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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10,000가지 이유로 나 송축해!/ 시편 103:1~5
(설교자: 마경훈목사)
10,000가지 이유로 나 송축해! (시편 103:1~5) - 마경훈목사 - YouTube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은혜는 마치 지면에 내리는 비와 같습니다. 지구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곧 온 대지는 메마를 것이고, 모든 동식물은 죽을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비와 같다는 말은 지나친 폭우와 홍수 같다는 말은 아닙니다. 비는 적당하게 내려야 합니다. 이스라엘에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립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포괄적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에서는 다윗은 자신의 영혼에게 두 가지를 명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을 송축하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송축해야 할 이유는 많습니다. 하나님은 존재 자체가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누군가에 의하여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안 계시는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가 위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품이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의 성품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실례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은 능력 면에서 위대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능력의 말씀으로 세상을 운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위대하기에 송축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크고 많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주신 은택을 잊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여기서 은택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גְּמוּל’(게물)인데 ‘은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크고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은혜는 어떤 것들일까요? 본문 3-5절을 보면 그 은혜들의 목록이 나옵니다. 오늘 설교는 그 부분을 나누겠습니다.
1. 모든 죄를 사하시는 은혜(3절)
3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죄악을 사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이며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죄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로 인하여 열리는 열매들이 많습니다. 먼저 영적 죽음입니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존재였지만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었기 때문에 사람은 죽어서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죄의 열매 중에 인간관계의 단절이 있습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열려야 행복합니다. 하지만 죄 때문에 인간관계가 단절 되고 불행하게 사는 것입니다. 부부 간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계속해서 단절이 일어납니다. 죄의 열매는 환경의 파괴, 육체의 질병 그리고 육체의 죽음 등 온갖 저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27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은 다 죽습니다. 저도 죽고 여러분도 죽어요. 우리는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죽음 후에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확실하게 못 박고 있습니다. 죽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죄의 처리입니다. 만약 이 땅에서 죄를 해결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는 반드시 유황불 타는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반대로 이 땅에서 죄 문제를 해결하고 죽는 사람은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립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죄의 처리입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황소와 염소의 피로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짐승 제사로는 죄를 해결 할 수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10:4입니다.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구약의 제사는 죄사함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체를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화장실에 있는 남녀 표시는 그 표시가 화장실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표시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화장실이 있다는 안내표지판입니다. 마찬가지로 구약의 제사도 그 제사에 속죄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과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은 택한 백성들의 속죄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히브리서 9:12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구약의 제사는 해마다 반복 되었습니다. 그것은 구약의 제사의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 말씀에 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①자기 피로 이루신 속죄입니다. 주님은 무죄하시기 때문에 심판 받을 이유가 없으신데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흘려주셨습니다. 그 피로 우리의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②영원한 속죄입니다. 예수님의 속죄의 능력에 휘발성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속죄의 능력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속죄입니다. ③단 번에 이루신 속죄입니다. 구약의 제사처럼 반복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속죄 사역은 완전하기 때문에 단번에 끝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성경은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사함의 은혜를 잊지 말고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다.
2. 모든 병을 고치시는 은혜(3절)
3절에 보니 다윗은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병을 고치시는 분이라고 고백하며 그래서 자신의 영혼에게 하나님을 송축하는 명합니다.
현대인의 가장 큰 관심사 중에 하나가 건강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건강을 잃으면 인생의 의미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평생을 애써서 쌓아놓은 공든 탑도 건강을 잃으면 무너집니다. 세상에는 건강처럼 소중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요한삼서 1:2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 사도는 자기가 사랑하는 가이오라는 장로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 되기를 기도했고, 또 가이오가 건강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사실 이 축복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에 매여 사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 것처럼 문제 때문에 고통당하는 것도 원하시지 않으시고, 질병에 시달리는 것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가난을 경험하게 하셨고, 찔리고 상하고 징계를 받게 하셨고 우리의 병을 해결해주시기 위하여 채찍에 맞게 하셨습니다.
이 시를 쓴 다윗은 예수님이 오시기 1000년 전 사람이지만 그때 벌써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통해서 자신의 죄가 사해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모든 병이 고침 받는 것도 알았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도 이 사실을 잘 알았고 성도들을 가르쳤습니다. 베드로전서 2:24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베드로사도는 죄사함과 병고침을 함께 가르쳤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셨고, 채찍에 맞으므로 병도 해결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부분에서 주목할 것은 주님이 모든 병을 고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전능하신 분으로 믿습니다. 주님이 전능하시기 때문에 주님에게는 못 고칠 병이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우리들은 많은 병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죄 사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셨지만 병고침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를 몇 가지가 말씀드리겠습니다.
