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서 낯설음을 찾으라고 했을 때 먼저 떠오른 것이 있다. 나의 모교인 초등학교이다. 나의 초등학교는 우리 동네여서 졸업을 한 후에도 자주 산책도 가고 학교 주변에 군것질도 했었다. 근데 고등학교를 다니고 나서부터 초등학교에 갈 시간도 없었고 주변에 들릴 일도 없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내내 잊고 있다가 수능이 끝난 후에 초등학교에 산책을 하러 갔는데 분명 익숙한 장소지만 뭔가 낯설었다. 왜냐고 묻는다면 내가 자주 가던 문구점이 사라지고 세련 돼 보이는 미용실이 있었다. 그리고 추억이 많았던 놀이터도 공사를 하면서 달라지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학교에 방문하면서 처음으로 느낀 낯설음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학교 주변에 있던 편의점도 오랜만에 갔는데 사장님이 날 알아보셨다. 나한테 잘 지냈냐고 안부인사를 하며 사투리를 많이 섞으면서 말하셨다. 여기서도 익숙함에 낯설음을 느낀 거 같다. 분명 지금까지 제주도에 살아오면서 어른들께 들었던 사투리여서 익숙하긴 한데 제대로 된 뜻을 잘 모르겠어서 웃어 넘겼다. 이 상황을 생각하니 언어도 많은 연관이 되어있다는 게 떠올랐다. 예를 들어 새로운 환경이나 문화로 변화 됐을 때 우리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익숙하지만 문화적 차이나 관용구로 인해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내가 다른 지역을 가도 똑같을 것이다. 지역 사람들은 익숙함에 자신들의 언어들을 쓰겠지만 나는 낯설 것이고, 어디서 들어본 거 같아서 익숙하기도 할 것이다. 또한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상대방이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방식이 나와 서로 다르면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이렇게 일상 속에서 익숙함과 동시에 낯설음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첫댓글초등학교를 다시 방문했을 때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 전 기억은 당시 상황 가운데서 중요한 것들만 간략하게 추려서 저장됩니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다 기억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 당시의 경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온전히 다 기억할 수도 없고, 그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만 기억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지금의 눈높이로 그것을 보면 그때의 기억과는 다른 것들이 보이게 됩니다. 길다, 짧다, 높다, 낮다라고 하는 개념 자체가 상대적인데다가, 어린시절에 보았던 것은 그때 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어서, 이만큼 성장한 지금 보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지금 내가 경험하고 기억하는 것도 사실은 불완전하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그렇게 느끼고 기억하는 것일 뿐, 실제로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객관성입니다. 상대의 눈, 그것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첫댓글 초등학교를 다시 방문했을 때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 전 기억은 당시 상황 가운데서 중요한 것들만 간략하게 추려서 저장됩니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다 기억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 당시의 경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온전히 다 기억할 수도 없고, 그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만 기억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지금의 눈높이로 그것을 보면 그때의 기억과는 다른 것들이 보이게 됩니다. 길다, 짧다, 높다, 낮다라고 하는 개념 자체가 상대적인데다가, 어린시절에 보았던 것은 그때 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어서, 이만큼 성장한 지금 보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지금 내가 경험하고 기억하는 것도 사실은 불완전하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그렇게 느끼고 기억하는 것일 뿐, 실제로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객관성입니다. 상대의 눈, 그것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