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
장석민
폭염 아니면 폭우가 반복되는 장마철의 어느날
잠시 비가 주춤하고 엄청난 무더위가 엄습한 날 에어컨을 가동했다.
웬만한 더위에는 에어컨을 켜지 않고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어 두면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그 날은 너무 더운 날이어서 항상 산책 나가던 시간에도 창밖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거나 책장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다가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본다.
저녁 식사를 하고 잠시 쉬다가 밤9시 조금 넘은 시간에 밖으로 나왔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후텁지근한 공기가 온몸을 누른다.
열대야의 느낌을 받으며 터벅터벅 걷는다.
아파트 단지에 후문이 몇 군데 있는데 작은 공원이 있는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산자락에 있는 작은 공원에는 몇 가지 운동기구와 배드민턴장, 게이트볼장 그리고 곳곳에 벤치가 설치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다.
또한 공원 한쪽에 약수터가 있어서 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곳이기도 하다.
산자락에 있는 공원이어서 밤이 되면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산책하고 올 때면 이곳에 들러 운동기구를 이용한 운동을 조금씩 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따라 운동기구 있는 쪽에 사람이 한 명도 없고 가로등만 비추고 있다.
운동기구 있는 쪽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면서 보니 한가운데에 작은 동물 몇 마리가 보인다.
낮에는 길고양이들이 자주 오가는 곳이어서 길고양이 가족인가 보다 하고 운동기구 있는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길고양이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너구리다.
몸의 털 색깔이 길고양이와 비슷해서 길고양이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미 한 마리와 새끼 대여섯 마리쯤 되어 보인다.
운동기구 둘레에 철쭉나무가 많이 있는데 길고양이들이 철쭉나무 사이에서 쉬기도 하고 운동기구 있는 곳에도 오가며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과 놀기도 한다.
고양이 좋아하는 캣맘들이 고양이집도 만들어 놓았고 사료도 거의 매일 주는 듯 하다.
너구리들이 길고양이의 사료가 있는 것을 알고 먹으려고 산에서 내려온 듯하다.
산길을 걷다가 너구리를 본 적은 있어도 공원에서 본 것은 처음이다.
인터넷 기사를 보면 도심 공원에도 너구리가 나타난다고 하더니 너구리가 많은 모양이다.
내가 운동기구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데도 어미 너구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나를 응시하면서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다.
너구리 꼬리가 아래를 향하고 있고 나의 움직임을 계속 따라오는 눈빛이 느껴진다.
어미 너구리가 계속 나를 경계하는 것은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모성애일 것이다.
나는 아무런 장비를 가진 게 없었고 주변에 막대기나 돌멩이도 없었다.
예전에 산골에 살 때는 야생동물만 보면 몽둥이나 돌멩이 혹은 낫을 이용해서 잡거나 쫓아버렸는데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산골에 살 때는 야생동물들을 보기만 하면 잡으려고 했던 것은 야생동물들이 농작물을 해치기 때문이다.
씨앗 심어 놓으면 새들이 와서 땅을 파헤치고 씨앗을 먹어 치우고, 새싹이 나면 고라니가 와서 뜯어먹고 하니 농민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건 지금은 너구리를 자극하지 않아야 한다.
승산 없는 싸움은 해서는 안 되고 피해야 한다.
어미 너구리를 계속 주시하면서 살살 걸어서 어미 너구리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는 운동기구에 가서 운동을 시작 했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어미 너구리는 새끼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새끼 두 마리는 어미를 따라가지 않고 남아서 철쭉나무 아래로 숨었다가 나왔다 하면서 신나게 놀고 있다.
너구리를 보니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에 너구리라는 별명을 가진 선수가 생각난다.
삼미슈퍼스타즈라는 팀에서 1983년에 투수로 활약한 재일교포인데 일본에서 야구를 하다가 한국에 온 선수다.
한국프로야구에서 전무후무한 단일시즌 30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역대 2위의 기록은 1984년에 최동원 투수가 세운 27승이다.
어쩌면 앞으로 나오기 힘든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명부 투수는 워낙 교묘한 구질과 강속구를 섞어서 던졌기 때문에 변신의 귀재라고 하여 너구리라는 별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밤중에 너구리를 보니 갑자기 오래전의 그 너구리 투수가 떠올랐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공원 산책로를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인다.
조금 후에 젊은 여자가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서 산책을 하고 있다.
철쭉나무 부근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강아지가 큰소리로 멍멍하고 짖는다.
젊은 여자는 놀랐는지 ‘갑자기 짖어서 놀랐잖아’ 하고 강아지를 나무라는 듯하다.
아마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던 새끼 너구리를 강아지는 본 모양이다.
산자락에 있는 아파트에 살다 보니 산길을 걷다가 가끔 야생동물을 보곤 한다.
고라니, 너구리, 뱀, 길고양이와 여러 종류의 산새들을 보게 된다.
산책을 나서면서 오늘은 어떤 동물들을 만나게 될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산책을 할 때도 있다.
아파트 후문 산자락에 ‘뱀 출몰 주의’ 라고 써붙여 놓기도 한다.
이틀 후 낮에 공원을 지나가다 보니 ‘야생 너구리 출몰주의’ 라고 크게 쓴 안내문이 보인다.
주의 사항도 몇가지 적혀 있다.
야생동물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 생태계가 좋아진다는 것일까
너무 늘어나는 야생동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과 야생동물이 공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데 쉬운 문제는 아닌 듯하다.
지루한 장마철은 계속되고 폭염과 폭우는 반복되고 있는 여름이다.
첫댓글 먹을게 부족해서 멧돼지가 민가에 내려왔다는 뉴스를 접하기도 했었는데
혹시 작가님 보신 너구리 가족도 그런 이유로 인간의 영역까지 내려온 걸까요?
그렇다면 참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생중계 같은 작가님의 글에서 장난꾸러기 너구리 새끼의 귀여운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집니다.
너구리 가족이 산에서 먹을 것이 부족하니까
손쉽게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곳으로 내려온 것이죠
멀리서 보면 귀여운 너구리인데 야생동물은 위험합니다.
야생동물이 너무 많아졌어요.
너구리 가족을 만나셨군요. 잘 살아가기를 빕니다.
너구리가족이 잘 살기를 바라야겠지만
산에서 살면 좋을 듯합니다.
민가 근처에 출몰하는 것은 서로 불편하지요.
생태계를 이루는 생명이 어디에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들의 터이기 때문일 겁니다
다만, 인간이 인간의 생활에 맞추다 보니 조심이라는 말이 생겼을 것입니다
인간의 최대 조심 상대는 바로 인간입니다 ㅎㅎ
그래서 너구리 정도는 맘 편히 끓여 먹고 있지요~~ㅎㅎ
아, 그렇군요
너구리 맛 있게 드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