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準燮
⊙ 45세. 조선대 의대 졸업. 조선대 의학박사. 유나이티드병원장,
FIFA 2010남아공월드컵·2012런던올림픽 축구팀 상임주치의 역임.
現 서울제이에스병원 대표원장,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주치의.
⊙ 45세. 조선대 의대 졸업. 조선대 의학박사. 유나이티드병원장,
FIFA 2010남아공월드컵·2012런던올림픽 축구팀 상임주치의 역임.
現 서울제이에스병원 대표원장,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주치의.
“등골에서 땀이 나더라고요. 히딩크 감독이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을 만나면 수술 얘기를 할 텐데, 어떤 말을 할까 싶어서요. 제가 집도한 수술 결과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하면 정말 국가 망신이잖습니까.”
송준섭(宋準燮) 서울제이에스병원 원장(조선대 의학박사)의 얼굴빛이 상기됐다. 송 박사에게 ‘그날’의 일은 여전히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의 인생에서 잊지 못할 순간인 모양이다. 평범한 그의 하루를 바꾼 날은 박근혜 대통령이 빌렘 알렉산더 네덜란드 국왕을 만난 지난 3월 24일.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헤이그를 방문해 네덜란드 국왕 부부가 주최한 오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네덜란드 프로축구 PSV 에인트호벤에서 뛰는 박지성 선수와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함께했다. 박 대통령은 히딩크 감독을 가리키며 “히딩크 감독이 퇴행성 무릎 관절염을 앓아 은퇴를 하려다 다시 감독을 맡기로 했다고 들었다”며 “한국에서 줄기세포 기술을 이용한 무릎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자랑한 ‘줄기세포 이용 수술’을 집도한 이가 송준섭 박사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송 박사는 지난 2007년부터 국가대표 축구팀 주치의도 맡고 있다.
일면식 없는 히딩크 감독 수술을 하게 된 이유
지난 4월 10일, 축구 사무실을 방불케 하는 서울제이에스병원에서 그를 만났다. 벽면에는 휠체어에 앉은 히딩크 감독과 의사들의 사진 뒤로 ‘대한민국 의료, 세계로’라고 쓰인 글귀가, 한쪽에는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구자철 등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의 축구화와 축구공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었다. 병원 직원들의 복장은 붉은 악마를 연상시키는 새빨간 폴로 티셔츠. 송 박사의 의사 가운 옷깃에는 태극기가 곱게 수놓여 있었다.
“히 감독님(그는 히딩크 감독을 이렇게 불렀다)이 만족하셨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대통령이 해외에서 자랑할 만한 거리를 하나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사로서, 국민으로서, 무한히 뿌듯하고 감사드립니다. 너무 큰일을 벌인 것 아닌가 싶어서 간담이 서늘하기도 했지만요(웃음).”
―축구대표팀 주치의여서 히딩크 감독 무릎 수술을 맡게 된 겁니까.
“전혀 아닙니다. 제가 대표팀 주치의가 된 것은 히 감독이 떠난 지 한참 뒤인 2007년부터예요. 히 감독과는 일면식도 없었습니다. 지난해 6월에 홍명보 감독이 러시아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우연히 히 감독의 매니저를 만나서 근황 얘기를 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제 전문과목이 정형외과라 하니까 히 감독 매니저가 ‘히 감독 무릎이 너무 안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시냐’ 하고 흘려들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10여 년 전부터 오른 무릎 때문에 고생을 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준비하던 중인 2001년 3월에 네덜란드에서 무릎 수술을 받았지만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있고, 무릎을 굽히지 못하는 상황이 10년 넘게 계속됐다. 결국 그는 지난해 안지 마하치칼라(러시아) 사령탑을 끝으로 축구 은퇴를 결심했던 터였다.
그때 슬쩍 히딩크 감독의 무릎 얘기를 했던 매니저는 두 달 뒤인 지난해 8월, 송 박사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는 ‘히딩크 감독이 인공 관절을 넣는 것 외에 다른 수술 방법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송 박사는 탯줄 속 혈액(제대혈)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원료로 하는 치료제인 ‘카티스템’이라는 것을 활용해 한국에선 수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줄기세포를 연골 부위에 주사하면, 8~12주 뒤에 줄기세포가 연골로 분화하는 신(新)기술이다. 줄기세포를 활용한 수술은 의료 선진국인 유럽·북미보다 우리나라가 앞서 행하고 있다. 무릎 연골 손상 범위 등에 따라 1000만원에서 수천만 원대에 달하는 고가(高價)의 시술이다 보니 자주 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식약청에서 의학적으로 안정성을 검증받은 수술법이다.
히딩크 감독의 무릎 엑스레이 사진을 전해 받은 송준섭 박사는 이 시술법이 그의 고질적인 무릎병을 고치리라고 짐작했다. 송준섭 박사는 “무릎을 둘러싼 관절은 내측관절, 외측관절, 중앙관절 3개가 있다. 3개가 다 망가지면 줄기세포를 활용한 수술법이 사실 많이 힘든데, 히딩크 감독은 외측 관절이 살아 있었기에 줄기세포 수술법을 적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송 박사는 자신이 히딩크 감독의 수술을 집도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히딩크 감독의 매니저에게 성심껏 설명을 해줬지만, 네덜란드에 거주하고 있는 히딩크 감독이 북미·유럽의 유수한 병원을 놔두고 일면식도 없는 자신에게 수술을 받으려고 그 긴 시간을 비행기로 날아올 것 같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두 달 뒤인 지난해 10월, 히딩크 감독이 방한해 그를 직접 만났다. 수술은 올 1월에 했다.
줄기세포 수술법 활용하면 무릎 수술 후 골프 가능
지난 1월 5일 입국한 히딩크 감독은 곧장 송준섭 박사를 찾았다. 서울제이에스병원에서 히딩크 감독 무릎의 MRI를 찍었고, 사진을 받아든 송 박사는 성공을 낙관했다. 정밀 검진 결과 히딩크 감독은 연골 손상뿐 아니라, 아예 무릎이 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무릎 뒤에 혹이 나 있었는데 이 혹이 종아리 근육을 당겨서, 무릎을 못 펴도록 만들었다. 송 박사는 혹 제거수술과 함께 연골 부위에 줄기세포를 심기로 최종 결정했다.
