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IMF의 위기를 겪은 후 2000년대부터 서점가는 자기개발서 위주의 책들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자기개발서들의 위력은 대단하다. 자기개발서의 근원을 좇아가 보면 1859년
새무얼 스마일즈의 '자조론' 이 눈에 뛴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영웅들의 성공담화를 그러내
는 이 책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라는 명제로 유명하다. 말하자면 험난한 인생 여정을 걸어가기 위해 개인
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담고 있는 책이 '자조론'이다.
과연 우리는 노력하면 성공하거나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사는 것일까. 그리고 개인의 노력에 따른 그 결과가 정당하리
라는 인식을 우리는 공유하고 있는가, 성서 공단에서 하루 종일 열심히 노력하는 노동자가 최저 임금을 받는 데 반해
우리나라 최대 기업 등기 이사들은 80억에 가까운 연봉을 받고 있는 현실, 서로의 능력고 노력에는 당연히 차이가 있고
차이에 따른 대가는 정당하하고 믿으나 그 차이가 300배를 훌쩍 넘어 선다는 것은 노력의 여부로 감상할 만한 계산이
아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많이 먹는다."란 말을 수없이 듣고 자란 우리는 노력과 경쟁을 당위로 여긴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다. 새벽 미사, 성체 조배, 신심 활동, 9일 기도, 성지 순례 등등은 열심한 신앙 생활을 위한 구체적
실천 실천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 생활이 바깥세상의 노력과 성공이 아니라 친교로 하나된 공동체의 노력과 성공
이라는 것, 교회의 복음이라고 일컫는 마태오 복음이 우리 신앙인의 노력과 성공을 뚜렷하게 서술한다.
예컨대 마태오 18장에서 만 탈렌트의 빚을 탕감해 주는 임금의 모습이 그러하다. 수많은 재산을 지닌 임금이 만 탈렌트,
그러니까 우리돈으로 2조원에 가까운 돈을 탕감해 줄 수 있는 것은 빚진 종을 향한 '가엾은 마음' 때문이었다. 엄청난
부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자비의 시작으로 읽혀지는 대목이다. 우리 신앙의 노력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서로 다른 지체들이 한몸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노력을 해야 하며, 노력의 틈바구니 안에서 신앙 생활이란 걸 해내야 한다. 그래서 짧은
시 하나 소개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를 쓴 작가 쉘 실버스타인의 시 '일찍 일어나는 새'다.
"당신이 새라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벌레를 잡아먹을 수 있을 테니까
만일 당신이 새라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
하지만 만일
당신이 벌레라면
아주 늦게 일어나야 하겠지"
여기에 개그맨 박명수의 표현을 얹어 보면 어떨까.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피곤하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늦가을, 쉼없이 달려온 우리 인생에게 늦잠을 허락하는 여유가, 그 여유가 서로에 대한 애틋한
사랑으로 전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글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 월간 <빛> 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2024년 11월호 빛 책자 중에서 옮겨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