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박쥐의 처세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그것은 살아있다는 사실입니다. 생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살아있으니까 생각을 할 수 있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누군가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살아있음은 세상 모든 것의 전제조건이며, 모든 것의 최우선 의미와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존이라는 문제 앞에서는 열과 성을 다해야 합니다.
자존심, 치욕, 분노, 비굴, 그 모든 것을 덮고도 남는다는 의식을 가져야 할 것, 그것은 생존입니다. 생존 앞에서 변심하는 이들, 생존 앞에서 비열한 이들, 생존 앞에서 치졸한 이들, 나는 그들에게 감히 돌을 던질 용기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 삶을 포기하려는 이들에게 돌을 던지라면 그건 할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의 삶이라고 해서 자신의 것이 아니라 자신이 길들인 이들의 일부일 수도 있는 것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박쥐가 집족제비에게 잡혔습니다. 이제 죽을 처지에 놓였음을 알게 된 박쥐는 족제비에게 살려달라고 빌었습니다. 하지만 족제비는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자기가 모든 새 종류와는 천적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박쥐는 자신은 새 종류가 아니라 쥐의 일종이라고 둘러댔습니다. 그렇게 하여 박쥐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도의 순간도 잠시, 박쥐는 또다시 다른 족제비에게 잡혔습니다. 이번에도 박쥐는 살려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자 두번째 족제비는 자신이 쥐한 쥐는 전부 싫어하기 때문에 살려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박쥐는 자신은 쥐가 아니라 새의 일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박쥐는 이번에도 다시 한번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박쥐는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 두 번이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변심을 자주 하는 사람을 빗대어 박쥐 같은 놈이라고 비난을 합니다. 당연히 박쥐처럼 처세를 하는 모습을 본다면 밉고 분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죽느냐로 가치를 논한다면 변명의 여지없이 비난 받을 만 합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처세라고 생각하면 감히 비난할 수 없습니다. 요즘 처럼 생존이 어려운 시대에는 자존심이나 가치보다 때로는 자신을 의지하는 이들을 위한 비굴함이 필요할 수도 있음을 인정합니다. 비열하게라도, 구차하게라도 살아 남아야 자신의 삶은 물론 가족을 구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신이 속한 직장에서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 조직에서 소외되는 순간부터 그가 시베리아 벌판에 버려진 비참함을 맛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그를 비난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삶, 삶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이냐, 무엇이 될 것이냐,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 것이냐, 그러한 문제들이 누군가에겐 사치로 보일 수도 있다. 생존이 문제가 되는 이들에게 인생의 의미와 가치의 문제를 강요한다는 건 무리이다.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사람, 책임질 사람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의 인생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삶의 자세를 주문할 것인가. 우리는 때로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먼저 비난하거나 비열하다고 손가락질 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나는 그 최악의 상황을 체험하지 못했으므로......*
-최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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