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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93회>
씬 1 바다(낮)
왕건의 배가 가고 있다. 햇살은 고요하고 바람도 없다. 갑판 위에서 왕건이 복지겸, 능산, 태평과 함께 먼 바다를 보고 있다. 배가 물살을 가르며 계속 나아가고 있다.
복지겸 왕총사.
왕건 예.
복지겸 나는 말입니다. 언제 보아도 이 바다가 참으로 신기하오이다. 이 거대한 배가 수많은 물자와 사람을 싣고도 유유히 가고 있어요.
왕건 하하하하..... 사람들은 처음에 모두들 그렇게 말을 합니다. 사실 이 배에는 무려 이백이 넘는 군사와 수십 필의 말과 엄청난 군수 물자를 실을 수가 있습니다.
복지겸 그러니까 놀랄 일이 아니겠소이까? 그러고 보면 폐하께오서 일찍부터 바다에 눈을 뜨시고 왕총사를 발탁하시어 모든 것을 맡기신 것은 그만큼 앞날을 보는 선견지명이 있으신 것이오이다.
왕건 하하하, 무슨 말씀을... 그나저나, 병부령께서는 오래 철원에 계시었는데 요즘 형편이 어떻습니까?
모두들 .........?
복지겸 늘 그렇지요. 오래전부터 신료들은 전전긍긍합니다. (가벼운 한숨) 언제 어떻게 폐하께서 관심법을 쓰실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능산 참으로 그 관심법이라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훤히 볼 수가 있단 말입니까?
태평 허허, 능산 장군.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가 없지요.
능산 예?
태평 그 분이 어디 미륵이시지 사람이십니까?
왕건 (그만 하라는 듯 헛기침)......
복지겸 허허, 태평군사께서는 잘 알고 계시는 구료. 그렇소이다. 그 분은 미륵이십니다.
능산 도대체 어찌해서 그렇게 되셨을까요? 처음에는 얼마나 위대하고 큰 존경을 받는 분이셨습니까?
태평 욕심이지요. 욕망 말입니다. 욕망이 커질수록 사람은 누구나 초초해지고 드디어는 그것을 이루기 어렵다는 공포에 떨어지게 돼있습니다. 결국은 정신상의 문제가 발생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능산 그럼 폐하께서 정신적 이상을 앓고 계신다는 것이오이까?
태평 고금을 통틀어 많은 폭군과 독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바로 욕심에서 병적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왕건 허허, 그만 하게. (딴청을 부리며) 오늘 따라 날씨가 좋습니다.
복지겸 그런 것 같습니다.
왕건 내일 아침이면 정주 포구에 도착을 하겠습니다.
복지겸 (선실 쪽을 보며) 저 수달장군이 참으로 안되었습니다. 적장이기는 하지만 참으로 존경할만한 장수라지요?
왕건 어찌하겠습니까? 우리와는 연분이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설득을 해도 요지부동이니 말입니다.
복지겸 고개를 끄떡이면.
씬 2 동 배안 선실 옥사
수달이 창살 사이로 보이는 바다를 보고 있다. 그는 이미 모든 희망을 버린 듯 편안한 모습이다. 갈매기 떼가 창살 사이로 멀리 날아가는 것이 보인다. 그는 그렇게 바다를 보고 있고....
씬 3 철원 황궁 외경
씬 4 동 대전
궁예가 종간과 마주해 있다. 그 한쪽에서 최응이 보고 있다. 궁예는 독주를 마시며 서류를 보고 또 종간을 본다. 조금 취해 있다.
종간 지금 병부의 직제를 바꾼다 하셨사옵니까?
궁예 그렇소이다. 바꾼다기 보다도.... 직제를 좀 바꾸자고 하는 것이 내봉성령 아학사의 말이올시다. 내봉성은 관리들의 벼슬을 관장하는 것이 아니오이까? 일리가 있는 것 같아서 그리하자고 하였소이다.
종간 하오나, 병부가 있는데 굳이 또 다른 군사 관계의 부서를 두신다는 것은.....
궁예 이제부터는 황제인 내가 친히 군사들의 지휘를 감독하려고 하는 것이외이다. 이런 전시에서는 그게 더 효과적일 것이오. 뿐만 아니라 곧 나라 이름도 다시 바뀌어야 할 것 같소이다.
종간 나라 이름까지 말이옵니까?
궁예 그럴 때가 되었어요. 정신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의지를 더욱 다지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이 필요할 것 같소이다. 북벌에 대한 의지들이 좀처럼 발전이 없어서 하는 이야기예요.
종간 아, 예.......
궁예 헌데, 왕건아우가 돌아오고 있다고?
종간 예, 폐하. 아마도 내일 아침쯤이면 정주에 도착할 것이옵니다.
궁예 허허허, 이번에도 거하게 마중을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종간 물론 그렇기는 하오나...
궁예 왜?
종간 여러 번의 전투에서 이기고 올 때마다 폐하께오서는 그야말로 성대하게 영접해주셨사옵니다. 군의 사기를 위해 한 두 번은 있을 수 있사오나 계속 그렇게 하심은 경계하셔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궁예 허허허, 뭐 경계까지야....
종간 속담에 이런 말이 있사옵니다. 어린아이를 한없이 귀여워 해주면 할아비의 수염이 다 뽑힌다고 말이옵니다.
최응 .........?
궁예 (듣고 있다가 폭소) 하하하하.... 이보시오, 내원. 거 듣고 보니 참으로 그럴 듯한 말씀이오. 할아비 수염이 다 뽑힌다?
종간 이번에는 이틀 길이나 되는 정주까지 가지 마시고 도성 안에서 맞으시오소서. 그것이 합당한 줄로 아옵니다.
궁예 좋소이다. 지난 번에도 그리 하였으니 이번에는 도성에서 맞읍시다. (장계보며) 그리고, 누구라고 하였더라? 그 같이 오는 적장 말이야. 수달이라고 했던가....?
종간 그렇사옵니다. 수달이라 했사옵니다.