“막상 수술을 하려니까 좀 안 됐더라고요. 히딩크 감독이 유명한 분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먼 나라에서 보호자도 없이 수술받겠다고 저를 찾아온 할아버지 환자 아닙니까. 수술법을 충분히 설명하고, 수술방에서도 안심시켜 드리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수술을 정말 잘해 보이겠다는 욕심도 슬그머니 들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는 하반신 마취여서 의식이 살아 있었는데 수술 도중 ‘대한민국’을 외쳐 수술 중 웃음을 참느라 혼났습니다. 역시 세계적 명장다운 기개였습니다.”
―VIP여서 잘하고 싶었나요.
“그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수술받겠다고 오는 외국인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예전에 축구선수들이 부상을 입으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서 수술하고 재활치료를 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끊어진 인대 잇는 수술은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수만 건씩 합니다. 그런데 이 수술을 받겠다고 말도 안 통하는 독일에 나가고, 또 독일 의사들에게 제대로 된 대접도 못 받고 돌아옵니다. 요즘은 해외 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부상을 입으면 국내에 들어와서 치료받는 경향이라 다행이지만, 인식의 변화에 한 축을 담당하고 싶었습니다. ‘봐라. 히딩크도 우리나라에서 수술받겠다고 멀리서 오는데, 인대 잇는 수술받겠다고 말도 안 통하는 해외에 나가는 것이 맞느냐’고 말입니다. 이번 수술을 계기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싶긴 했죠.”
막 수술방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송 박사의 목소리 톤은 높았다. 인터뷰를 끝내고서야 안 사실이지만 ‘환자에 대한 측은지심’은 그의 평생 신념과 같다. 그렇게 1월 7일, 히딩크 감독의 무릎 뒤에 있는 혹을 제거하고, 줄기세포를 심고, 흐트러진 뼈를 맞추는 4시간의 수술이 끝났다.
―줄기세포 활용 수술이 어떻게 좋습니까.
“무릎 연골을 인공 관절로 대체하면 수술 후에 스포츠 활동을 하기 어렵습니다. 《Journal of sports medicine》의 논문 결과에 따르면 인공 관절 수술 환자 10명 중에 수술 후 골프를 칠 수 있는 이는 3명뿐입니다. 하지만 줄기세포 이식술은 본인의 연골을 살려내기 때문에 수술 후에 골프 등 스포츠가 가능합니다. 이 치료법이 더 발달할 경우, 무릎 연골을 다친 축구선수들도 40대 이후까지 현역으로 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기 혈액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하나요.
“아닙니다. 본인의 지방에서 채취한 혈액을 원심분리기에 돌려서 나오는 줄기세포는 숫자가 적습니다. 55세 이상에서는 사실상 효과가 없습니다. ‘메디포스트’가 개발한 기술인 태아 탯줄 제대혈에서 추출한 중간 간엽세포를 활용합니다. 이 간엽세포가 연골로 생성될 확률이 97.5%입니다. 1개의 줄기세포를 일주일 동안 배양하면, 무려 750만 개의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약사법 GMP 기준에 의해 엄격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정형외과적 시술과 메디포스트의 기술이 합해지는 거군요.
“미리 신청을 하면 수술 30분 전에 줄기세포가 담긴 병이 병원에 도착합니다. 이 세포들은 48시간밖에 살아 있지 않습니다. 먼저 무릎을 절개하고 뼈에 구멍을 내는 천공술을 시술합니다. 뼈에 구멍이 나면 피가 나오죠. 거기에 줄기세포를 착상시키면 뼈 주위에 연골을 만드는 호르몬이 자극을 받아 연골로 분화됩니다.”
―부작용은 없습니까.
“황우석 박사가 연구한 배아줄기세포는 거부 반응이 있지만, 성체줄기세포는 조직적인 면역 거부 반응이 아예 없는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제대혈 줄기세포는 성체줄기세포에 속합니다.”
―문제는 고가의 비용이겠군요.
“줄기세포를 얼마나 이식해야 하느냐는 사람 체격에 따라, 연골 손상 사이즈에 따라 다릅니다. 히딩크 감독은 거구인 편이라서, 총 세 병의 줄기세포를 사용했고, 그만큼 뼈에 구멍을 많이 뚫었습니다. 우리나라 평균 사이즈의 환자라면 무릎 한쪽당 한 병 정도의 줄기세포를 투여하면 됩니다. 원재료비가 비싸다 보니 고비용 시술인 점이 아쉽죠.”
송준섭 박사의 말에 따르면 이 줄기세포 시술법으로 수술할 경우 한쪽 무릎당 1300만~15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그는 히딩크 감독이 수술비 공개를 극도로 꺼려 밝히기 어렵지만, “단 한 푼도 깎아주진 않았다”고 말했다.
정형외과 수술의 완성은 재활 프로그램
하지만 송준섭 박사의 수술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의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통상 7~15일 동안 입원한다. 송 원장이 생각하는 수술의 끝은 그가 수술방을 나서는 순간이 아니라 환자가 재활 테스트를 통과하는 날이다.
“줄기세포로 연골이 회복돼도 환자의 회복 속도가 다릅니다. 관절을 잡고 있는 것이 근육인데 근육이 굳으면 회복이 더디죠. 히딩크 감독의 경우에는 수술 후 4일째 되는 날부터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간단한 재활 프로그램에 들어갔습니다.”
