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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너희 안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 본 문 : 빌립보서 2장 1절 - 11절 (신약성경 1쪽)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아멘!
서로 인사 / “잘 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축복한대로 됩니다.”
“당신은 역사의 주역입니다. 오늘도 좋은 일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바뀌는 데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살아가는 삶의 주위 환경과, 내 주변의 사람이 변함으로 내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내 마음이 예수 중심으로 완전히 뒤집어짐으로 말미암아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내 마음에 임하심으로, 나의 마음이 완전히 변화되어야 합니다.
한 젊은이가 자기 스승에게,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불평을 항상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스승이 소금 한 사발을 물 한 컵에 넣더니, 그 물을 불평하는 제자에게 마시게 하였습니다.
제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아주 조금 마셨습니다. 그러자 스승이 물었습니다. “맛이 어떠하냐?”
“짭니다.” 스승은 제자를 호수로 데려가서 소금 사발을 호수에 붓고 그 물을 떠 마시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짜냐?” “안 짭니다.” 그러자 스승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같은 소금이라도 짠 맛의 정도는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 인생의 고통도 마찬가지이다.
네게 불평할 일이 생길 때마다, 너는 컵이 되지 말고 모든 것을 품어버리는 큰 호수가 되어라.”
여러분에게 고난이 큽니까? 고통이 심합니까? 삶이 힘듭니까? 미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면 먼저 여러분의 마음이 간장종지 같이 작은지, 큰 호수 같이 큰지를 먼저 살피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간장 종지 같이 작으면 매사가 힘들고 짜증나지만, 마음이 호수 같이 크면 매사가 행복합니다.
오늘 본문 5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마음은 간장종지 같이 작을까요? 아니면 큰 호수, 아주 더 큰 바다 같은 마음일까요?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 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에나, 언제 어디서나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모든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렇게 내가 예수님 마음으로 뒤집어 지면, 나를 통해서 내 주위 사람들과 세상도 뒤집어 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으로 내 마음을 바꿀 수 있습니까? 돈입니까? 권력입니까? 지식입니까?
아닙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십자가뿐입니다. 그래서 예수 십자가가 우리에게 복음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복음이신 예수님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말씀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 받게 하는 기쁜 소식 - 곧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받도록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차피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서, 왜 진노하십니까?
가장 쉬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고, 정신대가 스스로 매춘을 하러 간,
여인들이라고 억지 주장을 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하여 대한민국 국민은 어떤 마음을 가집니까?
6.25 전쟁이 북침이라고 말하는 북한의 억지 주장에 대하여 대한민국 국민은 어떤 마음을 가집니까?
당연히 분노합니다. 그것은 ‘진리를 가로막는 일’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계시는데도,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조물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사람이나 새나 동물의 형상으로 바꾸어 놓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주 하나님 대신에 피조물을 숭배하고 섬겼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나 짐승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진노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 받게 하는 기쁜 소식은, 곧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받도록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 안 믿는 불신자들이 우상숭배 하는 것은 하나님이 계신 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아닙니다. 로마서 1장 19절, 20절을 위시한 많은 성경들이 누구나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일이 사람들에게 다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알 수 있는 마음까지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 줄을 몰라서 못 믿었다는 등의 핑계는, 다 거짓말일 뿐입니다.
누구나 조금만 생각이 있다면 하나님이 계시며,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옳고 그름,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구별하는 양심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는 놀라운 지성을 가지고 있고, 독창적이고,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복잡한 여러 가지 언어로 말하며, 죄를 인식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욥기 32장 8절 말씀을 보면, 이런 우리 인간들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속에는,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영이 있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문제는 이처럼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의도적인 배신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인간들의 무서운 죄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이 안 계시다는 것을 알고서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그 마음에 하나님을 부인해야 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2차 대전 당시 자신들의 만행을 정말로 모르기에 부인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다 압니다. 증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국익을 생각하고 정치적 계산을 하니 부인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자기들 체제가 정말로 우월하다고 생각할까요? 아닙니다. 핵심 권력자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체제를 우월하다고 선전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여당이나 야당이 주장하는 것들도, 다 정권을 잡기 위한 수단과 방법들일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서로 말합니다. 국민들을 위해서라고, 저들은 절대로 진실을 진실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모든 일을 대할 때에,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될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거짓말도 서슴치 않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여러분! 이처럼 알고도 짓는 죄가 무섭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성이요. 멸망하는 이유입니다.