궁예 나는 그자의 얼굴도 빨리 보고 싶어. 도대체 어떤 자이길래 우리를 그토록 괴롭히고 놀라게 하였단 말인가? 그리고 그토록 심지가 굳다고 하였든가?
종간 그렇게 들었사옵니다.
궁예 그래, 맞아. 사내라면 말이야 뭔가 한가닥 고집이 있어야지.
궁예는 웃다가 다시 통증을 느낀다. 참으려고 애를 쓴다. 이미 종간이나 최응은 표정을 보며 눈치를 챈다. 궁예는 거퍼 독주를 마신다.
종간 폐하, 많이..... 피곤하셨나보옵니다.
궁예 다 그런 것이지 뭐...... 술 한잔 하시겠소이까, 내원? 이거 나만 마시고 있었구료.
종간 소신은 술을 못하지않사옵니까? 하온데, 괜찮으시옵니까?
궁예 괜찮다마다. (억지로 참으며) 괜찮아요. 그래 내원, 차라도 한잔..... 더 드시구료.
궁예는 그렇게 애써 태연한 척 하려 하는데, 점점 더 고통이 참기 어렵다. 드디어는 술병을 떨어트린다. 가슴을 부여잡는다. 눈을 부릅뜨며 참으려 애를 쓴다.
종간 폐하....? 폐하.....?
궁예 밤새 경전을 읽었더니 좀 과로했나보오. 돌아가시구료...... 돌아가요.
최응 ..........폐하 소주를 더 내오겠사옵니다.
궁예 그래.... 그게 좋겠구나. 그....그게....
그러나, 궁예는 그예 탁자 앞으로 허리를 꺾는다. 종간이 놀라서 소리지른다.
종간 폐하........?
궁예는 대답 없이 그대로 혼자 중심을 잡으려고 애를 쓴다. 입술을 깨물며 일어서려고 몸부림이다. 그러나, 어렵다. 종간이 소리친다.
종간 뭘 하는가? 밖에 대전내관 있느냐?
대전내관 (E) 예(들어오면)
종간 전의를 불러라. 어서 전의를 불러라.
대전내관 예, 내원어른.
내관이 급히 나가고, 최응과 종간이 부축하려 한다.
종간 폐하, 폐하......?
최응 폐하........?
궁예 (부축을 뿌리치며) 가끔씩 오는 증상이오.....피곤하면 누구나.... 그런 것이오... 물러 가오.
종간 폐하, 왜 의원을 멀리하시옵니까? 꾸준히 탕제라도 드시오면.......좋아질 수 있사옵니다.
궁예 (버럭) 탕제는 왜? . 아무 것도 아니야. 물러가오. 다 물러가! 물러가라고 하지 않소? 최응이도 가거라, 어서. (고함) 어서!
두사람 폐하.......?
궁예 (비로소 상체를 세우고 중심을 잡으며) 물러가라고 하였소이다?
종간 (한참 보다가) 예, 폐하. 물러.....가겠사옵니다. 가세.
최응 예.
궁예는 그렇게 버티고 앉아 있다. 두 사람은 물러간다. 그리고 나서도 궁예는 한참 고통을 참고 앉아 있다가 다시 꺾어진다. 혼미해지는 정신을 잡으려고 오래도록 애를 쓴다. 그 모습에서....
씬 5 대전 복도
종간이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거린다. 최응이 그런 종간을 본다. 전의가 대전내관과 함께 황급히 오고 있다. 와서 종간에게 묻는다.
전의 내원어른...... 대전으로 들어가오리까?
종간 .......(대꾸가 없다,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전의 내원어른.......?
그러나, 종간은 가볍게 도리질을 하고는 그대로 천천히 복도를 걸어가 사라져버린다. 모두들 뻥해서 본다. 최응은 그런 종간과 대전 안을 번갈아 본다. 언제보아도 그는 침착한 표정이다.
씬 6 궁성 안 길
종간이 걸어간다. 눈물을 닦고 있다.
종간 (E) 이것은 아니다. 정말 아니다. 세상이 다 아는 것을 폐하 혼자 감추려 하신다. 의원은 저러시다가 점차 공포와 불안이 거듭되면서 발광증세를 보일 것이라 하였다. (멈추어서서 주변을 보며) 정말 길은 없는 것일까? 길은 없는 것일까......?
그때, 저만큼 은부가 금대,장일을 대동하고 오고 있다.
은부 대전에 다녀오시옵니까?
종간 (냉정 찾으며) 그랬다네. 내군에서 오는 길인 모양이네 그려.
은부 예, 내원어른.
종간 (금대,장일에게) 금부장과 장부장도 계속 고생이 많네 그려.
두사람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종간 허허허, 자네들이 있어서 폐하께서는 늘 든든해하신다네.
두사람 고맙사옵니다, 내원어른.
종간 자, 은장군은 가서 차나 한잔하세 그려.
은부 예, 내원어른.
그들 그렇게 가고. 두 부장은 군례를 올린다.
씬 7 내원 방 안
심각한 표정으로 종간이 은부를 보고 있다.
종간 자네가 직접 나서서 온 나라를 다 뒤져보게. 약이 없고 의원이 나서서 안된다면 하늘에 기도라도 올려야 할 것이 아닌가?
은부 예, 내원어른.
종간 딱하신 분일세. 폐하 혼자서 전전긍긍하며 감추려 하신다네. 얼마나 괴로우시겠는가? 얼마나 외롭고 무서우시겠는가?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네 그려.
은부 소인 또한 그렇사옵니다.
종간 형편이 이러한 때에 왕건이 개선장군으로 들어오고 있네. 세상의 모든 눈이 존경의 빛으로 왕건이를 보고 있단 말이야.
은부 그뿐만 아니옵니다. 지난 번에 병부령 복장군이 대전에 들어갔을 때에 폐하께오서는 왕건이로 하여 시중에 앉는 것이 어떠한가 물으셨다 하옵니다.
종간 (깜짝 놀라며) 그게 무슨 소린가? 시중.......?