서울제이에스병원의 5층은 온갖 운동기구들로 가득 차 있다. 직원들 대부분이 환자와 1대 1 재활을 책임지는 메디컬 트레이너들이다. 히딩크 감독 역시 수술 후 보름 동안 이 병원에서 먹고 잤다. 송 박사는 환자카드별로 재활 스케줄을 꼼꼼히 짜고, 트레이너로 하여금 1대 1로 전담토록 한다. 병원 퇴원 후에도 3개월까지는 사후 관리를 한다. 수술 환자들은 근력 테스트를 합격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다. 송준섭 박사가 재활에 유독 집착하는 이유는 그의 경험 때문이다. 전문의 첫해인 지난 1999년의 일이다. 그는 환자의 왼쪽 다리 골절을 100% 매끈하게 뼈를 맞추고 12주간 고정되게 깁스를 했다. 그때는 그게 정형외과 상식이었다. 그런데 깁스를 풀던 날, 환자는 제대로 걷지 못했다. 환자는 “수술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했다. 원인은 수술한 무릎에 근육이 제대로 붙지 않았고, 결국 밸런스가 맞지 않는 두 발로 걸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송준섭 박사의 얘기다.
“정형외과의 완성은 뼈 붙이고 관절 갈고, 연골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후의 A/S라는 것을 그때 느꼈습니다. 아무리 고가의 시술을 했다고 해도 재활 치료를 하지 않으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니까요.”
그렇게 병원에서 보름 이상을 지낸 히딩크 감독이 수술받은 지 8주가 되던 날, 송 박사는 직접 네덜란드로 건너갔다. 그때 마침 그리스에서 국가대표 A매치가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목발의 도움 없이도 무리 없이 걷는 상태였다. 송 박사는 “줄기세포 연골이 단단해지는데 수술 후 6개월이 걸리니 더욱 재활에 애써야 한다”는 조언을 하고 돌아왔다. 인터뷰 중 송 박사는 그저께 히딩크 감독이 보낸 메일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My dear Dr. Song(나의 친애하는 송 박사)’으로 시작하는 메일에는 구구절절 본인이 얼마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또 어떻게 재활을 하고 있는지가 빽빽이 적혀 있었다.
대표팀 경기할 때는 병원 비우고 따라다녀
그가 히딩크 감독과의 인연이 없는데 수술을 했다는 말을 하면 믿지 않는 시선도 있다. 지난 2007년부터 축구대표팀 주치의를 맡고 있어서다. 축구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면 해외든 국내든 병원 문을 닫고 대표팀을 따라다닌다. 그가 이 일에 관여하게 된 계기도 우연이었다.
“지난 2007년에 축구협회 의료분과위원장인 연대의대 윤영설 교수를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동안 수술 케이스, 정형외과의 끝은 수술이 아니다 등 평소 환자 치료 소신에 대해 많은 의견교환이 있었고, 이내 대표팀 무릎·발목을 한번 책임져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 왔습니다. 축구를 좋아하지만 막상 주치의 제안을 받으니까 조금 망설여졌습니다. 대표팀 가는 곳이면 어디든 가야 하는데 그러자면 병원을 비워야 하고, 병원 운영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결국 인연이 돼서 오랫동안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웃음).”
―제 생각은 반대입니다. 몇 달 병원 문을 닫더라도, 대표팀 주치의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병원 홍보가 잘돼 훨씬 수입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홍보 효과가 있겠지만 저희 병원 환자들의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입니다. 축구선수들 치료하는 의사라고 저한테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병원 내원 동기를 보니 73%의 환자가 ‘지인 소개’라고 적었습니다. 여기서 치료한 친구분들 얘기 듣고 왔다고들 합니다. 축구랑 연관이 있다면 인터넷 서핑을 통해 찾아와야 하는데, 모르고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모르고 찾아왔다지만 여기저기 축구화며 공이 있으니 환자들에게 신뢰를 주지 않겠습니까. 대표팀 주치의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 부탁하신 것은 아닌지요.
“하하. 그런 오해는 숱하게 받았습니다. 홍명보 감독한테 ‘노이로제 걸리겠다’는 얘기를 수없이 했으니까요. 하지만 아니고요. 그냥 순수히 재능기부 차원에서 축구대표팀 주치의를 맡고 있습니다.”
축구대표팀에서 별명은 ‘저승사자’
축구대표팀의 경기가 있는 곳에는 항상 그가 같이 있다. FIFA 규정상 반드시 벤치에 의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부상에서 선수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축구 부상의 대부분은 무릎 부상과 발목, 허벅지 근육 부상이다. 송준섭 박사가 하는 일은 부상당한 선수의 상태를 대표팀 감독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다. 부상 상황에 따라 출전시키고, 안 시키는 것을 결정한다. 대표팀 내에서 그의 별명은 ‘저승사자’다. 대표팀 경기에서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주치의인 송 박사가 함께 병원에 가는데, 병원에 갔다 오면 이튿날 짐 싸서 돌아가게 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그는 서울제이에스병원을 떠나 대표팀과 함께 있을 때면 늘 ‘오진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오진을 해서 뛸 수 없는 선수를 뛰게 한다거나 반대가 되면 전 국민의 뭇매를 맞아야 합니다. 대표팀을 따라다닐 때 늘 긴장을 합니다. 오진을 내지 않으려고요.”
―8년 동안 한 번도 오진 낸 적이 없습니까.
“다행히요. 혼자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문교수들과 끊임없이 토의를 하니까요. 국민이 열광하면서 보는 축구 경기 뒤에 그런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수에게 짐 싸서 돌아가야 한다고 통보할 때 힘들겠군요.
“먼 타국에 와서 합숙하고 훈련하고, 그렇게 고생해서 곧 게임인데 부상당하면 참 그 마음이….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곽태휘 선수가 연습경기 때 다쳐서 돌아갈 때, 한국영 선수가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부상으로 떠났을 때 안타까웠습니다. 한국영 선수는 올림픽에서 아웃됐는데, 그해 홍명보호가 동메달을 따면서 태극기가 시상대에 올라가는 모습을 볼 때 본인의 입장에서 얼마나 아쉬웠겠습니까. 볼턴에서 찬사를 받던 이청용 선수가 지난 2011년 뒤에서 건 태클 때문에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제가 영국에 가보니까 이청용 선수가 ‘저는 축구가 이렇게 위험한 운동인지 처음 알았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저 축구 할 수 있어요?’라며 쳐다보는데 정말 가슴이 짠했습니다.”
―그럴 때 선수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는지요.
