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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6
#벨기에신앙고백서 21.#속죄
We believe that Jesus Christ is a high priest forever according to the order of Melchizedek-- made such by an oath-- and that he presented himself in our name before his Father, to appease his wrath with full satisfaction by offering himself on the tree of the cross and pouring out his precious blood for the cleansing of our sins, as the prophets had predicted.
우리가 믿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맹세하심으로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공의를 충만히 만족시키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시기 위해, 우리 명의로 당신 자신을 완전한 희생제물로 삼아 성부께 드리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씻기 위해 스스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시고 고귀한 보혈을 쏟으심으로써 이루신 것입니다.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르는 하나님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실 것을 하나님께 맹세하신 분은 그리스도의 신성이신 성자 하나님이 아니시라 성자와 연합하신 그리스도의 인성이시다. 이 맹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자에게서 태어나셔서 지성과 감성을 갖출 수 있는 나이로 자라신 후에 맺으신 것이 아니라, 창세 전 구원협약에서 맺으신 것이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으로서도 영원 전에 존재해 계셨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르셨다는 것은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이 적어도 그리스도와 동등한 지위를 가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별개인 존재이면서 그리스도와 동등할 수는 없으므로, 멜기세덱과 그리스도는 동일하신 분이실 수 밖에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에서 본격적인 구속사역을 이행하시기 위해 아브라함 시대에 멜기세덱이라는 인물로 현현하셔서 왕으로서 살렘을 다스리시며 살렘에서 참 제사의 기틀을 마련하신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살렘 왕 멜기세덱으로 머무셨던 이유 중 하나는, 하늘의 왕국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세계도 다스리시는 왕이심을 예표하시려는 것이었다.
For it is written that "the chastisement of our peace" was placed on the Son of God and that "we are healed by his wounds." He was "led to death as a lamb"; he was "numbered among sinners" and condemned as a criminal by Pontius Pilate, though Pilate had declared that he was innocent.
이는 성경에 기록된 바, 하나님의 아들께서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같으셨고,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으셨으며, 본디오 빌라도에게서 무죄하다는 선언을 받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라는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So he paid back what he had not stolen, and he suffered-- the "just for the unjust," in both his body and his soul-- in such a way that when he senses the horrible punishment required by our sins his sweat became like "big drops of blood falling on the ground." He cried, "My God, my God, why have you abandoned me?"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셨고,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셔서 자신의 뭄과 영혼으로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식으로 우리 죄로 인한 끔찍한 형벌을 민감하게 느끼셔서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땀을 흘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울부짖으셨습니다.
And he endured all this for the forgiveness of our sins.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사함을 위해 이 모든 고통을 견디셨습니다.
구속사역을 위해 이 모든 고난과 형벌을 받으신 분은 그리스도의 신성이신 성자 하나님이 아니시라, 성자 하나님과 연합하신 그리스도의 인성이시며, 이 모든 것은 영원 전 구원협약 때 그리스도의 인성께서 하나님과 논의하시고 작정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그 뜻이 불변하시더라도 이 땅에서의 구속사역은 몸소 겪으심으로써만 얼마나 고되고 괴로운 것인지를 아실 수가 있으셨다. 그래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을 받으셨다고 하는 것이다.
Therefore we rightly say with Paul that we "know nothing but Jesus and him crucified"; we consider all things as "dung for the excellence of the knowledge of our Lord Jesus Christ." We find all comforts in his wounds and have no need to seek or invent any other means to reconcile ourselves with God than this one and only sacrifice, once made, which renders believers perfect forever.
