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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다문화연합 원문보기 글쓴이: 한다연
다문화 체험 수기, 고교 최우수상에 초지고 3년 강리선 |
3자매가 엄마와 같이 (왼쪽이 고교 최우수상을 수상한 초지고 3년 강리선)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28일 다문화 체험수기 공모 결과를 발표하고 입상작 41편에 대한 시상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공모전 최고의 영예인 대상에는 고잔고등학교 백성혜 학생의 '내 마음을 울린 세 단어'가 선정됐고, 고등부에서 초지고등학교 강리선 학생의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가 최우수상을 받게 됐다. 학생들의 다문화 감수성을 증대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확립하고자 지난 7월부터 8월까지 실시한 이번 공모전에는 도내 초·중·고 학생, 학부모, 교사 363명이 참가한 가운데 다문화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느끼고 겪은 어려움과 이를 극복한 아름답고 감동적인 많은 이야기들이 선 보였다.
5개 부문으로 나눠 실시된 이번 공모전에서는 대상 1편과 함께 부문별 최우수 1편, 우수 2편, 장려 5편 등 총 41편의 입상작이 선정됐으며 입상자에게는 교육감 상장과 총 5백만원의 상금이 수여됐다. 도교육청은 입상작 중에서 우수 작품은 ‘다문화체험 수기집’으로 제작·보급해 일선 학교의 다문화 교육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고등부 최우수상을 수상한 초지고교 3년 강리선학생의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를 싣는다.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엄마랑 나랑, 싸우다가 정들다.
“리선아, 밥 먹을 때는 되도록 말수를 줄이고, 특히 입안에 음식이 있을 땐 말을 하지 말아야지. 또 쩝쩝 소리 내며 음식물을 씹지 말고 입 꼭 다물고 교양인처럼 음식물을 먹으렴.”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는 내게 밥 상 앞에서 엄마가 19년째 말씀 하시는 잔소리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보지 못했다.
물론 비행기를 한번도 못타 볼 수 는 있지만 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나의 어머니가 영국분이시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한국분이시다. 그런데 나는 영국에 친척들이 살고 계신대도 불구하고 영국에 가본 적이 없는 나에게 엄마는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혀온 생활예절들을 내게 가르쳐 주시며, 나도 그대로 행동하기를 바라신다.
어릴 땐 엄마의 말씀을 듣고 이런 생각도 했다. 영국에 데리고 가서 몸소 보여주시고 그런 말을 좀 해주시지. 사실 식사예절 같은 경우는 타인에 대한 매너이므로 내가 타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면 나도 하루빨리 고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철저한 서양식 개인주의.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엄마의 새로 바꾼 휴대전화가 궁금해서, 그 휴대전화의 버튼들을 누르며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나를 보시더니 버럭 화를 내시는 것이었다. 어떻게 남의 물건을 허락도 안 받고 쓸 수 있느냐고...그리고 당장 휴대전화를 원래 있던 곳에 놓으라고 다시 힘주어 말씀하신다. 나는 순간 너무 당황했고 ‘딸이 엄마의 핸드폰을 구경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한 건가...’ 생각하며, 혼자 사색에 빠져 정신이 아주 멍 해졌다.
나중에 엄마께서 하시는 말씀이 어느 날 누가 자신의 핸드폰을 건드렸는데 그 때부터 진동과 벨이 제멋대로 움직여서 매우 불편하고 불쾌하셨다며 (어머니는 기계를 잘 다루시지 못하시므로 더욱 불편하셨을 것이다.) 그때 화낸 것은 미안하시다고 하신다. 그러시고는 덧붙이시는 한마디.
그래도 엄마의 물건은 엄마의 것이니 맘대로 건드리지 마렴. 그리고 그 후로도 비슷한 이유로 우리는 몇 번 더 티격태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화해하며 오늘 까지 왔다. 사실 유럽에서는 자신의 삶을 보호받기 원하는 서양식 개인주의가 그들의 당연한 문화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식이 자연스럽듯 엄마가 영국식이 자연스러운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하루하루 서로의 문화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요즘 우리 한국 사회에서 ‘프라이버시’라고 하며 사생활 보호에 신경을 쓰는 것 역시 시대가 만들어낸 문화의 흐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고향에 못간지 20년이 넘으시고 그리고 연세가 많으신 엄마. 그런 엄마가 바뀌기를 바라기보다 또 비행기 못 탄 것을 한탄하기보다 이제 내가 엄마를 더 이해하고,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부모님께 영국행 비행기를 태워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이제 고향에도 다녀오시고 조금 쉬시라고...
‘튀기’ 좋은 뜻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버스를 타고 수영장에 가려고 언니랑 친구들이랑 버스정류장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두 명의 중학교 교복을 입은 언니들이 한참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 쪽을 쳐다보곤 하더니, 이내 우리들에게 말을 건다. “어머~너 참 귀엽게 생겼다.