“주치의 초짜 때는 아무 말도 못 했고요, 이제는 경력이 쌓이다 보니까 ‘월드컵·올림픽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부상 선수들의 복귀 사례를 얘기해 주고, 절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게 합니다. 한국영 선수가 얼마 전 다시 대표팀으로 복귀했을 때 얼싸 안았습니다. 부상당한 선수들이 재활에 성공하고, 또 예전과 클래스가 다른 플레이를 보여줄 때 희열을 느낍니다.”
―선수들이 주치의 말을 잘 안 듣지는 않나요.
“선수들은 몸이 재산이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잘합니다. 일단 의사와 선수 간에 신뢰가 생기면 맹신하는 편이죠. 여러 선수 중에서도 구자철 선수는 가장 몸 관리가 철저한 선수입니다.”
사실 송준섭 박사를 많이 떠봤다. 축구대표팀 주치의를 맡은 것도 본인이 운영하는 병원과 연관 짓기 위해서가 아닌지, 히딩크 감독의 무릎 수술도 여타 병원이 하는 ‘VIP 수술’ 차원에서 여기저기 줄을 대 성사시킨 것은 아닌지 하는 못된 의심 탓이었다. 하지만 그는 순진한 미소로 오해가 있을 법한 상황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그를 만든 아버지 얘기를 시작했다.
8년간 식물인간이었던 아버지 보며 측은지심 배워
법대에 진학하려던 송 박사를 의사의 길로 이끈 것은 광주광역시에서 약국을 운영했던 아버지였다. 대충 약을 지어줘도 될 사람에게 “이건 약 안 먹고도 나을 수 있다”며 정직하게 말했던 그의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이라고 믿는 분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하늘이었던 그는 군말 없이 조선대 의대에 진학했다. 노느라 수업에 빠질 때가 많았던 흐지부지한 의대 생활이었다.
송 박사가 본과 3학년 때 아버지가 의료사고를 당해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이어진 2차 뇌수술에서 아버지는 끝내 깨어나지 못한 채 식물인간이 됐다. 그리고 그 아버지 곁을 무려 8년 동안 그의 누나가 지켰고, 송 박사는 이를 지켜봤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본과 학생에서 전문의가 됐다. 그는 이때 병원에서 온갖 군상의 의사를 다 지켜봤다.
“어떤 의사는 회진 때 와서 한 번 쓱 보고는 말도 없이 갑니다. 어차피 식물인간이라 이거죠. 어떤 인턴은 음식물 삽입관을 꽂을 때 아무렇게나 쑥쑥 쑤셔댑니다. 어떤 선생님은 아버지 손을 꼭 잡고 ‘오늘은 유난히 혈색이 좋으시네요. 아마 일어나시려나 봅니다’고 말을 합니다. 아버지가 일어나시지 못한다는 것은 그 선생님이나 저나 다 압니다. 하지만 그 의사의 한마디로 온 가족의 하루가 편안한 겁니다. 수술방 밖에서 마음 졸이는 보호자의 심정을 안 당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수술 시간이 길어지면 왜 이렇게 길어지는지 묻지도 못한 채 가슴앓이를 합니다. 보호자들에게는 수술방 문을 열고 나오는 의사가 구세주예요. 제가 직접 경험을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압니다.”
송준섭 박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웃던 그에게 여전히 아버지는 씻을 수 없는 기억이자, 그리움인 모양이다.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그 모습을 보면서 그는 진정한 의사가 됐다. 좀 더 ‘큰 의사’가 되기 위해서 서울 을지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고, 의대생들 사이에서 ‘쉬러 간다’고 말하는 공중보건의 시절 3년 동안 1000번의 수술을 집도했다. 그렇게 그가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공중보건의가 된 지 한참 후,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송 박사는 “환자를 측은지심으로 대하라는 것은 8년간 식물인간이었던 아버지가 고통 속에서 전달해 준 메시지”라고 말했다.
무릎 박사가 전하는 무릎 건강 지키는 법
히딩크의 성공적인 무릎 수술이 알려진 이후에 그의 병원에는 외국 환자가 부쩍 늘었다. 재한 외국인들은 물론, 네덜란드, 러시아, 인도에서도 그의 시술에 관심을 갖는 환자가 부쩍 늘었다. ‘대한민국 의료, 세계로’라고 써놓은 그의 희망이 어쩌면 앞당겨질는지 모를 일이다. 송 박사에게 ‘건강한 무릎 지키기’ 비법을 물었다. 그의 조언이다.
“약한 무릎을 무조건 운동을 해서 고칠 수 있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운동을 하기에 앞서서, 내 무릎이 운동을 해도 좋은 무릎인지 아닌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무릎 연골이 깨져 있는 사람은 운동을 하면 안 됩니다. 연골 치료를 한 뒤에, 운동을 해야 합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무릎에 운동이 좋다’는 말만 믿고 아침마다 운동장 10바퀴를 돌았는데 갈수록 아파 온다고 찾아오신 적이 있습니다. 운동할 수 있는 무릎인지를 먼저 살펴보세요.”
―어떻게 살펴볼 수 있습니까.
“의사의 판단에 따라 엑스레이, 초음파, MRI 검사를 하면 연골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검사 비용이 들지만 꼭 연골, 연골판의 상태를 체크한 후에 운동할 것을 권합니다. 문제가 없다면 운동만으로 죽을 때까지 무릎 신경은 안 쓰셔도 됩니다.”
―통상 몇 세 전후에 무릎 검사를 해야 합니까.
“이상이 없으면 60세 넘어서도 괜찮습니다. 무릎이 부어오르면 이상신호입니다. 무릎에 물이 차는 거니까요. 무릎에 물이 차면 절대 빼면 안 됩니다. 무릎에는 내부 센서가 있습니다. 연골, 연골판, 인대가 다치면 그걸 못 쓰게 하려고 물을 뿜어냅니다. 물을 빼내도 또 생깁니다. 무릎이 부어오르면 무조건 병원을 가세요. 또 수술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타이어가 펑크 나면 때우면 됩니다. 펑크 난 타이어로 계속 주행하면 결국 휠까지 망가집니다. 연골은 주사, 약으로 재생되지 않습니다. 삶은 달걀에 작은 구멍이 생겼는데 계속 굴리면 결국 바사삭 깨지는 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무릎이 붓거나, 통증이 느껴지면 무조건 운동을 중단하고 근처 병원에 가세요. 무릎을 교정한 후에 다시 운동하면 됩니다.”
