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민망한 얘기다.
서울로 가는 휴게소에서 호두과자를 샀는데 음료도 없이 먹으려니 넘어가지않는다.
커피 한 모금이 절실하지만 마실수없다.
재작년인가?
그때도 휴게소에서 커피와 호두과자를 샀었다.
옆자리의 서울 면접보러가는 취준생과 인생 선배랍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어느 순간부터 말을 할수가 없었다.
이뇨제가 잔뜩 들어간 커피 한 잔을 다 마셨으니 소변이 급해진거다.
내 사정이 이러하니 이해해달라고 대화를 끊고부터 사투가 시작됐다.
휴게소는 이미 들렀지만 한번 더 들러줄것을 부탁할까?
아니다. 승객한테 민폐다.참자.
1시간 반 정도면 도착이니 꾹 참자.
점점 더 힘들어지더니 호흡도 불량해진다.
기사분께 사정 얘기를 할까,아니다.참자.
수없이 갈등하다 결국 이겨내고 도착.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고 더 큰 걱정은 자리에서 일어나면 쏟아질까봐 두려웠고 겨우 일어났다고해도 걸어갈땐 또 어쩔것인가.
그래도 있는 힘을 다해......성공했다.
그때의 악몽으로 화장실이 확보되지않는 곳에서의 커피는 사절이다.
센트럴시티를 지나 3호선 역 어디에도 사용 가능한 사물함은 없었다.
마침 교체중이어서, 궁여지책 끝에 역무실에 맡겼다.
규정상 안되는 일을 쉽게 처리했음에 만족하며(?)3호선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신세계에서 내렸다.
친구는 만난지 1년이 넘었지만 큰 변화없이 편안하게 만날수있어서 좋았다.
3시간여를 친구와 보내고 역무실에 맡겨둔 가방을 찾아 딸 집으로 갔다.
딸과 얼집의 세유니는 7시경 귀가할것이고 그 전에 맛있는 밥을 지어두고싶어 5시경 들어갔다.
살아가면서 느끼게되는 여러 행복 중에서 현재의 나로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크다.
오랜만에 밥다운 밥을 먹었다는 한마디로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다음날은 현충일을 끼워서 연차를 낸 딸 덕분에 강릉행 ktx를 탔다.
세유니에게 기차를 경험해주고 싶기도하지만 아무것도 하지않는 휴식여행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었다.
우리 아이들이 3살,6살때 비행기를 경험해주고싶어 무리해서 탄 적이있다.
2시간이 채 걸리지않는 강릉까지는 세다 말았지만 서른개가 넘게 터널을 지난다.
양평 만종 횡성 둔내 평창 진부를 지나는 길엔 하얀 감자꽃(나의 추정)이 끝없이 펼쳐져있고
강원도 하면 빼놓을수 없는 옥수수밭은 또 얼마나 많은지.
내 고장 전라도와는 좀 다른 분위기다.
접근성이 좋은 ktx로 인해 강릉을 찾기가 훨씬 수월해질듯하다.
말끔한 강릉역은 수호랑과 반다비 일색이다.
어! 호돌이다.
나의 외침에 딸아이는, 수호랑이거든?
아......호돌이와 수호랑의 차이......세대차이.
렌트카로 간 강릉의 유명 맛집 초당할머니순두부집에서 오래전에 방문했을 그리운 노대통령 사진을 보다.
허난설헌전시관의 허초희,허균을 만나고 생가까지 둘러본다.
강릉하면 요즘은 커피란다.
안목해변의 조망권 최고인 카페 3층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남편에게 사진을 전송하며
안목해수욕장이야.
그래?거기 옛날에 갔었잖아.물이 어찌나 차던지 입술이 새파래지고.
아! 근데 난 왜 생각이 안나지.
그때부터 열심히 기억을 추적.
아! 생각났다! 근데 안목이 아니고 연곡해수욕장이거든?
어? 맞다 연곡이다!
푸른 동해바다를 품은 프라이빗리조트, 라카이에 짐을 풀자
앞으로는 바다가, 뒤로는 경포호수가 나의 피로를 허물어뜨린다.
사위는 내일의 출근을 위해 늦은 ktx를 타고 가고 달콤하고 편안한 사색과 휴식이 시작된다.
소나무는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군자식물이라는 율곡의 예찬이 아니더라도
끝없이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의 새벽 산책은 오래도록 기억될것같다.
라이더들의 천국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풍경과 잘 닦인 동해안 자전거길은 훌륭하다.
강릉와서 오죽헌을 다녀가지않으면 어쩐지 허전하다.
서너번째 방문이지만 매번 정갈해지고 단정해지는 느낌이다.
여행은 하나라도 더 봐야하고 안가보면 손해라도 나는것처럼 늘 정신없었다.