혹시 혼혈아니?” 언니와 내가 동시에 대답한다. “네?...네.” 어쩌면 그 날 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혼혈이라는 의미를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안았는데 알게 된 날이.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이국적으로 생겼다는 말만 들어도 그냥 ‘저 혼혈인데요.’ 라고 대뜸 먼저 말한다. 그런데 우스운 것이 몇 가지 있다. 웃기기보다 그냥 내가 조금 당황스럽다고나 할까?
어떤 사람들은 내게 먼저 ‘이국적으로 생겼다.’라고 한다. 그러면 내가 ‘저 혼혈이에요.’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대부분 내가 만난 한국 어른들께서는 ‘아 그러세요?(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미 안 해 요...’ 라고 그 분들은 말씀하신다.
그러면 나는 도대체 뭐가 미안한 것인지, 혹시 혼혈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미안한 것인지, 그게 정말 사과해야 될 것인지... 혼란스러워 질 때가 많다. 나는 괜찮은데 사과를 받아야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친구들 덕을 참 많이 본다.
밖에서 누가 외국인인줄 알았다며 그런 뉘앙스의 말을 내게 꺼내기라도 하면, ‘아니에요. 이 아이 한국인이에요.’ 라고 내 대신 목소리를 높여주며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 친구들 덕분에 나는 ‘내가 정말 한국인이구나.’라는 기분 좋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고마운 친구들 덕분에 행복하다. 이렇게 열성적으로 한국인임을 증명해주는 친구들을 볼 때면, 한민족은 민족성이 강하다고 다시 한번 느낀다.
2년 전 절친한 친구가 하루는 내게 물었다. “리선아, 너도 국제결혼 할꺼야? 그런데 만약 네가 영국 사람도 아니고 한국 사람도 아닌 다른 나라 사람하고 결혼하면 도대체 네 아이는 어느 나라 사람이 될까?” “응 아무래도 난 나와 국적이 다른 나라 사람하고 결혼 할 것 같아.
왠지 운명적으로. 그리고 우리 아가의 국적은 나중에 천천히 정할래. 이중국적을 갖게 하고 싶기는 한데, 아직 누구랑 결혼 할지도 모르니까.” “아~ 그런데 리선아 우리 엄마가 나는 국제결혼 하지 말래. 사람들의 인식도 안 좋고, 일단 우리 엄마가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 “그렇구나.” 그래도 난 우리 부모님이 행복하게 사시는 걸보면 나도 잘 살 거라 믿어. 진정한 행복은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거니까...
얼마 전 학교 수업시간에 날 울컥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남미에는 튀기가 많다.”고 말씀하신 것 때문이었다. 그 때 반장이었던 내 짝꿍은 선생님께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하실 수 있느냐고 말을 하며 나를 간접적으로 위로해 주었다. 그런데 ‘튀기’라는 말을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이런 뜻이었다.
[튀기 : 1.종(種)이 다른 두 동물 사이에서 난 새끼. 2. 수탕나귀와 암소 사이에서 나는 동물. 3. 혈종이 다른 종족 간에 태어난 아이.]
솔직히 말하자면 선생님으로부터 그 말을 듣고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알기 전까지는, 기분이 나빠져서 선생님 까지 미워할 뻔 했지만 사전에 그 어휘가 나와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네이버 검색창에 ‘튀기’라고 쳐 보았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튀기를 나쁘게 다루는 글보다는 ‘나는 튀기가 좋다.’(강신주)의 책부터 동음이의어인 (‘눈에 뜨이고자하다’는 의미로)‘튀기’라는 말도 많이 쓰여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다. 사람은 무엇이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혹자가 말하지 않았는가?
비록 동물의 잡종과 음이 같아서 다소 불쾌감을 주므로 서로가 그런 말을 자제해야겠지만, 아직은 이런 어휘의 사용을 100%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 나는 튀기를, 그리고 나 자신을 더욱 좋아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그 수업시간과 네이버 검색을 통해서, 그리고 이 수기를 쓰면서 말이다. 내가 튀기여서 좋은 점? 생각해 보면 생각해 볼수록 많지만 그 중 네가지를 적어보겠다.
첫째, 일단 눈에 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한 번 보아도 잘 기억해주신다. 감사한일이다. 둘째, 서양적으로 생긴 외모 덕분에 사람들이 영어를 잘할 거라고 굳게 생각해 주신다.(그럴 때마다 더욱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것을 느낀다.) 셋째, 엄마에게 영어를 배울 수 있다. 그래서 사교육비 절감된다. 넷째, 나는 2016년부터 유엔에서 일하고자 하는 꿈이 있기에 다문화를 몸소 배우며 산다는 것이 값진 경험이다.
