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전 초기 한 대의 전투기도 없어
美 F-51 전투기 지원에 혁혁한 전공
세계 최고 공군력 보유 美도 놀라
지난 2010년 강릉에서 열린 공군작전 전승 재현 기념행사에서 장병들이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
지난해 공군11전투비행단에서 거행된 공군작전전투 전승행사 때 시민들을 위한 에어쇼를 선보이고 있는 장면. 공군제공 |
공군은 6·25 개전 초기 단 한 대의 전투기도 없이 오직 경항공기 22대로 남하하는 북한군에 맞서야 했다. 이에 공군은 미국으로부터 F-51 무스탕 전투기를 지원받기 위해 전쟁 발발 다음 날인 6월 26일에 이근석 대령을 비롯한 10명의 조종사를 일본 이타즈케에 위치한 미 공군기지로 파견했다. 일본에 도착한 조종사들은 즉각 훈련에 돌입했으나 기상악화와 정비작업 등으로 인해 나흘 동안 1명당 20~30분밖에 훈련할 수 없었다. 전황이 급박하다는 소식을 접한 조종사들은 7월 2일 10대의 F-51 전투기를 몰고 대한해협을 건너 대구기지에 도착했다. 다음 날인 7월 3일 첫 출격한 F-51 전투기 편대는 동해안 삼척 지구 등에 상륙한 적 지상군을 공격했고 탱크와 차량을 격파하는 전공을 세웠다.
승호리철교 차단 작전
1952년 1월, 북한군은 주요 보급로로 사용하던 교량과 철로를 미 공군이 집중공격하자 전쟁 물자를 운송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무렵 중국으로부터 수송된 전쟁물자는 평양에 모였다가 다시 중서부전선으로 보급됐고 대동강 지역에는 서부전선에서 필요한 전쟁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필수적인 10개의 보급로가 있었는데 그마저도 미 공군에 의해 끊겼다. 그러나 이러한 공격 속에서도 버티는 철교가 하나 있었는데 평양 동쪽 10㎞ 지점에 있는 승호리철교였다. 북한군은 마지막 남은 보급로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승호리철교는 대동강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물로 인식돼 미 공군의 공습으로 일찌감치 파괴됐지만, 북한군이 본래의 철교로부터 200m 아래에 새롭게 가설한 것이다. 또 많은 대공포를 배치해 베테랑 조종사도 쉽게 뚫을 수가 없었다. 당시 많은 미 공군 조종사가 북한군의 대공포 공격으로 승호리철교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고 희생됐다. 연일 작전에 실패한 미 공군사령부는 한국 공군에 임무를 맡기게 된다.
임무를 인계받은 강릉기지 10전투비행전대장 김신 대령은 우리 공군의 명예를 걸고 승호리철교를 반드시 차단하자고 결의를 다진다. 1952년 1월 12일 김두만 소령은 F-51 전투기 6대를 이끌고 강릉기지를 이륙해 공격을 감행했지만 실패한다. 첫 공격에 실패한 우리나라 공군은 미 공군의 교범대로는 임무를 완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사흘 뒤인 1월 15일 윤응렬·옥만호 대위는 각각 3기의 F-51기를 이끌고 출격, 1500피트까지 강하해 공격하는 초저고도 공격전술을 구사해 북한군의 거미줄 같은 대공포화망을 뚫고 폭격에 성공한다.
이는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공격 방법이었지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필승의 신념으로 무장한 우리 공군은 폭탄 12발, 로켓탄 20발, 기총 4700여 발을 퍼부으며 마침내 승호리철교를 폭파하는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승호리철교 차단 작전’의 성공은 당시 세계 최고의 공군력을 자랑하던 미군조차 성공하지 못했던 고난도의 임무를 우리 공군이 완벽하게 수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평양대폭격 작전
1951년 7월 10일부터 시작된 휴전회담이 지지부진하자 유엔군은 대량 공중공격을 가해 적의 전쟁능력과 의지를 저하시켜 조속히 휴전협상에 응하도록 하기 위한 수단으로 새로운 전략인 항공압박작전을 수립한다.
이러한 작전의 하나로 유엔군은 7월 11일과 8월 4일 평양에 대규모 폭격을 감행했으며 8월 29일에는 공군과 해군기 1080대를 동원해 3차에 걸친 대대적인 폭격을 시도해 45개의 군사목표물 중 31개를 완전히 파괴하는 전과를 거둔다. 평양대폭격 작전에는 우리 공군의 F-51전투기 3개 편대도 참가해 미군으로부터 할당받은 평양의 1개 군사목표물을 완전히 파괴함으로써 한국 공군의 감투 정신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351고지전투 항공지원 작전
351고지는 김일성이 “금강산을 빼앗기는 한이 있어도 월비산은 확보하라”고 강조했던 강원도 고성 인근 월비산 동쪽 2㎞ 지점에 있다. 우리 역시 351고지는 동부전선의 마지노선이자 지리적·전술적 요충지로서 반드시 고수해야 할 입장이어서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다.
한국군뿐만 아니라 미 5공군과 7함대 예하 77 및 95 기동부대가 연합으로 수행한 연합 공·지·해 합동작전에서 공군은 지상군의 항공지원 요청에 따라 약 1538회 출격했으며 이 작전의 성공으로 한국은 38선 북쪽의 설악산, 속초 및 거진·간성 지역을 확보했다. 1953년 3월 26일 351고지 근접항공지원작전에 출격한 공군 조종사 16명 전원에게 충무무공훈장이 수여됐는데 이는 우리 공군에서 단일 작전에 참가한 전 조종사가 무공훈장을 수여받은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전쟁 종결과 공군 전적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촉발된 전쟁은 3년1개월2일 만인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잠시 멈추게 됐다. 개전 초기 단 한 대의 전투기도 없이 오직 경항공기 22대로 남하하는 적군에 맞서야 했던 우리 공군은 휴전 때까지 F-51 전투기 133대를 도입, 총 8495회 출격해 899명의 적을 사살하고 건물 1770동, 차량 459대, 탄약 및 연료집적소 1285개소, 철교 및 인도교 124개소, 포진지 521개소를 파괴했으며, 철도 1014개소를 차단하는 전과를 거뒀다.
이는 유엔 공군 중 둘째로 많은 전투출격 기록이며 39명의 조종사가 100회 출격의 대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전쟁 기간 동안 우리 공군은 총 22명의 조종사가 적지에서 장렬히 산화했으며 17명의 조종사가 훈련 중 순직했다.
10월에 공군작전 전승행사
공군은 6·25전쟁 64주년을 맞아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한국 공군의 전승을 기념하는 ‘호국 영령 추모 및 공군작전 전승행사’를 오는 10월 10일 강릉 18전투비행단에서 할 예정이다.
국방부가 주최하고 공군본부와 공군참전유공자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공군 장병들과 참전유공자회, 강릉지역 기관장 등 300여 명의 인원이 참석하는 가운데 헌화 및 분향, 추모사 낭독, 호국영령에 대한 경례, 추모 비행 등이 계획돼 있다. 이어서 18전투비행단장 등 지휘관과 참모, 조종사들이 351 고지 호국영령 추모식에 참석해 당시 근접항공지원작전에 출격했던 선배 조종사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호국보훈 정신을 고양하는 행사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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