①불신앙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신 것이 나의 병을 고치시기 위함이라고 믿지 못하니까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②죄로 인한 징계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가 죄 가운데 거하면 그를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방법 중에 하나가 질병입니다. ③몸 관리를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감기도 질병입니다. 저도 지금 감기 기운이 있는데 제가 관리를 잘못한 것입니다. 덥다고 에어컨을 너무 강하게 틀어놓았다가 콧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감기를 영어로 cold라고 하는데 cold는 추운의 뜻도 있습니다. 몸을 차게 하면 감기에 걸립니다. ④하나님께서 낮추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문제가 없으면 겸손을 버리고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교만 때문에 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을 낮추십니다. 그 중에 하나가 질병입니다. 바울도 하나님께서 겸손하게 살라고 병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몸에 병을 짊어지고 살았습니다. ⑤귀신의 역사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귀신 때문에 병으로 시달린 사람들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13:11입니다.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이 여인은 귀신들려서 18년간 허리가 꼬부라져서 조금도 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그리고 안수하시니 여인은 허리가 곧 펴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귀신 들려서 병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병을 짊어지고 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병을 고쳐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병의 치유와 관련된 간증입니다. 1980년 미스 아메리카로 우승한 세리 프레윗의 간증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다쳐서 훨체어를 타는 장애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왼쪽 다리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아 오른쪽 다리보다 2인치가 짧았습니다. 모두들 그녀의 뛰어난 용모를 아까워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녀는 믿음 안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흥회에서 통성 기도 중에 자기 다리의 치료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한참 기도하는 가운데 다리가 간질거려 살펴보니까 짧은 다리가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녀의 양쪽 다리의 길이가 같아져 그때부터 걷게 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1980년에 미스 아메리카가 되었고, TV에 출연해서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외에 누가 이 다리를 고쳐주셨겠습니까? 그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감사하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우리교회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약 20여 년 전에 유명석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제 기억으로는 무릎수술을 11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한쪽 다리가 4cm나 짧았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집에서 제 설교 테이프를 듣다가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자기 다리를 잡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짧은 다리가 길어질 것을 명령 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분의 짧은 다리가 쑤욱 자라서 두 다리의 길이가 같아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병을 고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갖고 자신의 병이 치료되기 위하여 기도하시고 내 모든 병을 고치시는 하나님께 송축하시기를 바랍니다.
3.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지켜주시는 은혜(4절)
4절에 보니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영혼에게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명한 것입니다.
여기서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셨다는 말은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지켜주시는시는 은혜로 해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앞에서 죄와 질병에서의 구원을 다루었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보는 것입니다. 다윗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위험한 환경에 노출 되어 살았습니다. 목동으로 있을 때는 들판에서 잠을 잤고, 사자와 곰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쟁터에 형들을 면회 갔다가 거인 골리앗과 싸웠습니다. 그리고 사울왕에게 미움을 받아서 군대들에게 쫓겨 다녀야 했고, 동굴과 들판에서 생활했습니다. 왕이 된 후에도 주변 국가들과의 계속된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항상 주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환경으로부터 다윗의 생명을 파멸에서 지키셨습니다. 의인은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생명을 노리는 위험한 요소가 많습니다. 교통사고, 화재, 천재지변 등등. 몇 일전에는 물난리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또 어떤 사람은 길거리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칼로 찔렀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지금 전쟁고아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화요일인 8월 8일에는 극동방송에서 우크라이나 어린이 돕기 켐페인을 합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번 우크라이나에 전도지 보내는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100만원을 지원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5천 년 역사상 가장 평안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5천년 동안 약 1천 번의 전쟁이 있었는데 우리는 지난 70년간 전쟁 없이 살고 있습니다. 특별한 은혜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살게 하시는 은혜(4절)
4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높여서 왕이 되게 하셨다는 의미보다는 인자와 긍휼이라는 단어를 볼 때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살게 하셨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린 것은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다윗은 종종 실수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블레셋으로 망명도 해봤고, 자신의 충복인 우리야의 아내와 간음하고, 우리야를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교만해져서 자기 백성이 얼마나 되나 인구조사까지 했습니다. 그런 죄들 때문에 마땅히 큰 벌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 때문에 그는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분이라 그의 죄에 합당한 징벌을 주셨지만 그런 중에도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워주셨습니다.
우리도 알고 보면 하나님께서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워주셨습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큰 죄를 범하지는 않았으나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범한 죄가 충만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 때문에 죄사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적 장자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선택과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워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다.
5.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시는 은혜(5절)
5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시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자신의 영혼에게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이 분명하지만 실제로는 좋은 것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책임입니다. 내가 수도꼭지를 틀어야 수돗물이 나오듯이 내가 좋은 것을 받으려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①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을 가지십시오. 빌립보서 2:13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 택하신 사람들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 소원의 성취를 위해서 힘을 써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됩니다.
우리는 늘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바라봐야 합니다. 믿음이 뭡니까? 히브리서 11:1에서 정의를 내렸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소원하고 바라보는 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좋은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늘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그 사람에게는 늘 부정적인 일들이 일어납니다. 믿음의 원리가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자신의 삶에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원한다면 항상 하나님이 주신 소원을 생각하고 또 좋은 것을 생각을 하고 그것을 바라봐야 합니다.