나의 모습 그대로 살어리 살어리랏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큰언니랑 명동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은 사람도 많고 그만큼 다른 곳보다 외국인이 많은 곳이었다. 사실 명동처럼 번화한 서울을 가면 매번 느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언니에게 말했는데, 자기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며, 우리는 한바탕 크게 웃게 되었다. 그 내용인 즉, ‘여기 명동은 안산보다 외국인이 많아서 사람들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덜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우리 자매는 이렇게 밖에 나가면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자라왔기에 서울에 가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어렸을 적 나는 대인기피증이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것이 싫어서 그랬는지, 자신감이 없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인 앞에서는 사람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지금은 많이 당당해지고 타인 앞에서 나서기도 잘 하는 편이지만, 요즘에도 그 시선을 받는 것이 힘들 곤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도 길가다가 외국인을 보면 한번이라도 더 눈길이 가곤 하지. 그것처럼 나를 알지 못하는 타인이 보기에 나를 외국인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나도 그들을 이해 할 수 있어. 길거리에서 받는 시선을 좋게 생각하자. 나만의 착각 속에 사는 거야. 예를 들면 내가 예뻐서 사람들이 쳐다보는 거라고 생각하거나 어느 날은 내가 입은 옷 때문에 쳐다본다고 생각 하는 것도 좋겠다.’ 그럼 한결 마음이 가벼워 진다. 또 내심 스스로가 너그러워 지는 것 같기도 해서 즐겁다.
서울의 상점을 들어가면 영어를 잘하는 종업원들이 능숙하게 영어로 말을 건네 오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한국말로 “00사러 왔는데, 그건 어디에 있어요?”라고 말하면 “어머 한국말 정말 잘하시네요.”한다. 그렇게 비슷한 말들을 몇 번 들어가면서 명동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던 중 세네명의 대학생들이 우리(큰언니와 나)에게 말을 건넨다. 영어로... “Could you fill out this questionnaire for us?” 언니가 답한다.
"of course."그렇게 대학생들의 과제를 위해 나는 졸지에 외국인이 되어버렸고 온통 영어로 된 그 과제종이를 채우는 나는 모르는 영어가 나올 때마다 진땀을 빼게 되었다. ‘그냥 지금이라도 혼혈이라고, 나는 한국인 이라고 말할까?’
속으로 몇 번이고 목까지 차오르는 말을 삼키고, 결국 언니 것을 베껴가며 질문지에 모두 답변했다. 그런데 사건은 여기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 질문지에 적어놓은 메일주소로 내게 이메일이 왔다. 나는 그 분께 답장을 보냈고, 다시 메일이 왔다.
그런데 그 두 번째 메일에는 혹시 한국인 아니시냐고 묻는 내용이 있었다. 나는 맞다고 했고, 그 사람은 적잖게 실망한 듯, 아마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므로 더 이상 내게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그 날 나는 또 다른 교훈을 얻었다.
‘아, 나는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니 이제 언제 어디서나 한국인이라고 당당히 말해야겠다. 또 영어 공부도 더 열심히 해서 엄마를 부끄럽지 않게 해드려야지. 또 아직은 엄마처럼 못하니까 타인이 무리한 부탁을 할 때는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할 줄도 알아야겠다.’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있는 세상
타인의 시선과 말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외국인이 되었다가 한국인이 되기도 하고 튀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나의 정체성은 왔다갔다한다. 아니, 왔다갔다했다. (지금은 아니므로.)
사실 난 우리 가족들과 원어민 선생님 빼고는 거의 매일 한국사람 들만 마주하고 살다보니, 내가 이국적으로 생긴 것을 까먹고 지낸다. 가끔 스스로 겉모습까지 한국인인줄 알고 지내는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서양적으로 생겼음을 상기시켜 주긴 하지만 말이다.
인문계 고3학생인 나는, 요즘 수능 사탐영역문제를 풀다보면 (사회문화와 윤리)국제결혼 혹은 다문화가정을 소재로 하는 문제가 많이 다뤄지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대부분 국제결혼으로 인한 부정적인 측면을 제시하거나 그것을 답으로 고르게 하는 문제가 대부분이여서, 문제를 푸는 내내 기분이 별로였다.
물론, 국제결혼으로 인한 또 해외이민자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많겠지만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어서 문제가 출제된 걸 보면 괜히 우리 집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마음이 아리다. 앞으로 사탐문제지에서 국제결혼으로 생긴 긍정적인 영향을 다루는 문제를 풀 날을 고대한다.
나는 평범한 한국인이다. 여기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유치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그리고 나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우리 한국 사회가 많이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더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오고 있으며 국가적으로도 ‘다문화’라는 명칭으로 많은 사업을 벌이고 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 대통령. 비록 성장기 때 많은 방황을 하셨지만 방황 끝에 자기 자신과 꿈을 찾으셨고 결국 지금은 미국 대통령이 되셨다. 나도 그 분을 닮아 세계 각지에 있는 혼혈아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바마 대통령을 보면 흑인 차별이 극심한 미국에서 그가 당선 되었다는 사실이, 미국 그리고 나아가 세계의 추세가 다문화를 서서히 포용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글로벌 시대에 앞으로 더욱 서로가 격의와 허물없이 다문화가정의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것이 내가 바라는 모습이다. 오색인종이 어깨동무하는 모습, 그야말로 껍데기는 없고 알맹이만으로 교감하는 사회. 그것이 내가 꿈꾸는 아름다운 사회이며, 이 세상 튀기들의 꿈이다. <초지고등학교 3학년 강리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