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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생산성
“범죄자는 범죄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형법을 생산하며 따라서 형법을 강의하는 교수도 생산한다…. 도둑놈이 없었더라면 오늘날과 같이 자물쇠가 완성될 수 있었겠는가? 만약 화폐 위조자가 없었더라면 은행권의 제조가 오늘과 같이 완성될 수 있었겠는가?”1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관계 아래에서 모든 직업, 그것이 범죄라 할지라도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일반적인 범죄도 그렇지만 가장 극단적인 경우인 국가 간의 범죄, 전쟁의 자본주의적 효용은 매우 크다. 연간 수백조 원에 달하는 무기시장에서 자본 축적을 확대할 수 있고, 대공황을 극복한 2차 세계대전처럼 과잉 자본과 생산시설을 파괴함으로써 축적의 새로운 조건을 만들기도 한다. 전쟁에서 노동자들이 죽기 때문에 과잉 노동력을 일정하게 해소해 “유용한 직업 부문들에 활로를 열어주는 자연적 균형화의 하나를 실현한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으면 과잉생산물을 패전국에 떠넘길 수 있고, 패전국의 물자와 인력까지 사실상 약탈할 수 있어 전승국의 자본축적에 이처럼 이로운 것은 없다. 자본주의 국가 사이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만은 아닌 것이다. “국민적 범죄 없이 세계 시장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없이 민족자체가 발생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과연 아담 이래 죄악의 나무는 동시에 지혜의 나무이기도 하지 않는가?”2 전쟁이 가지는 생산성만큼이나 인류가 치러야 하는 피의 대가는 엄청나다. 자본은 범죄와 윤리를 구분하지 않는다.
댓글조작, 댓글부대는 자본주의적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매우 생산적이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여론조작은 여러 형태로 진행될 수 있다. 온라인 카페나 커뮤니티 회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나 의견에 대해 인터넷 사이트 주소(url)를 찍고 집단으로 반대 댓글을 쓰는 일 따위는 비일비재하다. 이것이 표현의 자유인지 여론 조작인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관계는 前자본주의적 관계로 그만큼 비생산적이라는 점이다. 이런 활동은 여가를 보내는 것 같이 소비하는 시간이며 대부분 생산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국정원, 사이버사령부 등의 댓글부대는 온라인 카페 회원들의 행위와는 다르다. 공작금으로 돈을 주고 사람들을 댓글부대로 임시 고용해 대규모로 댓글을 달았다. 이른바 임금노동 관계가 형성되었고 이때부터 자본주의 생산양식 속에 댓글부대가 자리 잡혔다. 또 온라인 카페 회원들의 자발적인 무료노동을 자본주의적 임금노동 관계로 전화시켜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시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비트코인 채굴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개인들이 자신의 시간을 들여서 알음알음 하던 것이 전문적인 채굴회사가 차려지고 여기에 고용된 사람들이 수십 대의 컴퓨터를 돌리며 빠른 시간에 채굴하는 것처럼 댓글조작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업체가 생겨나고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이 형성됐다. 이제 댓글부대는 임시고용을 넘어서 상시 고용 체제를 갖추고 진화한다. 가내수공업 형태로 1인당 수십 개씩 일일이 올리던 댓글을 기계제 대공업의 형태인 매크로라는 자동프로그램을 써서 한 방에 조작이 가능한 체계로 진화했다. 이게 바로 ‘드루킹 사건’이다. 이 시장의 상품 가치는 어마무시하다. 작게는 상품의 바이럴 마케팅 영역에 국한되지만, 크게는 한 국가의 권력을 좌우할 수 있다.
여론 조작 시장
이 시장은 비단 한국에만 그치지 않는다. 2016년 필리핀 대선 에서는 자동 프로그램인 ‘트위터 봇’ 계정이 두테르테 선거 운동을 무작위로 진행했다. 같은 해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도 러시아가 배후로 추정되는 트럼프 지지 ‘봇’ 활동이 있었다. 최근 태국, 베트남, 미얀마,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 홍콩, 대만 등 일부 동아시아 국가, 스리랑카를 비롯한 남아시아에서도 선거를 앞두고 트위터 계정이 급증하고 있다. ‘봇’을 통한 선거운동이 의심되는 상황이다.3
안드레아 세풀베다는 지난 10년 동안 남미 9개국에서 미국의 자금 지원을 받아 모두 우익 편에서 선거를 조작했다고 밝혔다. 2006년 콜롬비아 대선과 총선, 2012~2013년 베네수엘라 대선, 멕시코 대선을 비롯해, 온두라스, 니카라과, 파나마 등 모두 아홉 번의 대선에 개입했다. 세풀베다는 3만여 개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여론을 조작했고, 전화 도청은 물론, 컴퓨터 네트워크와 이메일 계정에 침투해 관련 정보를 긁어 여론 조작에 활용했다.4
가장 압권은 2016년 미국 대선이었다. 앞서 ‘트위터 봇’의 트럼프 지지활동뿐 아니라, 페이스북을 이용한 트럼프 지지 캠페인이 은밀히 벌어졌다. 최근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의회 청문회에 불려나간 사건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5000만 명의 페이스북 계정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이 사건의 전부가 아니다. 정보 분석 회사인 캠브리지 애널리티카(Cambridge Analytica)는 페이스북 앱을 통해 개인정보를 확보하고 인공지능으로 페이스북 활동을 분석해 정치성향을 확인했다. 그 뒤 애널리티카는 특정 사람에게만 보이는 ‘다크 포스트(dark post)’를 보내 트럼프에게 유리한 글을 타임라인에 계속 올려놓거나, 광고처럼 보이지 않게 설계된 광고 메시지인 ‘네이티브 광고’를 노출하게 만들어 트럼프 지지가 대세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유권자를 상대로 일종의 세뇌공작을 벌인 것이다.