②좋은 것은 것으로 만족한 인생을 살고 싶으면 죄를 해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가 좋은 것을 막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5:25을 보겠습니다.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죄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더러운 그릇에 거룩한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가정을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자녀에게 꿀을 주려고 그릇을 하나 가져오라고 했는데, 아이가 더러운 개 밥그릇을 가지고 온다면 여러분은 그 그릇에 꿀을 담아주겠습니까? 그럴 수 없지요.
디모데후서 2:20-21입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사람은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입니다. 우리는 기왕이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귀하게 쓰십니까?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은 사람,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결하게 된 사람입니다. 혹시 죄를 범하면 죄를 품고 있지 말고 즉시 자복하고 돌아서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빠른 사람이 경건한 사람입니다.
③좋은 것은 것으로 만족한 인생을 살고 싶으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마태복음 7:11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시 34:10입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젊은 사자는 능력 있는 자를 말합니다. 젊은 사자가 궁핍하여 주리는 상황이라면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능력 있는 자가 궁핍하여 주린다면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부족함이 많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예배로 하나님을 찾고, 기도로 하나님을 찾고, 생활 속에서도 계속해서 “주여! 주여!” 하면서 하나님을 찾기를 바랍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④좋은 것은 것으로 만족한 인생을 살고 싶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씨를 뿌리십시오.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갈라디아서 6:7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나님은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은 심고 거두는 생활의 연속입니다. 인생은 종류대로 거둡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납니다.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것을 거두고 나쁜 것을 심으면 나쁜 것을 거둡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최고의 것을 심어야 합니다.
십일조도 헌금도 하나님께 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쓰다 남은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구별해야 합니다. 주일 성수도, 예배도,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께 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을 가치 있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배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 시간을 아까워하거나 귀찮아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귀찮게 여기면 안 됩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께 우리의 수고를 드리지만 실상은 우리가 보배를 캐내는 시간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먼 길을 찾아와서 귀한 보배를 예수님께 드린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힘쓰고 애써서 하나님께 보배를 드리듯이 예배 시간을 드리고 기도 시간을 드리고 몸과 마음과 물질과 땀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다.
6.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은혜(5절)
5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기 때문에 자신의 영혼에게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많은 내용을 말할 수 있겠지만 하늘을 향해 비상할 수 있는 능력으로 풀겠습니다. 이사야 40:31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하나님의 힘을 받은 사람은 독수리가 날개 치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하늘을 향해 비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살지만 천국의 시민권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푯대는 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3:1-2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여기서는 두 가지를 명하십니다. 1절에서는 위의 것을 찾으라고 명하고, 2절에서는 위의 것을 생각하라고 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관심은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실제로 천국을 체험해 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영이 육체를 빠져나가서 천국에 갔다 왔다든지, 환상 중에 천국을 봤다든지, 꿈에서라도 천국을 본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천국이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천국에 들어갈 것도 믿습니다. 또한 자신의 천국 생활을 위하여 준비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은혜,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은혜는 우리의 존재의 가치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비록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영원한 천국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존귀한 자로 봐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로 비상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다.
찬양을 한 곡 하고 마치겠습니다. 우리 찬양단은 예배 시간에 입례송으로 “송축해 내 영혼”을 부릅니다. 그리고 금방 설교 직전에 이 찬양을 불렀습니다. 이 찬양의 가사를 묵상하서 다시 한 번 부르겠습니다. “해가 뜨는 새 아침 밝았네/ 이제 다시 주님 찬양/ 무슨 일이나 어떤 일이 내게 놓여도/ 저녁이 올 땐 나는 노래해/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주/ 그의 크신 사랑 넘치네/ 주의 선하심 내가 노래하리/ 수많은 이유로 나 노래해/ 곧 그 날에 나의 힘 다하고/ 나의 삶의 여정 마칠 때/ 끝없는 찬양 나 드리리라/ 수많은 세월 지나 영원히/ 송축해 내 영혼 내 영혼아/ 거룩하신 이름/ 이전에 없었던 노래로/ 나 주님을 경배해”
가사 중에는 ‘수많은 이유로 나 노래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원곡에는 수많은 이유가 아니라 10,000가지 이유입니다. 제가 이 찬양의 내용에서 힌트를 얻어서 오늘 설교의 제목을 “10,000가지 이유로 나 송축해!”라고 정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송축해야 할 이유는 많습니다. 다윗은 본문에서 그 많은 이유 중에서 여섯 가지를 말했습니다.
1. 모든 죄를 사하시는 은혜.
2. 모든 병을 고치시는 은혜.
3.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지켜주시는 은혜.
4.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살게 하시는 은혜.
5.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시는 은혜.
6.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