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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생명, 그들과 더불어 살기(1)
날짜 :
장소 : 푸른교육공동체 사무실
1. 유기농업실천에서 유기적 삶으로...
팔당상수원 유역에서 유기농업으로 10여년동안 유정란과 돌미나리를 생산하고 있는
나는 ‘유기농업’이란, 단지 농약과 화학비료를 안 쓰고 농사짓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유기적 삶’으로 바꾸어,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과 바람직한 관계를 맺으며 더불어 사는 그야말로 ‘생명살림운동’이라고 배워왔고 그렇게 믿어왔습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나라의 유기농업은 크게 확장되고 대중화 단계에 이르렀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일부 몇몇 생산자와 소비자들만이 ‘삶 전체를 유기적 삶’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을뿐, ‘생명살림운동’으로의 승화까지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유기적 삶’이란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다양한 생명체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죠. 사람은 자기가 의식하던 않던간에 우주자연의 한 구성원으로서 뭇 생명체들과 연결돼 있고 모두어 살고 있죠. 다양한 이웃 생명체들로부터 도움도 받고, 영향을 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과 ‘바람직한 관계를 맺으며 조화를 이루어’ 살고 있을 때, 이러한 삶을 ‘유기적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유기적 삶의 모습보다는 충돌하고 갈등하는 삶의 모습을 많이 겪게 되고, 또 보게 됩니다. 이러한 조화롭지 못한 삶으로 인해 우리는 고통을 느끼고, 불행해지고, 그러다간 결국 더불어 사는 삶을 아얘 포기하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2. 세상은 다양한 생명들이 더불어 사는 곳.
우리는 우주자연에 다양한 생명체들이 각각 나름의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거창하게 우주자연까지 확대할 필요도 없이 가까운 우리 주변만 둘러보아도, 누구나가 나와 다른 점들이 많고 사는 모습 또한 천차만별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낳고 기른 자녀마저도 생김새는 물론, 생각, 취미, 먹는 것 등 너무나 많은 점들이 다르다는 걸 발견하게 되고 나날이 겪고 삽니다.
2년여 세계의 다양한 공동체들을 순례하면서 저는 다양한 사람들과, 제도, 풍습 등을 겪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식사 후 ‘트림’하는 것을 거의 문제 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음식을 맛나게 먹었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남 앞에서 ‘트림’을 하면 교양없는 사람으로 치부합니다. 그들은 식사때 ‘쩝쩝’ 소리를 내거나, ‘후루룩’ 소리 내는 것도 대단한 실례로 여깁니다. ‘방귀’ 꾸는 것도 엄청난 실례가 됩니다. 그러면서 식탁에서 크게 소리내며 코푸는 건 별로 문제삼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도 아시겠지만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는 오른 손으로 식사를 합니다. 또한 대변을 본 다음에 휴지를 쓰지 않고 항문을 물로 씻어 내는데 이때는 왼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나는 두 달정도 인도의 달릿공동체들에 머물면서도, 늘 포크와 휴지를 갖고 다녀야 했습니다. 손으로 밑을 닦거나 식사해 본 경험이 거의 없는데다, 그러한 습관은 ‘비위생적’이고 ‘야만스런 문화’라고 잘 못 배워왔기 때문임을 나중에야 깨닫게 됐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들의 생활습관이야말로 자연 친화적이고 자원절약형 생활이더군요. 인도 인구가 10억이라는데, 이들이 포크와 나이프 그리고 휴지를 안 씀으로해서 그만큼 철강, 텅스텐, 나무, 공업용 물이 절약되지 않겠습니까?
네델란드 서쪽 바닷가에 위치한 ‘휴메니버서티 공동체’는 알코올 혹은 마약중독자들과 우울증, 스트레스 등 각종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그리고 그러한 치료사들을 양성하는 공동체로 꽤나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이 공동체에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50여명의 멤버들과 함께 한 달동안 생활하면서 나는 많은 경험과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고등학교 체육교사였다는 ‘브렌다’는 28세에 아버지를 병으로 잃은 후 25년간 죽음에 대한 공포와 외로움으로 고통받고 있다가, 치료를 위해 휴메니버서티를 찿아왔더군요. 유기농업 농장으로 일을 하러 왔길래 조금 떨어진 곳에 일거리를 주어도 금새 내 옆으로 다가와 외롭고 무서워서 일을 못하겠다고 합니다.