은부 그러하옵니다. 그런 말씀이 있으셨다 하옵니다.
종간 말도 아니되는 소리. 시중이라니...... 지금의 광치나 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은부 그렇사옵니다.
종간 아니되지. 절대로 그럴 수는 없지.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온단 말인가? 저 젊은 왕건이에게 시중....시중.....? 잘 못 들은 것이 아닌가?
은부 대전에 숨겨 놓은 내관에게서 나온 이야기이옵니다.
종간 안되지. 안되지. (도리질) 그래서는 안되지. 아하.... 갈수록 일이 어렵게 꼬이는 것 같구먼 그래. 병 때문이야. 저 폐하의 환후 말이야.
씬 8 황후전(밤)
연화가 강장자 부부를 보고 있다.
연화 도대체 아버님이 요즘 뭘 그렇게 바쁘게 다니시옵니까?
강장자 바쁘다니요? 뭐가 말이옵니까, 황후마마?
연화 다 듣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제가 뭐라고 하였습니까? 폐하께서는 다 보고 계신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사옵니까?
백씨 황후마마, 그런 것이 아니라.... 나으리께서는.....
연화 아학사라는 사람과 왜 계속 회동을 하시는 것이옵니까?
강장자 아, 그것 말씀이옵니까? 하하하. 황후마마 다 우리 집안의 장래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옵니다.
연화 장래라고 하셨습니까? 폐하의 관심법을 모르시옵니까? 죽기가 그렇게 소원이시옵니까?
강장자 아니, 황후마마 죽다니요? 우리가 왜 죽사옵니까?
연화 폐하의 관심법은 사정이 없습니다. 아십니까, 아버님? 거기에 걸려들면 살아 남지 못한다 이말입니다.
강장자 그 이전에 죽을 수도 있사옵니다.
모두들 ........?
강장자 폐하는 정상이 아니시옵니다. 그 놈의 관심법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앞으로도 죽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살아 남고자 요즘 바쁘게 움직이는 것 뿐이옵니다.
연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시는 것이옵니까?
강장자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옵니다. 아지태 그 사람만이 우리를 도울 수가 있사옵니다. 태자마마가 별탈 없이 폐하의 뒤를 잇는 일을 준비하고 있사옵니다.
연화 (충격) 아버님.....?
강장자 그저 조용히 두고만 보시오소서. 황후마마는 가만히만 계시면 되옵니다. 지금 폐하께서 어찌 되실 지는 아무도 모르옵니다. 그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말이옵니다. 저 독사같은 내원에게 죽거나 아니면 폐하에게 죽거나..... 우리는 잘 못하면 그렇게 죽사옵니다. 눈치 없는 이 늙은이도 그것을 아옵니다. 그래서 살아보고자 발버둥치는 것이옵니다, 황후마마.
연화 부탁이옵니다. 당장 멈추시어요. 큰 일 납니다. 잘못하면 우리 어린 태자들까지 다 죽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아버님?
강장자 아, 글세 두고만 보시라니까요, 황후마마.
백씨 .....(어쩔줄 모르고) 아이구, 도대체 뭐가 뭔지.....
씬 9 아지태 집 외경
씬 10 동 집 사랑
아지태와 입전, 신방에 이어 능달, 기전이라는 새 인물들이 함께 해 있다.
아지태 (입전에게) 믿음직해 보이네 그려. 이름이.....
능달 능달이라 하옵니다.
기전 기전이라 하옵니다.
입전 이번에 병부에서 새로 순군부라는 직제가 생겼사옵니다. 아마도 그곳에서 임장군과 함께 일하게 될 것이라 들었사옵니다.
아지태 하하하. 그 직제를 내가 폐하께 주청한 것일세. 앞으로 순군부 뿐만 아니라 조정의 많은 형식이 바뀔 것이야. 그래야 그 틈새로 우리 사람들이 다시 한번 대거 이동할 수가 있네 그려.
입전 알고 있사옵니다.
아지태 이번에 병부의 직제가 바뀌면서 그 요직을 틀어쥐어야 하네. 그래야 만약에 어떤 사태가 오더라도 우리는 해낼 수가 있는 것이야.
입전 예, 아학사 어른.
아지태 큰 일을 하려면 군을 장악하지 않으면 안돼. 지금 내원이 저렇게 끄떡없이 버티고 있는 것도 실은 군을 장악했기 때문이야.그리고 이보게, 신방.
신방 예, 나으리.
아지태 왕건이가 시중 자리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고 하였던가?
신방 그 소문이 은밀히 퍼지고 있다 하옵니다.
아지태 (한참 만에) 곤란한 일이로군. 시중이란 원로의 자리야. 왕건이가 그 자리에 앉기는 너무 젊지 않은가? 곤란하지. 시중이라니....?
능달 사실 그 자리는 나으리께서 앉으셔야 마땅하지 않사옵니까?
아지태 사실이야. 나나 강장자가 적격이지. 이래서 폐하께서는 그 속을 가늠할 수가 없는 분일세. 정신이 좀 이상한 듯 하다가도 어떤 때 중요한 일 처리를 하는 걸 보면 전혀 빈틈이라고는 없으시단 말이야.
기전 소인들이 알기로는 결국 왕장군도 언젠가는 우리의 적이 될 사람이 아니옵니까?
아지태 그럴 것이야. 천지가 개벽하고 이 나라가 뒤집힐 때가 되면 제일 먼저 제거해야 할 인물이 될 것이야.
모두들 ...........?
신방 임장군이 정주로 갔다 하옵니다. 왕건 장군을 맞으러 말이옵니다.
아지태 그럴 것이야. 폐하께서는 도성에서 개선군들을 맞으신다 들었네. 그렇다면 정주까지는 누군가가 다녀와야 하는데 임장군이 간 모양이구먼. 허허, 그건 다 임장군이 순군부에서 낭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책임을 맡아 가게 된 것이야.
입전,신방 그럴 것이옵니다.