그러므로 우리가 올바르게 말하는 것은, 바울 사도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그 외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 가운데서 모든 평안을 구하므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방법을 찾거나 만들어낼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일하시고 유일하신 희생제물이 되시고 단번에 화목제사를 이루셔서, 믿는 사람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This is also why the angel of God called him Jesus-- that is, "Savior"-- because he would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이는 또한 하나님의 천사가 그분을 예수, 즉 “구원할 자”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은 우리 신앙의 근본이 무엇이며 수준이 얼마나 저열한지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스도교,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숭배하는 모임인데,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시고 무엇을 하셨길래 섬김과 숭배를 받으셔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우리 죄를 대속하시려고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모든 구속사역을 이루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40여 일 후에 다시 하늘로 오르셨다는 것을 알고 믿는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러한 고백은 대부분 머릿속의 지식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심에도 바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그렇게 절실하게 와닿지가 않는다. 그러다보니 사도바울이 배설물처럼 여기고 버린 이 땅의 육적인 부귀영화들을 마치 개가 그 토한 것을 다시 핥아먹듯이 추구한다. 좁고 협착한 십자가의 길을 가라 하시는데 넓고 평탄한 길을 가면서 주님을 믿는다고 한다. 내 모든 삶을 복음의 수단으로 삼아야 하는데 반대로 주님을 내 모든 삶의 수단으로 삼는다. 믿음으로 하늘의 보이지 않는 신령한 복을 보아야 하는데 이 땅의 육적인 것들로 복음의 능력을 확인하려 한다. 그래서 죄를 지어 더러워지면 주님 앞에서 애통해 하기보다는 자신의 연약함을 내세우며 합리화하기에 여념이 없다. 교회의 설교에서는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이 들리지 않거나 매우 미약하게만 선포된다. 마치 유대인 성도들이 멜기세덱에 대해 무관심해서 그를 아는데 귀가 둔했던 것처럼, 지금의 교회와 신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무관심하고 그분을 그다지 알아가려 하지 않는다.
이사야 53:4-12.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시편 69:4.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베드로전서 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누가복음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마태복음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고린도전서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빌립보서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0220216
#요한계시록 #Revelation 2:21
21 또 내가 그에게 悔改할 機會를 주었으되 自己의 淫行을 悔改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I have given her time to repent of her immorality, but she is unwilling.
Et dedi illi tempus ut pœnitentiam ageret : et non vult pœnitere a fornicatione sua.
