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오일뱅크 클래식 8라운드에서 인천 숭의아레나파크로 원정을 떠난 울산현대호랑이(이하 울산)가 인천유나이티드(이하 인천)과의 힘겨운 경기 끝에 1:0으로 승리하며 2연패 탈출에 성공했다. 울산으로선 중위권 싸움을 위한 소중한 승점 3점을 얻은 경기로 의미가 적지 않다. 무패 행진이 아닌 무승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인천으로선 울산 골키퍼 김용대의 선방과 송시우의 결정적인 슈팅을 걷어낸(?) 골대가 야속했을 것이다. 결과는 울산에게 웃어줬지만 울산이 잘한 경기는 아니었다.
(△ 인천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선제 결승골을 터뜨린 김승준. 후반전엔 홀로 돌파할 때마다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출처:한국프로축구연맹 페이스북 페이지)
울산의 최근 경기력을 냉정히 보면 나쁘지 않다. 지난 시즌 중반까지도 최전방에 김신욱을 기용하고 대책 없이 긴 패스에 의존하는 경기를 한 적도 있었다. 김신욱의 이적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영입된 이정협도 신장이 큰 선수이지만 울산의 공격은 이번 시즌 조금 더 아기자기하고 체계적인 공격을 보여주고 있다. 구본상-마스다의 중원 라인은 수비력도 준수하지만 좌우로 공을 전환시키는 데에도 능력이 있다. 덕분에 공격적인 능력을 갖춘 풀백과 어우러지는 모습도 괜찮다. 공격 2선에서도 서정진의 모습이 조금 아쉬울 뿐 김승준과 코바는 제 몫을 해주고 있다. 이정협의 움직임 역시 부지런하다.
하지만 울산이 '보여줄 수 있는' 경기력과 반대로, 울산이 '보여주는' 경기력은 팬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있다. ‘안정적’이라는 말로 포장되는 ‘소극적’ 전술, 그리고 전술 아래 깔린 소극적 자세에 문제가 있다. 양 팀 모두 득점이 없는 상황에서 울산은 절대로 적극적인 공격을 펼치지 않는다. 상대가 먼저 움직이길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더구나 울산은 득점한 후에 실점하지 않기 위해 소극적인 경기를 펼친다. 울산 팬들 사이에서 오히려 뒤지고 있을 때 경기가 재미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인천과의 이번 경기도 전반 2분 만에 골을 기록한 후 전반전까진 무난한 경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후반전엔 눈에 띄게 소극적인 전술을 펼쳤다. 두 줄 수비로 라인을 굳히고 역습을 노렸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역습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수비에 집중했다. 비록 최하위라고는 하지만 ‘K리그 클래식’의 인천인데, 인천의 공격을 45분 내내 막아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지나쳤다. 결국 인천에게 찬스는 찬스대로 내주고 본인들의 공격까지 하지 못하면서 후반전은 완전히 흐름을 잃었다. 김용대의 선방과 골대가 울산을 살렸다.
(△ 경기 결과. 울산은 점유율과 슈팅 수에서 모두 밀렸다. 인천은 최하위에 처져있는 팀이다. 출처:한국프로축구연맹 홈페이지)
사마천의 『사기』 중 「항우본기」에는 선즉제인(先則制人)이란 말이 나온다. ‘남보다 앞서 일을 도모하면 남을 제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축구적 감각으로 해석하자면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로 연결할 수 있다. 축구에서 공격과 수비는 공의 소유권에 달려있고, 공을 빼앗기는 순간 공격과 수비는 바뀌게 되어있다. 때문에 공격적 지역에서 공을 오래 그리고 안정적으로 점유할 수 있다면 수비적으로 위험한 상황을 피할 수도 있다. 언제나 점유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상대에게 점유율과 주도권을 내준 상태로 수비에만 집중하는 것보다, 안정적으로 점유하며 경기를 주도하는 것이 오히려 수비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울산이 가끔(!) 보여주는 경기력을 보면 공격적인 면이 절대 나쁘지 않다.
J리그 시절 리그 내에서 작은 팀이었던 사간도스를 승격으로 이끌었던 윤정환 감독의 색깔은 ‘지지 않는 축구’에 방점이 찍혀 있는 듯하다. 축구 전술에 절대적인 선이란 없고 모든 전술이 존중받아야 한다. 다양한 축구가 있어야 경기를 즐기는 맛이 있고 리그도 흥미진진해진다. 시메오네 감독의 아틀레티코마드리드가 수비 전술로 유럽 최고를 노리고 있듯이, 윤정환 감독의 울산도 그렇게 정상을 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는 시메오네는 수비 축구로 ‘이기는 축구’를 보여주고, 윤정환 감독은 ‘지지 않으려는 축구’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지 않는 축구 자체는 긍정적이다. 어려운 경기도 지지 않는 팀이라면 얼마나 매력적이겠나. 하지만 이길 수 있는 상대에게도 이길 생각보다 먼저 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이런 소극적인 축구의 문제는 무엇보다 팬들의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울산의 팬들이 기대하는 축구는 지지 않는 축구가 아니다. 승리하는 울산의 모습을 보고 싶다. 팬들이 떠나는 프로스포츠는 존재의 목적이 사라진다. 팀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팀을 받치는 토대인 팬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지상과제이다. 울산 팬들은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고 싶을 것이다. 지금 울산의 스쿼드를 가지고도 리그 최하위 인천을 상대로 한 골을 지키려고 물러나니 실망할 수밖에 없다.