―평소 무릎 건강을 위해 해야 할 일이라면요.
“쪼그려 앉는 것이 무릎 관절에 가장 안 좋습니다. 무릎을 일자로 쭉 펴는 것보다 무릎이 자연스럽게 굽혀지는 각도로 편하게 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히딩크의 고질병을 고쳐준 이, 축구대표팀의 주치의, 그 역시 동네 정형외과 병원의 한 의사였다.⊙
송준섭(宋準燮) 서울제이에스병원 원장(조선대 의학박사)의 얼굴빛이 상기됐다. 송 박사에게 ‘그날’의 일은 여전히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의 인생에서 잊지 못할 순간인 모양이다. 평범한 그의 하루를 바꾼 날은 박근혜 대통령이 빌렘 알렉산더 네덜란드 국왕을 만난 지난 3월 24일.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헤이그를 방문해 네덜란드 국왕 부부가 주최한 오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네덜란드 프로축구 PSV 에인트호벤에서 뛰는 박지성 선수와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함께했다. 박 대통령은 히딩크 감독을 가리키며 “히딩크 감독이 퇴행성 무릎 관절염을 앓아 은퇴를 하려다 다시 감독을 맡기로 했다고 들었다”며 “한국에서 줄기세포 기술을 이용한 무릎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자랑한 ‘줄기세포 이용 수술’을 집도한 이가 송준섭 박사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송 박사는 지난 2007년부터 국가대표 축구팀 주치의도 맡고 있다.
일면식 없는 히딩크 감독 수술을 하게 된 이유
지난 4월 10일, 축구 사무실을 방불케 하는 서울제이에스병원에서 그를 만났다. 벽면에는 휠체어에 앉은 히딩크 감독과 의사들의 사진 뒤로 ‘대한민국 의료, 세계로’라고 쓰인 글귀가, 한쪽에는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구자철 등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의 축구화와 축구공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었다. 병원 직원들의 복장은 붉은 악마를 연상시키는 새빨간 폴로 티셔츠. 송 박사의 의사 가운 옷깃에는 태극기가 곱게 수놓여 있었다.
“히 감독님(그는 히딩크 감독을 이렇게 불렀다)이 만족하셨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대통령이 해외에서 자랑할 만한 거리를 하나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사로서, 국민으로서, 무한히 뿌듯하고 감사드립니다. 너무 큰일을 벌인 것 아닌가 싶어서 간담이 서늘하기도 했지만요(웃음).”
―축구대표팀 주치의여서 히딩크 감독 무릎 수술을 맡게 된 겁니까.
“전혀 아닙니다. 제가 대표팀 주치의가 된 것은 히 감독이 떠난 지 한참 뒤인 2007년부터예요. 히 감독과는 일면식도 없었습니다. 지난해 6월에 홍명보 감독이 러시아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우연히 히 감독의 매니저를 만나서 근황 얘기를 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제 전문과목이 정형외과라 하니까 히 감독 매니저가 ‘히 감독 무릎이 너무 안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시냐’ 하고 흘려들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10여 년 전부터 오른 무릎 때문에 고생을 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준비하던 중인 2001년 3월에 네덜란드에서 무릎 수술을 받았지만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있고, 무릎을 굽히지 못하는 상황이 10년 넘게 계속됐다. 결국 그는 지난해 안지 마하치칼라(러시아) 사령탑을 끝으로 축구 은퇴를 결심했던 터였다.
그때 슬쩍 히딩크 감독의 무릎 얘기를 했던 매니저는 두 달 뒤인 지난해 8월, 송 박사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는 ‘히딩크 감독이 인공 관절을 넣는 것 외에 다른 수술 방법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송 박사는 탯줄 속 혈액(제대혈)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원료로 하는 치료제인 ‘카티스템’이라는 것을 활용해 한국에선 수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줄기세포를 연골 부위에 주사하면, 8~12주 뒤에 줄기세포가 연골로 분화하는 신(新)기술이다. 줄기세포를 활용한 수술은 의료 선진국인 유럽·북미보다 우리나라가 앞서 행하고 있다. 무릎 연골 손상 범위 등에 따라 1000만원에서 수천만 원대에 달하는 고가(高價)의 시술이다 보니 자주 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식약청에서 의학적으로 안정성을 검증받은 수술법이다.
히딩크 감독의 무릎 엑스레이 사진을 전해 받은 송준섭 박사는 이 시술법이 그의 고질적인 무릎병을 고치리라고 짐작했다. 송준섭 박사는 “무릎을 둘러싼 관절은 내측관절, 외측관절, 중앙관절 3개가 있다. 3개가 다 망가지면 줄기세포를 활용한 수술법이 사실 많이 힘든데, 히딩크 감독은 외측 관절이 살아 있었기에 줄기세포 수술법을 적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송 박사는 자신이 히딩크 감독의 수술을 집도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히딩크 감독의 매니저에게 성심껏 설명을 해줬지만, 네덜란드에 거주하고 있는 히딩크 감독이 북미·유럽의 유수한 병원을 놔두고 일면식도 없는 자신에게 수술을 받으려고 그 긴 시간을 비행기로 날아올 것 같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두 달 뒤인 지난해 10월, 히딩크 감독이 방한해 그를 직접 만났다. 수술은 올 1월에 했다.
줄기세포 수술법 활용하면 무릎 수술 후 골프 가능
히딩크 감독의 무릎 수술을 마치고 함께 찍은 사진. |
“막상 수술을 하려니까 좀 안 됐더라고요. 히딩크 감독이 유명한 분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먼 나라에서 보호자도 없이 수술받겠다고 저를 찾아온 할아버지 환자 아닙니까. 수술법을 충분히 설명하고, 수술방에서도 안심시켜 드리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수술을 정말 잘해 보이겠다는 욕심도 슬그머니 들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는 하반신 마취여서 의식이 살아 있었는데 수술 도중 ‘대한민국’을 외쳐 수술 중 웃음을 참느라 혼났습니다. 역시 세계적 명장다운 기개였습니다.”