아지태 (도리질) 시중이라.....왕건이 시중이 된다.....? 아니되지. 그래서는 아니되지. 모르긴 몰라도 내원도 결사적으로 반대할 것이야. 그가 시중이 되면 우리 계획은 다 엉망이 되어 버려....아니되지....
씬 11 정주 포구(아침)
배에서 막 내리고 있는 왕건일행들이 보인다. 왕건, 복지겸, 태평, 능산들이 수행군사들과 함께 내리고 있고, 천부장이 군사들을 동원하여 수달을 내리고 있다. 임춘길이 포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군례로 맞는다.
임춘길 어서오시오소서, 총사. 소장은 순군부 낭장 임춘길라 하옵니다. 폐하의 영을 받들어 장군을 영접하러 나왔사옵니다.
왕건 오, 반갑소이다. 예전에 몇 번 뵌 적이 있지 않소이까? 이번에 낭장이 되셨구료.
임춘길 그러하옵니다, 장군.
왕건 자, 가십시다.
임춘길 수달이라는 포로를 끌고 왔다고 들었사옵니다만은...(보다가) 아하, 바로 저 자이옵니까? 하하하, 아주 대단하게 생겼사옵니다. 폐하께 더할 나위없는 큰 선물을 가져 오셨사옵니다. 허허허....자, 얘들아 장군들을 뫼시어라.
군사들 예.......
일행들은 그렇게 가기 시작한다.
씬 12 그 길
왕건이 가며 복지겸에게 묻는다.
왕건 순군부라고 하였는데...... 병부가 바뀐 것이오이까?
복지겸 아니올시다. 병부는 앞으로 군사의 행정을 맡아보는데 그치고 순군부는 군사지휘권을 맡게 될 것이외이다. 곧 다 아시게 될 겝니다.
왕건 그렇소이까? 그렇다면 저 임장군도 대단한 실세인가 봅니다?
복지겸 하하하, 아학사가 추천한 장수이니 그렇다고 봐야지요.
해설 순군부, 곧 마진에서 태봉으로 바뀌는 나라이름과 더불어 생겨나는 군부의 새로운 직제이다. 궁예는 병부가 수많은 전쟁을 치르는데 있어 원활하게 그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보는 동시에 황제의 유일한 힘이라 할 수 있는 병권을 직접 통제하기 위하여 이 순군부 제도를 새로 만들었다. 이른바 강력한 통치력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제도 속에 아지태의 사람들이 벌써부터 포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순군부는 곧 광평성과 내봉성에 이어 서열 제 3위에 해당하는는 높은 부서로 자리를 잡는다.
임춘길 소장도 군인이지만 참으로 감축드리옵니다. 그 어려운 나주 해전을 대승리로 이끄시다니요? (수달 가리키며) 저렇게 큰 선물까지 가져오시고 말이옵니다. 허허허.
능산 (보다가) 비록 포로이기는 하나 훌륭한 장군이오. 막 대해서는 아니된다고 생각합니다.
임춘길 아하, 그렇게 되었는가요? 그렇다면 유감이올시다. 하하하. 그래도 포로는 포로가 아니겠습니까? 자, 어서 가십시다.
씬 13 왕건의 집 외경
씬 14 동 집 사랑
유씨, 수인이 왕신, 장수장과 함께 있다.
유씨 폐하의 영이 내리셨다구요?
왕신 예, 형수님.
장수장 벌써 순군부의 군사들이 주군을 맞으러 정주에 내려갔사옵니다. 이틀 후면 이 철원에서 보시게 될 것이옵니다.
수인 헌데 나주 형님은 아니 오신다니, 어쩐 일이옵니까?
왕신 이번에 형님이 오시는 것은 아주 오시는 것이 아니라 잠시 다녀가시는 것으로 아옵니다.
유씨 그러실테지. 아직까지 나주에서는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왕신 그러하옵니다. 지금도 백제의 왕이 물러가지 않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하옵니다.
수인 어찌되었든 서방님께서 오시옵니다. 우리도 준비해야하지 않겠사옵니까?
유씨 왜 아니겠는가? 함께 나가 보세나.
장수장 장군 임춘길이라는 사람이 폐하를 대신하여 정주까지 갔사옵고, 도성에서는 폐하께서 궁성 밖에 나오시어 맞으신다 하옵니다. 이미 그 준비들로 도성이 부산하옵니다.
수인 하지만 나주 형님께서 아니 오시니 섭섭하옵니다, 큰형님.
유씨 그곳에서 할 일이 좀 남은 모양이지. 곧 뒤따라올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자네는 나주 아우 이야기만 나오면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네 그려.
수인 아, 아니옵니다, 큰형님.
유씨 호호호, 사람 하고는.... 우리끼리는 긴장하지 말게. 다 함께 어우러져 집안을 편안히 해야지. 아니 그런가?
수인 예, 형님.
그런 유씨의 따뜻한 미소에서...
씬 15 나주 관아 외경
씬 16 동 관아 안
다련군과 오씨가 차를 마시고 있다.
다련군 왕장군이 지금쯤 철원에 들어가고 있겠구나?
오씨 그럴 것이옵니다.
다련군 기왕이면 너도 함께 갈걸 그랬나보다.
오씨 말씀드리지 않았사옵니까? 소녀가 이곳에 남아서 좀더 사정을 살피고 서방님을 도와드려야 한다고 말이옵니다.
다련군 하여간 너는 못 말릴 아이다. 이 아비가 못 믿어워서 네가 직접 확인해 보겠다는 것이 아니냐? 이런...쯧쯧...
오씨 호호호,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이 나주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옵니다. 우리 마진국이 이곳을 장악하고 있는 한 백제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게 되어 있사옵니다. 그만큼 전략적 요충지가 아니겠사옵니까?
다련군 너는 이제 왕씨 집안의 여인이다. 그 집안의 며느리로써 잘 살면 되는 것이야. 헌데 너는 마치 왕장군 휘하의 장수들처럼 살려고 하는 구나. 너는 장수가 아니야.
