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1ㄷ,ㄹ)
하느님께서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고 고대하던 주님이 홀연히 그의 성전에
올 것을 예고하신다. 여기서 '주님'과 '계약의 사자'는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주님'과 '계약의 사자'가 동의어로 됨으로써, 계약의 사자인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와 주 하느님은 동일한 분이시라는 것이 성립된다. 이같은 사실은 요한 복음
1장 1절과 필리피서간 2장 6절에서도 유사하게 제시되지만, 삼위일체의 진리를
입증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계약의 사자'에 해당하는 '우말르아크 합베리트'
(umallak habberith; the messenger of the covenant)로 표현된 것은 그가 성부
하느님에 의해 보내심을 받은 사자, 곧 하느님의 계약을 실현하기 위하여 파견된
분이심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하느님의 계약이란 옛 시나이산 계약(옛 계약;구약; 舊約)과
대비되는 '새 계약'(the new covenant)이다. 이 새 계약(신약; 新約)에 대해서는
과거 이사야 예언자(이사55,3; 61,8), 예레미야 예언자(예레31,31-34), 에제키엘 예언자
(에제16,62; 37,26)등에 의해 이미 예언된 적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 구원 사업이라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당신 자신이 흘리신 피가 바로 새 계약을
이루시는 피임을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선언하셨다(마태26,28).
그런 점에서 말라기 예언서 1장 1절ㄷ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무죄한 피를 흘려
백성들과 하느님 사이를 새 계약으로 일치시킬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와 메시야를
보내실 것을 예언한 것임에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너희가 찾던'에 해당하는 '앗템 메바크쉼'(athem mebaqshim)은 히브리어
에서 사용을 안해도 의미가 통하는 2인칭 복수 대명사와 '구하다', '추구하다', '찾다'
등의 의미를 지닌 '빠케쉬'(bakesh) 동사의 강조 분사형이 사용되어, 직역하면 '바로
너희들이 간절히 구하고 있는'으로 번역할 수 있다.
또한 '너희가 좋아하는'에 해당하는 '앗템 하페침'(athem hapetsim)은 '바로
너희가 몹시 기뻐하는' 이라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사실 동의적 대구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표현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를
얼마나 간절히 열망하였는지를 잘 드러낸다.
그들이 메시야를 갈망한 것은 메시야가 선민 이스라엘로 하여금 과거 다윗과 솔로몬
시대와 같은 영광을 누리는 시대를 도래케 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주 하느님께서 계약의 사자, 곧 메시야가 '홀연히'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메시야가 오실 때 그들이 알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할 것임을
의미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피트옴'(pithom)은 '갑자가',
'놀랍게', '예기치 않은 때에' 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메시야가 누구도 알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온다는 의미,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게 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메시야가 오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나태하여 그를 알아보지 못할 것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장차 메시야의 재림 때의 상황과도 긴밀하게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메시야께서는 분명히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날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아울러 하느님께서는 그 계약의 사자가 '자기 성전'에 오실 것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
해당하는 '헤칼로'(hekallo)는 '그의 성전'(his temple)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그의 궁전'(his palace)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통치자가 머무는 처소인 '궁전'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를 사용한 것은 성전이
바로 만왕의 왕이신 주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탄생하신 지 여드레 만에 성전을 방문한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지 40일 만에 성전에서 봉헌되었고(루카2,22-39),
마지막 수난 주간이 시작할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던(마태21,12-17)
사건을 예고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헀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메시야가 오시는 성전을 '그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관련해서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예루살렘 성전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자리, 곧 메시야께서 당신 스스로 자원하여 이루실 구원사업으로 말미암아 세우실
당신의 몸인 교회, 당신의 인류구원사업이 계승되는 성사적인 인간 집단인 교회, 즉
하느님의 백성들이 거룩한 공동체 한 가운데 영신적 임금으로 좌정하셔서 통치하실
것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3)
'깨끗하게 하고'에 해당하는 '웨티하르'(yethihar)의 원형 '타헤르'(thaher)는
어원상 육체적, 도덕적으로 불결하지 않고 깨끗하고 순수한 상태를 나타낸다(창세35,2;
레위12,7; 민수8,21; 에례33.8). 이 단어는 구약에서 78회 나오는데, 그 가운데서
정결례 의식을 주로 다루는 레위기에서 무려 35회가 나온다. 그러니까 이 단어는 제사와
관련하여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하느님께서 당신께 합당한 백성들로 세우기 위해서 그 선택한
백성들을 영적,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거룩하게 한다는 의미, 즉 성화(聖化)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말라기는 이러한 사실을 보다 힘주어 강조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마치 금과 은을 정련하듯이 그들을 정련하신다고 진술한다.
여기서 '정련하여'(단련,연단)에 해당하는 '웨직자크'(yeziqaq)의 원형 '자카크'
(zaqaq)는 광석을 정련할 때에 불순물을 용해시켜 버리고 순수한 금속만을 추출해
얻는 과정을 나타내는 단어이다(욥28,1).
여기서 이 단어는 메시아께서 레위 자손으로 표현된 신약의 백성들을 깨끗하게 하시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거룩한 고난, 시련과 환난 등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성령의 불로 그들의 죄악을 사를 때에 고통스러울 것이며, 그들의 인격의 모난 부분을
깎아 내고 연마할 때 아픔이 수반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결과 그들은 정금같은 순수한 면모를 갖춘 참 하느님의 백성, 거룩한 성도라
일컬음을 받기에 합당한 거룩한 신앙의 인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욥23,10; 야고 1,4)
특별히 오늘 2월 2일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봉헌 생활의 날'로 제정하여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정하여 모든 신자들이 수도 성소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고 봉헌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권고하고 있기에,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봉사자들의 거룩한 정결, 봉헌된 정결, 성결(聖潔)에 대한 가르침이라 생각하여
중요한 단어들을 묵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