젖소 50여두와 양 150마리를 유기농법으로 기르고 있는 피터크라스는 43세된 노총각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28살때 이 농장을 물려받아 지금까지 피터 혼자서 그 넓은 농장을 관리하며 살다보니 남들 앞에, 특히 아가씨들 앞에만 서면 부끄럼을 심하게 타고 말을 더듬게 돼 아직까지 연애한번 변변히 못했답니다. 피터의 초청으로 그의 농장에 사흘간 머물렀었는데, 제일 가까운 이웃이 500미터나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흘에 한 번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데, 다름아닌 사흘에 한 번씩 찿아오는 집유차(우유 수거하는 차) 운전수입니다. 매일 빵 쪼가리로 끼니를 때우고 어쩌다 20여km나 떨어져 있는 타운의 레스토랑으로 으로 나가 식사를 하곤 하더군요. 그와 머물며 두어차례 한국음식을 요리해 대접했더니, 다른데 가지 말고 더 있어 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유럽 사람들 중 정신질환자가(알코올, 마약중독자도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볼 수 있겠지요.) 많은 이유는 아마도 외로움 때문일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3. ‘다름’은 틀린게 아니라 아름다운 것,
그리고 다른 존재와 더불어 살아야 할 필요조건
더불어 사는 게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분들이 다른 사람 혹은 생명체가 갖고 있는 나와 ‘다른 점’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럴 수 있을 겁니다. 나와 익숙하지 않은, 친숙하지 않은 ‘다른 점’들은 사람들을 당혹케하고 때론 두렵게 합니다.
영국 퀘이커센터에서 함께 머물던 인도네시아 목사로부터 전해들은 일화입니다. 19세기중엽 인도네시아 북부 밀림속 마을 원주민들이 두 명의 네델란드 선교사를 잡아 먹은 일이 발생했답니다. 당연히 백인들은 그 원주민들을 미개하고 무시무시한 식인종으로 치부해 버렸겠죠. 그럼에도 네델란드 선교단체에서는 두 명의 선교사를 다시 이 마을로 보냈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원주민들은 이 선교사를 보고는 모두 놀라 그 앞에 절을하고 제물을 갖다 바치고 난리법석이었답니다. 결국 이 마을은 모든 주민들이 기독교를 믿게 됐고 지금까지도 기독교 신앙이 돈독한 마을로 전해오고 있답니다. 원주민들은 처음 선교사들이 찿아왔을 때, 그들이 사람일거란 생각을 꿈에도 안 했다는 겁니다. 왜냐면 얼굴이 하얀 동물을 전혀 본 적이 없으므로, 신이 자기들을 어여삐 여겨 보낸 맛난 동물쯤으로 여겼다는 거지요. 그래서 그들을 잡아 잔치를 뻑쩍지근하게 벌였던 거지요. 그런데 얼마지나지 않아 자기들이 분명히 잡아 먹은 하얀 동물들이 다시 나타나자, 이번에는 놀라 이들은 분명 ‘신성한 그 무엇’, 아마도 신이거나 신의 사자 정도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지난번 잡혀 먹힌 이들과 지금 찿아 온 이들이 다른 사람일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던 거지요.
그렇습니다. 나와 익숙치(친숙치) 않은 ‘다른 것’이나 ‘다른 점’은 사람들을 당혹케 합니다. 그리고 두렵게 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내 경험에 비춰보면 이런 점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혹은 몇번 마주치다 보면 곧 익숙해지고 거부감도 없어지게 됩니다. 서로 다른 점들이란 뒤집어 생각하면, 내가 부족한 걸 상대가 많이 갖고 있는 것이거나 그 반대일 수 있는 거지요. 그러니 내 뛰어난 점을 부족한 상대에게 메워주고 나의 부족한 점을 상대로부터 도움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산을 멀리서 바라보면 단지 ‘산’이란 총체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뜯어보면 산은 다양한 나무들, 크고 작은 돌, 바위, 물, 뱀, 곰, 지렁이 등 다양한 생명체들의 ‘모둠’임을 알게 됩니다. 각각의 생명체들은 서로를 이용하고 도우면서 조화를 이루어 ‘산’이란 또 다른 ‘모둠살이’를 이루고 있는 거지요.
오히려 나는, 다른 사람과 내가 같은 욕구를 갖고 있고, 그로 인해 그 욕구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갈등이 발생할 때 남들과 더불어 살고, 무엇을 함께 한다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같은 욕구들 사이의 절충과 타협이 어렵다는 이야기지요.