καὶ ἔδωκα αὐτῇ χρόνον ἵνα μετανοήσῃ, καὶ οὐ θέλει μετανοῆσαι ἐκ τῆς πορνείας αὐτῆς.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여호와 그리스도께서 선지자를 통해 기름부어 세우신 예후에 의해 정당하게 처단될 때까지도 화장을 하고 머리를 세우며 되려 예후를 꾸짖는 등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완악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스스로는 그렇게 죽음 앞에서 당당한 태도를 보였을지라도 이세벨은 결국 두 내시에 붙잡혀 성의 높은 창문에서 내어던짐을 당하였고 그 시체는 들개들에게 먹혀버려 두개골과 손발 밖에 남지 않게 되는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될 뿐이었다. 이세벨은 선지자 엘리야가 하늘의 불로 제단과 제물을 태우고 수백명의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을 죽임으로써 회개하라는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공언하였다. 이세벨은 나봇과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것 때문에 선지자 엘리야에게서 혹독한 심판의 책망을 받았으면서도 자기의 남편 아합이 여호와 앞에 자기 죄를 시인하며 겸비한 것을 본받지 않았다. 이세벨에게는 이 뿐만 아니라 회개할 수 있는 많은 나날들과 기회들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자신의 패역함과 완악함으로 그 모든 것들을 저버리고 멸망을 자초하였다. 목사와 남자 교인을 유혹해서 자기와 음행하게 만드는 교회 내의 이세벨들은 교회에 있는 동안 수많은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서 회개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으므로 자기는 회개할 기회가 없었다는 변명은 절대 할 수가 없다. 교회의 이세벨들은 처음부터 목사와 남자 교인들을 타락시킬 목적으로 교회에 잠입했을수도 있으나 자기도 모르게 이세벨이 되어가는 경우도 있다. 교회 내 점진적 이세벨들은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연약함이나 어려운 가정형편이나 환경 등을 빌미로 인기있는 목사나 남자 교인들에게 지나치게 접근하고 가까이하며 의존하면서 슬며시 자기의 육체의 매력으로 상대의 음심을 자극해서 자기와 육체의 음행을 저지르게 만든다. 교회의 점진적 이세벨들은 그렇게 목사와 남자 교인들과 음행을 저지르고도 자기가 처한 어려움이나 나약함이나 타고난 성격이나 애정의 감정 등을 이유로 어쩔 수 없었노라며 자기의 죄악을 회피해버리기도 하고 문제가 더 커지게 되면 심지어 자기는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악의적인 이세벨이나 자기도 모르게 점진적으로 이세벨이 되어버린 자나 본래의 이세벨처럼 자기의 죄악을 회개하려 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교회 내에서는 가르쳐서는 안되고 잠잠해야 하며 모르는 것은 남자와 남편들에게 묻고 복종해야 한다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정반대로 하려 하는 여자 교인이나 여자 목사들은 설령 육체로는 음행을 저지르는 이세벨은 아니라 하더라도 말과 영으로 음행을 저지르는 이세벨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목사의 아내가 조언이라는 미명하에 목사 남편의 설교를 비평하는 것은 교회에서 가장 심각한 이세벨의 죄를 짓는 것이다. 목사의 아내가 교회 내에서 목사 남편의 동의나 허락 없이 이런저런 교우 모임을 만드는 것도 이세벨의 죄를 짓는 것이다. 친분이 있는 교인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다른 교인들에게 이리저리 퍼뜨리는 여자 교인들은 이세벨의 죄를 짓는 것이다. 아내가 남편보다 교회 생활을 오래 했거나 성경을 더 잘 안다고 해서 남편의 신앙을 뒤에서 밀어주려 하지 않고 앞에서 이끌어 가려고 하는 것은 이세벨의 죄를 짓는 것이다. 여자로서 복음과 목회에 대한 소명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편법으로 스스로 목사 안수를 취하여 받는 것은 이세벨을 넘어서 이세벨의 딸 아달랴와 같은 영적인 반역을 행하는 죄악이다. 아내가 남편보다 신앙의 연륜이 깊다고 해서 가정에서의 신앙생활을 남편이 주관하게 하지 않고 자기가 주관하는 것은 이세벨의 죄를 짓는 것이다. 목사의 아내가 살림과 육아에 전념하지 않고 소홀히 하거나 분담을 요구함으로써 남편이 목사로서 복음 사역에 전념하지 못하게 훼방하는 것도 이세벨의 죄를 짓는 것이다. 여자 교인이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여자들끼리의 모임에서 자기 남편을 흉보는 것은 희대의 악한 음녀 이세벨 조차도 짓지 않은 극악한 죄를 짓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교회 내 이세벨들의 죄악을 이미 성경에서 다 알리셨기 때문에 여자들은 더욱 더 자기 스스로 혹시나 이세벨의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돌아보고 점검해야 한다.
