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미생물과 유인원의 공진화. 유인원들의 장내미생물(비피도박테리아) 진화를 분석한 결과, 공통조상의 장내미생물이 고릴라, 인간, 보노보, 침팬지 순서로 분화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유전자를 통해 예측했던 유인원 종분화와 일치했다. 유인원이 종분화할 때, 미생물도 함께 분화돼 각각 숙주에서 진화해왔다는 뜻이었다.
미생물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이유는 유전자가 진화의 역사를 담고 있는 ‘시계’이기 때문이다. 모든 유전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돌연변이가 생기고, 그 DNA에 진화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는다. 일반적으로는 리보솜RNA 유전자를 이용해 계통발생 연구를 한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는 ‘자이레이즈(gyrase)’라는 유전자가 선택됐다. 자이레이즈는 DNA의 꼬인 정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사람과에 속하는 인간과 다른 유인원의 진화를 보기에 변이 속도가 적당하다(리보솜RNA 유전자는 변이 속도가 너무 느리다!). 장내미생물이 물리적으로는 부모나 주변의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분변 시료는 자연 상태, 즉 동물원이 아닌 아프리카의 서식지에서 확보했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유인원과 장내미생물이 함께 진화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분석 결과, 사람이 가진 장내미생물 중 일부는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특히 박테로이데스(Bacteroidaceae)와 비피도박테리아(Bifidobacteriaceae) 계통군에 속하는 미생물은 최소 1500만 년 전에 살았던 공통조상 때부터 장 속에 있었다. 이 공통조상이 훗날 여러 개의 종으로 차례차례 분화될 때, 미생물 종도 함께 분화되면서 각자 장 속에서 진화해왔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장내미생물들은 숙주 종이 수만 세대를 거치는 동안 다른 종으로 옮겨가지 않고 ‘의리’를 지켰다. 그 결과 실제로 유인원이 분화하는 시기(유전자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통해서 예측된 것)와 이번 연구에서 밝힌 각각의 장내미생물들이 분화해온 시기가 맞아떨어졌다. ‘침팬지에게 고릴라보다는 인간이 더 가까운 친척’이라는 가설을 미생물 유전자 간의 유사성을 봐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You arenot alone’이라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장 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듯하다!).
장내미생물이 최소 1500만 년 전부터 쭉 인간과 동거해왔다는 사실을 밝힌 것도 이번 연구의 큰 소득이다. 불필요한 장내미생물이 이토록 오랜, 배타적인 공생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었을 터다. 아직 다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장내미생물이 유아의 발달 과정과 성인의 여러 가지 면역 및 신경계 질환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에 힘이 실린다. 인간이 가진 수만 종의 미생물 가운데 오랜 시간 공진화해온 미생물에 연구자들이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