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별 보기를 좋아합니다.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애리조나의 해발 1800미터 겨울 밤하늘엔 별들이 시리도록 선명하게 빛이 납니다.
하얗게 눈 덮인 설산이 바라보이는 높은 고원에서 살았던 우리 태고의 선조들도 밤하늘 보기를 즐겨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생명이 그 별의 중심 북극성에서 비롯되어 북두칠성을 거쳐 은하수를 타고 땅에 내려와 살다가 다시 그 길로 되돌아 돌아간다고 믿었겠지요.
고인돌의 상석에 별자리를 표시한 것도, 관에 칠성판을 바닥에 까는 것도 다 그런 연유였던가 봅니다.
천인인 환인의 후손이라 믿었던 우리 조상들은 그래서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는 별자리를 열심히 기록했습니다. 삼국에 속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책들은 대부분 소실되어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지만, 다행히 고려시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는 삼국의 별자리, 특히 달이 해를 가리는 일식에 대한 기록들이 제법 남아 있었습니다.
고문서 자료가 부족한 우리들의 고대사 탐구에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컴퓨터로 인해 과학이 경이적으로 발달하면서 이제 천문학 컴퓨터를 활용하면 언제 어디에서 일식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확인해 볼 수 있게 되었고, 탄소동위원소 연대측정법과 마찬가지로 고대사의 특정시기와 장소를 검증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과학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위서(僞書)라 치부되던 고대사 서적, '환단고기'도 별자리 자료 검증에 의해 상당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별자리, 특히 일식 기록 검증에 의해 드러난 삼국의 일식 측정 위치는 그런데 너무나 예상밖의 장소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예상밖의 장소들이, 고대사에 대해 별 관심도 없고 아는 것이라곤 초중고를 거치며 배운 국사 지식 정도밖에 없던 저에게 좀 더 알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수많은 새로운 의문들을 품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래전에 의문이 들었던 장수왕의 평양 남진에 대한 의문도 물론 떠올랐습니다.
자료는 그 일식이 관측된 나라별 위치 지도입니다.
등고선의 중심이 일식 관측 위치입니다.
이 자료가 공개되자 한중일의 역사학계가 놀랄 수밖에 없었고, 특히 한국 사학계는 발칵 뒤집어질 정도였지만, 그 후 한국 강단사학계의 대충 정리된 입장은 삼국사기의 기록이 고대 중국의 천문학 기록을 베꼈을 것이라 추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제 의문은 그 부분에서 오히려 더 커졌습니다.
관측 위치로 보면 현재 중국의 영토 범위 안에 있는 곳들이니 언뜻 그렇게 수긍할 수도 있겠으나, 고대 중국의 왕조들이 천하의 중심이라 말하며 차지했던 땅은 낙양과 장안을 중심으로 하는 화하족이 사는 대륙의 중앙부였고, 우리가 만주라고 부르는 지금의 요동과 요서 몽골지역, 베이징을 중심으로 하는 하북지역과 그 아래 산동지역, 그리고 상하이와 홍콩을 포함하는 동남부 지역은 오랑캐들이 사는 나라들이라 생각해서, 방향에 따라 북적 동이 남만 서융이라 부르며 야만족들의 땅이라 천시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우리 스스로는 한민족 또는 배달민족이라 부르고 있지만 그때의 중국인들은 우리들을 동이족이라 부르며 그 뜻에 오랑캐라는 뜻을 포함시켰던 것입니다.
이러니 한국 사학계의 추정에 어찌 동의할 수가 있겠는지요. 중국의 왕조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야만의 땅에 까지 가서 일식현상을 관측했을 리가 없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관측 위치를 보며 또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별자리 관측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시기와 때를 살피는 일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을 테니, 그 위치가 아무래도 임금이 사는 왕성과 가까운, 사방이 툭 트인 개활지나 높은 산의 꼭대기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의문은 역사책에서 배운 고구려 첫 도읍지인 졸본이나 그다음의 도읍지인 국내성의 위치가 압록강 바로 북쪽의 현재 중국의 집안 지역이 아니고 훨씬 더 북쪽, 일식기록에 표시된 현재 내몽골 자치주 내의 후룬호 부근에 있다는 고려성 부근이 아닐까 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의문이 이 글의 제목으로 붙인, '장수왕의 남진'을 쓰게 만들었지요.
글이 생각보다 더 길어져 다음 3편으로 이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머리 아픈데 길기까지 한 글, 읽어주시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밤하늘 보기를 좋아하셨다는 마음자리님,
한반도의 북방 여러 곳과
멀찌감치로 여겼던 어렴풋한 고대 역사적 사실에
마음자리님의 장수왕의 남진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워질 것에 기대를 가져 봅니다.
갖추어진 역사지식과 탐구심에
마음자리님께 응원을 보냅니다.
넓은 땅을 달리다보니 우리 조상님들도
이런 지세의 땅들을 달리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리조나의 고원지대를 달릴 때는
개마고원이 이럴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 생각들로 시작된 이야기, 지루한
부분도 많겠지만 써두고 싶은 마음에
욕심을 부려봅니다. ㅎ
자연으로 갈수록 별은 더 아름답지요.
별을 보면서 먼 먼 조상들을
생각하시고 유익한 글 써주셨군요.
역사는 듣고 돌아서면 잊어버려도
마음자리 님 글 따라다니면서
공부해야겠어요.ㅎ
오늘도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너무 오래된 역사라 신화나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들, 뿌리를 찾아보는
기분으로 상상력의 살을 붙여 봅니다.
깊이 있게 들어가는 내용이라 동공이 확장되며, 초.중ㆍ고 마찬가지인 역사공부의 짧은 지식으로 이해 하려니 녹슨 머리는 삐걱거리는 회전 소리가 납니다.
하지만 심도있는 연구를 하신 마음자리님의 이야기 속으로 한발 더 들어서는 재미 또한 만만치 않네요.
감사히 읽고 또 읽어 봅니다.
더듬더듬 옛이야기에 살 붙여보려구요.
살통통하면 보기 좋을 텐데... ㅎ
제가요 저번 주 일요일날 태백산 천제단에 갔다왔는데요.
맘자리님 이야기를 들으니 아~하 그래서 천제단이 왜 산꼭대기에 있었는지 이해를 하게되었어요.
이렇게 정성들여 쓰신 글 읽을 수있는 기회가 생겨서 넘나 감사드려요.
왜 장수왕은 남진을 하였을까?
앞으로도 기대만땅이예요.
틈틈이 자료 찾아가며 상상력 동원해서 역사기행 써보려구요.
응원 감사합니다.
오~!멋진글입니다
추론하고 연구하고 결국 도출해내는 공부의그 기쁨이란ᆢ
대한민국 사학자들은 그들의 시멘트기득권을 지키려 새로운가설은 전부 배척한다더군요
전환인식 시키는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추론과 상상력을 동원한 글이니
편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