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고 뭐고 아직도 이상한 해석이 너무 많은 거 같아서..
1. 10일이나 시간 끝게 문제다?
애초에 중국은 유엔군이 38선을 넘으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계속 경고했었음. 일선 부대야 추격해서 다 잡아 죽이고 평양 점령하고 항복 받아내면 끝난다고 봤겠지만 애초에 중-소의 지원 받아 전쟁난 것이라서 그렇게 끝날 전쟁이 아니기도 했음.
당장 중국은 조선 의용군을 주축으로 거의 수개 사단 급의 인력을 공급했고 이 실전 경험을 거친 인적 자원이 남침 주력이었음. 워싱턴도 그걸 알아서 38선에서 멈추라고 한 거임.
10일이나 걸린 건 사실 한국군(그러니까 승만리)이 이 기회에 북진 통일을 원했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지킬 생각이 없었고 일단 38선을 넘어서 공격하고 후퇴하는 식의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음 그리고 중국의 참전 이유 중에 하나가 이런 호전적인 친미 정권이 만주 지역에 존재하길 원지 않아서이기도 했음
2. 기세?
평양 점령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가관이었음. 권력만 탐하는 쓰레기, 자국민 학살자, 부정 부패의 화신 승만 리는 자신의 영예를 위해서 일선 부대들을 마구 독촉해서 공격 축선이 완전히 개판이었음. (심지어는 1사단이 평양에 도착해 보니 다른 사단도 오고 있어서 니들이 여길 왜와??? 하는 상황도 있었음) 가뜩이나 1공 먹겠다고 날뛰는 애송이 군대의 현실에서 승만리가 이걸 고삐를 잡아줘야 하는데 승만 리가 더더욱 부추기고 내몰음.
거의 대부분의 한국군 부대들은 북진하면서 오로지 북진 속도에만 맞추고 기본적인 경계를 하지 않는 수준이었음. 그리고 이건 1차 중공군 공세에서 대 참화를 가져옴
3. 빠르게 전진해서 압록강 확보하면?
ㅆㅂ 지도만 보고 그런 소리 하는데 12월에 개마고원하고 함경도 산골자락을 행군한다고 생각해 보셈. 그게 가능하쉴?????
애초에 한국의 지형과 기후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하는 헛소리임. 이미 평양 - 원산 축선에서 50km쯤 진격하니까 보급 문제로 전선 전체가 과부하가 걸리면서 비명 지름. 8군 사령관 워커가 일단 수비 정돈 하자고 한 것은 보급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컸음. 전략폭격으로 북한 지역 인프라를 죄다 때려 부숴놨으니 원래부터 인프라 빈약했던 북한 지역에 보급이 어려워진 상황이었음.
그리고 이 시기에 미군은 한반도 겨울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음. 걍 플로리다 반도랑 비슷한 위도에 반도 국가라 하니 비슷한 기후겠지 하고 왔고 와보니 지독하게 더워서 뭐 이런 동네가 있나 하는 상황이었음. 여기서 영하 20도의 동장군을 맛볼 거라고는 수뇌부 아무도 생각 못함
정권이 빨갱이 무찌르자여서 이런 문제 나오면 빨리 진격했다면 어쩌구 하는데 국군 군사사학자들도 현실적으로 압록강 - 두만강 라인 확보는 중국군의 참전 여부 무관하게 어려웠을 거라고 인정하는 부분님
4. 이미 우린 횽은 와 있다.
평양이 함락되면서 북경이 비상이 걸렸음.
38선 진격 지지하면서 그 때 통일 운운하는 양반들은 이 사실을 이 악물고 외면함. 대체 왜 이 중요한 사실은 뇌리에서 지우고 생각하는지 의하함. 저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평양이 함락되면서 진짜로 유엔군이 압록강 - 두만강 라인을 확보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이 닥치기 시작하자 북경에서 다급하게 한반도에 병력을 전개시키고 있었음.
이미 1980년대 청소년 대상 역사책에서 조차도 마지못해 짦막하게 인정하는 사실임. 즉.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10일 늦게 출발해서가 문제가 아니라 38선을 넘는 순간부터 중국군은 전개를 시작했다고 보는게 맞음. 너무 급하게 전개를 하다보니까 보급도 제대로 안되어서 우선 보내고 보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3명에 수류탄 한 개라는 어이 없는 중대들이 나오기도 함.
거기서 워커가 말하는대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일단 한 번 멈춰서 동계 전투 준비했으면 참혹한 1-4 후퇴는 없었을 거임. 맥아더의 선택은 자기 대선나가야 하니까공세였고 결과는 무자비하고 참혹한 참패임.