#20210216
#신명기 #Deuteronomy 4:32-49
32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33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느냐
34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35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36 여호와께서 너를 교훈하시려고 하늘에서부터 그의 음성을 네게 듣게 하시며 땅에서는 그의 큰 불을 네게 보이시고 네가 불 가운데서 나오는 그의 말씀을 듣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는 구속사역의 경륜상 어린아이와 같은 이스라엘에게는 시내 산에서의 무시무시한 광경으로 나타나시고 말씀하시며 돌판에 직접 새기신 십계명을 주시는데다 그들을 학대한 애굽을 무려 열가지 재앙으로 초토화 시키심으로써 그 권능을 보여주심으로써 유일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알리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친히 구속사역을 완수하시고 하늘로 오르신 지금에는 신구약 성경 66권을 친히 기록하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신데다가 아예 하나님이신 성령을 우리 각자 모두에게 보혜사로 보내주셔서 우리 영을 성전 삼아 거하게 하셔서 성경을 듣고 깨달으며 순종하도록 인도하신다. 비록 후대의 성령의 역사에는 시내 산에서나 애굽에서처럼 감각으로 체험할만한 것들은 거의 없다시피 하여도 더욱 신비스럽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우리를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넘어질듯 하다가도 바로 서게 하셔서 끝까지 성도로서 살아가게 하신다. 그래서 오늘날 성도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에 연연해 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써 바라는 것들을 실제로 소유하듯이 여기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는 것처럼 증거로 삼으며 견고히 인내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37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38 너보다 강대한 여러 민족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너를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네게 기업으로 주려 하심이 오늘과 같으니라
39 그런즉 너는 오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40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아무것도 모를 때에도 그들을 위해 애굽에서 구출하시고 그들보댜 강한 이방족속들을 물리치셨으며 그들을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이셨듯이,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창세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하나하나를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시고 우리 각자의 죄악된 인생 가운데서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 죄를 씻어주시고 그분의 의로 우리를 입혀주셔서 의롭다 해주시고 사탄의 자녀에서 당신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시고 당신의 뜻을 자각하게 하셔서 이제는 영원한 가나안 땅인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견고히 인내하며 거룩해가는 삶을 살아가게 하신다. 우리는 우리 삶에서 드러나는 성령의 역사로 인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믿고 의지하게 되며 그분의 나라가 임하시기를 간절히 사모하게 된다.
요단 강 동쪽의 도피성
41 그 때에 모세가 요단 이쪽 해 돋는 쪽에서 세 성읍을 구별하였으니
42 이는 과거에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 곳으로 도피하게 하기 위함이며 그 중 한 성읍으로 도피한 자가 그의 생명을 보전하게 하기 위함이라
43 하나는 광야 평원에 있는 베셀이라 르우벤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길르앗 라못이라 갓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바산 골란이라 므낫세 지파를 위한 것이었더라
모세는 과실치사자를 위한 도피성 여섯 중 세 개는 요단을 건너지 않은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지파를 위해 지으라고 하였다. 도피성의 수로만 따지고 본다면 요단을 건너지 않은 두 지파 반의 규모가 요단을 건넌 나머지 아홉 지파 반과 엇비슷 했었던 것 같다. 길르앗 라못에는 갓 지파를 위한 도피성이 있었는데 훗날에 북 이스라엘 왕 아합이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을 듣고 여기서 아람 군대와 전쟁을 벌이다가 적군의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죽은 장소이기도 하다.
모세가 선포한 율법
44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한 율법은 이러하니라
45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모세가 증언과 규례와 법도를 선포하였으니
46 요단 동쪽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서 그리하였더라 이 땅은 헤스본에 사는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속하였더니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그를 쳐서 멸하고
47 그 땅을 기업으로 얻었고 또 바산 왕 옥의 땅을 얻었으니 그 두 사람은 아모리 족속의 왕으로서 요단 이쪽 해 돋는 쪽에 살았으며
48 그 얻은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장자리의 아로엘에서부터 시온 산 곧 헤르몬 산까지요
49 요단 이쪽 곧 그 동쪽 온 아라바니 비스가 기슭 아래 아라바의 바다까지이니라
모세는 이스라엘이 아모리와 바산을 진멸하고 차지한 땅에서 그들에게 여호와의 율법과 규례를 재차 선포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전쟁에서 승리한 기쁨에 지나치게 취하거나 마치 자기들의 실력으로 이긴 것인 양 자만하지 못하게 함과 아울러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는 것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 어떤 신앙 체험을 하건 그 어떤 사역을 하건 당시 이스라엘이 이룬 성과보다 나은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어떤 사역의 성과나 체험에도 자만해서도 취해서도 안되고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로지 성경과 성령임을 매순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