아무것도 하지않고 낮잠도 자고 배고프면 먹고 하고픈대로 하는 여행은 아마도 처음이지싶다.
서울역이 아닌 청량리역에서 내린 이유가 있었다.
아들이 청량리역으로 차를 가져온다기에 불현듯 떠오르는 회기동.
스무살 무렵의 내가 떠올랐다.
그래. 거길 가보자. 거길 가면 내가 있을거야.
키스트 건너편의 언덕길 맨 끝집.
흔적도 없었다.
센베를 구워 팔던 과자점은 편의점으로 바뀌어있었고 학교 앞은 는 그렇듯 옷가게 카페 일색이었다.
한 블럭 밑에 있던 친구집도 어느 한 부분도 남아있지 않았다.
슬프고 안타깝고 울고싶었다.
정신없이 기억을 더듬으며 자주 이용했던 왕약국, 2층의 탁구장, 쫄면집등등을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학교안까지 들어가기엔 시간이 많이 필요해서 그냥 지나치다 외대정문 앞을 지나칠때
거기, 스무살 언저리쯤 그 길을 걸었던 때를 떠올렸다.
왜 눈물이 날까.
그 시절을 추억하는데 왜 눈물이 나는걸까.
아들과 딸은 내가 맘놓고 추억할수있도록 기다려주었다.
지금은 돌아와 무등산을 우러러 보고있지만
그 골목을 오르내리던 스무살쯤의 나로 계속 머물러있어서
요즘 말로 기슬픔이라고 해야하나
웃프다고 해야하나
때아닌 가슴앓이중이다.
첫댓글 가급적이면 마시지않는 오후의 커피때문인가요. 잠이 안와요. 오지않는 잠을 억지로 잘 필요가있나요. 책상에 앉았지만 책은 읽기 싫어요. ㅠㅠ 생각을 바꾸기로했어요. 아기편지를 사유화하자! 그냥 내 일기장으로 만드는거야. 너무나 갠적인 이야기로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르지만 생각 나름 아니겠어? 나중 지금보다 훨씬 나중에 지금을 추억하기 가장 좋은곳이 여기 하하말고 더 있을까? 뭐든 편하게 생각하려는 대책없는 느긋함에 사고를 칩니다. 누구든 수위를 넘었다고 느낀다면 개인적 알림을 부탁합니다.
정말 재밌고 즐겁고 잔잔하고 편안하면서도 감동이 있는 글로 아침을 맞이하네요. 솔밭길을 산책하는 기분이 듭니다. 수위를 넘었다는 표현은 전혀~ 그런 생각 전혀 안 들어요^^
나도 일기처럼 아기편지를 쓰는데 그러다보니 나의 카드를 너무 빨리 보여준 것 같은 허전함과 경솔함.
그래서 조금 침묵하는데 영희씨도 일기처럼 글을 올렸군요. 나는 스무살때 실내화를 신고 학교 다녔네요. 그렇게 몸이 가벼웠어요. 날아갈것 깉은 젊음. 그 때 참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아주 행복합니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재미요, 오늘도 벤치에 앉아 기어가는 개미. 꽃에 앉은 벌, 탱크처럼 가는 쥐며느리 보면서 구름도 보고 하늘도 보고 우주도 보고 담배도 피우고 지금도 행복합니다. 나만 아련한 추억이 지났다면 슬프겠지만 우리 모두가 지나거든요. 그러니 가슴 멍해지지 마세요. 지금은 지금대로 행복합니다.
일기 같은 아기편지.얼마나 생동감 넘치고 흥미롭나요? 타인의 일상 엿보기..평소 느끼는 감정들에 살짝 우리도 헤집고 들어가 같이 추억을 나눕니다.아름다운 20대를 되돌려 보고 그 때 알 수 없던 모든 것을 연륜으로 가만히 웃어 봅니다.철없던 그 시절이 그래도 좋았어..하며..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 강원도입니다.추억이 새록새록..커피를 즐긴 후의 말 못할 고통^ 그래서 나와 연택은 기차를 이용합니다.예전에 고속버스에도 더러 화장실이 있었다지요.
센트럴시티를 센트럴파크라고 했네요.생전 가보지도않은 맨허튼의 공원을 어찌......송도에 있는 센트럴파크도 안가봤구만.
가끔, 아니 더 자주, 알고도 또는 몰라서도 실수 많이 했을겁니다.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하하님들이라 소통에는 지장없었으리라 여기고있답니다. 맞춤법도 가끔은 틀렸을것이고 띄어쓰기는 말해 뭣하겠습니까.글쓰기를 안배운것도 아니련만 도무지 배운 값을 못하고있습니다. 교수님을 비롯 하하님들, 혀를 끌끌 차시진않는지 심히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