우리는 생명체이기에 다양한 욕구들을 갖고 있고 그 욕구를 채우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명들이 부족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특히 자기의 생존을 위한 욕구가 방해받으면 방해하는 요소에 대해 목숨을 건 저항과 투쟁도 불사합니다. 각각의 생명체들이 자신의 욕구를 실현키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치고 발산하다보니 다른 생명체들과 충돌하게 되고, 이 충돌로 인해 고통도 아픔도 느끼게 되는 거지요. 이 아픔 때문에 우리는 충돌은, 욕구는 나쁜 것, 부정적인 것(혹은 ‘죄’)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기독교 사상에 뿌리를 둔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인간의 욕구는 ‘죄’라는 인식을 주입해 왔습니다. 신의 형상을 본떠 거룩하게 창조된 피조물인 인간의 욕구는 절제하고 금욕해야 한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래서 금욕적인 삶을 사는 성직자들이 추앙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반면,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욕구는 생명체들의 자연스런 성질, 속성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모든 생명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욕구가 부족하거나 과하면 그로인해 번뇌하고 고통받게되므로 균형을 이루는 중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중도의 삶이란 곧 조화로운 삶을 말합니다. 욕구가 이미 채워졌는데도 과욕을 부리면 주변의 생명체들과 더 큰 충돌을 하게 되고 이로인해 다른 생명체들에게 고통을 주게 되는거지요. 그리고 다른 생명체들로부터 저항을 받게 되지요.
처음 주제로 돌아가 유기적 삶, 더불어 사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다양한 생명체들과 더불어 이 우주자연 속에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 다른 생명체들이 나와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나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각각의 생명체들은 자기의 삶을 잘 영위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충돌도 있고 갈등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다양한 생명체들과 더불어 사는 조화로운 삶을 위해 ‘다름에 대한 바른 인식’과 ‘더불어 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나와 우리가 함께 행복해지는
모둠살이 만들기
1. 어느 공동체도 유토피아는 아니다!
내가 2년여 세계 여러 나라의 공동체를 순례하고 온 까닭에, 많은 이들로부터 “어느 나라, 어느 공동체가 가장 마음에 드는가?” 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이 질문속에는 공동체가 ‘유토피아(이상주의 사회)’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둠살이 이므로 어느 정도는 이상적 사회 혹은 마을을 이루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나는 똑 같은 질문을 순례중에 방문했던 공동체에 사는 멤버들로 부터도 받았다.
이런 경우 나는 비교적 간단히 대답하고 말아 버린다.
“어느 공동체도 내게는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그렇다. 방문했던 모든 공동체에서 나는 긍정적인 모습도, 부정적인 삶의 모습도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모습에서 뿐아니라, 부정적인 모습에서도 나는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다.
미국의 버지니아에 위치한 트윈옥스공동체는 내가 방문한 공동체 중 사람들이 모둠살이 하기에 더없이 좋은 제도를 갖추고 있다. 특히 이들의 노동제도는 아주 이상적이다. 모든 멤버는 한 주에 40시간의 노동을 하도록 돼 있는데, 이들은 자기의 노동시간표를 작성하면서 몇 시에 할 것인지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스스로 정한다. 예를 들자면 요즘 같은 무더위에는 아침 식사전 서늘할 때 2~3시간 밭 일을 하고, 아침 식사 후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접수된 소비자 상담(트윈옥스는 그물침대-해먹 생산공장과 유기농 두부공장이 주 사업이다)을 컴퓨터로 처리하고, 한 낮으로는 독서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고 시원한 저녁에 그물침대 생산을 두어시간 하는 식이다. 트윈옥스에는 200여종류의 일이 있어서 멤버면 누구나 다양한 일을 즐기듯 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한 가지 직업에 하루 종일 혹은 일 년 열두 달 매달리지 않는다. 개인의 다양한 특성과 평등, 자유를 존중하는 일종의 히피공동체인 트윈옥스는 그들의 설립이념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어 산다. 특히 다양한 동성애자들이 어울려 사는데, 그들의 이런 사상에 따라 트윈옥스는 다양한 세계 여러나라의 환경, 인권, 평화, 반제국주의 및 반세계화를 위한 시민단체들과 연대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당황스러웠던 것은 이처럼 훌륭한 공동체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이 별로 밝지 않고 여전히 심각하다는 것이다. 트윈옥스의 20여명을 인터뷰하다 보니 대부분이 결핍, 부자유함, 고독, 애정에 대한 갈증을 토로했다. 공동체 밖에 사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영국 남부 이스트 써쎅스에 위치한 바델부루더호프 공동체는 근본주의 기독교 공동체로(메노나이트 교단 소속으로 청교도적 삶을 추구한다) 우리 나라에 잘 알려진 공동체다. 방문하기전부터 나는 제법 많은 자료와 방문했던 사람들의 경험 글들을 여러편 읽었고, 특히 양수리 우리 집에 부루더호프의 멤버 세 명이 방문해 식사를 함께한 인연도 있었다. 방문전 글과 이들 멤버들을 통해 내가 받은 부루더호프에 대한 느낌은 그야말로 이 땅에 건설된 ‘천국’이었다.