오씨 호호호, 아버님, 서방님 일이 곧 소녀의 일이옵니다. 안밖을 따질 게 무엇이 있겠사옵니까?
다련군 그래, 그래, 알았다. 그만 하자꾸나.
오씨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옵니다.
다련군 뭐가 말이냐?
오씨 지난 번에 병부령 복지겸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 걱정이 되옵니다. 그 시중 이야기 말이옵니다. 폐하께서는 서방님을 시중에 앉히시려고 하신다 하지 않았사옵니까?
다련군 그만한 인물이 되니까 그런 얘기가 나온 것이 아니겠느냐?
오씨 그렇기는 하옵니다만은 너무 빨리 세상의 이목이 서방님께 집중되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다련군 그것이 왜?
오씨 (사이) 왜라니요, 아버님? 서방님이 누구시옵니까?
다련군 음....?
오씨 하늘로부터 삼한을 구하고 성인이 되실 분이라 하시었사옵니다.
다련군 .........?
오씨 시중 다음 자리는 황제이옵니다. 그것이 때 맞추어 이루어져야 하는데 느닷없이 이야기가 오가고 있사옵니다. 서방님을 헤치려고 노리는 사람이 많사옵니다. 이럴 때에 시중이라니요?
다련군 딴은 그렇기도 하겠구나.
오씨 철원은 지금 좋지 않은 바람이 너무도 거세게 불고 있는 곳이옵니다. 서방님께서 시중자리에 앉으실 때가 아니옵니다, 아버님.
다련군 글세다.....
오씨 지금은 자리에 연연해서는 아니될 때이옵니다. 이대로 잠시 이곳에 계시면서 거센 바람을 피하는 것이 좋을것이옵니다.
끄떡이는 다련군의 모습에서.....
씬 17 동 관아 일각
김언과 장군들이 모여 있다. 배현경, 홍유, 왕식렴, 염상, 김락 등이다. 그들은 모두 심각하게 지형도를 보고 있다. 영산강을 경계로 하여 바다에서 금성산성에 이르기까지 양군의 대치 현황이 화살표로 마주해 있다.
김언 견훤왕은 아직도 무진주 성에서 군사들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조용히 물러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배현경 맞아요. 물러가기는커녕 이쪽을 재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소이다.
홍유 그렇소이다. 군사를 전진배치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쪽으로 아주 바짝 와 있어요.
염상 지난 번에도 말하였지만, 견훤왕과 수달은 형제간이라 합니다. 의형제라는 것은 피를 나눈 친형제보다 더 강한 법입니다. 견훤왕은 반드시 다시 공격해올 것입니다.
김락 하지만 백제의 수군은 전멸되었습니다. 바다 쪽에서는 그 세력을 잃었어요. 무슨 힘으로 우리를 공격하겠습니까?
왕식렴 그렇지가 않습니다. 비록 백제군이 해군력은 잃었으나 우리가 수달장군을 철원으로 압송하면서부터 더 큰 적개심이 생겼을 것입니다. 전쟁에 있어서는 정신력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저들이 죽기로 온다면 이 전선은 다시 어려워질 것입니다.
배현경 옳은 말씀이외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더 철저하게 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왕총사가 오실 때까지는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김언 그렇습니다. 사실 저들은 왕총사를 몹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 백제해군이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은 것도 우리보다는 왕총사를 노리고 있다가 당한 것입니다. 지금 총사께서 아니 계신 것을 저들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긴장해야지요.
씬 18 무진주 성
동 성루에서 견훤이 제장들과 함께 성밖의 군대가 이동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다. 성을 공격하는 온갖 장비들과 기마대, 보군 공병들의 이동이 끝없이 부산해 보인다. 그들을 인솔하는 장수들로 지훤, 최필, 애술들이 어울려 지나치고 있다.
신덕 폐하, 나이 들고 늙은 병사들을 모두 교체하여 젊은 장졸들로 바꾸었사옵니다.
견훤 (끄떡인다).....
신덕 선봉에 설 기마대를 보강하고 마군을 보강하고 그 뒤로 적의 성문을 부술 공병대가 추가로 투입되었사옵니다.
견훤 그래, 한 번 전쟁에 진 군사들은 의욕이 떨어져서 제대로 임무를 수행할 수가 없어. 잘한 일이야. 병력이 전부 얼마나 되는가?
추허조 삼천 오백이옵니다.
견훤 이만하면 됐어. 적군도 줄잡아 삼천 밖에 안돼.
추허조 그렇사옵니다. 더 이상 꾸물거릴 필요가 없사옵니다. 공격령을 내려주시오소서, 폐하.
최승우 서둘러서는 아니됩니다. 적은 사기가 올라 있어요. 이럴 때에 공격하는 것은 아주 위험합니다.
능애 그러나 어차피 해야 할 공격이올시다. 폐하의 뜻이 그러하십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켜만 보자는 것입니까? 이러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최승우 그렇다고 무모한 공격을 할 수는 없소이다.
신덕 그렇사옵니다. 공격은 곧 기회이옵니다. 기회가 포착되지 않고서는 공격을 할 수가 없사옵니다. 헤아려 살피시오소서, 폐하.
공직 신도 또한 동감이옵니다. 우리가 적군을 보고 있듯이 적군 또한 우리를 보고 있사옵니다. 좀 더 기회를 살피시오소서, 폐하.
추허조 왕건이가 철원으로 돌아갔다 합니다. 오히려 이럴 때가 기회이지 언제 또 다시 좋은 때를 기다린다는 것입니까? 아니 그렇소이까?
최승우 우리가 이곳에서 다시 전쟁에 돌입하면 저 북쪽에 상주가 위험합니다. 전 전선을 충분히 점검하고 시작을 하셔야 하옵니다, 폐하.
견훤 (그제서야) 모두 다 옳은 말이야. 나도 다 알아. 하지만 말이야. 나는 분명 이곳 금성을 다시 탈환하겠다고 하였어. 그래 기회도 보아야겠고, 저 북쪽의 상주도 지켜야겠지. 하지만 말이야, 파진찬.