―VIP여서 잘하고 싶었나요.
“그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수술받겠다고 오는 외국인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예전에 축구선수들이 부상을 입으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서 수술하고 재활치료를 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끊어진 인대 잇는 수술은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수만 건씩 합니다. 그런데 이 수술을 받겠다고 말도 안 통하는 독일에 나가고, 또 독일 의사들에게 제대로 된 대접도 못 받고 돌아옵니다. 요즘은 해외 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부상을 입으면 국내에 들어와서 치료받는 경향이라 다행이지만, 인식의 변화에 한 축을 담당하고 싶었습니다. ‘봐라. 히딩크도 우리나라에서 수술받겠다고 멀리서 오는데, 인대 잇는 수술받겠다고 말도 안 통하는 해외에 나가는 것이 맞느냐’고 말입니다. 이번 수술을 계기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싶긴 했죠.”
막 수술방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송 박사의 목소리 톤은 높았다. 인터뷰를 끝내고서야 안 사실이지만 ‘환자에 대한 측은지심’은 그의 평생 신념과 같다. 그렇게 1월 7일, 히딩크 감독의 무릎 뒤에 있는 혹을 제거하고, 줄기세포를 심고, 흐트러진 뼈를 맞추는 4시간의 수술이 끝났다.
―줄기세포 활용 수술이 어떻게 좋습니까.
“무릎 연골을 인공 관절로 대체하면 수술 후에 스포츠 활동을 하기 어렵습니다. 《Journal of sports medicine》의 논문 결과에 따르면 인공 관절 수술 환자 10명 중에 수술 후 골프를 칠 수 있는 이는 3명뿐입니다. 하지만 줄기세포 이식술은 본인의 연골을 살려내기 때문에 수술 후에 골프 등 스포츠가 가능합니다. 이 치료법이 더 발달할 경우, 무릎 연골을 다친 축구선수들도 40대 이후까지 현역으로 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기 혈액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하나요.
“아닙니다. 본인의 지방에서 채취한 혈액을 원심분리기에 돌려서 나오는 줄기세포는 숫자가 적습니다. 55세 이상에서는 사실상 효과가 없습니다. ‘메디포스트’가 개발한 기술인 태아 탯줄 제대혈에서 추출한 중간 간엽세포를 활용합니다. 이 간엽세포가 연골로 생성될 확률이 97.5%입니다. 1개의 줄기세포를 일주일 동안 배양하면, 무려 750만 개의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약사법 GMP 기준에 의해 엄격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정형외과적 시술과 메디포스트의 기술이 합해지는 거군요.
“미리 신청을 하면 수술 30분 전에 줄기세포가 담긴 병이 병원에 도착합니다. 이 세포들은 48시간밖에 살아 있지 않습니다. 먼저 무릎을 절개하고 뼈에 구멍을 내는 천공술을 시술합니다. 뼈에 구멍이 나면 피가 나오죠. 거기에 줄기세포를 착상시키면 뼈 주위에 연골을 만드는 호르몬이 자극을 받아 연골로 분화됩니다.”
―부작용은 없습니까.
“황우석 박사가 연구한 배아줄기세포는 거부 반응이 있지만, 성체줄기세포는 조직적인 면역 거부 반응이 아예 없는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제대혈 줄기세포는 성체줄기세포에 속합니다.”
―문제는 고가의 비용이겠군요.
“줄기세포를 얼마나 이식해야 하느냐는 사람 체격에 따라, 연골 손상 사이즈에 따라 다릅니다. 히딩크 감독은 거구인 편이라서, 총 세 병의 줄기세포를 사용했고, 그만큼 뼈에 구멍을 많이 뚫었습니다. 우리나라 평균 사이즈의 환자라면 무릎 한쪽당 한 병 정도의 줄기세포를 투여하면 됩니다. 원재료비가 비싸다 보니 고비용 시술인 점이 아쉽죠.”
송준섭 박사의 말에 따르면 이 줄기세포 시술법으로 수술할 경우 한쪽 무릎당 1300만~15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그는 히딩크 감독이 수술비 공개를 극도로 꺼려 밝히기 어렵지만, “단 한 푼도 깎아주진 않았다”고 말했다.
정형외과 수술의 완성은 재활 프로그램
하지만 송준섭 박사의 수술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의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통상 7~15일 동안 입원한다. 송 원장이 생각하는 수술의 끝은 그가 수술방을 나서는 순간이 아니라 환자가 재활 테스트를 통과하는 날이다.
“줄기세포로 연골이 회복돼도 환자의 회복 속도가 다릅니다. 관절을 잡고 있는 것이 근육인데 근육이 굳으면 회복이 더디죠. 히딩크 감독의 경우에는 수술 후 4일째 되는 날부터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간단한 재활 프로그램에 들어갔습니다.”
서울제이에스병원의 5층은 온갖 운동기구들로 가득 차 있다. 직원들 대부분이 환자와 1대 1 재활을 책임지는 메디컬 트레이너들이다. 히딩크 감독 역시 수술 후 보름 동안 이 병원에서 먹고 잤다. 송 박사는 환자카드별로 재활 스케줄을 꼼꼼히 짜고, 트레이너로 하여금 1대 1로 전담토록 한다. 병원 퇴원 후에도 3개월까지는 사후 관리를 한다. 수술 환자들은 근력 테스트를 합격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다. 송준섭 박사가 재활에 유독 집착하는 이유는 그의 경험 때문이다. 전문의 첫해인 지난 1999년의 일이다. 그는 환자의 왼쪽 다리 골절을 100% 매끈하게 뼈를 맞추고 12주간 고정되게 깁스를 했다. 그때는 그게 정형외과 상식이었다. 그런데 깁스를 풀던 날, 환자는 제대로 걷지 못했다. 환자는 “수술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했다. 원인은 수술한 무릎에 근육이 제대로 붙지 않았고, 결국 밸런스가 맞지 않는 두 발로 걸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송준섭 박사의 얘기다.
