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들거리네 (외 1편)
조창환
범생이가 건들거리며
땅끝마을 바닷가를 거닐고 있네
바람도 없는데
파도도 조용한데
아직 못 해 본 일 많은데
범생이는 건들거리네
벙거지 눌러쓰고
반바지에 슬리퍼 끌고
제멋대로 건들거려보네
막힌 데 앞에서 돌아갔고
허물지 못하고 비켜 갔던
범생이의 한 생은 후회가 많아
제 몸 하나 건들거려보는 일에도
흥이 솟네
평생 못 안아본 사람
안아보고 싶기도 하고
평생 못 만져본 고래
만져보고 싶기도 하지만
부질없고, 헛되고, 망령스러워
다 잊어버리기로 하네
잊어버리고
그냥 건들거리기만 하기로 하네
새의 춤
빨간 발끝으로
모래톱에 얕은 지문을 남기며
새는 작은 공처럼 튀어간다
비눗방울 같다
새가 추는 춤
꽃그늘 흩트리는 발레리나 같고
암각화에 찍혀진 고래 숨소리 같다
그렇지? 거기 환하게 철썩거리는
파도 있고, 모래 있고, 바람도 있지?
하늘에서, 보리쌀만한 그늘들
후드득 쏟아질 때
그것이 춤인 줄도 모르는 채, 새는
천진하고 무심하게 통통통 튀어간다
―시집 『건들거리네』 202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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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환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문학박사. 1973년 월간 《현대시학》지 추천으로 등단. 시집 『나비와 은하』 『저 눈빛, 헛것을 만난』 『허공으로의 도약』 『벚나무 아래, 키스 자국』 『건들거리네』 외. 시선집 『황량한 황홀』 『황금빛 재』 『신의 날』등. 산문집 『시간의 두께』 『2악장에 관한 명상』 『여행의 인문학』 등. 현재 아주대학교 명예교수.