어느 집사님께서 담배를 피다가 자기 교회 목사님에게 딱 걸렸습니다. 목사님도 집사님도 당황합니다.
목사님이 먼저 아무 말도 않고 집사님의 손을 잡아드렸더니, 그 집사님이 이렇게 고백을 했답니다.
“목사님! 담배에 자꾸 손이 가요. 그리고 담배를 피면 마음이 안정되요. 중독이 되었다고 깨닫지만,
못 끊겠어요.” - 이 집사님은 담배 피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기작가요. 국회의원이었던 김홍신 씨가 자신의 스승이 던진 한 마디에 담배를 끊었답니다.
“쥐는 쥐약인 줄 알면 먹지 않는데, 사람은 쥐약인 줄 알면서도 먹는다.” 는 말에 충격을 받았답니다.
‘죽는 날에도 담배를 입에 물고 죽겠다.’ 고 큰소리쳤던 그였지만 담배를 끊기로 결단을 했답니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을 끌고 가도 시원찮은 내가 담배한테 끌려 다니다니”
그리고 37년 6개월간 피던 담배를 끊었답니다. 그가 담배를 끊었다는 말을 듣고서 아는 사람들마다,
‘참 독한 사람’ 이라고 말하더랍니다, 김홍신 씨는 이렇게 말해 주었답니다. “독극물을 삼키는 사람이,
독한 사람이지, 독극물을 버린 사람이 어찌 독한 사람인가?” - 이것이 인간의 솔직한 말 아닙니까?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도 부인하는 것일까요?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불신자의 문제는 마음의 주인이 마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마귀에게 마음을 내어 주었을까요?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게 싫고 맘대로 죄짓고 살고 싶어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 자신에게도 일어나는 일이기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마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나면, 하나님이 안 보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어집니까?
지금 여러분에게 알고 짓는 죄는 없습니까? 지금 우리가 짓는 죄는 대부분 알고도 짓는 죄들입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을 “주여! 주여!” 부르면서도, 실제로는 죄의 종노릇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은 것이 다시는 죄의 종노릇하지 않으려 함인데 이 어찌된 일입니까?
로마서 6장 6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아멘!
우리가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마음에 임하셨음을 믿지 못하여 마음을 방치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철저히 파괴되고 망가졌습니다. 세상은 침몰 중입니다. 인간이 만진 모든 것은 망가졌습니다. 심지어 무신론자들도 기후 변화에 대해 초조해하고 세계가 잘못 된 것은 인간 탓이라고 말합니다.
두려운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이 엄청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와 같은 일을 하는 자들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공정한 법도를 알면서도,
자기들만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을 두둔하기까지 합니다.
지금 시대를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주류인 시대라는 것입니다.
무신론이 상식이요 교양인 시대입니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무신론이 세상에 퍼졌던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세상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심판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지 큰 걱정이고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이미 공산주의를 겪었습니다. 공산주의는 지금까지 나온 정치사상 중에,
가장 사람을 위하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초기에 많은 지식인들이 매료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근본 뿌리는 하나님을 노골적으로 부인하는 사상이었습니다. 결과가 무엇입니까?
인류 역사상 가장 인간의 존재가 무시되고 끔찍한 감옥 생활을 해야 했던 나라들이 세워졌습니다.
무신론 사상이 이처럼 퍼져가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인류를 파멸시키려는 마귀의 전략입니다.