이는 실리적 차원에서도 문제가 크다. 축구 경기는 ‘승점 제도’가 존재한다. 매 경기 연장을 치를 수 없기 때문인데, 승리한 팀에 3점, 패배한 팀에 0점, 비긴 팀엔 각각 1점씩 승점이 부여 된다. 상대적 강팀을 상대로는 비겨서 승점을 따는 것은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승점의 차원에서 보면 1승 2패는 3무와 같은 승점을 벌어 들인다. 축구에서 가장 쉽게 순위를 올리는 팀은 조금 더 패하더라도 확실하게 승리를 따내는 팀이다. 전북이 전력적 우위를 기반으로 ‘닥공’을 펼쳐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불의의 일격을 당해 1패를 당해도 공격적인 경기로 승리를 많이 따내는 것이 소극적인 경기로 무승부를 많이 내는 것보다 유리하다. 인천처럼 전력이 약한 팀은 매 경기 지지 않는 축구가 의미가 있다. 울산의 목표는 K리그 클래식 잔류인가, 아니면 우승 경쟁에 뛰어드는 것인가.
게다가 K리그에서 울산이라는 팀이 갖고 있는 위상과 전통을 생각하면 울산은 더 공격적인 경기를 펼쳐야 한다. 울산은 2번의 K리그 우승, 7번의 컵대회 우승, 1번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한 K리그의 대표클럽 중 하나이다. 울산은 매 시즌 우승 경쟁 혹은 최소한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위한 경쟁을 펼쳐야 할 팀이다. 특히 이번 시즌을 앞두고 수원삼성블루윙즈, 포항스틸러스 등 기업의 후원을 받는 팀들의 지원 규모가 대대적으로 삭감된 가운데, 유일하게 알찬 보강을 이룬 팀이 울산이기도 하다. 울산의 경기가 소극적으로 흘러간다면 K리그의 전체적 판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이다. 시민구단 성남이 이번 시즌 분전해서 FC서울과 전북현대모터스 양강을 열심히 쫓아가고 있지만, 현재 탄탄한 스쿼드를 가진 울산이 선두 추격은커녕 중위권 다툼에 열을 올리고 있어선 문제이다. 팀은 물론이고 리그에도 악영향이다.
(△ 시즌 전 AFC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이 목표라고 밝혔던 윤정환 감독. 과연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출처:한국프로축구연맹 홈페이지)
윤정환 감독의 축구가 절대 공격할 줄 모르는 축구는 아니다. 할 줄 알고, 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울산은 공격적인 축구를 하지 않는다. 1:0보다는 2:0이 그리고 3:0이 승리를 지키기 더 좋은 상황이다. 우세를 잡은 순간에 바로 수세로 돌아서는 것은 바보가 하는 짓이다. 기세를 탔을 땐 조금 더 과감히 밀어붙여도 괜찮다. 울산 정도면 상대의 급한 마음을 이용해 오히려 반격을 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수비적 전술을 펼 것이라면 빠르고 적극적인 역습으로 상대를 괴롭히면 된다. 그저 리드를 지키기 위해 먼저 물러서서 상대가 맘껏 때리도록 내버려둬야 할 이유는 없다. 이기고 있어도 잔뜩 웅크리는 것을 울산 팬들이 답답해하는 것이다. 울산과 윤정환 감독은 본인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변화를 시도할 때이다. 탄탄한 수비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주도권을 쥐고 있을 때 굳이 상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방어가 최선의 공격이다.'라는 말을 하기엔 울산이 가진 무게감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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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엄청 허를 찌르는 글이네요
울산은 이제 윤정환의 소심함으로 그저그런 팀으로 전락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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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이 최악으로 떨어지진 않을테니 경질은 없지 않을 것 같고요. 저도 선수 시절부터 엄청난 팬인데 요즘 감독으로의 모습은 좀 아쉽네요.
돌겠다.. 너무 답답함
10년 직관 포기하게 만든 인물이라서 평생 잊지않을것같네여. 이기고도 전혀기쁘지않았고 경기결과만 인터넷에서 보면될정도로 정말 재미없는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