최승우 예, 폐하.
견훤 그대는 우리 백제국에 제일 가는 군사야. 군의 전략을 짜고 지휘하는 군사말이야. 방도를 찾아보아. 저 금성을 공격할 수 있는 방도를 찾으라는 말이야. 알겠는가? 나는 지금 급해. 이 가슴이 벌벌 끓고 있어. 이 가슴이 말이야. 알겠는가, 파진찬?
최승우 (한숨) 예, 폐하.
견훤 빠를수록 좋아. 곧 공격할 수 있도록 방책을 내놓으라는 말이야. 알겠는가, 파진찬?
최승우 예, 폐하.
견훤 수달이가 끌려갔다고 하였어. 내 아우 수달이 말이야. 그런데 일국의 황제라는 이 형이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어. 이럴 수가 있다고 보는가? 그대들은 모두 어찌 생각하는가? 사내들끼리 목숨을 걸고 형제를 약속하였어. 그 형제가 지금 죽음 속으로 끌려가고 있어. 그런데도 전투가 되니 안되니 따지고들 있어. 그대들은 모두 어느 나라 군대인가? 누구의 군대인가 말이야?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빨리 방도를 찾아 내. 빨리 말이야. 상주는 이찬 능환이와 태자를 보내도록 하게.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이쪽 전선에 투입을 해. 알겠는가, 파진찬? 그렇게 해서 전략을 짜보아.
최승우 예, 페하.
견훤 서두르란 말이야, 서둘러!
최승우 예, 폐하.
격노한 견훤의 얼굴에서.....
씬 19 백제 완산주 황궁 외경
씬 20 동 황후전
박씨, 고비, 박영규, 능환, 신검이 모여 있다.
박씨 그렇게 당하고도 또 공격을 한단 말입니까? 또요?
박영규 황후마마, 전쟁이란 그런 것이옵니다. 당했다고 물러나서는 아니되는 것이옵니다. 다시 탈환을 해야지요.
고비 그래도 그렇지. 그 많은 배들이 모두 불타버리고 또 그렇게 많은 군사가 죽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능환 ........
신검 전쟁은 그래도 계속되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저 금성은 꼭 되찾아야 할 땅이옵니다. 우리 백제로써는 그곳이 외국과 교통하는 유일한 통로이옵니다. 헌데 그곳을 빼앗겼사옵니다.
박씨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데 또 싸운다니...아니 그렇습니까, 이찬?
능환 ........ (한숨) 모두가 파진찬 그 사람 때문이옵니다. 이번에는 아주 결정적 실수를 하였어요. 왕건이와의 정면 충돌에서 아주 철저하게 ?했사옵니다. 치욕적인 전투였사옵니다. 그 때문에 폐하께서 저렇게 격노하고 계시는 것이옵니다.
박영규 어쨌든 폐하께서는 다시 공격을 하실 것이옵니다. 그리고 지금 북쪽의 상주일대가 비어있사옵니다. 머지 않아 우리도 그쪽으로 가라는 영이 내릴 것이옵니다. 온 나라가 비상시국이옵니다.
박씨 그렇다면 태자도 상주로 가야 하는가?
박영규 십중팔구 폐하께서 그런 영을 내리실 것으로 보여지옵니다. 그럴 수밖에 없고 말이옵니다.
능환 그렇겠지. 아무튼 너무 큰 타격을 입었어.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이야.
도리질 하는 능환의 표정위로 아자개의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씬 21 사벌주 성 외경
씬 22 동 성안
아자개가 허리를 잡으며 웃고 있다. 계모와 대주, 용개, 보개 형제들도 함께 있다.
아자개 (웃으며) 너희들도 들었느냐? 견훤이가 말이다. 거기 금성에서 또 망신을 당했다는 구나. 그냥 왕건이만 만나면
오금을 못 피는 모양이다.
대주 .......(불만)
아자개 기가 막히다. 우리가 그 혼례식에 가서 보지 않았어? 그 왕건이라는 장수 말이야. 얼마나 대단해?
계모 그러게 말이옵니다. 싸움에는 그토록 귀신같은 장수인데 생긴 것은 얼마나 훤하고 또 예의가 바르옵니까?
아자개 그래요, 부인. 바로 그것이오. 사람이 싹수가 있어 보였어. 모든 것의 근본은 예의에서 출발하는 것이야. 예의가 바르면 근본이 바르고 근본이 있으면 모든 것에 통달하게 되어 있어. 견훤이가 진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야. 그 아이는 근본이 없단 말이야. 근본 말이야.
대주 그만 하시오소서, 아버님. 도대체 왕건이가 아버님의 자식이옵니까, 아니면 견훤오라버니가 자식이옵니까? 누가 아버님의 자식이옵니까?
아자개 얘가 또 왜 이러나? 얘가 왜 이래...?
대주 금성 전투는 오라버니께서 바람을 잘 못 만나 ?하신 것이라 들었사옵니다. 그것을 어찌 비웃고 계시옵니까? 정말 부자간의 연을 끊으신 것이옵니까?
계모 대주야, 그만 하거라. 그만 좀 해라. 도대체 네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겠다. 넌 도무지 내 자식 같지가 않아. 네가 그렇게 견훤이를 두둔한다만은 견훤이가 그것을 알 것 같으냐? 천만의 말씀이다. 그걸 좀 알아라, 이 미련한 것아.
용개 그렇다, 대주야. 어찌되었든 금성에서 두 번씩이나 백제는 철저하게 패했다. 그것도 같은 장수에게 말이다. 그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보개 정말 생각할수록 대단하옵니다. 이러다가 과연 백제가 마진국을 상대로 해서 언제까지 버틸 것인지 염려가 되옵니다.
대주 (버럭) 백제국이라니? 보개야, 지금 남의 말을 하고 있느냐? 백제가 남의 나라이냐? 네 형의 나라이다. 네 형이 그곳에 황제다. 어찌 집안이 모두 이럴 수가 있습니까? 생각할수록 답답하고 한숨이 나옵니다. 세상이 얼마나 우리 가족을 손가락질 하는 지 아시옵니까? 정신들 차리시오소서. 이 사벌주는 백제의 땅이옵니다.