그러나 한 달간 이 공동체 생활을 마쳤을 때, 나는 이 곳이 아무리 ‘천국’일지라도 내가 살 곳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에게는 부루더호프가 종교적 전체주의 사회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일체주의 공동체 모습으로 다가왔다. 어떤 사안에 대해 개인적 의견을 물으면 하나같이 대답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결론 지어졌다. 엄격한 청교도적 삶의 모습, 일체적 종교 제식, 삶의 구석구석을 지배하는 보수적 종교관…. 약간의 일탈도 부루더호프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다. 적어도 남들에게 보이는 자리에서는….
2. 어떻게 모둠살이가 가능한가?
1970년대 이후 유럽이나 미국인들 사이에서 수행공동체에 대한 요구나 참여는 놀라울 정도다. 힌두교, 요가, 불교 혹은 젠(‘선’의 일본식 발음) 등을 가르치고 경험하는 프로그램과 수행공동체들은 어디를 가나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인도, 태국, 일본, 중국 등을 순례한다.
서구인들이 이처럼 동양의 종교나 수행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순례중 영국 버밍험에 있는 퀘이커센터와 인도의 오로빌(폰디첼리에 소재한 명상, 생태마을), 프랑스 남부 보르도에 위치한 플럼빌리지(틱낫한스님이 설립한 불교 수행공동체) 등을 방문, 그곳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여기서 만난 파란 눈의 수행자들은 불교나 힌두교 혹은 요가의 근본 사상과 수행 자체가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나 또한 이들의 수행프로그램과 깨달음을 통해 마음의 평화도 얻고 새로운 삶의 의미와 농촌공동체에 대한 비젼도 다시금 얻게 됐다.
플럼빌리지에서 만난 틱낫한 스님은 세상의 평화를 주장하고 이를 위해 일하기 전에 먼저 자기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자신의 마음을 평화롭게 다스릴 수 있는 사람만이 남들에게 평화를 전해 줄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수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데, 우리는 수행을 통해 진정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고, 그 깨달음은 내가 나의 주인으로서 내 마음을 늘 평화롭게 만들 수 있게 해 준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깨달음이란 나와 내 주변 뭇 생명들의 근본을 알게 되는 것이고, 이들과의 바람직한 – ‘조화로운 관계 맺음’이다. 깨달음이란 게 머리로 알아지는 지식이 아닌 삶의 순간순간을 통해 나타나지는 ‘변화’와 ‘조화’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틱낫한은 수행이란 꼭 산속 암자나 수도원에서만 할 수 있는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통해 먹고 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면서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가르침은, 내가 아무리 완벽하게 만들어진 공동체의 멤버가 되어 거기에 살고 있을지라도, 내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면 행복을 느낄 수도 없고 그 공동체를 평화롭게 만드는데 기여할 수도 없다는 걸 의미한다. 반면, 내가 스스로 평화로운 마음을 만들 수 있고, 늘 맑고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면 나로 인해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얻을 것이다.
3. 우리의 모둠살이를 힘들게 하는 허깨비는 무엇일까?
중남미 사람들이 낙천적이고 인생을 즐기며 산다는 소문은 일찍부터 들어왔지만, 브라질 아마존 밀림속 ‘세오 도 마피아’ 공동체와 동부 바이아 주 산골짜기에 있는 ‘깜삐나’ 공동체에서 두 달여 생활을 통해 나는 그들의 평화로움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우선 이들의 사는 모습이 우리와 다른 건 우리처럼 ‘일’과 ‘목표’에 묻혀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개 아침 나절로 서너 시간 깔짝거리고는 오후 내 쉬다가 저녁 먹고는 어스름녘에 마을 한가운데 모여 밤새도록 춤을 즐기는 게 일상이다. 몸을 망가뜨려 가며 하루 열댓 시간씩 일하거나, 노후의 편한 삶을 위해 혹은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돈을 많이 벌어 저축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사는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이들에게는 그저 현재 이 시간 족하면 그만인 것처럼 보였다.
