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옥한 밭부터 경작하라. / 서재영 박사
부처님께서 나라마을의 호의암라원에 계실 때의 일이다.
외도 니건의 제자였던 마을 촌장이 찾아와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물러나 앉았다.
그는 부처님께 “어찌하여 항상 일체 중생을 편안하게 하고,
그들을 안위(安慰)하는 것을 장려하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다.
부처님은 “여래는 오랜 세월 동안 일체 중생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며 그들을 편안하게 하고
또한 일체 중생을 안위하는 것을 칭찬한다.”고 하셨다.
그러자 촌장은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어떤 사람을 위해서는
설법하고 또 어떤 사람을 위해서는 설법하지 않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촌장의 질문을 받은 부처님은 촌장에게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비유하면 세 가지 밭이 있다고 하자.
첫째 밭은 비옥하고 기름지며,
둘째 밭은 중간쯤 되며,
셋째 밭은 척박하다.
촌장이여, 그 밭의 주인이
가장 먼저 어떤 밭부터 갈고 씨를 뿌리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촌장은 가장 비옥하고 기름진 밭부터 먼저 갈고 씨를 뿌리고
그 다음은 중간 밭을,
그리고 맨 나중에 가장 척박한 밭을 갈고 씨를 뿌릴 것이라고 대답했다.
부처님이 그 이유를 묻자
촌장은 나쁜 밭에는 종자를 심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제 서야 부처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설법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설법하지 않느냐는 촌장의 질문에 답하셨다.
즉 농부가 비옥하고 기름진 밭을 먼저 갈고 씨를 뿌리는 것처럼
부처님도 불법에 귀의해서 출가한 비구 비구니를 위해
먼저 설법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간쯤 되는 밭은
불법에 귀의한 우바새 우바이에 해당하므로
그들을 위하여 바른 법을 연설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가장 척박한 밭을 가장 나중에 경작하듯이
부처님도 불법에 귀의하지 않은 외도의 무리들에게는
가장 나중에 설법하신다고 말씀했다.
난처한 질문으로 부처님을 곤궁에 빠뜨리고자 했던
촌장은 오히려 부처님의 말씀에 감탄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세 가지 그릇의 비유를 통해
설법의 순차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하셨다.
즉 첫 번째는 구멍이 뚫리거나 깨지지도 않아서 물이 새지 않는 그릇이며,
두 번째는 구멍이 뚫어지거나 깨지지는 않았지만 물이 새는 그릇이며,
세 번째는 구멍도 뚫어지고 깨쳐서 물까지 새는 그릇이 있다.
이 세 가지 그릇 중에 가장 좋은 그릇에 먼저 물을 담는 것처럼
부처님도 출가한 비구와 비구니를 위해서 가장 먼저 설법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순서로 불법에 귀의한 우바새와 우바이를 위해 설법하시며,
마지막으로 불법에 귀의하지 않은 외도들을 위해 설법하신다고 말씀했다.
촌장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쳤다.
〈잡아함〉 32권에 실려 있는 이 말씀은 두 가지 메시지를 던져준다.
첫째는 부처님도 가장 많이 준비된 제자를 위해 먼저 설법하신다는 것이다.
불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열려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한꺼번에 불법을 설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가장 열성을 갖고 적극적인 사람에게
먼저 설법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서도 열정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이 먼저 혜택을 받고 보답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늘 평등과 공평한 대우를 주장한다.
그러나 농부가 비옥한 밭을 먼저 경작하듯이
부처님도 근기가 앞서고 신심이 장한 사람에게
먼저 설법하셨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조건적인 평등은 오히려 노력하고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는
또 다른 불평등이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메시지는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한꺼번에 모든 일을 할 수 없다면
어떤 일을 먼저 할 것인가에 대한 순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농부가 가장 비옥한 밭을 먼저 경작하고,
물 긷는 사람이 가장 튼실하고 물이 새지 않는 그릇에
먼저 물을 담는 것과 같이 가장 중요한 일부터 먼저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똑같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고도
효과가 큰 것이 있고 적은 것이 있다면
우리는 효과가 큰 쪽을 먼저 하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이다.
서재영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출처 : 아비라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