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열심히 공부했던 독일어책을 오랜만에 열어보았다. 많은 것을 잊어버렸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독일어공부가 일상이던 당시 내 하루를 장식했던 친구들, 학교생활, 당시 과외선생님마저 전부 추억이 되었다. 집보다 오래 지내던 고등학교는 더이상 내 일상이 아니게되었고, 가족처럼 지내던 친구들은 각자 자기의 길을 걸어가고있다. 너무나도 당연했던 학원과 선생님들은 이젠 찾아가야만 볼 수 있는 존재들이 되었다. 계속 변화하는 일상들을 느끼고자 사진첩을 뒤적인다. 일명 ‘추억팔이’라는 것을 해본다. 언제나 당연할 줄 알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한다. 지금의 익숙하고 당연한 생활들도 언젠가는 또다른 익숙한 일상으로 대체될 것임을 자각한다. 이를 자각하는 순간부터 나는 일상을 익숙하게 여기지 않기로했다. 오늘 낮에 느껴졌던 바람의 시원함, 눈이 부시도록 내리쬐는 햇살, 편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고자한다. 익숙한 낯설음이라는 것은 마치 예전에 공부했던 외국어를 오랜만에 다시 공부하는 것과 같다. 이번 일을 기회로 나는 꾸준히 해오던 공부를 오랜만에 하는 독일어 공부하듯이 해보려한다.
첫댓글 예전에는 당연한 것이었던 독일어책을 다시 보면서 그것과 관련된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았군요. 마치 이미지의 손잡이들처럼 형형색색으로 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손잡이의 색깔과 크기를 모두 기억할 수도, 기억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색색깔 손잡이가 있는 버스를 탔다고 기억하거나, 아니면 제법 꾸며 놓은 버스를 탔다거나, 그냥 버스를 탔다고만 기억하겠지요. 심지어는 버스를 탔다는 기억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 버스를 모두가 똑 같이 기억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때때로 잘못된 판단의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때 탔던 그 버스를 너는 왜 기억하지 못하냐고 묻다보면 상대를 자신보다 부족한 사람이라거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 등으로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다르고, 그래서 기억하는 것도 다릅니다. 따라서 지금 나에게 익숙하고 그래서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객관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랍니다. 그럴 때 자신이 의미를 두고, 가치를 두는 것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