유일하게 맥아더 쉴드쳐줄 부분은 15만에서 30만이 전개했다던데, 항공 정찰을 피해서 그 많은 병력을 전개하는게 맥아더의 군사 지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임(아니 14세기도 아니고 옥수수 가루 주머니 하나 달랑 들고 등짐으로 보급하는 군대가 있을 거라고 이 할배가 알았겠냐고..) 워싱턴은 최소 10만 단위의 중국군이 전개했다는 의구심이 있었음. 그런데 문제는 실제 정보는 도코 연합군 사령부에 의존하고 있어서 맥아더 입맛에 맞는 정보 아니면 제대로 반영되질 않았음.
그래서 중공군의 1차 공세 전역에서 중공군도 그렇게 우위는 아니었음. 병력에서 딱히 우위라고 보긴 어려웠고 장비에서 질적 차이가 심했을 뿐더러 너무 급하게 오다보니 보급 문제가 심각해서(애초에 보급 문제가 많았던 군대였기도 하지만..) 뒤가 없는 상황이었음.
문제는 1차 공세에서 한 번 데여보고는 허술한 전선을 한 번 정리해야 하는데 별거 없다고 판단 내리고 크리스마스 공세 때린 맥아더가 문제임
결론은..
중국의 경고 수용하고 38선 인근 조금 더 먹는 수준에서 욕심 버리고 진행했으면 훨씬 더 적은 수가 죽었고, 실리도 더 많이 챙겼을 겁니다.
그리고 애초에 한반도 통일 하자고 한 시점에서 중공군 참전은 기정 사실이었구요.
첫댓글 원정가면서 옥수수가루들고가면 임팔작전꼴나야되는게 정상인데...
중국인은 초식동물인걸로......
비교적 진격이 용의한 서부전선과 중앙의 산악지대를 빠르게 강향 포위섬먈이 가능한 중공군의 갈아넣기식 산악기동...이러니 서부전선의 붕괴및 도로 서울재함락의 원인이 되지만 지형적으로도 대형군함및 선박을 이용해서 인력및 보급품을 싹 실고 올수있던 수심깊은 동해에 비해 서해는 수심이 낮아 인천상륙작전은 몰라도 대형선박의.입출항이 제한적인 서부전선의 상황은...빤스런각이긴햇죠...평양을 점령하는건 정치적 승리나 전략적 승리라곤 할수도 없엇고
평양 점령이 정치 / 전략적 승리는 맞죠. 근데 그래서 전쟁이 끝나느냐면 다른 문제입니다. 평양 점령 후에 당장 그 문제가 부각되었고
아마 평양- 원산 라인이 이후 정치적으로 중국과 교섭해서 받아낼 수 있는 한계선이었을 겁니다. 중국도 북한이 먼저 남침 때린건 인정하는 사실이고 미국과 전면전은 부담스럽기도 했고.. 마오쩌둥이 미그 15 받아내기 위해서 그 기회를 넘겼을까 하는 문제는 남습니다만..
알고보니 펑더화이는 림바오 같은 사람보다 윗줄이던데.. 이런 최고위급 간부가 와야 할 정도로 풍부한 경험과 승리를 해낸 중국군 장군들 조차도 미국을 두려워했다고 하니까요..
@델카이저 머 북진통일 무새인 독재자와 어떻개든 전쟁 빨리 끝내고 싶은( 인천상룩작전 뽕맞으신 맥아더 ) 유엔군 수뇌부 입장도 있엇겟지만...전쟁에 정치가 너무 개입되면.....하긴 총도 총알도 심지어 옷도 식량도 부족한 (그러나 항일전쟁및 국공내전으로 다져진)거지꼴 군대를 투입시킬꺼라고 예상못햇을지도요
@몰라요 통일 타이틀 달고 싶은 독재자와 대통령병 걸린 장군이 이걸.....
어디가서 이런 이유로 맥아더 별로고 리지웨이가 낫다 하면 빨갱이 취급받더라고요 ㅎㅎ;
북진하면서 평양원산 라인에서
멈추었음 ㆍㆍ 아쉼 큼니다
3번이 제일 문제지요.
보급이 박살나고 일선 교통정리도 안되는데........ - _-)
중일전쟁하면서 열세인 전쟁에도 닳고 닳은 군대라...... 욕심만 안 부렸어도 훨씬 좋은 판도에서 끝났겠죠.
ㅠㅠ
역전다방에서 자세히 다뤘었죠 ㅋ 꿀잼이었음
ㄹㅇ맞말
그저 월튼 워커 장군님이 최고시다 !!!!
대한민국 최고의 은공이신 워커 장군님.
그립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