대주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아자개가 혀를 찬다.
아자개 닮았어. 아주 견훤이하고 꼭 닮았어. 에잉......
계모 누가 아니랍니까? 못 말리는 아이입니다, 정말......
용개 그런데 아버님,
아자개 응, 왜 그러느냐?
용개 그 왕건 휘하에 있던 장수 박술희 말이옵니다.
아자개 (번쩍해서) 박술희? 그래 박술희가 왜?
용개 다시 상주전선에 와 있다 들었사옵니다.
아자개부부 (동시에) 박술희가 왔어?
씬 23 상주 전선
낙동강 전선이다. 유금필과 박술희, 윤신달, 전이갑 형제가 모여서 길게 뻗어 나가고 있는 낙동강을 보고 있다.
윤신달 나주에서 왕건장군이 대승을 거둔 이후 이 낙동강 전선까지 조용해졌습니다.
전이갑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와 대치해 있던 백제의 추허조 장군도 나주로 갔다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곳에서 다시 한 번 큰 전투를 벌릴 모양입니다.
유금필 그럴 것입니다. 견훤왕이 그냥 당할 사람이 아니올시다. 분명 다시 공격을 하겠지요.
박술희 왕건형님께서 지금 철원으로 가셨다 들었는데 이럴 때 다시 전투가 벌어지면 낭패가 아니오이까?
유금필 허허, 그런 말씀 마시게. 그래도 역전의 명장들이 모두 현재 나주에 가있어. 그렇게 호락호락 당할 장수들이 아닐세.
전의갑 아무튼 이곳은 한동안 편안하게 생겼습니다. 모두들 시선이 지금 나주로 가있으니까 말입니다. 이보시오, 박장군.
박술희 예, 전장군.
전의갑 이렇게 여유가 좀 있을 때에 사벌주 성에 다녀오시지 그러십니까? 대주낭자말입니다.
박술희 글세올시다. 그게 모두 마음과 뜻대로 되지 않아서 말씀이오.
모두들 ......(웃음)
유금필 이보게, 술희아우.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게. 전선의 사정이란 늘 변하는 것이야. 여기 이렇게 자주 오게 되는 걸 보면 어떻게든 인연이 이루어질 것 같아 보이네 그려. 기다려 보게.
박술희 글세옵습니다, 형님.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지, 아이구....이 속을 누가 알까? 우리 큰 형님이 아시는가, 아니면 폐하께서 아실 것인가.......?
씬 24 철원 황궁 외경(밤)
씬 25 동 황궁 대전 복도
내관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전의가 아직도 서성거리고 있다. 그때 저만큼 황후 일행이 오고 있다. 연화와 제조상궁, 진내관, 슬이 들이다. 대전내관과 전의가 예를 올린다.
대전내관 황후마마가 아니시옵니까? 이 새벽에 어인 일이시옵니까?
연화 폐하께서 환후가 있으시다 들었네. 그대는 전의가 아닌가? 왜 여기에 있는 겐가?
전의 예, 그건 저.......
연화 폐하께서는 괜찮으신가?
대전내관 황후마마, 폐하께오서 누구든 대전에 출입을 금하고 계시는 고로 이렇게 밖에 있는 것이옵니다.
연화 편찮으시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대전내관 그렇기는 하오나 폐하께서 극구 괜찮다하시며.....
연화 내가 뵈어야 겠다. 아뢰어라.
대전내관 예, 황후마마. (큰소리로) 폐하, 황후마마께서 납시었사옵니다.... 폐하, 황후마마께서 납시었사옵니다.
씬 26 동 대전 안
궁예가 홀로 앉아 있다. 진땀을 흘리고 있다. 아프다. 통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대전내관의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다.
대전내관 (E) 폐하, 황후마마께서 납시었사옵니다.
궁예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한다.
궁예 황후께서 무슨 일이신가 여쭈어라!
씬 27 동 대전 밖
연화 문후 여쭈러 왔다고 전해주시게.
내관 폐하, 문후 인사차 오셨다 하옵니다.
궁예 (E) 이미 날이 다 밝고 있다. 짐이 피곤하니 돌아가시라 전하여라. 나는 괜찮다.
연화 폐하, 신첩이옵니다. 폐하......
궁예 (E) 돌아가시오! 나는 괜찮소이다.
연화 폐하.......
씬 28 동 대전 안
궁예가 고통을 참으로 다시 말한다.
궁예 돌아가시오, 황후. 곧 날이 밝으면 왕장군이 돌아온다고 하오. 지금은 쉬고 싶으니 그때 함께 가십시다. 좀 자야 겠소이다.
궁예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고 입정에 들어간다. 자신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은 계속된다.
궁예 이겨내야 한다. 결코 내 치부를 박에 보여서는 아니된다. 나는 해 낼 수 있다. 해 낼 수 있어. 해내야해.
씬 29 동 대전 밖
연화가 허공을 보며 한숨을 쉰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것이다. 그렇게 전의를 본다.
연화 이보시게, 전의.
전의 예, 황후마마.
연화 폐하께 소용되는 약이 그리도 없는가?
전의 송구하옵니다, 마마. 신은 폐하께서 워낙 멀리하시어 그 환후의 원인조차 모르옵니다.
연화 안타까운 일이로고..... 안타까운 일이롱고......
연화는 그렇게 큰 한숨을 쉰다. 그 모습에서 길게 디졸브 되며....
씬 30 동 황궁 내원 안
아침이 밝았다. 밖에서 새소리들이 들려온다. 종간도 그렇게 앉아 밤을 새운 것이다. 그의 표정에 안타까움이 넘친다.
종간 (E) 폐하께서는 벌써 이틀째 고통으로 밤을 새우셨다. 이제는 독주도 듣지가 않으시는 모양이구나. 어찌할꼬.... 마음은 급하고 초조하신데 병마는 갈수록 더하니 어찌하실꼬......