“정형외과의 완성은 뼈 붙이고 관절 갈고, 연골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후의 A/S라는 것을 그때 느꼈습니다. 아무리 고가의 시술을 했다고 해도 재활 치료를 하지 않으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니까요.”
그렇게 병원에서 보름 이상을 지낸 히딩크 감독이 수술받은 지 8주가 되던 날, 송 박사는 직접 네덜란드로 건너갔다. 그때 마침 그리스에서 국가대표 A매치가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목발의 도움 없이도 무리 없이 걷는 상태였다. 송 박사는 “줄기세포 연골이 단단해지는데 수술 후 6개월이 걸리니 더욱 재활에 애써야 한다”는 조언을 하고 돌아왔다. 인터뷰 중 송 박사는 그저께 히딩크 감독이 보낸 메일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My dear Dr. Song(나의 친애하는 송 박사)’으로 시작하는 메일에는 구구절절 본인이 얼마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또 어떻게 재활을 하고 있는지가 빽빽이 적혀 있었다.
대표팀 경기할 때는 병원 비우고 따라다녀
그가 히딩크 감독과의 인연이 없는데 수술을 했다는 말을 하면 믿지 않는 시선도 있다. 지난 2007년부터 축구대표팀 주치의를 맡고 있어서다. 축구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면 해외든 국내든 병원 문을 닫고 대표팀을 따라다닌다. 그가 이 일에 관여하게 된 계기도 우연이었다.
“지난 2007년에 축구협회 의료분과위원장인 연대의대 윤영설 교수를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동안 수술 케이스, 정형외과의 끝은 수술이 아니다 등 평소 환자 치료 소신에 대해 많은 의견교환이 있었고, 이내 대표팀 무릎·발목을 한번 책임져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 왔습니다. 축구를 좋아하지만 막상 주치의 제안을 받으니까 조금 망설여졌습니다. 대표팀 가는 곳이면 어디든 가야 하는데 그러자면 병원을 비워야 하고, 병원 운영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결국 인연이 돼서 오랫동안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웃음).”
―제 생각은 반대입니다. 몇 달 병원 문을 닫더라도, 대표팀 주치의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병원 홍보가 잘돼 훨씬 수입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홍보 효과가 있겠지만 저희 병원 환자들의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입니다. 축구선수들 치료하는 의사라고 저한테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병원 내원 동기를 보니 73%의 환자가 ‘지인 소개’라고 적었습니다. 여기서 치료한 친구분들 얘기 듣고 왔다고들 합니다. 축구랑 연관이 있다면 인터넷 서핑을 통해 찾아와야 하는데, 모르고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모르고 찾아왔다지만 여기저기 축구화며 공이 있으니 환자들에게 신뢰를 주지 않겠습니까. 대표팀 주치의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 부탁하신 것은 아닌지요.
“하하. 그런 오해는 숱하게 받았습니다. 홍명보 감독한테 ‘노이로제 걸리겠다’는 얘기를 수없이 했으니까요. 하지만 아니고요. 그냥 순수히 재능기부 차원에서 축구대표팀 주치의를 맡고 있습니다.”
축구대표팀에서 별명은 ‘저승사자’
축구대표팀의 경기가 있는 곳에는 항상 그가 같이 있다. FIFA 규정상 반드시 벤치에 의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부상에서 선수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축구 부상의 대부분은 무릎 부상과 발목, 허벅지 근육 부상이다. 송준섭 박사가 하는 일은 부상당한 선수의 상태를 대표팀 감독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다. 부상 상황에 따라 출전시키고, 안 시키는 것을 결정한다. 대표팀 내에서 그의 별명은 ‘저승사자’다. 대표팀 경기에서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주치의인 송 박사가 함께 병원에 가는데, 병원에 갔다 오면 이튿날 짐 싸서 돌아가게 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그는 서울제이에스병원을 떠나 대표팀과 함께 있을 때면 늘 ‘오진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오진을 해서 뛸 수 없는 선수를 뛰게 한다거나 반대가 되면 전 국민의 뭇매를 맞아야 합니다. 대표팀을 따라다닐 때 늘 긴장을 합니다. 오진을 내지 않으려고요.”
―8년 동안 한 번도 오진 낸 적이 없습니까.
“다행히요. 혼자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문교수들과 끊임없이 토의를 하니까요. 국민이 열광하면서 보는 축구 경기 뒤에 그런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수에게 짐 싸서 돌아가야 한다고 통보할 때 힘들겠군요.
“먼 타국에 와서 합숙하고 훈련하고, 그렇게 고생해서 곧 게임인데 부상당하면 참 그 마음이….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곽태휘 선수가 연습경기 때 다쳐서 돌아갈 때, 한국영 선수가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부상으로 떠났을 때 안타까웠습니다. 한국영 선수는 올림픽에서 아웃됐는데, 그해 홍명보호가 동메달을 따면서 태극기가 시상대에 올라가는 모습을 볼 때 본인의 입장에서 얼마나 아쉬웠겠습니까. 볼턴에서 찬사를 받던 이청용 선수가 지난 2011년 뒤에서 건 태클 때문에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제가 영국에 가보니까 이청용 선수가 ‘저는 축구가 이렇게 위험한 운동인지 처음 알았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저 축구 할 수 있어요?’라며 쳐다보는데 정말 가슴이 짠했습니다.”
―그럴 때 선수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는지요.
“주치의 초짜 때는 아무 말도 못 했고요, 이제는 경력이 쌓이다 보니까 ‘월드컵·올림픽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부상 선수들의 복귀 사례를 얘기해 주고, 절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게 합니다. 한국영 선수가 얼마 전 다시 대표팀으로 복귀했을 때 얼싸 안았습니다. 부상당한 선수들이 재활에 성공하고, 또 예전과 클래스가 다른 플레이를 보여줄 때 희열을 느낍니다.”
―선수들이 주치의 말을 잘 안 듣지는 않나요.
“선수들은 몸이 재산이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잘합니다. 일단 의사와 선수 간에 신뢰가 생기면 맹신하는 편이죠. 여러 선수 중에서도 구자철 선수는 가장 몸 관리가 철저한 선수입니다.”