무엇 보다 먼저 하나님을 부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사람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변해 가는데, 하나님은 가만 계시는 것은 왠 일입니까? 로마서 1장에,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내 버려두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마음의 욕정대로,
하도록 더러움에 그대로 내버려 두시니, 서로의 몸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끄러운 정욕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타락한 마음자리에 내버려 두셔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도록 놓아 두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타락하게 된 일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동성애입니다. 동성애는 결국 마음의,
정욕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성적 취향이 아닙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어린아이들과 성행위가 취향이라고 해도 동물과의 성행위가,
취향이라고 해도 허락할 것입니까? 이것 안 되고 저것은 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이처럼 하나님을 부인하고 나면, 온갖 죄를 짓게 된다고 로마서 1장 29절 이하에 말씀합니다.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차 있으며, 시기와 살의와 분쟁과 사기와 적의로,
가득 차 있으며, 수군거리는 자요, 중상하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불손한 자요,
오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꾸미는 모략꾼이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신의가 없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이런 죄를 짓는 사람들은 다 죽음이라고 판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이렇게 살지 못하게 막으시지 왜 내어두시는 것일까요? 로마서 1장 28절에,
“...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하나님이 마음대로 못하시는 것이 딱 하나,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람이 마귀를 택한 것입니다.
마음에 마귀가 주는 생각을 품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내버려 두실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가롯 유다에게 여러 번 간섭하셨지만 끝내 제 길을 가자 "네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하라." 고,
그 마음을 내버려두셨습니다. 그것은 가롯 유다가 마음을 사탄에게 내어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행동으로는 부인할 수 있습니다.
디도서 1장 16절에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잠언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로마서 1장 29절 - 31절에 열거된 하나님께서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 정하신 항목을 살펴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시기, 분쟁, 수군거리는 자, 오만한 자, 자랑하는 자,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한 자, 신의가 없는 자,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 이 같은 항목들은 그리스도인들도,
무심히 품고 지내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지옥에 갈 사람들의 마음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특히 ‘수군거리는 자’ 는 혼자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두 사람 이상이 모여야 수군거리는 것이고,
맞장구를 쳐주어야 수군거리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남에 대하여 수군거리면 사형에 해당한 죄입니다.
마음에 염려와 근심이 가득합니까? 미움과 원망이 일어납니까?
욕심과 정욕이 자리 잡고 있습니까?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을 마귀에게 열어 주면 바로 죄의 종노릇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넬슨 만델라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27년을 복역했다가 석방되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감옥에 넣었던 백인 정부를 용서했습니다. 그 이유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느 날 채석장에서 바위를 깨다, 문득 그들이 내 정신과 마음 말고는 모든 걸 뺏어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정신과 마음만은 절대 내주지 않기로 결심을 단단히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나를 27년이나 감옥에 가뒀는데, 내가 그들을 증오한다면 계속 갇혀 있는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나는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증오를 털어버리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아무리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상이 되어간다고 하여도,
24 시간 주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자는, 온전히 믿음을 지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옥고를 치르는 중, 사모님이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를 하였습니다.
"동인 어머니에게, 이 같은 뜨거운 여름날에 병으로 열까지 심하니 설상가상의 어려움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는 기후와 환경을 초월한 것이니 마음을 평안히 가지시기 바랍니다.
꽃 피고 새 우는 양춘가절에만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 뿐 아니라, 백설이 분분한 엄동혹한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하며, 오곡백과가 성숙하는 가을에만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 뿐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이 같은 뙤약볕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하며, 온갖 귀한,
그릇에 담긴 산해진미를 먹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찬미할 뿐 아니라, 초라한 집에서 굶주리고 병든,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할지니, 항상 기뻐하시고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을 잃었고, 사모님은 병들었으며, 자신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이런 손양원 목사님은, 충분히 하나님을 원망하며 부인할 수도 있었던 힘든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님은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고 사셨기 때문에 믿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지금 내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삶은 너무나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하나님이 믿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진정 살아계시다!”
이것이 세상에서는 누리지 못하는 기쁨, 오직 주님만이 주시는 하늘의 기쁨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1절에서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아멘입니까?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간절히 기도합시다. 지금 우리 스스로의 요청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