이 곳을 방문하기전 동남아 사람들이나 흑인, 혹은 중남미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게으르고 느려 터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었기에, 처음에는 그저 그러려니 했었다. 그런데 멕시코, 쿠바, 브라질 등의 공동체들을 경험하면서, 그들의 이런 일상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정말로 문명사회에서 바삐 사는 나와 주변 사람들이 잘 사는 걸까 하는 의문도 갖게 됐다.
대개 아프리카나 중남미, 그리고 동남아시아는 겨울이 없고 사철 무더위와 많은 비로 모든 자원이 풍부하다. 길거리고 숲이고 보도 듣도 못한 온갖 과일들이 지천으로 달려있고, 강에는 물고기가 풍성하다. 과일 먹다 싫증나면 물고기 잡아 먹으면 되고, 그것도 싫으면 사냥을 해서 고기를 먹으면 된다. 겨울이 없으니 이들은 식량을 저장할 필요가 없고(*저장 자체가 불가능하다) 여러 벌의 겨울용 외투도 필요없다. 이런 자연 조건속에서 특별한 지식교육이 필요치 않으니,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과도한 일을 할 필요도 없다. 자연속에서 뭇 생명들과 어울려 살자니 자연에 대해 잘 알면 되는데, 이는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이들과 어울려 살아보는게 가장 좋은 교육방법임을 이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는 이들에게 무기, 군대, 문명의 발달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반면 유럽은 겨울이 길고 몹시 추울뿐만 아니라 땅이 척박하다. 이런 까닭에 백인들은 예부터 목축을 하며 살아왔다. 가축들은 스스로 겨울을 견디면서 풍부한 단백질과 지방을 갖고 있는 고기, 우유 등을 인간에게 공급해 주는 식량창고이고, 따뜻한 털외투까지 만들어 주는 옷공장이기도 하다. 유럽인들은 가축을 기르기 위한 초지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부족의 부강이 결정되기에 초지 확보를 위한 쟁탈전을 끊임없이 벌이면서 살아온 민족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전쟁문화가(?) 발달되었고, 이에 기초한 문명의 발달로 14, 5세기 이후 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을 식민지화 할 수 있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백인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면서 지금은 거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강한 힘 혹은 돈을 많이 갖어야 살아남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이들은 자연 생태계는 강한 동물이 약한 짐승을 잡아먹고 사는 ‘약육강식의 전쟁터’이며,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남은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펴며 맹신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자연 생태계를, 생태계의 역사를 편견없이 보다 넓게 긴 안목으로 살펴보면 이런 논리가 모순투성이 임을 누구가 알아차릴 수 있다. 한때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이나 맘모스는 왜 멸종했을까? 그들이 누구도 견줄 수 없는 막강한 힘을 가졌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지금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목록을 살펴보면 덩치가 크고 힘이 센 것들일수록 급격히 개체수가 줄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반면, 덩치가 보잘 것 없고 연약해 보이는 생명체일수록 긴 역사와 뛰어난 적응력으로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번성하고 있다. 모기는 공룡보다 지구상에 먼저 태어나 오늘날까지 번성하고 있으며, 현재 지구상에서 무소불위의 막강한 힘을 가진 생명체인 것처럼 행세하는 인간의 목숨을 일년에 250만 이상 앗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말라리아로 매해 250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있음) 농약 등 환경오염으로 수천만명의 인간들이 각종 암에 걸려 죽어가지만, 소위 해충이라고 하는 곤충들은 나날이 번성하고 있다.
나는 공룡의 멸종 원인은 어느 날 지구에 떨어진 거대한 운석때문이 아니라, 자기보다 약한 것들을 무작정 먹어치우다 더 이상 먹을 게 없어 육식 공룡들이 초식공룡들을 먹어치우고 나중에는 같은 종족끼리 생존을 위한 사투 때문에 공멸해 버렸다고 추측하고 있다. 이런 이론은 생물학자들에 의해 이미 연구 보고 된바 있다. 유정란을 15년간 생산해 온 내 경험에 의하더라도 이런 사례는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계사 평수에 따라 일정 수 이상의 닭들이 사육되면 닭들의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질병 발생률이 높아져 폐사율이 높아지게 된다.