사실 송준섭 박사를 많이 떠봤다. 축구대표팀 주치의를 맡은 것도 본인이 운영하는 병원과 연관 짓기 위해서가 아닌지, 히딩크 감독의 무릎 수술도 여타 병원이 하는 ‘VIP 수술’ 차원에서 여기저기 줄을 대 성사시킨 것은 아닌지 하는 못된 의심 탓이었다. 하지만 그는 순진한 미소로 오해가 있을 법한 상황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그를 만든 아버지 얘기를 시작했다.
8년간 식물인간이었던 아버지 보며 측은지심 배워
법대에 진학하려던 송 박사를 의사의 길로 이끈 것은 광주광역시에서 약국을 운영했던 아버지였다. 대충 약을 지어줘도 될 사람에게 “이건 약 안 먹고도 나을 수 있다”며 정직하게 말했던 그의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이라고 믿는 분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하늘이었던 그는 군말 없이 조선대 의대에 진학했다. 노느라 수업에 빠질 때가 많았던 흐지부지한 의대 생활이었다.
송 박사가 본과 3학년 때 아버지가 의료사고를 당해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이어진 2차 뇌수술에서 아버지는 끝내 깨어나지 못한 채 식물인간이 됐다. 그리고 그 아버지 곁을 무려 8년 동안 그의 누나가 지켰고, 송 박사는 이를 지켜봤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본과 학생에서 전문의가 됐다. 그는 이때 병원에서 온갖 군상의 의사를 다 지켜봤다.
“어떤 의사는 회진 때 와서 한 번 쓱 보고는 말도 없이 갑니다. 어차피 식물인간이라 이거죠. 어떤 인턴은 음식물 삽입관을 꽂을 때 아무렇게나 쑥쑥 쑤셔댑니다. 어떤 선생님은 아버지 손을 꼭 잡고 ‘오늘은 유난히 혈색이 좋으시네요. 아마 일어나시려나 봅니다’고 말을 합니다. 아버지가 일어나시지 못한다는 것은 그 선생님이나 저나 다 압니다. 하지만 그 의사의 한마디로 온 가족의 하루가 편안한 겁니다. 수술방 밖에서 마음 졸이는 보호자의 심정을 안 당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수술 시간이 길어지면 왜 이렇게 길어지는지 묻지도 못한 채 가슴앓이를 합니다. 보호자들에게는 수술방 문을 열고 나오는 의사가 구세주예요. 제가 직접 경험을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압니다.”
송준섭 박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웃던 그에게 여전히 아버지는 씻을 수 없는 기억이자, 그리움인 모양이다.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그 모습을 보면서 그는 진정한 의사가 됐다. 좀 더 ‘큰 의사’가 되기 위해서 서울 을지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고, 의대생들 사이에서 ‘쉬러 간다’고 말하는 공중보건의 시절 3년 동안 1000번의 수술을 집도했다. 그렇게 그가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공중보건의가 된 지 한참 후,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송 박사는 “환자를 측은지심으로 대하라는 것은 8년간 식물인간이었던 아버지가 고통 속에서 전달해 준 메시지”라고 말했다.
무릎 박사가 전하는 무릎 건강 지키는 법
히딩크의 성공적인 무릎 수술이 알려진 이후에 그의 병원에는 외국 환자가 부쩍 늘었다. 재한 외국인들은 물론, 네덜란드, 러시아, 인도에서도 그의 시술에 관심을 갖는 환자가 부쩍 늘었다. ‘대한민국 의료, 세계로’라고 써놓은 그의 희망이 어쩌면 앞당겨질는지 모를 일이다. 송 박사에게 ‘건강한 무릎 지키기’ 비법을 물었다. 그의 조언이다.
“약한 무릎을 무조건 운동을 해서 고칠 수 있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운동을 하기에 앞서서, 내 무릎이 운동을 해도 좋은 무릎인지 아닌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무릎 연골이 깨져 있는 사람은 운동을 하면 안 됩니다. 연골 치료를 한 뒤에, 운동을 해야 합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무릎에 운동이 좋다’는 말만 믿고 아침마다 운동장 10바퀴를 돌았는데 갈수록 아파 온다고 찾아오신 적이 있습니다. 운동할 수 있는 무릎인지를 먼저 살펴보세요.”
―어떻게 살펴볼 수 있습니까.
“의사의 판단에 따라 엑스레이, 초음파, MRI 검사를 하면 연골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검사 비용이 들지만 꼭 연골, 연골판의 상태를 체크한 후에 운동할 것을 권합니다. 문제가 없다면 운동만으로 죽을 때까지 무릎 신경은 안 쓰셔도 됩니다.”
―통상 몇 세 전후에 무릎 검사를 해야 합니까.
“이상이 없으면 60세 넘어서도 괜찮습니다. 무릎이 부어오르면 이상신호입니다. 무릎에 물이 차는 거니까요. 무릎에 물이 차면 절대 빼면 안 됩니다. 무릎에는 내부 센서가 있습니다. 연골, 연골판, 인대가 다치면 그걸 못 쓰게 하려고 물을 뿜어냅니다. 물을 빼내도 또 생깁니다. 무릎이 부어오르면 무조건 병원을 가세요. 또 수술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타이어가 펑크 나면 때우면 됩니다. 펑크 난 타이어로 계속 주행하면 결국 휠까지 망가집니다. 연골은 주사, 약으로 재생되지 않습니다. 삶은 달걀에 작은 구멍이 생겼는데 계속 굴리면 결국 바사삭 깨지는 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무릎이 붓거나, 통증이 느껴지면 무조건 운동을 중단하고 근처 병원에 가세요. 무릎을 교정한 후에 다시 운동하면 됩니다.”
―평소 무릎 건강을 위해 해야 할 일이라면요.
“쪼그려 앉는 것이 무릎 관절에 가장 안 좋습니다. 무릎을 일자로 쭉 펴는 것보다 무릎이 자연스럽게 굽혀지는 각도로 편하게 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히딩크의 고질병을 고쳐준 이, 축구대표팀의 주치의, 그 역시 동네 정형외과 병원의 한 의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