ‘휘스카스’(고양이 사료)를 받는다. 사르는 장난을 좋아하지만 크고 작은 물건들로 가득찬 기념품 가게에서는 사고를 치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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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의 취향은 세련되서 주변 이발소나 카페트 가게 보다는 팬시한 기념품 가게를 선호한다. ⓒ 이혜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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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는 그저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다. 가게 문이 닫히면 기념품 가게 앞집 갈라타 1번가로 퇴근한다. 1번가 건물내의 8개 호 중 3개호 가 사르의 집이다. 사르가 그 집들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집 주인들과는 친분을 맺고 있어서 사르는 거리낌이 없다.
‘오늘은 어느 집을 갈까?’ 사르는 집 문 앞에서 ‘야옹’하고 벨을 누른다. 누군가 집에 있으면 문을 열어준다. 사르는 일단 집안 정리가 잘 되어 있는지 구석구석 시찰을 한다. 검사를 끝낸 후 사르는 소파나 침대, 난방기구 옆에 자리를 잡는다.
무료해지면 휴지 뭉치, 볼펜, 아스피린, 비닐 봉투 등을 가지고 논다. 가끔은 주인의 발바닥이나 손가락과 장난을 치기도 한다. 사람들은 식사 시간이면 음식을 주지만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이스탄불의 고양이답게 사르는 미식가다. 신선한 생선 요리나 잘 익은 쇠고기 스테이크, 고양이 전용 사료면 몰라도 치즈나 시금치를 넣은 뵈렉(터키식 파이)같은 건 상대하지 않는다.
좀 값싼 음식을 줄 때 사르는 킁킁거리다 주인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대접은 고맙지만 오늘은 입맛이 없네요.”
두 세 시간 정도 놀았다 싶으면 문 곁으로 가서 사인을 한다. ‘야옹~ 문 열어줘’. 사르는 꽤나 도도하다. 부른다고 해서 쪼르르 달려오거나 붙잡는다고 해서 눈치 없이 오래 머무르지도 않는다. 길거리에서 태어난 사르에게 주인은 없다. 대신 따뜻한 집과 음식을 대접하는 친구들은 많다. 사르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원하는 곳에서 잔다.
다양한 인류 문화의 보고를 가득 품에 안아 역사적으로 풍요로운 도시 이스탄불, 그 도시를 맡기면서 시민들에게 했을 법한 신의 귀띔을 고양이들은 아는 것 같다.
‘고양이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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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화가인 베이울루 거리(한국의 명동이나 강남쯤). 자동차들이 알아서 피해 다닌다. ⓒ 이혜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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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탑 1번지 3호는 사르가 가끔 방문하는 곳. 아무리 발바닥이 따뜻해야 한다지만 자세가 좀 그렇지 않니, 사르야? ⓒ 이혜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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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간 주인의 무덤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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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내 중심가의 블루모스크(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지역을 관할하는 개들. ⓒ 이혜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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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거리에서 하품하는 고양이. ⓒ 이혜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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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티흐 모스크는 고양이 천국. ⓒ 이혜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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