국가, 단체, 회사 혹은 공동체 등의 조직체도 요즘은 유기적 생명체로 보는 경향들이 있다. 즉 이런 조직체들도 자연계 생명체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 경향들을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따르면 조직이 필요이상 비대해지면 자연스레 여러가지 갈등, 분열현상들이 발발하고 결국은 분열의 길로 들어 선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그만 단체나 조직, 더 나아가 제국들의 흥망성쇄를 통해서 이런 이론이 상당히 일리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4. 희망은 어디에?
- 작지만 큰 희망 ; 농촌 혹은 지역공동체 회복으로부터
2년여 세계 여러 공동체 순례를 다니며, 첫 해에는 유럽과 미국, 캐나다의 계획공동체(Intensive or Intentional Community ; 같은 사상 혹은 이념과 목표를 갖고 설립된 공동체)를 경험했다. 그러나 무언가 아쉬움이 나를 계속 압박했다. 공동체에 사는 사람들이 공동체에 산다고 하면서도 그들의 삶과 생각은 여전히 개인주의적이고 그러다 보니 여전히 외롭고 고독해 하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2년째 계획을 세우면서 나는 제 3세계에 있는 공동체들을 순례하기로 작정하고 인터넷과 자료들을 뒤졌지만, 인도와 맥시코에 있는 몇 군데 수행 공동체밖에 발견할 수 없었다. 유럽과 미국의 공동체 리스트 800여개를 쉽게 확보할 수 있었던 나로서는 예상외의 난관이었다. 아마도 인터넷이나 연구부족으로 공동체는 많지만 자료화되어 있지 않은 때문이겠거니 추측했었지만, 인도, 맥시코, 쿠바 등을 순례하며 나는 뜻밖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찍이 산업사회, 자본주의, 개인주의의 발달과 온갖 전쟁으로 핵가족화, 이혼의 급증,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에 따른 모성애의 결핍으로 서구인들이 공동체 생활에 갈급해 있는 것과 다르게 제 3세계인들은 여전히 가족, 지역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기에 서구인들만큼 이러한 계획, 의도된 공동체에 대한 필요를 느끼고 있지 않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도 너무 심하다 싶을만큼 제 3세계 사람들은 나름의 공동체에 속해 살고 있는데, 구태여 그런 이상한(?) 공동체를 만들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리가 없지 않겠는가?
오히려 나를 만난 이들은 아내와 두 딸을 가진 내가 2년씩이나 공동체를 배우겠다고 집을 떠나 다니는 여행을 이해할 수 없다며, 심하게 나를 꾸짖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가족을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2년씩이나 떠돌아 다닐 수 있느냐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말은 않지만 내가 분명 아내와 이혼했던지 문제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나는 우리가 후진국이라고 말하는 나라일수록 가족 혹은 지역공동체가 더 끈끈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행복의 느낌이란 게 지극히 상대적이고 주관적임도 발견할 수 있었다. 남미 아마존 밀림 공동체에 사는 원주민들의 해맑은 미소와 누구나 반겨주는 열린, 넉넉한 마음…이것은 우리가 현대에 들어와 돈과 발전이란 허깨비 때문에 잃어버린 소중한 행복의 열쇠들임을 뒤돌아보게 해 주었다.
20년을 팔당에서 농민들과 부댖기며 살아왔던 나는 지난 2년간 순례를 통해 그 나마 남아있는 우리네 공동체성을 어떻게 지켜내고 발전시킬 것인가를 노심초사하고 있다.
유기농업을 중심으로 지역의 경제 자립을 이루고 비젼을 만드는 일(산업사회에 대한 대안으로), 서로가 상대방의 소중함을 알고 격려하고 아껴주는 상생의 삶 되찿기(경쟁만이 살길이라는 파괴적 가치에 대한 대안으로), 모든 아이들을 획일적 로보트로 만들고 있는 제도교육을 극복하고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며 자기의 존엄을 찿아 창조적 삶의 가치를 배우는 대안학교 세우기, 자기를 잃은채 휘황찬란한 소비적, 퇴폐적 문화에 맹목적으로 몰두한 꼭두각시 문화를, 창조적이고 모둠살이 지혜를 고양시키는 생산적 문화로 바꾸려는 문화 바로 세우기운동 등 할 일은 너무도 많다.
이런 일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각한 우리가 할 수 밖에 없다. 그 자각이란 미국 혹은 서울만이 중심이 아닌 내가 있는 이 곳이 내 삶의 중심이고 내가 주인이라는 자각이요, 모든 발전적 변화는 나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자각이요, 나와 모든 다른 생명은 하나이며 부분이라는 자각으로부터 시작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