그때, 은부의 소리가 들려온다.
은부 (E) 내원어른, 은부이옵니다.
종간 오, 아침 일찍 무슨 일인가? 들어오게.
은부 (들어와 앉으며) 왕장군이 곧 도성으로 들어온다 하옵니다.
종간 아, 참 그랬었지.
은부 폐하께서도 황궁 밖으로 납신다 하옵니다. 서두르시오소서
종간 알고 있었네 그려. 가세, 우리도.
씬 31 철원 저자 거리(아침)
왕건 일행들이 임춘길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서고 있다. 수많은 인파들이 왕건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 그 환호 소리들....... 왕건은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그 저자 거리 길을 돌아가고 있다.
씬 32 동 황궁 앞
대소신료들이 모두 모여 있다. 종간, 은부, 유천궁, 강장자, 아지태, 입전, 신방, 능달, 기전, 환선길, 이흔암, 박지윤 부자, 장자1,2, 최응, 왕신과 유씨, 수인이 장수장과 함께 보인다. 궁예가 간밤의 고통을 씻어 버린 듯 편안한 모습으로 연화와 함께 마련된 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금대, 장일이 그 옆에 보인다. 저만큼 왕건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보고 있다. 그들은 점차 가까워진다. 수달도 그 끝에 묶인 채 그렇게 서있다.
궁예 이보시오, 황후. 저기 왕장군이 오는 구료.
연화 예, 폐하.
궁예 나는 왕건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좋아. 이 나라에 저만한 보배가 어디 있겠소이까?
왕건들이 드디어 황제 앞에 이르렀다. 임춘길이 옆으로 물러나고, 왕건들이 모두 말에서 내려 부복하며 군례를 드린다.
왕건 폐하, 신 왕건 나주전투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사옵니다.
궁예 오, 어서오시게, 왕장군. 모든 것은 다 보고를 받아서 알고 있네. 그 높은 전공을 치하하는 바이네.
왕건 망극하옵니다, 폐하. 이 모두가 폐하의 위엄과 덕으로 이루어진 일이옵니다.
궁예 그렇지가 않아. 이것은 모두 그대의 공이야. 그대가 있음으로 해서 대 마진국의 위엄이 다시 한 번 천하에 드러난 것이야. 감축하네, .
왕건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가 고개를 끄떡이며 왕건과 함께 온 사람들을 돌아본다. 그러다가 문득 무표정한 수달을 발견한다.
궁예 오, 백제국의 명장이고 견훤왕이 그토록 아꼈다는 장수가 저자인가?
수달 ........
궁예 견훤왕에 의형제라지? 이름이 수달이라고 하였든가?
왕건 그러하옵니다, 폐하. 비록 적장이기는 하오나 그 의리가 두텁고 또한 용맹하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수이옵니다.
궁예 그래? 그토록 이름이 있는 자인가? (사이) 보거라! 네가 수달이냐?
수달 ......?
궁예 왜 대답이 없느냐, 벙어리이냐?
수달 ......
모두들 .......
궁예 생긴 것은 아주 우람하고 독하게 생겼구나. 마치 표호하는 범 같아. 내가 들으니 너는 물도 마시지 않고 곡기조차 다 끊었다지? (사이) 이미 죽기를 작정하였다 하던데 사실이냐?
그래도, 수달은 표정이 없다. 그저 눈을 감고 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을 본다. 궁예 옆에는 큰 화로 불이 벌겋게 타오르고 있다.
궁예 암, 그래야지. 자고로 충신이란 그래야 해. 허지만 말이야. 그래도 나는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어. 수달이 네가 살 수 있는 길이 있다 이 말이다.
수달 .......
궁예 그래도 전혀 반응이 없구나? 좋다. 나에게 절을 한 번 한다면 그것으로써 너의 목숨을 살려 주마. 그게 싫다면은 여기 기름 동이가 하나 있다. 이것을 뒤집어쓰고 저 불 속으로 가야 한다. 자, 어떻게 하겠느냐?
수달 (그제서야 미소) 참으로 고맙소이다.
궁예 고맙다?
수달 오래 욕보이지 않고 죽을 수 있게 해준다니 얼마나 고맙소이까?
궁예 뭐라? 그럼 기름을 뒤집어쓰고 불 속으로 들어가겠다 그말이냐?
모두들 .........?
수달 불 속이 아니라 그 어디라도 들어가겠소이다. 사내의 지조를 지키게 해주는 데야 무엇을 망설이겠소이까?
그러자, 궁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얼굴이 굳어진다.
궁예 허허허, 네가 그렇게 대단하단 말이냐? 불 속을 들어가겠다고? 기름을 뒤집어쓰고 불 속에 들어가? 여봐라!
내군들 예, 폐하.
궁예 참으로 대단한 장수가 아니냐? 기름 동이를 가져오거라. 그리고, 불을 좀 더 크게 지펴라. 수달이를 영광스럽게 죽게 해 줄 것이니라.
내군들 예, 폐하.
궁예 허허허, 나는 말이야. 강한 것을 보면 참지를 못해. 알겠느냐, 수달아? 알겠느냐고 물었다.
수달 ........
왕건 ........
궁예 (침을 뱉는다) 더럽다, 이놈아. 네 놈의 절개가 그토록 크고 대단하단 말이냐? 얻 두고 보자구나. 틀림없이 살려 달라고 내게 빌게 될 것이니라. 더러운 백제놈 같으니. 뭣들 하느냐? 기름을 껴 얹어라.
금대 예, 폐하. 얘들아. 기름을 끼얹어라.
내군들이 대답하며 가서 준비된 기름을 껴 얹는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본다. 수달이의 온몸에 기름이 흐르고 있다.
궁예 불을 지펴라! 아주 크게 지펴라.
대답소리들과 함께 불이 지펴진다. 수달이 타오르는 불을 보고 있다. 수달과 궁예의 시선이 부딪치는 그 모습에서.....
< 93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