이처럼 과거 정치인의 팬덤 또는 특정지지 집단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하던 일들이 이제는 기계를 사용해 대규모로, 국제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론 조작 시장’ 형성으로 대규모 자본과 인력을 고용해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두뇌노동이라는 상품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장에서 생산자의 가장 중요한 축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국민 개개인들이다. 페이스북 이용자는 21억 명, 유튜브 13억 명, 인스타그램 7억 명, 트위터 3억3천만 명이다. 유튜브는 국내에서만 2,443만 명이 사용했고, 네이버는 2,238만 명이다(2018년 2월 기준). 이 사람들이 올리는 글, 사진, 영상뿐만 아니라 방문하는 페이지, 머무는 시간, 좋아요와 싫어요를 누르는 대상과 내용, 댓글은 물론 관심을 갖는 광고까지 사용자가 생성한 모든 개인 정보를 바탕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이런 시장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육체노동 중심의 물질 상품생산에서 두뇌노동 기반의 비물질노동 상품생산으로까지 확대되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전에도 시, 소설, 음악, 미술품 등 두뇌노동의 생산물이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의식, 정서, 선호, 감정 등 두뇌노동의 일반적 생산물들까지 상품으로 만들고 거래할 시장이 생겨났다. 두뇌노동은 사용가치를 갖는 다양한 생산물을 생산한다. 여기에서 사용자들은 플랫폼을 이용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생산물을 대가없이 기업에 양도한다. 노동자가 공장 기계나 사무용 컴퓨터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노동을 대가없이 제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에서는 (명백히) 생산수단을 이용하는 사용자의 노동을 아무런 대가없이 걷어 간다. 오직 사용자가 생산한 이 생산물들은 기업의 약관(지식재산제도)에 의해 사용자가 어떠한 콘텐츠에 대해 서도 본인 소유나 통제를 주장하지 못하고 배타적으로 기업의 소유로 전환된다. 이른바 ‘노동의 소외’가 발생하고 있다.5
사용자들은 대부분 자발적 노동 즉 ‘자유(무료)노동’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아직까지 정상적인 자본축적을 행하는 관계라 말하기는 어렵다.6 하지만 경쟁에 의해 이런 ‘자유노동’도 점차 ‘임금노동’으로 전환하고 있다. 앞서 댓글 공작도 그렇지만, 유튜브, 스팀잇 등은 콘텐츠 생산자(사용자)에게 광고수익을 분배한다. 유튜브는 아프리카티비의 별풍선과 같이 슈퍼챗을 판매해 수익을 나누기도 한다. 이 속에 크리에이터를 전업으로 먹고사는(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다만 우버택시와 에어비앤비와 같은 공유경제 플랫폼 기업에서 나타나는 노동관계처럼, 명시적인 노동계약이 존재하지 않고 자영업과 기존 노동자의 중간 형태를 띤다. 일종의 특수고용이다.7
여론 조작의 생산성
두뇌노동의 상품화와 결합된 여론 조작 시장은 기술적으로도 막을 수 없다. 애널리티카와 드루킹 사건에서 보듯 기술 장벽을 뛰어 넘는 여론 조작은 어느 때고 가능하다. 가령 네이버에서 좋아요나 댓글을 달지 못하게 하고 아웃링크 방식으로 바꾼다 할지라도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다. ‘좋아요’ ‘싫어요’를 누르지 않아도 정치적 성향을 분석하고 여론 조작을 넘어 세뇌까지 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지금도 개발되고 있다.
선호, 평판, 의식과 같은 두뇌노동의 산물을 상품으로 만드는 구조를 막아야 하는데, 한번 상품으로 만들어지고 시장이 형성되면 없애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정치와 민주주의를 돈으로 거래한다고 화폐거래를 금지할 수는 없듯이,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사건화 하여 틀어막는 것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디지털 민주주의를 찬양할 때가 있었다. 선물 돌리고, 돈 봉투 뿌리고, 독재가 판치는 정치와 선거에서 페이스북 혁명, 디지털 민주주의의 승리를 구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확실한 것은 과거 보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더 많은 대중을 상대로 여론 조작, 세뇌공작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얼마나 대단한 자본주의적 전환인가. 디지털이 이렇게나 생산적이다.
이렇듯 디지털 전환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정치와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와 불신은 더 쌓여갈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한 시도를 계속한다. 이것이 여론 조작이 갖는 결정적 생산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